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꼴, 4대강 공사와 핵발전소

책임은 지지 않고 이득만 챙기는 정부와 자본

공공시설을 보는 눈

명배우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추억의 영화 ‘로마의 휴일’를 보신 이들은, 등장하는 분수대가 기억날 것이다. 이 분수대로 흐르는 로마의 수도를 만든 사람이 ‘아피아’(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인데,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다.

  4대강 왜곡언론을 고발하는 대한하천학회와 시민사회. 토건 마피아의 중심에는 부패언론이 있다. [출처: 울산저널 이원영]

그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의 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아피아’ 가도도 만들었다. 2400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배수처리나 포장기술 등의 기술이 오늘날에 견주어 봐도 구조적으로 손색이 없는데, 정작 놀라운 부분은 또 있다. 바로 ‘아피아’ 가도가 개인재산으로 건설되고 국가에 헌납되었다는 점이다. 귀족인 그는 로마의 수도(水道)뿐 아니라 이런 길도 자신의 재산으로 닦은 것이다.

살펴보니 원형극장이나 공중목욕탕과 같은 공공시설도 왕족이나 귀족의 개인재산으로 만들어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예사였다. 흥미롭다. 나랏돈을 들이지 않고 부자가 지어서 기부하는 것이니, 세금 적게 거두어서 좋고, 명예 때문에 튼튼하게 지었을 것이고, 자기 돈을 들이므로 낭비 없이 알뜰하게 썼을 것이다. 무릎을 치는 대목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공공시설을 생각하는 대목에서는 우리도 좋은 사례가 있다. 200년 전 축조된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배경에는 <화성성역의궤>라는 상세한 기록물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공사에 들어가는 물품과 비용이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며 일한 기간과 지급된 노임의 기록은 기본이고, 건물마다 박힌 ‘못’의 종류와 수량과 단가까지도 세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만큼 나랏돈을 아껴 썼던 것이다. 공적인 시설에 대한 이러한 기록문화는 놀랍기 그지없다.

한심한 요즘 세태

이런 옛 기록이 무색하게도, 민주화가 되고 문명사회가 된 요즈음에 4대강 공사 같은 일이 벌어졌다. 5년짜리 단임정권이 국토에 깊은 상처를 주면서 나라 재정을 거덜냈다. 왜 그랬을까?

예전만 해도 하천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많은 예산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국토부가 한해에 1조5000억원, 환경부가 1조원, 소방방재청이 8000억 정도를 하천사업에 쓴다. 국토부는 ‘고향의 강’ 사업, 생태하천 보전사업, 환경부는 생태하천 조성사업인데, 오히려 이름은 역설적이다. 주민들도 하천 관리를 잘 해 주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없다.

이 대목도 중요하다. 제방이 없다면 어떻게 되나? 홍수시에 상류로부터 흘러들어온 잘 숙성된 유기물질이 온 들판에 덮인다. 곡식은 사흘쯤 물에 잠겨도 끄떡없다. 자연산 비료가 온 들판에 저절로 덮인다. 인류문명은 이렇게 농사짓기 좋은 유역하구에서부터 발달한 것이다. 제방 없는 범람원은 천혜의 공간으로 존중받았다. 그런데, 이 생태적 공간에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집들이 들어서면서 침수피해를 호소한다. 하천의 영역에 무례하게 침범해놓고는 주인행세하면서 제방을 쌓아 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공사가 보통 1킬로미터당 약 100억원씩 들어간다. 마진율도 크지만 사업 아이템도 무궁무진한 게 하천사업이다. 게다가 한 번 정비하고 나면 번듯하니 보기에도 좋은 반면, 그 과정이 부실한지 어떤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맹점이다.

그러니까 백성 돈으로 인심 쓰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으므로 무한질주가 가능하다는 것, 이게 4대강 만행의 구조다. 멀쩡한 보도블록이 연말만 되면 갈아치워지는 공사가 벌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그리고 그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겠는가?

