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제 불평등이 만든 청년의 ‘엔드게임’

[워커스] 자본이 모인 홍콩, 분노를 깨운 청년③

[워커스 이슈] 자본이 모인 홍콩, 분노를 깨운 청년

①거리에 나선 홍콩 청년을 만나다 (링크)
②홍콩 시위, Be Water (링크)
③홍콩 경제 불평등이 키운 청년의 ‘엔드게임’
④모두의 홍콩, 우리의 이야기

청년 세대가 현재의 홍콩 시위를 이끌고 있다. 홍콩대학교가 9월 홍콩 시위 참여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46.3%로 가장 많았다. 10대와 30대까지 합하면 76%에 해당한다. 시위에 나선 청년들은 정치적 요구를 확장하고 있다. 5대 요구안에 ‘행정장관 직선제’ 같은 정치적 요구를 내세우는가 하면, 경제적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제대로 된 일자리는 없고, 임금은 형편없으며, 치솟는 집값과 물가가 청년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는 아우성이다. 세계 최고의 자본 집약 도시 국가로 평가받는 홍콩, 그곳에서 청년이 시위에 나선 이유를 살펴봤다.


세계 최고의 집값, ‘맥난민’에서 ‘관 침대’까지

홍콩엔 맥도날드가 유난히 많다. 대부분 24시간 운영을 한다. 홍콩 평일 시위는 주로 밤에 일어났다. 기자는 9월 7일 거리 시위 취재를 마치고 밤 12시경 몽콕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음식을 시키지 않고 잠을 청하는 노인과 청년들을 발견했다. ‘맥난민’이었다. 이들은 밖에서 한창 시위가 벌어져 시끄러운데도 테이블에 엎드리거나 몸을 웅크린 채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사실 홍콩의 ‘맥난민’은 오래된 이슈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해 맥난민을 보도하며 주거 문제를 지적했다. 홍콩 집값은 10년 동안 200% 올랐으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또 집을 구하지 못한 홈리스가 맥도날드에 내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가 발표한 ‘글로벌 리빙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의 평균 집값은 한화 약 14억 원으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현지 매체는 지난해 19.4㎡(약 5.8평) 크기 원룸이 약 11억 원에 팔렸다고 보도했다. 1평당 가격이 2억 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또한 고급주택 평균 가격도 약 78억 원으로 홍콩이 세계 1위였다. 국제 공공정책 연구기관 ‘데모크라피아’에 따르면 홍콩인이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30년을 모아야 한다. 이런 집값에 많은 홍콩인이 쪽방, 홈리스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홍콩인의 평균 주거 면적은 1인당 약 4.5평에 불과하다.

기자는 홍콩 시위를 현지 취재하며 2평이 조금 넘는 숙소에서 지내봤다. 침사추이에 있는 M 숙소. 아파트 한 채에 조그만 방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었다. 방 안에는 또 2층 침대가 놓여 2명이 함께 쓰는 구조였다. 아파트 한 채를 여러 가구가 나눠 쓰고, 또 방 하나를 여러 명이 같이 쓰는 홍콩 ‘쪽방’의 전형이었다. 이 방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은 문이 열리고 닫히는 틈새뿐이었다. 이외의 면적은 2층 침대가 모두 차지했다. 침대의 세 면은 모두 벽에 붙어 있었다. 기자는 2층 자리를 예약했는데, 2층 침대와 천장의 높이는 50cm 남짓해 허리를 펴지도 못했다. 방 안에 화장실이 딸려 있었지만, 역시 딱 서 있을 공간만 나왔다. 홍콩인들은 이런 주거 환경을 ‘관에서 산다’고 표현한다.

중국 독점 자본의 등장, 양극화의 성장

홍콩의 지니계수는 1981년 0.45에서, 1996년 0.47, 2006년 0.53에 이어 2016년에는 0.54까지 치솟았다. 2016년 지니계수는 지난 46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경제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걸 뜻한다. 학계는 지니계수가 0.5를 능가하면 폭동을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간주한다.

