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파면, 승자는?

[워커스] 나를 찾아서

반세기 가까이 이 나라를 지배해왔던 박정희 신화가 허물어지는 듯합니다. 지난해 워커스가 휴간하기 전 몇 차례 박근혜를 소재로 다룰 때만 해도 박근혜 파면이 별로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현실이 된지도 벌써 2주 가까이 지났습니다. 촛불은 승리의 축제를 열었고 박근혜는 이제 피의자가 되어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섰습니다.

분명 촛불의 승리이고 광장의 승리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듯 사태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따로 있을지도 모릅니다. 박근혜가 퇴진한다고 해서 최저임금을 받는 내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되물었던 한 노동자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박근혜가 파면된 이 정국 속에서 촛불을 든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 심지어 지금까지 박정희-박근혜 아래에서 이익을 누려왔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계속 이득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 년 가까이 지속된 항쟁, 그 항쟁의 성과를 다른 누군가가 가져간다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닐 겁니다. 이번 길찾기에서는 그 ‘다른 누군가’를 한 번 찾아보려고 합니다.


A 타입 : 이정미

특검에 이어 헌법재판소까지, 박근혜 파면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법기관들은 그 무엇보다 화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태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인지, 박근혜 파면 얼마 후 제 친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진정한 법복귀족들의 시대가 열렸다고. “프랑스혁명 이후 법복귀족을 이겨본 나라는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특검 사무실 앞엔 응원의 메시지와 꽃다발이 쌓였고, 특검보의 패션과 말투까지 유명해졌습니다. 헌재 앞에서도 재판관들에게 힘내라는 피켓팅이 이어졌고 탄핵선고 당일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 2개’는 선고 이후 찬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8:0 탄핵인용으로 헌재의 권위는 어느 때보다 하늘을 찌를 듯하고 이정미 재판관은 박수 속에 퇴임했습니다. 박근혜 파면의 승자는 이정미 전 재판관을 비롯한 법관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B 타입 : 바른정당

지난 총선 때 친박공천을 거부하며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당대표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떠나버린 이른바 ‘옥새파동’은 여당 내 계파갈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죠. 이때부터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도 ‘친박은 안 된다’는 여론에 불을 지폈고, 결국 박근혜게이트가 터지면서 ‘친박과 다른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며 바른정당이 갈라져 나왔습니다. 탄핵심판에서는 바른정당의 권성동 의원이 소추위원장 역할을 맡아 국회 소추위원단을 이끌기도 했지요. 일단 친박과의 결별은 확실히 매듭을 지은 것 같지만, 문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는 지지율입니다. 이 때문에 연일 문재인을 공격하며 개헌 카드를 꺼내들어 반(反)문재인 연대로 지지율 반등을 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지지율이 좀 낮으면 어떻습니까, 북한만 있으면 한국에서 보수정당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

C 타입 : 문재인

압도적 지지율로 1위 대선주자 자리를 굳히고 있는 문재인. 뿐만 아니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무려 46%의 정당지지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야말로 박근혜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는 야당, 그 중에서도 수권가능성이 높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인 것처럼 보입니다. 정권교체라는 말 자체가 지금으로선 거의 문재인 후보와 동의어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민주당이나 문재인 후보가 일관되게 박근혜 퇴진을 내걸지는 않았지요. 돌이켜보면 박근혜게이트 초기 오히려 박근혜와의 ‘영수회담’ 추진에 이어 ‘책임총리’, ‘중립내각’, ‘질서있는 퇴진’ 등 광장의 민심과는 동떨어진 행보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문재인 캠프는 친(親)삼성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양향자, 김호기 등 그 면면을 보면 근거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박근혜에 대한 실망은 문재인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 정권교체가 얼마나 다른 세상을 만들어낼지는 알 수 없을 것 같군요.

