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는 정의당을 ‘혁신’할 수 있을까

정의당 ‘정체성 위기’ 다시 부상하나

정의당은 총선 이후 당의 위기라고 판단하고 혁신위원회를 5월 24일 발족했다. 앞서 정의당은 21대 총선에서 6석 ‘현상 유지’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총선 이전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동의를 당론으로 결정해 논란을 일으켰고, 총선 시기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개혁을 견인하겠다’는 기조로 표를 구해 정의당이 독자노선의 길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의회에서도 운신의 폭을 넓히지 못했고, 정치 영역에서도 진보, 좌파의 가치를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혁신위는 정의당의 진보, 좌파정치를 다시 재정립할 수 있을까.

혁신위 구성에 좌파 인사 여럿
정의당 ‘정체성 위기’ 최우선 과제 꼽아


정의당이 정체성 위기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좌파진영의 요구는 크다. 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10%의 정당 득표율을 얻으며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평도 있지만, 자유주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노선 측면에서 차별화를 두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따라서 혁신위는 정의당의 ‘독자노선 확립’ 문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우선 혁신위 구성을 보면, 그동안 정의당 우경화를 비판해 왔던 인사가 적지 않다. 따라서 혁신위에서 정의당 ‘정체성’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권수정, 김창인, 홍명교 혁신위원은 당내 인사들과 함께 5월 15일 ‘올바른 총선평가와 당의 혁신을 고민하며’라는 글을 <레디앙>에 기고한 바 있다. 이들은 기고에서 “민주대연합의 길과 독자적 진보정당의 길에서 부유하던 정의당의 진보정치가 다시 독자적 진보정당의 길 위에 서 있다. 비록 축출된 것에 가깝지만 여기가 원래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노선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고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은 대부분 의견그룹인 노동정치연대, 평등사회네트워크, 민주적 사회주의자 등에 속한 인물이다.

또 당 관계자는 “18명의 혁신위원 중 과반이 당내 좌파와 좌파 입장에 동의하는 인사”라고 말했다. 혁신위원은 정의당 전국위원회 결정을 통해 구성됐다. 전국위를 거쳐 의견그룹 인사가 적잖게 혁신위에 참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 차원에서도 ‘정의당이 더 왼쪽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권수정 혁신위원(서울시 의원)은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정의당 정체성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협력하고, 통합당을 극복하려는 체계를 유지했던 건 일정 정도 사실”이라며 “정의당은 의회 정치에 매몰된 까닭에 의회 안에서 표명 가능한 수준의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래서 애매한 입장이 반복되고 노선을 정리하지 못했다. 정의당은 진보정당 입장에서 불평등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환경 문제 등을 일으키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렇게 정의당을 진보정당 입장으로 확신을 가져다주는 게 혁신위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강민진 혁신위원은 “혁신위에서 정의당의 정체성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하는 게 필요하다”라며 “정의당을 두고 국민이 ‘옳은 말 한다’고 박수 치는 경우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지하는 경우가 있다. 그간 정의당은 과연 후자와 같은 동의를 얻어 왔는가. 그 점에서 정의당은 거대 양당 사이 대안세력으로서 신뢰를 주지 못했다. 정의당은 어느 위치에서 누구를 대변할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당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추가 선임된 홍명교 혁신위원은 “정의당이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민주당과의 관계를 선명히 해야 한다는 얘기는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다. 특별하게 쟁점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문제는 구체적인 정체성을 어떻게 만드느냐다. 예를 들면 정의당이 얘기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는 민주당의 ‘사람 중심 포용 국가’와 별 차이가 없다. 정의당은 더 왼쪽에서 국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바꾸자고 제기하면 쟁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혜영 혁신위원장은 국회의원 후보 시절 <참세상> 인터뷰에서 ‘진보정당의 원칙’을 강조한 바 있다. 장 위원장은 “정의당은 독자 노선으로서 평가 받아야 한다. 타협도 없어야 한다”며 “민주당에 대한 공적 분노를 국회에서 사람들이 공감하는 언어로 치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장혜영 의원(정의당 혁신위원장). [출처: 정의당]

“당 지도부 교체에 그치면 혁신 실패…
사회운동, 지역운동 강화 있어야”


복수의 정의당 관계자에 따르면, 정의당은 혁신위를 거쳐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심상정 대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총선 결과에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이 많고, 단일지도체제가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많은 언론도 혁신위를 통한 정의당의 리더 교체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혁신위원들은 혁신위 활동이 ‘지도부 교체’에만 머무르면 실패할 거라고 입을 모은다. 혁신위원들은 정의당의 진보정당 노선 확립과 동시에 지역 운동 강화를 혁신위 필수 과제로 꼽았다. 21대 총선에서도 심상정 대표 외 모든 지역구 후보가 낙선했는데, 정의당이 의회 중심으로 운영된 동시에 지역을 기반으로 한 풀뿌리 운동을 소홀히 했기에 나타난 결과라는 판단이다.

홍 혁신위원은 “정의당 지도체제에 대한 안팎의 관심이 많은데, 거기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며 “정의당은 ‘소비자 정당’이 됐다고 생각한다. 의원 중심으로 ‘이슈 파이팅’만 하는 정당으로 전락했다. 반면 지역 운동은 너무 많이 죽었다. 이번 총선 결과도 정의당이 지역에서 떨어졌다는 상황을 드러냈다. 지역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대의원, 중앙위원회, 전국위원회 체제를 어떻게 바꿀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혁신위원도 “정의당이 의회 중심으로 돌아가니 지역 활동은 사라졌다. 이는 당의 조직 체계 문제와 맞닿아 있다”며 “전국위원회의 경우 대표 단위 추천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각 지역에서 (상위 의결 체제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지역에서 활동이 일어나고, 사회운동과 연결된 진보정당 운동이 살아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혁신위는 지난 9일 5차 회의를 마쳤다. 혁신위가 특정 의제를 두고 토론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혁신위는 오는 21일까지 당 내외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기간을 갖는다. 이후 떠오른 쟁점을 혁신위 토론에 부친다는 계획이다. 혁신위는 오는 8월 말 대의원대회에 최종 혁신안을 제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