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회주의’ 집어삼킨 자본주의, 새로운 계급 모순과 특권층

[워커스] 베네수엘라 위기,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문제

  마두로 대통령이 의약품 분야에 대한 투자를 선전하고 있다. / venezuelanalysis.com

두 개의 시장

베네수엘라 수입업자 A는 미국에서 밀 100톤을 수입하고자 한다. 그는 정부에 수입신청서를 쓴 뒤 약 30만 볼리바르를 내고 24,000달러(약 2720만 원)를 받았다. 생필품 수입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에 따라 1달러 당 12볼리바르라는 저금리로 산 달러다. 하지만 A는 밀 100톤을 수입하는 대신 30톤만 수입하고 나머지 달러는 해외 은행으로 도피시키거나 암시장에 내놓는다. 암시장에선 1달러가 22만8천 볼리바르에 팔리기 때문에 큰 수지를 낼 수 있다. 그리고 들여온 밀 30톤 중 10톤은 정부에, 나머지 10톤은 암시장에, 그리고 다른 10톤은 국경을 가로질러 콜롬비아로 가서 판다. 정부에는 신고가로 판매하지만, 암시장에 내 놓은 밀은 노다지와 다름없다. 정부의 외환 혜택 덕에 콜롬비아에서도 마진이 크다.

식량 장사가 마약보다 남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정부가 산 10톤 중 8톤은 이른바 ‘21세기 사회주의’ 구호를 외치며 들어선 정부 관료나 여당, 공공사업 관련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들은 엔추파도스(enchufados), 즉 ‘연결된 자’라고 불린다. 나머지 2톤은 공공마켓을 통해 저가로 판매된다. 결국 밀 수입량이 100톤에서 2톤으로 크게 줄어든 탓에, 사람들은 공공마켓 앞에서 꼬리를 물고 몇 시간을 기다리지만 허탕 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최근에는 공공마켓에서 살 수 있는 물건도 거의 없다. 중산층 지역을 제외하면, 민간마켓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더 오래 전에 바닥이 났다. 종종 언론 보도를 탄 텅 빈 민간마켓 진열대에서처럼 말이다. 정부가 25종의 기본식량에 대해선 고정가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수입업자들은 민간마켓은 건너뛰고 암시장에 내다 판다. 물론 가격이 고정되지 않은 고가의 상품은 민간마켓에 즐비하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누구나 기본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물가를 통제했다. ‘21세기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정책으로 서민의 시름을 크게 덜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관료주의와 결탁한 자본가계급은 이를 무력화해 암시장 즉, 자본주의의 원리로 그것도 폭리가 가능한 그들의 시장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시장은 이제 죽은 것과 다름없게 됐다. 대신 암시장이 사실상의 거래소로 대체됐다. 베네수엘라 재벌인 수입업자들이 가격을 부르고 도소매상들이 물건을 내놓으면 일반 서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옥수수 가루나 콩 같은 주식만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세관원이나 공공서비스 운영자 등 공무원이나 지역 정치인, 군대 모두가 얽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초인플레이션으로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6년부터 인플레이션율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 IMF에 따르면 올해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1천만%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이 극적인 이유는 수출 수입과 수입 물자 모두 급감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수출 수입 즉, 외화 수입의 96%는 석유에서 나온다. 그런데 석유 수출 수입이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978억 달러에서 274억 달러로 떨어졌다. 이유는 같은 시기에 유가가 배럴 당 110달러에서 30달러로 폭락한 탓이기도 하지만 석유 생산량 자체가 급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석유 생산은 하루 약 350만 배럴에서 120만 배럴 이하로 떨어졌는데 인프라 투자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석유 수출 수입이 감소하자 다른 산업부문도 주저앉기 시작했다. 농업과 제조업 등 여러 부문의 생산량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베네수엘라 GDP는 18%까지 낮아졌다. 국가 예비비도 2012년 수준에서 40% 줄었다. 베네수엘라 위기는 몇 년 전부터 보도를 탔지만 현재 그 정도는 훨씬 심각하다. 인구의 90%가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며 지난해 베네수엘라인 평균 체중은 11Kg 감소했다. 우유 소비는 절반으로 줄었고, 의약품 부족에 대해선 유용한 자료가 없을 정도다.