4대강과 핵발전소는 닮은 꼴

본질은 4대강이나 원전이나 다르지 않다. 핵발전소는 하나 건설하는 데 2조원 이상이 든다. 부지의 선정과 매입, 건설, 운영에도 엄청난 돈이 들 뿐 아니라 핵연료가 되는 우라늄의 채굴과 매입과 이송, 송전시설의 건설 등에도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된다. 지금 한수원의 모회사인 한전의 적자는 천문학적이다. 도대체 누굴 믿고 저럴 수 있을까? 국민들 세금으로 충당할 것을 생각하고 ‘배째라’식 경영을 한다. 바로 백성들 돈은 눈먼 돈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자본권력이 빨대를 꼽아 국민의 피를 빨아 먹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핵 마피아의 서식처가 생겨난다. 가장 중요한 축은 원전사업체가 중심이 된 핵발전소 건설산업계다. 그동안 24기의 핵발전소 건설로 막대한 이익을 얻어왔다. 특수이익집단이라 할만하다. 원자력 전공의 학자들은 4대강을 옹호한 대부분의 토목학자들과 닮은 꼴이다. 막대한 연구비 앞에 ‘지조’를 ‘자진해서’ 굽히는 학자들은 자본권력의 앞잡이나 다름없다. 그런 생각과 규범을 공유하면서 원자력 정책 결정을 독점하는 이들이 정부, 기업, 정치권, 대학 연구소 등 곳곳에 박혀 있다. 그러면서 계획과 집행에 따른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다. 강력한 응집력과 결속력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폐쇄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문제는, 이득은 그들에게 돌아가지만 사고가 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대목 또한 놀랍다. 기실 핵발전소는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지는가가 분명하지 않다. 가령 도로교통법은 사고가 났을 때 책임소재를 가리는 규정이 상세하게 망라되어 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위험과 사고에 대한 정의를 규정하고 책임소재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법률체계를 갖추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원자력 관련법은 손해배상만 언급하고 있지,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는 분명하지 않다. 책임은 지지 않고 이득을 챙기는 구조 또한 4대강 공사와 똑 같다.

이 과정에서 책임은 지지 않고 이득을 챙기는 장치가 활용되고 있는데, 바로 정부기관의 각종 위원회다. 그 정체가 이렇다. 공무원이 어떤 사업을 구상했는데 결과가 잘못되면 책임을 져야 하므로 방안을 강구한 것이 위원회다. ‘말 잘 듣는 위원’을 위촉해서 심의를 하게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린 할 만큼 했다, 전문가들 자문 받아서 한 거다’, 이렇게 주장하고 근거자료를 제출하면 처벌할 수가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약간 성격은 다르지만 그러한 위원회 체제의 산물이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구조다. 최근의 고리 1호기 폐로 결정도 원안위가 아닌 산자부 장관 쪽에서 나온 것이다. 위원회들의 구성을 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원자력산업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인사는 구색 맞추기로만 하고 있다. ‘안전’을 표결로 결정한 ‘용감무쌍한’ 사례가 바로 월성 1호기 재가동 심의다.

  월성 1호기 폐쇄를 염원하는 지역주민들이 제를 지내고 있다. [출처: 울산저널 이원영]

절차를 생략한 국가권력의 횡포

처음에는 운하공사를 민간 자본으로 하겠다고 해놓고선 나중에 은근슬쩍 국비로 하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운하를 국민들이 너나없이 반대하고 나서자 결국 이명박 씨가 운하 안 한다고 발표를 하는데 슬쩍 양보하는 척하면서 정작 중요한 사업비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버린 것이다. 나랏돈으로 사업을 추진하게끔 손을 쓴 것이다. 마치 축구경기의 교묘한 반칙을 보는 것 같다. 이런 개인기는 슬로우비디오로 다시 보면서 그 반칙 행위를 제대로 잡아내서 장외퇴장 시켜야 마땅하다. 선수의 반칙은 교묘해졌는데, 심판과 관중은 속아 넘어간 사건이 4대강이다.

그런데, 핵발전소에는 이런 일이 아예 처음부터 벌어진다. ‘안전하다’고 그리고 ‘깨끗하다’고 속이고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핵발전소는 안전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오히려 핵폐기물의 처리 방안이 전무한 것이나, 사고로 인한 생명 파괴와 지구의 영구적 황폐화를 생각하면,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핵발전은 부모가 자식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고 또 그 짓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만하다.

2009년 7월에 4대강 사업 마스터 플랜이 발표되면서 22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편성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해 말 낙동강에서 착공식을 했다는 것이다. ‘마스터 플랜’이라는 게 말 그대로 큰 틀을 잡은 기본 계획인데, 공사하려면 기본계획 기본설계 실시설계의 여러 단계가 있은 다음이라야 가능한 법인데, 구상한 지 6개월 만에 수십조 원 규모의 공사가 시행되는 절차생략과 위반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월성 1호기 방식은 어떤가? 국제적 기준에서 정하고 있는 절차와 기준이 나오기 전에 돈을 투입하고 실행 작업부터 해버린 것이다. 그 돈이 자그만치 6000억원이나 된단다. 그렇게 저질러 놓고는 ‘재가동을 하지 않으면 그 돈을 회수할 수 없다’고 우긴다. 일찌감치 한수원 고위인사가 ‘우리 방식으로 먼저 밀어붙여야 한다’고 한 결과다. 마치 4대강 때 당시 모 한나라당 대표가 ‘문제는 속도전이고 전광석화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한다’는 것을 연상시킨다. 기정사실화 전략이라니, 국가권력의 횡포라는 점에서 적나라하게 닮은 꼴이다.

