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체제 전환의 갈림길에 선 칠레

[INTERNATIONAL2] 잉여인간의 춤 그리고 미래를 노래하기

[출처: leftvoice]

어떤 칠레 un Chile : 살바도르 아옌데, 피노체트 독재, 민주화 이행

칠레는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나라다. 1970년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는 사회주의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취임 후 그는 구리광산을 비롯해 석탄, 철강 등 국가기반산업을 국유화 했다.

칠레는 미국을 등에 업고 아옌데를 살해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27년간 통치했던 나라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는 공중폭격으로 모네다궁을 무너뜨렸고, 살바도르 아옌데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연설에서 민중이 헌정질서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언으로 남겼다.

칠레는 헌법을 준수하며 독재자를 몰아낸 나라다. 아옌데의 유언은 실현됐다. 1988년 피노체트의 연임을 결정하는 찬반 국민투표가 있었다. 44%의 찬성과 56%의 반대로 피노체트의 연임이 거부됐고, 1989년 민주선거가 이루어졌다. 칠레는 ‘민주적으로’ 독재자를 몰아냈다. 다만 그 민주주의가 아옌데가 생각했던 민주주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칠레는 1980년 피노체트 독재정권 아래 개정된 헌법에 의거해 피노체트의 연임을 거부했으며, 같은 헌법이 규정한 바에 따라 피노체트는 1998년까지 8년 동안 군 통수권자의 지위를 유지했다. 피노체트는 1998년이 돼서야 학살 및 고문 등의 혐의로 영국에서 체포됐다.

칠레는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빅토르 하라의 나라이자, 1980년 피노체트 군부독재가 만든 헌법과 신자유주의 기조를 반세기 동안 계승해온 나라다.

그 어떤 칠레에서도 2019년 10월 산티아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2019년 10월의 칠레 el Chile : 각성

2019년 10월 18일 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지하철 요금 상승에 반발하여 지하철역 방화가 발생했다. 19일 새벽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산티아고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날이 밝자 산티아고의 시위대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고, 시위는 주요도시로 확산됐다. 수천 명의 군인이 산티아고 도심에 배치된 것은 피노체트가 물러난 이후 처음이었다. 비상사태와 야간통행금지령은 전국으로 확대됐다.

시작은 10월 6일 10대 중반 청소년들의 집단적 움직임이었다. 10월 6일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은 30페소 인상된 830페소가 적용될 예정이었으며, 10대 중반의 중고등 학생들은 인상된 요금지불을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간 해쉬태그 #EvasionMasivaTodoElDia(하루 종일 집단거부)에 호응한 수 천 명이 표를 사지 않고 지하철 출입게이트를 타고 넘거나 기어 넘어갔다. 며칠이 지나자 지하철 요금소의 유리가 깨지고 출입게이트가 뜯겨나가기 시작했다.

10월 18일 오후 지하철 공사는 지하철 운행을 전면 중단했지만 열흘 넘게 이어진 항의는 ‘폭력시위대’ 이외의 이름을 얻지 못했다. 지하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진 시위대는 18일 저녁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일부 지하철 역사에 불을 질렀다. 20일에는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일간지 엘 메르쿠리오(El Mercurio) 건물에 불을 질렀다. 타오르는 불길에 “칠레가 깨어났다”(Chile despertó)¹.

칠레 Chile : 변함없는 신자유주의 체제와 정치적 무기력

깨어난 칠레의 정부와 민중은 지하철 요금 30페소가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이미 19일 지하철 요금인상을 철회했던 피녜라 정부는 22일 연금수령액 인상과 전기요금 동결을 발표했고, 다른 한편에서 주요 노동조합과 좌파는 총파업을 결의했다. 23일 구리광산노조, 보건노조, 항만노조 등이 총파업에 가세하면서 이번 사태의 원인은 지하철 요금인상이 아닌 칠레 사회의 뿌리 깊은 양극화로 진단됐다. 칠레의 신자유주의 경제모델과 그 모델이 만들어낸 소득불평등이 칠레를 깨웠다.

