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로 잃은 일본의 10년, 코로나19로 다시 ‘공공성’

[INTERNATIONAL2] 일본을 위협하는 코로나 19


일본은 4~5월의 비상사태 실시로 코로나19 확대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7월 들어 감염자 수가 계속 증가했고, 도쿄에서만 매일 2300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다시 한 번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기업 활동 중단이나 외출 자제 등을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비상사태 선포는커녕, 국내 여행 추진 사업인 GOTO 캠페인을 강행하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GOTO 캠페인은 정부가 여행에 소요되는 교통비나 숙박비, 식비 등에 일정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다가오는 여름 휴가철에 저렴한 가격으로 자주 여행을 다녀 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GOTO 캠페인을 강행한 이유는 전국적인 비상사태 선포로 지역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도 경제적 타격이 심각하지만, 관광 수입에 의존하는 지방도시는 이동 제한으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관광 축소는 단순히 여행사, 숙박업소, 교통뿐 아니라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무수한 업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지역경제가 약화된 상황에서, 다시 비상사태가 발령된다면 기업경영을 넘어 지역경제 자체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정부의 의도 역시 코로나19 확산을 감수하더라도, 철저한 방역대책으로 감염을 막으며 지역경제를 살려보자는 것이다. 정부의 GOTO 캠페인이 얼마나 성공할지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그만큼 일본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얼마 전 한국의 인들로부터 “한국은 정부 지원으로 노조가 있는 대기업에서는 정규직 해고가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휴업 등의 잉여 인원이 발생한 기업에 고용조정보조금을 지급해 노동자 임금을 보전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정규직의 실업이 적다. 하지만 문제는 비정규직의 계약 해지와, 경영 악화로 도산 혹은 폐업하는 소규모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지원이 종료된 6월 이후 기업 도산 건수는 올해 최대 규모인 780건을 기록했다. 이는 5월 314건과 비교하면 2.5배가 증가한 수치다.

업종별로는 코로나19 확대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숙박업, 음식업을 포함한 서비스업이 278건으로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기업의 소멸은 곧 고용의 소멸을 의미한다. 실제로 5월 기준 2.9%였던 실업률은 더 나빠지고 있다. 또한 6월 기준 코로나19에 따른 실업자 수는 약 2만5000명으로, 그중 약 1만3000명이 비정규직이다. 실업자 중 54%가 비정규직인 셈이다. 정부 공식 통계를 보면,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38.3%로, 비정규직 실업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6월 20일 일본 도코 신주쿠 거리에서 시민들이 무기 대신 코로나 대처에 투자하라며 시위하고 있다. [출처: 레이버넷 일본]

  지난 6월 20일 일본 도코 신주쿠 거리에서 시민들이 무기 대신 코로나 대처에 투자하라며 시위하고 있다. [출처: 레이버넷 일본]

하지만 아무리 기업에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 고용유지 노력을 요구한다 해도, 기업 자체가 도산하면 정규직 실업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도시에는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많아 지역 백화점이나 호텔 등이 도산할 경우, 그들에게 자금을 공급해온 지방은행마저 파산할 우려가 있다. 정부가 GOTO 캠페인과 함께,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 올림픽 개최까지 강행하는 이유다.

5월 기준 일본의 유효 구인비율①은 1.2%로 전월 대비 0.12%p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구직자 수보다 구인 인원이 더 많다. 5~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긴급사태 선포 해제로 다소 회복됐지만 관광업과 음식점을 비롯한 서비스업은 실적이 저조하다. 올해 GDP 역시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약 46%의 마이너스가 예상되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로 만성적인 인력 부족 상태에 있다. 기업의 채용 담당자로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수습되고 본격적인 경제활동이 재개됐을 때를 위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해 두고자 한다. 정부 지원금이 나오는 한 인건비는 큰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고용대란에는 어느 정도 제동이 걸렸다. 다만 이 같은 고용상황은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거나 기업에 대한 보조금 및 각종 지원제도가 끊길 경우 단번에 악화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비상사태 영향으로 해고되거나 소득이 감소한 노동자를 지원 해왔다. 정규직, 비정규직뿐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들에게도 소득 보조, 각종 저리 융자, 월세 급부를 비롯한 폭넓은 지원을 실시했다. 하지만 그 액수가 턱없이 적고, 신청 절차의 번거로움과 지자체의 처리 지연 등으로 사실상 지원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상사태가 해제되며 종료된 지원들도 많다. 일자리를 잃은 상당수는 저임금 노동자들로 저축액도 많지 않아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생활이 파탄 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실업자가 된 이들의 생활보호 신청도 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 따르면 비상사태가 선포된 5월에 생활보호 신청 건수는 전국적으로 20% 이상 늘었고, 서비스업이 많은 도쿄 신주쿠에서는 신청 건수가 73%, 관광업이 많은 교토시는 40% 증가했다. 일본에서는 복지예산 삭감으로 생활보호 인정기준이 엄격해졌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생활빈곤층이 증가하고 있어 당분간 인정기준을 완화할 방침이라고 전해졌다.