차비스모(Chavismo, 차베스주의)의 성과

이것이 21세기 사회주의를 말했던 베네수엘라의 현실이다. 이 위기를 두고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필두로 서구와 우파언론은 사회주의가 문제라며 좌파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 위기의 원인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베네수엘라를 집어삼킨 자본주의에 있다. 차비스모 또한 이에 적극 동조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이 무겁다. 국제 좌파 진영에서는 애초 차비스모가 사회주의 세력이 아니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신자유주의에 맞선 일련의 투쟁조차 저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는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한 당시, 이에 맞선 정치적 대안으로 나서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 3천 명 이상이 희생된 1989년 카라카소 봉기와 그 후 계속된 10년의 투쟁에 힘입은, 아래로부터의 변혁이었다. 이후 2005년 차베스는 자신의 정치 프로젝트를 반제국주의의 라틴아메리카주의인 ‘볼리바리안 혁명’에서 ‘21세기 사회주의’라고 부르며 우파에겐 적으로, 좌파에겐 현실 사회주의의 대안을 만드는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차베스는 당시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에 역주행하며 임기를 시작했다. 우선 1999년 볼리바리안 제헌과정을 통해 일반 민중의 참여와 자치를 강화했다. 이 과정은 특히 특정 전문가가 아닌 소외된 광범위한 사람들의 토론을 통해 채택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민영화를 앞둔 국영석유회사 PDVSA를 비롯해 주요 산업을 재국유화한 것이다. 우익은 쿠데타를 시도하고 자본총파업이나 탄핵 시도에 나섰지만 빈민층이 대중시위 등으로 차베스의 정치를 복권시켰을 만큼 그에 대한 지지가 컸다. 그리고 차베스는 석유 수입으로 ‘미션’이라고 불린 수많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2011년 최고점일 때 사회프로그램은 PDVSA에서 396억 달러가 쓰였고 심지어 위기의 해인 2013년에서 2017년까지도 100만 채 이상의 사회건설주택이 저소득층에게 이양됐다.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천명한 ‘코뮌국가’ 프로젝트도 주목해 볼만 하다. 21세기 사회주의의 개념은 구체적이지 않았으나 그의 목표는 공동체평의회를 비롯해 여러 형태의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차베스는 이를 통해 국가의 강화, 경제 다각화, 지역과 기업에서의 노동자 공동 관리와 협동조합 및 공동체평의회 확대를 추구할 계획이었다.

반제국주의 노선을 채택한 것도 중요한 행보였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석유를 공급했고 쿠바는 베네수엘라 빈민가를 중심으로 모두 14만 명의 의사와 기술자를 보내는 등 양국 관계를 강화했다. 또한 우나수르(UNASUR) 등 역내 동맹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 이 지역 여러 나라에서 쿠데타 시도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란이나 터키 등 반동적인 정권과도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적으로는 전 비동맹운동의 전통을 잇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다졌다.

구조적인 문제들

그러나 갈수록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차베스 정부는 석유에 의존한 경제를 다각화하겠다고 했지만 그 의존도를 오히려 키웠다. 결국 세계 경제위기와 주요 산유국 사이의 갈등 속에서 2013년 시작된 유가 하락에 직격탄을 맞았다. 2002년과 2011년 사이, 베네수엘라 석유의존도는 86.2%에서 95.5%로 증가했다. 세계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종속된 추출 경제를 다각화해 자립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나 자연 착취와 환경오염, 지역 주민의 생존권 문제가 이어졌음에도 정부는 추출산업에 치우쳤다. 이로 인해 비옥한 토양이나 기후, 적지 않은 노동력에도 여전히 생필품의 약 70%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외정책에서는 반제국주의를 외쳤지만 초국적 자본은 베네수엘라에서 오히려 높은 수익을 냈다. 최근 베네수엘라 ‘사회주의’에 대해 독일 로자룩셈부르크재단에서 연구 발표한 라울 첼릭의 보고서에 따르면, GM은 2004년에서 2012년까지 모두 59억 달러(약 6조7000억 원), 도요타는 30억 달러, 포드는 26억 달러 그리고 아메리칸 항공은 19억 달러를 가져갔다. 정부는 생필품과 의약품 수입에 적용했던 외환 혜택을, 해외여행이나 자동차 구매 등 중산층들의 소비에도 적용했다. 자본가나 부르주아계급이 소유한 부에 대한 사회적 통제도 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새로운 차비스모 특권층과 함께 암시장을 확대하고 통화 시장을 교란하며, 해외에 그들의 이윤을 투자했다.

코뮌국가 프로젝트는 국가 기능 강화를 제외하면, 캠페인 수준을 넘지 못했다. 협동조합은 창립됐으나 즉시 무너졌고, 공동체평의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의 업무를 하달 받는 구조에 편입됐다. 기업 국유화는 거의 모든 곳에서 생산의 감소로 이어졌고, 노동자 공동 관리는 간부의 저항과 노동자들의 관심 부족으로 실패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5년 노동자 공동관리 캠페인의 일환으로 18만 개 신규 사업체가 설립됐는데, 이중 3년 후까지 지속된 것은 거의 없었다.