칠레의 신자유주의 역사는 길고 독특하다. 1950년대 일찌감치 미국의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가 이식해 온 시장주의는 일간지 엘 메르쿠리오를 타고 칠레 내에서 유통됐고, 1973년 피노체트가 모네다궁을 폭파했던 그날부터 구체적으로 실현됐다. 무려 반세기 가까운 역사다. 군부독재와 결합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은 최소한의 제약도 없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진행됐다. 피노체트는 모네다궁을 폭파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32호 법령을 발표 했으며, 이때부터 약화된 노동운동은 피노체트가 물러난 후에도 회복되지 못했다. 이와 동시에 최소한의 생필품을 제외하고 살바도르 아옌데의 가격통제정책은 무효화 됐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교육, 보건, 연금, 교통 등에서 국가개입은 최소화됐다. 1990년 민주화 이후에도 콘세르타시온(Concertación)이라 불리는 연정체제는 노동사회운동을 암묵적으로 정권에 종속시켰으며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 역시 수정하지 않았다.

사회적 요구가 가로막히고, 경제적 불평등을 보완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채 칠레는 피노체트 군사독재를 지나고, 민주화 이행을 지나 오늘날에 이르렀다. 2006년 ‘펭귄혁명’²이라고 불리는 중고등학생운동과 2011년 대학생 운동³과 같은 교육부문에서 만들어낸 균열이 칠레가 경험한 거의 유일한 변곡점이다. 2019년 10월의 칠레가 또다시 중고등학생들의 손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2019년에 마주치는 1973년의 어느 칠레 un Chile en el Chile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와 정치적 무기력에 대한 각성이 이루어질수록,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과격해질수록, 칠레 정부는 정치력이 아닌 물리력에 의지하게 됐다. 비상사태 선포와 야간통행금지 조치로 산티아고 주민들은 수십 년 만에 자기 집 창문에서 장갑차와 군인이 골목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10월 19일 소요 사태 속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후 20일에는 1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일부는 군대의 진압과정에서 희생됐다. 23일 칠레 정부는 이미 배치된 2만 명 이외 예비군병력을 추가로 소집했다. 1973년 산티아고의 모습이 눈앞에 오버랩 됐다. 비상사태라는 명분으로 하루가 다르게 군사화 돼가는 산티아고의 모습은 칠레 안팎의 모든 사람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10월 25일 백만 명이 넘는 인파로 가득 찬 산티아고의 모습에 모두가 놀랐지만, 그 까닭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1973년의 역사를 가진 칠레인이 비상사태 철회와 피녜라 사퇴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0월 27일 피녜라 대통령은 8일 만에 비상사태 선포를 철회하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미 20명이 사망한 뒤였다. 28일에는 24명의 장관 가운데 8명이 해임됐다. 그럼에도 시위와 소요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칠레는 각성을 넘어 성찰에 도달했다. 당장의 지하철 요금 30페소의 문제도 아니고, 소득불평등을 야기하는 신자유주의 모델만의 문제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무능력한 피녜라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었다.⁴

정치경제모델을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다수로부터 빼앗은 체제의 문제였다. 다수의 정치참여를 제한하고 소수 엘리트에 의해 결정된 경제모델의 폐해를 다수가 감내해야 하는 체제였으며, 1980년 피노체트 정권에서 개정된 후 국민투표조차 거치지 않아 정당성을 의심받는 헌법이 만든 체제였다. 민주화 이후 연합정부 콘세르타시온으로 수렴된 기득권 세력을 뒷받침하는 체제였다. 칠레는 40년 만에 그 체제와의 단절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출처: wikipedia]

다른 칠레 otro Chile

11월 15일 새벽,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의회진출정당이 하나의 문서에 서명을 했다. “사회적 평화와 새로운 헌법을 위한 협약서”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 따르면 칠레는 2020년 4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투표에서는 두 가지를 묻는다. 첫째, 당신은 새로운 헌법을 원합니까? 예 또는 아니오. 둘째, 헌법작성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합니까? 혼합형대표협의체 또는 단일형대표자협의체. 혼합형대표자협의체는 현직 의원 50%와 협의체 구성을 위해 새로 선출된 시민 50%로 구성되며, 단일형대표자협의체는 새로 선출된 시민으로만 구성된다. 협의체를 구성할 대표자는 기존 선거제도를 따라 2020년 10월 총선에서 함께 선출한다. 선출된 대표자의 임기는 9개월이며 1회에 한하여 3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협의체는 2/3 과반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협의체에서 헌법안을 제출하면 60일 내로 국민투표에 붙인다.