현재 일본 정부나 지자체는 코로나19에 따른 기업 경영 지원이나 시민들의 생활 지원에 거액의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가뜩이나 엄청난 적자를 안고 있던 국고는 1990년대 거품 붕괴 후 세수 부진으로 적자 폭이 계속 커져 문제가 됐다. 정부는 행정 효율화나 복지 예산 삭감으로 지출을 줄이고, 소비세 증세로 세수를 확보하는 등 2025년에 기초 수지를 흑자로 전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1월, 정부는 흑자 전환 시기를 2027년으로 늦췄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2035년에야 정부 재정이 흑자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코로나19의 팬데믹 대책으로 거액의 예산을 추가 책정하면서 올해 신규 국채 발행액만 90조 엔에 달했다.

  지난 6월 20일 일본 도코 신주쿠 거리에서 시민들이 무기 대신 코로나 대처에 투자하라며 시위하고 있다. [출처: 레이버넷 일본]

  지난 6월 20일 일본 도코 신주쿠 거리에서 시민들이 무기 대신 코로나 대처에 투자하라며 시위하고 있다. [출처: 레이버넷 일본]

이러한 일본의 재정 여건은 코로나19 대책에서 보인 일본 정부의 혼선과 무관하지 않다. 당초 일본의 유전자증폭검사(PCR) 수가 너무 적어 올림픽 개최를 위해 일부러 검사를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사실 PCR 검사 수와 올림픽 개최가 어떠한 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후 일본에선 PCR 검사 건수가 낮은 이유로 충분한 PCR 검사를 시행할 만한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의심되는 환자 상담창구(보건소)나 상담원이 부족해 상담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상담을 할 수 없으면 PCR 검사도 할 수 없다. 운 좋게 상담이 가능해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더라도 PCR 검사 키트나 검사 기사가 부족해 실제 검사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검사에서 확진을 받으면 입원조치가 필요한데 코로나19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병상 수가 적어 입원도 못 하고 집에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은 재정 흑자 전환을 위해 의료비를 크게 삭감했기 때문이다. 각 시·구에 설치된 보건소가 너무 많아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이들을 통폐합한 결과, 지난 10년간 전국의 보건소 수가 반 토막이 났다. 또한 공립 병원이나 연구소의 통폐합과 민영화가 진행돼, 지역의 공공 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이 격감했다. 그 결과 평상시에도 응급환자의 내원이 거부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의 의료체계는 애초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

생활보호 인정 기준 또한 엄격해져,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이로써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은 노동유연화에 다른 다양한 근로방식으로 흡수됐다. 많은 이들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로 사회적 안전망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일본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휴업과 해고의 직격탄을 맞은 쪽은 이들 저임금 노동자였다.

10년 넘게 복지예산을 삭감해온 일본 정부는 결국 코로나19 팬데믹에 거액의 재정 지출을 하게 됐다. 만약 정부가 복지예산을 삭감하지 않고 탄탄한 공공의료체제를 유지했다면, 그리고 누구나 안정된 직장에서 일했더라면 어땠을까. 코로나19에 실패하지도 않고 일자리를 잃는 순간 삶이 막막하지도 않고, 결과적으로 거액의 추가경정예산을 짤 필요도 없이 건전한 국가재정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공공의료나 복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각주>

① 구인 인원 대비 구직 건수 비율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일자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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