재정 감시 기술이 필요하다

4대강 사업은 우리 사회가 독재권력을 지나 자본권력의 시대로 왔다는 상징적 사건이다. 지금의 자본권력은 세금을 활용해 재정적으로 수탈하는 것이어서 아무리 시위해도 겁 안 내고 가만히 있다가 세금 잘 뜯어가서 자기 입맛대로 다 쓰는 구조다. 야당 국회의원들 역시 지역 발전이니 돈에 매인 문제에는 입을 다문다. 시민사회가 자본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 가령 조세저항 기술이나 재정 감시 기술을 통해 명백히 잘못된 정책에 재정적 타격을 입히는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 개발 사업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중단하려다 다시 진행시켰는데, 중단해야 할 기회에서 매몰비용으로 처리할 기회를 놓쳤다. 결국 약 20조원의 손실을 보고서야 중단되었다. 울산은 태화강 사례가 있다. 과거 악취를 풍기던 죽은 강에서 생명력이 넘치는 강으로 다시 살아났다. 자연생태 복원 사업은 87년에 설치된 수중보와 콘크리트 제방 등 인공 시설물을 걷어내면서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4대강 댐과 보도 마찬가지다. 수질관리와 바다생태계와 어족자원의 회유습성을 감안하면 들인 돈 생각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재자연화 해야 한다.

핵발전소는 당시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고, 위험한 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위험하다는 것이 명백해졌고, 다른 대안도 훌륭하다. 중단해서 얻을 편익이 훨씬 크다. 무엇보다 핵발전소, 화력발전소는 원료의 채굴, 수송, 가공, 생산, 배급 모든 단계가 대자본에 의한 중앙집중식 수급체계일 수밖에 없고 돈이 돈을 버는 구조다. 송전탑 문제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반면 자연에너지는 원료가 공짜고 동네에서 생산과 공급이 이루어져서 주민이 돈을 버는 구조다. 미래경제의 블루오션은 여기에 있다. 독일이 탈핵에 확신을 갖는 것은 윤리적인 이유만이 아니다.

상상하는 재미

필자가 가끔 상상한다. 4대강 댐(보)를 해체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폭파공법이고 또 하나는 다이아몬드 절단 공법이다. 전자는 비용이 싼 대신 하천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편이고, 후자는 철근콘크리트를 깔끔하게 잘라내는 대신 비싸게 먹히는 공법이다. 필자는 후자의 방법으로 잘라낸 그 ‘공구리’를 건설자재로 재활용하여 교도소를 짓는 상상을 한다. 철거를 하고도 상당기간 녹조가 남아 있어서 그 색깔이 잘 내려다보이는 4대강 어디엔가 말이다. 그리고는 이명박 일당과 4대강 잡범들을 거기에다 집어넣는 그림이다.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주는 관대한 그림이다.

또 한 가지 그림이 있다. 작년 말 핵발전소 해체기술로 유명한 독일 칼스루에 대학엘 갔더니, 저명한 S.겐테스 교수팀에서 연구하는 젊은 조교수가 핵심기술이라며 로봇을 보여주었다. 방사능으로 가득한 핵반응로를 해체하고 폐기하려면 고준위방사능 물질만 표면에서 벗겨내 부피를 줄여야 하는데, 그걸 사람이 못하니까 로봇이 대행하는 기술을 시전하는 것이었다. 벗겨내고 남은 것 가운데 저준위폐기장으로 갈 철근이나 콘크리트도 있는가 하면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이 측정되는 것도 있다.

필자는 그때 생각났다. ‘기준치 이하니까 먹어도 안전할 것’이라고 주장해온 ‘원전마피아’ 출신들의 그동안의 태도가. 최근까지 그 동네에서는 많은 범죄자들이 나왔다. 마치 4대강 녹조가 보여주는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그들을 가두는 전용 교도소를 그 ‘잔존 공구리’로 지으면 어떨까? 그들 스스로 말에 책임지게 한다는 뜻에서. 그 곳에 가서 그들에게 로마 이야기와 화성 축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 또한 그려본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