1980년 헌법은 피노체트의 정치경제모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헌법은 여러 차례 개정됐고, 특히 2005년에 대폭 수정됐다. 그러나 이제 칠레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태세다. 칠레의 민중은 한 달 동안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끝에 헌법을 제정할 힘을 탈환했다. 지하철 무임승차라는 작은 위반에서 시작된 운동은 방화와 폭력이라는 위법을 거쳐 법제정의 출발점에 섰다.

새로운 헌법 제정은 기존 질서의 붕괴를 상징한다. 1950년대 시카고 보이즈가 이식한 신자유주의, 피노체트 독재정권이 실현한 신자유주의, 1990년 민주화 이행 이후 계승된 신자유주의 질서에 돌파구를 마련할 힘을 제도적으로 장착함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쟁점이 남지만, 이 협약서에 정당들이 서명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칠레 정당 정치의 발전이다.

잉여인간의 춤 그리고 미래를 노래하기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협약을 거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공산당도 서명을 거부했다. 기존 선거제도에 따라 대표자를 선출하게 되면 현재의 정치질서가 대표자협의체에 그대로 투영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또한 원주민과 여성 할당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거론된다. 이들은 못내 불안하다. 선거로 피노체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연정 콘세르타시온이 보여주었던 합의 민주주의가 새로 단장을 하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지 불안하다. 제도권 정치와 연이 닿지 않은 원주민과 여성이 헌법작성에 참여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새로운 헌법이 구태의연한 합의 민주주의를 소생시키는 것은 아닐지 불안하다. 그리고 그런 불안들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에 있었던 학생들은 ‘잉여인간의 춤’(El baile de los que sobran)을 노래하며 매번 거리를 메웠다. 이 노래는 1983년 결성된 칠레 록 밴드 프리시오네로스(Los Prisioneros, ‘죄수’라는 뜻)가 1986년 두 번째 앨범에 수록한 곡으로, 80년대 칠레 교육시스템의 불평등을 노래한다. 처음에는 칠레의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17년 기준 지니계수를 참고하면, 칠레의 소득불평등은 9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이 유사한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비교하면 브라질, 멕시코보다 소득불평등 수준이 낮다. 아르헨티나보다는 높지만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칠레 상황의 원인을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지하철 출입게이트를 넘나들었던 학생들이 지난 한 달 동안은 이 노래를 부르며 법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 노래를 부르며 거리에서 함께 춤추었던 ‘잉여인간’들에게 합의문 도출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다. 당면한 지하철 요금 30페소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이 그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그것으로 귀결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육시스템에서 배제된 학생, 사법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살해되는 여성,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한 이등시민 마푸체 원주민은 국가가 국민에게 보장해야 하는 동등한 권리에서 배제돼 있다. 제도와 권리에서 밀려나 잉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2019년 10월 함께 춤을 추었다. ‘잉여인간의 춤’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춤추기를 독려한다.

2020년 칠레에서는 잉여인간의 춤이 멈추고, 시민이 미래를 노래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각주

1. 현재 칠레 상황은 ‘2019년 칠레 위기’, ‘칠레의 봄’, ‘10월 봉기’, ‘30페소 혁명’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칠레가 깨어났다’는 그 중 하나다.

2. 흰 셔츠와 남색 재킷의 교복을 입는 칠레 중고등학생의 모습을 ‘펭귄’에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다. 400개 이상의 중고등학교가 사립화된 것에 반대하여 교육권을 주장하는 중고등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하고 수업을 거부했다. 여기에 100곳 이상의 학교가 참여했다.

3.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이 교육의 민영화에 반대하며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주장했다. 기회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입시시스템, 교육예산 확보, 대학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진행됐으며 600개 이상의 대학이 점거투쟁에 들어갔다.

4. 칠레의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17년 기준 지니계수를 참고하면, 칠레의 소득불평등은 9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이 유사한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비교하면 브라질, 멕시코보다 소득불평등 수준이 낮다. 아르헨티나보다는 높지만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칠레 상황의 원인을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