경찰의 ‘선선선’ 캠페인, 선 넘고 물 건너 안드로메다로

‘선을 지키자’며 선 넘은 경찰, 집회 탄압용 캠페인?

최근 경찰버스가 배우 고아라 씨의 사진을 매달고 도심 곳곳을 누비고 있다. 경찰버스 광고판에 등장한 고 씨는 ‘홍보대사’겸 ‘명예경찰’ 자격으로 대국민 캠페인에 나섰다. 캠페인의 핵심은 ‘선을 지키자’는 것인데, 정확한 표현은 "선선선, 선을 지키면 행복해져요"다. 이는 서울지방경찰청이 올해 야심차게 내놓은 다소 관용적인 표현의 캐치프레이즈다. 물론 서울청이 독자적으로 기획한 캠페인은 아니다. 일명 ‘선선선’ 캠페인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매일경제>라는 경제지와의 합작품이다.

‘선선선’이란, 말 그대로 세 가지 선을 의미한다. ‘교통안전선’과 ‘질서유지선’, 그리고 ‘배려양보선’이다. 언뜻 보면 ‘뭐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칠 만한 특색 없는 선전 문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특색이 없어서일까. 그 캐치프레이즈는 되새김질하면 할수록 찝찝하고 이상한 뒷맛을 가졌다. “이거 완전히 우리를 겨냥한 거잖아요” 오랜 시간 경찰과 싸워온 한 노동자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말 뒤에 말이 있다’는 속담처럼 캠페인의 속내는 분명 다른 곳에 있었다.


‘선선선’ 중 도드라진 선, ‘질서유지선’

서울청에 따르면, ‘교통안전선’은 정지선과 중앙선, 지정차로 등 차량이 준수해야 하는 선을 뜻한다. ‘질서유지선’은 각종 집회, 시위 장소에서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치하는 ‘띠’다. 마지막으로 ‘배려양보선’은 배려, 양보, 절제, 포용, 상생, 공존 등등 온갖 좋은 말을 상징하는 ‘무형의 선’이라고 한다. ‘선선선’ 캠페인을 처음 구상한 이는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다. 그는 이 세 가지 선을 잘 지키면 한국이 선진사회로 진입할 것이라 밝혔다.

세 가지 선 중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선은 ‘질서유지선’이다. 새해 벽두부터 구 청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법질서 확립의 대표 사례인 불법 집회, 시위 문제를 준법시위 문화로 바꾸는 게 경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집회, 시위에 대한 경찰의 과잉대응 논란을 줄이기 위해 질서유지선을 중심으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질서유지선을 활용해 집회, 시위 관리에 투입되는 경찰병력을 민생치안 분야로 전환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2015년 새해에는 노란색 띠선과 플라스틱 펜스만으로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질서유지선 침범’으로 집회 참가자 9명을 형사 처벌했다. ‘선선선’ 캠페인 이후 첫 형사처벌 사례였다. 지난 1월 6일, 모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의 교회가 이단으로 지정된 것을 항의하며 한국기독교회관 앞 인도에서 집회를 벌이다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경찰은 참가자들이 질서유지선의 효용을 해함으로써 집시법을 위반했다며 형사입건했고, 3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캠페인 이후 질서유지선 침범 행위를 엄단함으로써 질서유지선 준수에 관한 시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성숙한 집회, 시위 문화 정착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캠페인 이후 ‘질서유지선’은 집회 참가자 연행에 그럴 듯한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3월 31일, 노사정위 야합을 규탄하는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 민주노총 집회에서도 10명의 참가자가 연행됐다. 질서유지선 침범에 따른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였다. 당시 연행된 A씨는 “경찰이 질서유지선 침범과 집회장소 이탈을 주요 죄목으로 꼽았다. 같이 연행된 10명도 대부분 같은 혐의였다”며 “최근 경찰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질서유지선을 새로운 집회 탄압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선’으로 평화집회 하겠다던 경찰
차벽으로 ‘산성’ 쌓고 물대포, 캡사이신 분사