D 타입 : 촛불시민

이 나라에서는 기묘하게도 10년 정도에 한 번씩 거대한 대중운동이 분출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번 박근혜퇴진 촛불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인원추산이나 여론조사를 봐도 한 집에 한 명 정도씩은 집회에 나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섯 달이 넘도록 광장을 밝혔고 국회 탄핵소추와 헌재의 파면선고를 끌어내는 한편 절대권력으로 보였던 이재용을 구속시키기도 했지요. 열린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거대한 움직임을 함께 이루어내고 그로써 권력자를 몰아냈다는 성취감은 소중한 공동의 경험으로 남게 될 겁니다. 이제 남은 일은 박근혜가 사라진, 아니 박근혜만 사라진 이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우리의 삶도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것. 촛불은 승리했지만, 또한 아직 승리까지는 너무 먼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 타입 : JTBC

지난해 10월 24일 저녁, 이른바 태블릿 PC 보도로 JTBC는 박근혜게이트의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다음날인 10월 25일 박근혜는 첫 대국민담화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죠. 이날 이후 방송과 신문을 막론하고 온갖 특종, 단독보도가 쏟아져 나왔고 뉴스가 예능보다 재미있다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후로도 JTBC는 박근혜게이트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며 청와대방송으로 전락한 공영방송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연일 화젯거리가 되었고 JTBC 뉴스룸은 심심찮게 인터넷 실시간검색어 주요순위에 오르내립니다. 심지어 중앙일보-JTBC사의 회장인 홍석현이 회장직을 사임하자 대권출마설까지 돌 정도로 JTBC는 종편의 위상을 뛰어넘은 것 같습니다. 3년 전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진정성 있는 보도’로 눈길을 끌기 시작한 JTBC, 이제 박근혜 퇴진국면에서 ‘국민언론’으로 자리잡은 느낌입니다.

F 타입 : 황교안

1인자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2인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됩니다. 특히나 대통령에 비해 국무총리에게 별다른 실권이 없는 이 나라에서 평소에 총리가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 국무총리에 ‘불과’했던 황교안이 단숨에 보수진영을 대표할 대권후보로 거론되었죠. 본인은 결국 불출마선언을 하긴 했지만, 출마의사조차 밝힌 적이 없음에도 말입니다. 세월호 수사 방해, 통합진보당 해산, 국정농단 방조 등 박근혜정권의 행적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공범자임에도 유독 황교안은 보수층의 지지 속에 완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황교안이 불출마선언을 하기 전 조선일보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에 충실하라’는 주문을 한 바 있다는 것이죠. 황교안이 불출마선언을 하자 ‘보수에서
오랜만에 보는 상식적 판단’이라며 칭찬까지 했습니다. 보수진영 대표 대권주자의 불출마를 조선일보가 종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대권주자로서 황교안의 가능성은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이번은 때가 아니다’라는 판단이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5년 후, 다음을 내다보는 수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G 타입 : 정몽구

헌재는 박근혜를 파면했지만 뇌물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업들의 재산권 및 경영권 침해를 탄핵의 사유로 꼽았죠. 이렇게 보면 재벌들은 박근혜에 의해 강제로 돈을 뜯긴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헌재 판결문에 현대차와 KD코퍼레이션 간의 납품계약이 박근혜-최순실의 사익추구를 위한 것이었다고 적시된 것에 대해 현대차는 ‘우리는 피해자’라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재용이 구속되고 SK, 롯데, CJ 등 검찰의 재벌수사가 시작된 가운데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특검 시기부터 지금까지 수사대상이라는 언급조차 한 번 없습니다. 최저임금은 고작 440원 올리면서 온갖 생색을 내더니 정권에는 800억에 달하는 뇌물을 바치고도 아직 처벌받을지조차 알 수 없는 재벌총수들. 진정한 권력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H 타입 : 박사모

박근혜가 파면됐는데 어떻게 박사모가 승자일 수 있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3월 10일 이후로는 거의 최후의 발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궁지로 내몰리는 박사모, 엄마부대 등 ‘수꼴’들은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 불가한, 그저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 극우보수세력이 오늘날처럼 대규모 동원력을 갖추고 조직된 적도 없었습니다. ‘탄기국’이 자신들의 집회인원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실제로 한동안 시청광장에서 숭례문까지 들어차던 그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을 보면 마냥 용돈을 쥐어주고 고용한 알바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노년층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3-40대 참가자들도 많고 간혹 20대 청년들도 눈에 띕니다. ‘빨갱이에게 나라가 넘어가면 안 된다’는 70년을 이어온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강력합니다. 지금은 그저 광란의 무리에 불과해 보이는 박사모, 하지만 극우 정치세력화의 단초를 형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덧붙이는 말

강후 |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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