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인사 - 황예지

은행의 노조 위원장이었던 아빠는 때때로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출근을 했다. 아빠가 부탁하면 발을 바짝 세우고 그의 머리에 꼭 맞게 띠를 묶었다. 어린 나는 ‘아빠가 리본이 참 잘 어울리네’ 하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투쟁이 딱 그만큼으로 보였다. 소진된 그가 나의 마음에 불을 지피려고 했지만, 나는 타고난 무력감을 쉬이 떨칠 수 없었다. 개인의 사투를 어느 정도 끝냈을 때쯤에야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금, 아주 조금 볼 수 있었다.
무턱대고 홍콩 행 티켓을 끊었다. 나의 기록이 선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 비행기에서 내리고도 멀미를 길게 했다. 의아함은 나를 바짝 뒤따라왔다. 왜,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선한 의지보다는 내가 쓸모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최루탄이 큰 소리를 내고 터지는데, 나보다 한 뼘 작은 아이들이 도시의 유령처럼 길을 막고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 앞에서 우산을 펼쳤다. 우산 사이에서 퍼져 나오는 아지랑이가 총구보다도 뜨거웠다.
아빠는 홍콩에 다녀온 나에게 이 장면을 직접 목도하니 마음이 어떻냐고 물었다. 반성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말하니, 아빠는 ‘많이 해야지’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진이 스스로 눈을 감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남았으면 한다. 붉게 인사를 한다. 투쟁이라는 인류의 돌림노래를 믿어야지.

믿어야지요.

  보호자_ 도시에서 떨어져 나온 물건이 시위대의 무기와 보호막이 된다.




  非是 _ 2019년 11월 30일, 몽콕 시내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이 전단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반으로 갈라진 글자를 조합하면 아닐 비非와 옳을 시是가 나온다. 중국어로 '아니다, 옳지 않다'는 뜻이다.




  붉은 인사_ 몽콕 경찰서 인근 프린스 에드워드역에는 경찰의 강경 진압 규탄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작은 공간이 있다. 이곳은 매일 치워지고 매일 채워진다.


















  glory be to thee_ 홍콩 시위대의 노래.


  행진_ 2019. 12. 08, 홍콩 시민 80만명이 거리로 나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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