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그래도 봄날은 오지 않았다

[노동의 시대] 노동자민중의 갈림길. 새 사회 건설인가, 구체제의 연장인가

친일과 독재로 상징되는 산업화시대 노동탄압하던 절대권력자의 말로를 기억한다. 그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딸도 노동자의 조직 민주노총 사무실을 군화발로 짓이겨 침탈하며 권력전횡을 부리다 탄핵으로 실권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불행한 데자뷰이며 사필귀정.

지난 2013년 12월 22일 박근혜의 민주노총 침탈은 ‘박근혜퇴진 투쟁’의 공식선언일이 되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공식 결정과 선언이후 노동자들의 주요 구호와 투쟁은 박근혜퇴진을 걸고 싸웠다. 이후 3년 만에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결정되었고, 3개월 만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었다. 2017년 3월 10일은 박근혜정권 퇴진일로 역사에 남았다.

[출처: 자료사진]

작년 가을 광장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박근혜 4년의 국정농단만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사회의 적폐를 일소하기 위한 총파업, 민중총궐기, 촛불항쟁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즉각 퇴진 요구가 국회와 헌법재판소로 제도적 수렴되면서 탄핵 인용 요구로 축소되었다. 심지어 헌재 결정의 승복 여부로 쟁점이 형성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광장의 요구는 서로 대리인을 자임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대선국면으로 급격히 이동 중이다. 주인이 따로 없던 평등의 촛불광장에 숟가락 들고 나타나 독상을 받겠다며 주인행세하는 격이다. 촛불항쟁의 성과를 특정인이나 일부 정치세력이 전취할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렇다. 이에 대한 압박과 대응이 단호하게 되지 못하면서 광장의 분노가 제도화의 가두리에 갇히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상황은 역관계가 반영된 결과이다.

1500만 촛불과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박근혜정권의 퇴진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분노에 찬 외침에 염원이 함축되어 있었다. 단순히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가 대변했던 시대의 산물들인 적폐와 함께 역사의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것이다. 단순히 제도정치권의 선수교체를 위해 재주부리는 곰이 아니라는 말이다. 탄핵은 박근혜 퇴진의 절차적 과정 중 하나로 선택되었을 뿐이며, 이제 정권 퇴진의 성과를 역사와 국민이 쟁취해야 진정한 명예혁명이다.

지난 3월 4일 19차 범국민 행동의 날,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라는 선언이 나왔었다. 그렇다. 굳이 오는 봄을 아니라고 우기거나 우려할 필요는 없다. 다만 봄맞이는 하되 ‘춘래불사춘’이 아니어야 한다. 심지어 ‘봄날은 간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역사의 봄, 광장의 봄, 노동자민중의 봄은 무엇이어야 하며 무엇을 쟁취해야 하는가. 광장의 1500만 촛불과 압도적 국민 다수가 분노한 ‘이게 나라냐’의 구조적 모순들을 과감하게 혁파하고 절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앙샹레짐(구체제)의 반동적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면 대선이라는 제도적 과정을 거치며 요구가 구체적으로 현실화될 때까지 광장의 관리감독이 존재해야 한다. 광장의 분노와 힘을 정치적, 계급적으로 상승 전화시키지 못하면 결국은 도로묵이 되는 것이다. 시쳇말로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되는 것.

작년 10월 29일부터 1500만 촛불을 밝혀온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의 과제는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일지 모른다. 촛불 행렬이 상춘객 행렬로 바뀌어 나른해지는 사이에 뜨거운 여름에 축 처지고 가을걷이에 빈손이 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 심지어 어느 새 엄동설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시대의 뼈아픈 체험이 아니었던가.

[출처: 자료사진]

결코 잊지 말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는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 한국전쟁을 겪은 1954년 당대의 정신적 피폐를 위로하기 위해 발표된 서정가요로 대중의 큰 호응을 받았다. 손노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2003년 시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애창 대중가요 1위로 선정된 노래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시대 착오적 국정 농단으로 국제적 조롱과 파장을 일으켜 국격을 추락시킨 친일과 독재의 계승자 박근혜를 떠나보낸 이 땅의 만감이 교차할 노동자민중들에게 위로의 노래를 선사한다. 아울러 분노의 해소와 함께 적폐 청산의 의지도 갈무리될까하는 노파심에서 경계의 의미도 담았다.

우리는 지난 4개월여 동안 대통령의 제도적 존부와 자진사퇴라는 새 갈래길에 서 있었다. 이제 박근혜 없는 봄이다. 하지만 탄핵인용의 결과만으로 새로운 사회의 외길을 갈 수 있다는 거짓 선지자들의 혹세무민이 두 달 동안 판을 칠 것이 예상된다. 하여, 광장의 촛불과 개돼지 취급받았던 노동자민중들은 갈림길에 서 있다.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냐, 구체제의 연장이냐.

오늘 하루 만세 부르고 다시 촛불을 켜고 횃불을 들어 봄길 나서게 될 사람 같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마음의 노래. 경계의 시. 잊지 말자.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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