집시법에 따르면 ‘질서유지선’은 집회를 제한하는 것이 아닌, 집회 참가자들을 일반인이나 차량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경찰은 그간 ‘최소한의 범위’를 임의로 해석해 집회 장소를 제한하는 등의 논란을 일으켜 왔다. 그러다 보니 질서유지선 설정 범위를 둘러싼 법적 다툼도 이어졌다. 하지만 경찰은 ‘선선선’ 캠페인을 통해 질서유지선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꺼내들었다. 집시법 24조에는 ‘질서유지선의 효용을 해친 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칙 조항이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결국 ‘선선선’ 캠페인은 집시법 24조의 적극 활용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서울청 관계자는 “(질서유지선 침범으로 형사처벌이 이뤄진 사례는) 최근 3년 이내에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캠페인 이후 질서유지선 침범에 대한 ‘엄정 대응’ 계획과 관련해서는 “사법처리를 하려면 구성요건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준을 엄격히 준비해 사법처리가 가능토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선선선, 선을 지키자’던 경찰이 오히려 ‘과잉대응’으로 선을 넘고 있다는 점이다. 선선선 캠페인 초기, 일부 언론은 ‘2015년부터 차벽이 사라진다’는 보도를 일제히 내보냈다. 올해부터 과잉진압 논란을 불러일으킨 경찰 차벽 대신 ‘질서유지선’이 활용돼 평화로운 집회,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리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구은수 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경찰이 너무 성급하게 나서 집회를 막는 것에만 급급한 이미지를 줬다”며 뒤늦은 고백을 했다. 또한 “내년부터 원칙적으로 질서유지선을 치고 그 다음으로 경찰 병력을 이용한 ‘인벽’, 그리고 ‘차벽’ 순으로 운용할 계획”이라며 “차벽보다는 질서유지선을 통해 안정적인 집회, 시위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여 뒤, 서울 도심에는 2008년 ‘명박 산성’에 비견될 만한 거대한 ‘차벽’이 등장했다. 4월 16일과 18일 진행된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를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 경찰은 광화문에서 종로3가를 차벽으로 둘러치기 위해 차벽 트럭 18대와 차량 470여 대, 경찰병력 172개 부대 1만 3,700여 명을 동원했다. 경찰은 ‘평화’와 ‘성숙’, ‘절제’, ‘배려’, ‘상생’, ‘공존’ 따위의 캠페인 문구를 뒤로하고,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분사했다. 18일 집회에서만 100명의 집회 참가자가 연행됐다. 논란이 일자 구은수 청장은 “차벽은 질서유지선의 일종”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집시법 제2조는 ‘질서유지선’을 띠, 방책, 차선 등의 경계표지로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1년 6월, 경찰이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원천봉쇄한 행위를 ‘위헌’이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경찰의 ‘선선선’ 캠페인, 선 넘고 물 건너 안드로메다로

그렇다면 경찰은 ‘교통안전선’과 ‘배려양보선’의 정착을 위해서도 그만큼의 열정을 쏟고 있을까. 최근 SNS등을 통해 교통범칙금이 두 배로 오른다는 등의 소문이 퍼졌지만 이는 유언비어로 밝혀졌다. 정지선과 중앙선, 지정차로 준수를 위해 교통경찰을 증강시킨다거나 하는 계획도 딱히 없다. 서울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선선선 캠페인은) 캐츠프레이즈 운동이자 시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는 의미라 여기에 경찰 병력을 쏟지는 않는다. 경찰 병력은 한정돼 있고, 캠페인은 기존 업무와 병행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캠페인을 위해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이냐 묻자 “중앙선, 정지선, 지정차로를 준수해 달라고 나름대로 홍보물품 등을 (제작)하고 있다. 동영상에 엠블럼을 넣는 등의 홍보활동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형의 선인 ‘배려양보선’에 대해서도 물었다. 딱히 와 닿지 않는다고 하자 서울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배려와 양보라는 것이 공동체가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서울청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찾아보니 ‘배려양보선’의 유용한 사례로 ‘여성,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 및 범죄피해자 보호 지원’ 등을 언급해 놨다.

하지만 최근 경찰은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 비하 막말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20일 보신각에서 진행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집회에서 경찰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여러분(기동대)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시위대를 자극했다. 또한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들의 생일”이라는 둥 “5명이면 저것(휠체어 탄 장애인) 들어낼 수 있다”는 둥의 경솔한 말들로 분노가 확산됐다. 결국 구은수 청장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유가족과 장애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마음을 아프게 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종로서 경비과장은 전보조치 됐다.

한편 서울청의 ‘선선선, 선을 지키면 행복해져요’ 캠페인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울청은 매일경제와 함께 ‘선선선 캠페인 100만 서명운동’도 펼치고 있다. ‘선 지키는 선진사회’라는 페이스북에 들어가 ‘좋아요’를 누르면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이 된다. 현재까지 289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서울청 팝업창에서 포털ID로 로그인해 서명에 참여할 수도 있다. 뭣 모르고 ‘계정 사용 동의’를 누르면 서명에 참여한 것으로 처리가 된다. 지금까지 몇 명이 참여했는지는 매일경제 기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지난 20일자 기사에 따르면 캠페인 서명이 4만 명을 돌파했다고 나와 있다. 이달 초에는 경찰병원에서 ‘선선선 음악회’가 열렸고 ‘효녀가수 현숙’과 탤런트 김성환 씨는 ‘선선선 캠페인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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