반면, 홍콩 경제에 대한 중국 자본의 독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례로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에 따르면, 1997년 홍콩 정부 토지의 취득에서 중국 자본이 77%, 로컬 자본이 23%를 차지했는데, 2017년엔 중국 자본이 100%에 달했다. 금융 시장의 독점도 마찬가지의 양상을 보였다. 1997년 당시 상위 10개 IPO(기업 공개) 투자자문기관은 모두 로컬 혹은 중국을 제외한 국외 자본이었는데, 2017년엔 상위 10개 중 9개가 중국 자본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중국 자본이 홍콩 경제에서 독점적인 지위에 올랐다는 뜻이다.

이렇게 중국 자본이 홍콩으로 몰린 지 20여 년이 지난 현재, 홍콩의 소비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 9월 초·중순 홍콩 도심 곳곳을 취재했는데, 도로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금은방들이 줄지어 있었고, 중국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상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홍콩 최저임금 5716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은 한국 두 배


한편, 중국 후룬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세계 부동산 재벌 10명 중 7명이 중국인으로, 대부분은 홍콩과 선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과 다르게 홍콩 서민의 삶은 처절하다. 홍콩 최저임금은 37.5홍콩달러, 9월 24일 기준 환율로 한화 5,716원에 불과하다. 최저임금 인상률도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다. 홍콩은 2년에 한 번씩 최저임금을 결정하는데, 홍콩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5월 고시한 인상률은 8.7%일 뿐이었다. 언론들은 ‘역대 최고 상승률’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홍콩 노동자들의 임금소득은 낮았고 직종별 차이도 컸다. 홍콩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산업 노동자 월 평균 중위소득은 2018년 5~6월 기준으로 18,000홍콩달러(약 220만 원)였다. 산업·직종별로 살펴보면, 비기술직은 12,300홍콩달러(147만 원), 식·음료업은 13,100홍콩달러(156만 원) 서비스업은 13,500홍콩달러(161만 원), 제조업은 16,900홍콩달러(201만 원), 운송업은 18,400홍콩달러(219만 원), 전문 과학 및 기술직은 23,000홍콩달러(274만 원), ‘전문직 및 전문직 보조’와 ‘금융 및 보험’은 27,500홍콩달러(328만 원), 임금이 가장 높은 직종인 교육 및 공공행정은 28,400홍콩달러(340만 원)로 나타났다.

낮은 임금과 직종 간 임금 차별로 홍콩 빈곤율은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해 말 홍콩 빈곤인구가 137만7천 명으로 9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2만5천 명이 증가한 수치다. 740만 명 홍콩 인구에 대입하면, 홍콩인 5명 중 1명은 빈곤층에 속하는 셈이다. 빈곤층은 월평균 중위소득 50%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 해당한다.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도 홍콩 서민을 괴롭히긴 마찬가지다. 2015년 100을 기준으로 한 소비자물가지수는 2016년 12월에 103.8, 2017년 105.6, 2018년 108.3, 2019년 8월 110.9까지 치솟았다.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2016년 100.9, 2017년 102.9, 2018년 104.4. 2019년 8월 104.8인 것을 비교하면, 홍콩 물가는 서민에게 ‘지옥’ 수준이다.


홍콩 정부, 법인세는 인하, 복지는 ‘하나 마나’

홍콩 정부는 일관되게 기업 중심의 정책을 펼쳤다. 반면 서민에게 정작 필요한 복지 정책은 등한시했다. 일단 홍콩 법인세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연간 과세소득이 200만 홍콩달러 이하인 기업에는 8.25%, 초과 기업에는 16.5%의 법인세율을 적용했다. 지난해 OECD 평균 법인세율은 21.5%, 한국이 25%인 것과 비교하면 홍콩의 친자본 정책은 노골적이다.

홍콩 정부는 부동산 수익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 23일 홍콩 정부의 가장 큰 수입원이 ‘공공 토지 판매’라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정부 수입 중 42%가 ‘토지 보험료 및 인지세’였다. 또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정부 회계에서는 정부 수입 중 33%, 1970억 홍콩달러(한화 약 30조129억 원)가 부동산 수익이었다.