정부는 2004년부터 식량 생산을 자극하기 위해 대규모 토지 개혁을 시도했으나 이 또한 실패했다. 국영 경작지와 미사용 대토지가 농민들에게 이양됐고, 대출과 기계, 인프라 시설이 제공됐다. 그러나
1년 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농업 협동조합은 무너졌다. 2009년 농민 200명 이상을 사망케 할 만큼 대토지소유주들이 격렬하게 저항한 탓이기도 하지만, 우익 야권뿐 아니라 지역정부나 사법부도 이를 반대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베네수엘라 미션도 과대평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UN 중미·카리브경제위원회(CEPAL)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2005년에서 2012년 사이 37.1%에서 25.4%로 빈곤율이 떨어지긴 했으나 신자유주의 정권인 콜롬비아와 페루, 사민주의 브라질도 빈곤퇴치 운동으로 비슷한 성공을 거뒀다. 페루는 빈곤율이 같은 기간 52.5%에서 25.8%, 콜롬비아에선 45.2%에서 32.9%, 브라질에선 36.4%에서 18.6%로 떨어졌다. 결국 이 지역에서 빈곤퇴치가 비슷하게 성공한 이유는 원자재 수출비가 상승한 유사한 경제적 배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기 악화한 마두로 정부

2013년 3월 5일 차베스 사후 4월 14일 실시된 대선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1.6%라는 간발의 차이로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한 마두로는 긴급한 경제 문제를 해결해 빈곤과 불만을 해소하기보다는 정권 유지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경제 문제에는 미국과 야권을 비판하면서 이벤트식 단기 사업에 머물렀다. 차베스 시절부터 군대와 민중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었음에도 자본가계급에 대한 도전이나 부패 퇴치 또는 무의미한 보조금 폐지에 힘을 들이지 않았다. 군대도 정부 기관도 신뢰할 수 없었던 마두로는 결국 민중보다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한 결정에 치우쳤다.

특히 마두로의 정치적 위기는 2015년 치러진 총선에서 야당에 패배한 뒤 더욱 심화됐다. 우익이 이끄는 국회 역시 경제위기나 전기 및 물자 부족, 범죄 증가 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우익 인사들의 석방과 폭력을 선동하는 데 골몰했다. 마두로는 제헌의회 선거를 높은 투표율로 성사시켰으나 1999년 차베스 정부 당시 민중적인 토론에 기초해 실시한 제헌과정과는 다르게 이렇다 할 토론과정도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그러면서 마두로 정부는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꼬박꼬박 부채를 갚으며 초국적 금융자본과 기업에도 의지했다.

통합사회주의당(PSUV)이 정치적 통제 수단이 됐다는 비판도 크다. 차베스 대통령이 2006년 PSUV를 설립했을 때, 이 정당은 21세기 사회주의 계획을 추동할 기반이었다. 그러나 PSUV는 처음부터 반대 의견과 논쟁을 엄격하게 통제한 하향식 모델로 설계됐다. PSUV가 배급부문을 인수한 뒤에는 정치적 충성과 식량을 교환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2017년에는 공동체평의회 선거에 여당 PSUV의 당원만 참여할 수 있다고 공표하면서 신뢰는 더욱 낮아졌다. 마두로는 2018년 다시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정부 지지자들이 야당과의 부침 속에서 선거기관 CNE를 점거한 채 치러져 이 결과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정치와 경제에 대한 군부의 영향력도 증가했다. 2017년 위기 이전에도 내각의 절반 이상뿐 아니라 주지사의 절반도 군부 출신 인사가 맡았다. 2019년 1월, 처음으로 차비스모의 역사적 기반인 카라카스 빈민촌까지 번진 시위에서 경찰이 폭력을 휘두른 사건은, 마두로 정부의 정당성 손실이 얼마나 큰지를 방증하는 사건이었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문제 결국 차비스모 정부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했지만 자본주의를 사회화할 의지나 전략보다 정권유지에 더 관심이 많았던 셈이었다. 그러면서 차베스 집권 초기부터 반격했던 자본가계급 동맹이 결국 사회주의 경제제도 마저 무력화시키고 이를
자본주의적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차비스모 정부의 관료주의는 이들과 결탁해 새로운 특권층이 됐다. 결국 베네수엘라 자본가계급은 차비스모 정부에서 더욱 큰 이윤을 취했고 그 쓰라린
대가는 차비스모를 지지했던 서민에게 돌아갔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후원하는 과이도 세력으로 인해 더욱 큰 위기에 빠져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베네수엘라 민중의 고통을 덜게 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나 다국적 기업들은 다시 신자유주의 정부가 들어서 베네수엘라의 거대한 천연자원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극우와 우익이 득세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정세도 불안하다. 21세기 사회주의의 앞날은 여전히 카라카소 봉기를 일으킨 베네수엘라 민중에게 달려있다.


[참고자료]
https://www.rosalux.de/publikation/id/40136/sozialismus-1/
https://www.jacobinmag.com/2017/07/venezuela-maduro-helicopter-attackpsuv-extractivism-oil
https://www.greenleft.org.au/content/venezuela-why-capitalism-notsocialism-blame-corruption
https://www.leftvoice.org/No-Venezuela-Was-Never-Socia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