반면 사회복지 정책은 내팽개쳤다. 국제 구호기구 옥스팜이 최근 발표한 ‘홍콩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홍콩 정부 공공 지출에서 사회복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14.8%에 불과했다. 한국(28%)의 절반 수준이었다. 전체 공공 지출 대비 보건 지출 비중도 홍콩이 14.3%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홍콩이 거의 완전 고용률을 보이는데도 일자리 92만 개는 열악하며, ‘워킹 푸어’중 40%, 11만4467개 가구의 소득이 사회보장지원(CSSA) 상당액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또 홍콩의 노인 3명 중 1명이 빈곤 속에 살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홍콩 재정 당국은 지난 2월 2019년 정부 예산안을 발표했는데, 역시 사회복지 지원 정책의 비중은 적었다. △고령자 및 장애인에게 1개월 치 수당 추가 지급 △노인에게 건강검진 1,000홍콩달러(약 15만 원) 쿠폰 지급 △학습 지원이 필요한 학생에게 2,500홍콩달러(약 38만 원)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옥스팜 보고서는 “악화하는 빈부격차 속에 홍콩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6900억 홍콩달러 이상의 예산을 축적했다”며 “그런데도 홍콩은 보건과 사회복지 등 공공 서비스에 최소한의 지출로 일관했다. 부자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고된 노동을 하는 빈민은 경제 성장의 과실을 나눠 받지 못했다. 이 현상은 경제 시스템의 실패를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홍콩 청년 활동가들의 말말말…“우리 미래를 찾는 싸움”

폭발하는 분노, 민의 못 담는 홍콩 정치 시스템

홍콩 청년 활동가들은 현재의 시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홍콩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중 하나인 ‘민간인권전선’의 에릭 활동가는 홍콩 시위에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런 사회 변화 요구를 담지 못하는 홍콩의 정치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홍콩에선 인구 3%에 해당하는 246,440명만이 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을 선출할 투표권을 갖는다. 24만 명의 투표로 선출된 1,200명이 최종적으로 장관을 뽑는 식이다. 선거인단 1,200명은 △정치인 집단 △교수 등 전문가 집단 △금융 등 산업 대표단 △노동자 집단 ‘직능단체’로 300명씩 꾸려진다.

그는 이 같은 정치 제도에 대해 “홍콩의 간접선거는 홍콩인의 민의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라고 잘라 말했다. 일단 인구수가 가장 많은 노동자와 가장 적은 전문가 집단이 동일한 선거인단 석을 갖는다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봤다. 또 “이렇게 불평등한 정치 구조에 대해 시위대가 매우 분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홍콩대 조사 결과, 홍콩 시민 약 66%는 자신이 처한 정치적 조건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정치 구조의 문제와 홍콩(중국)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지금 홍콩 시위가 ‘사회 정의를 여는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홍콩 시민들은 과거부터 중국의 ‘자본주의’를 몸소 경험했다”며 “특히 청년, 젊은 노동자들은 미래를 바라보기에 더 격하게 반응한다. 지금 시위는 5년 전 우산혁명과는 크게 다르다. 한 곳에서, 하나의 스피커 아래에 움직이지 않는다. 2019년의 홍콩 청년들은 ‘물이 되어(Be Water)’ 어떤 것도 해내고, 어떤 목소리도 꺼낸다. 우산혁명의 학습효과를 거친 이들은 지금의 홍콩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학생 시위의 한 축인 중문대학교 학생회에서 활동하는 벤은 이 시위를 ‘엔드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을 비롯해 홍콩 청년들은 세계 최악인 부동산과 임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청년들은 이 시위를 ‘엔드게임’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제 민주주의를 넘어 경제 불평등을 지적하고 있다. 홍콩 시위대 또한 시간이 지나며 정치적 입장을 확대하고 있다. 홍콩 시위에 대한 대학생의 반응은 여전히 뜨겁다. 중문대의 경우 동맹 휴학에 절반에 달하는 학생이 참여했다. 지금 홍콩 시위는 우리 미래를 찾는 싸움이다. 미래를 찾을 때까지 시위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워커스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