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손가락 들어 올린 미얀마 Z세대

[이슈②] 미얀마 청년 노동계층과 국제 연대

차례

① 한국에서 울려 퍼지는 미얀마 청년들의 목소리
② 세 손가락 들어 올린 미얀마 Z세대
③ 미얀마 여성이 만드는 민주주의, 군부의 자리는 없다
④ 전두환에서 미얀마 군부까지, 독재와 손잡은 기업들
⑤ ‘미얀마가 광주와 닮았으니까’로 퉁치지 말고

  미얀마섬유노동자연합회(FGWM) 노동자들이 현지 ILO 사무소 앞에서 해외 기업들이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출처: FGWM]

수십 년간 이어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주로 부유하고 외국에서 교육받은 계층이 주도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최루탄과 총탄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은 미얀마 양대 주요 도시인 양곤과 만달레이 출신의 학생들과 공장·광산 노동자들이다. 투쟁의 최전선에는 지난 10년의 민주화 과정에서 자라난 Z세대1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군부에 맞서고 있지만, 서구나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연맹(NLD)에 똑같은 환멸을 느끼고 있다. 외신들은 만약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복원된다면, 그것은 수치나 NLD가 아닌, 이 새로운 투쟁을 통해서 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커스》는 외신이 주목한 Z세대의 투쟁과 삶을 뒤쫓아 봤다.

# 코 와이 옌툰(Ko Wai Yan Tun) 씨 / 16세 / 날품팔이2

2월 20일 만달레이에서 시위대 2명이 총에 맞았다. 그중 한 명이 16세 소년 코 와이 옌툰이다. 옌툰은 머리에 총을 맞아 즉사했다. 시장에서 카트를 끌고 와 방패로 삼았지만, 머리를 조준해 날아온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 이날 시위는 만달레이 내수운송부(IWTD) 노동자 파업에 연대하기 위한 인근 야다나본 조선소 노동자 수백 명의 시위로부터 시작됐다. 시위가 옌툰이 일하는 시장 근처에서 거세지자, 그는 바로 시위 행렬로 뛰어들었다.

미얀마는 지난 수십 년간 성장을 거듭했다. 중국과 태국, 싱가포르와 일본, 한국 등의 기업들은 의류와 농업, 광업과 석유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산업 개발에 농지를 빼앗긴 사람들은 살 터전을 잃었고 청년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로, 해외로 향했다. 도시는 그들을 저임금, 비공식, 불안정한 일자리로 흡수했다. 현재 미얀마 노동력의 83%가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3 옌툰도 그중 한 명이었다.

노점상들은 그를 ‘꼬마’라고 불렀다.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옌툰은 잔심부름을 하며 끼니를 해결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시위에 나서기 전 옌툰은 그의 친구 코 미오 차우(Ko Myo Zaw)에게 “(이것은) 내 미래를 위한 의무”라고 말했다. 차우 씨는 “옌툰은 항상 핸드폰과 오토바이만 있으면 자기 삶이 완벽해질 것이라고 말했어요”라며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군부의 폭력으로 사망한 희생자의 절반 이상이 25세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 마 틴 틴 웨이(Ma Tin Tin Wei) 씨 / 26세 / 봉제 노동자4

마 틴 틴 웨이는 양곤 홀라잉타야에 위치한 이탈리아 브랜드 OVS의 봉제공장에서 남성 재킷을 만들었다. NLD가 취임하기 전에는 누구나 그렇듯 노동법이나 노동권이 무엇인지 몰랐다. 불평을 했다가 해고되는 일이 잦았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5년간 재봉틀과 씨름하던 그는 결국 회사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노조에 동조하는 노동자가 눈덩이처럼 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회사는 코로나 팬데믹을 구실로 노조를 해산시키고 노동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봉제공장 노동자들이 시민불복종에 나선 이유도 군부가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웨이 씨는 군부가 쿠데타를 감행한 2월 1일부터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비밀회의를 시작했다. 5일부터는 현장 선전전과 가두 행진에 나섰다. 노동자들은 NLD를 상징하는 빨간 리본을 달았다. 붉은 천이 부족해 공장에 요청하고 절단기를 이용해 잘랐다. 30분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10분 만에 밥을 욱여넣고 20분 동안 선전전을 했다. 학생들도 그들과 공동투쟁에 나섰다. 6일에는 학생들과 산업공단 도로에서 농성을 했고, 미얀마 중앙은행과 국제노동기구(ILO) 현지 사무소로 행진해 해외 브랜드에 압력을 가했다. 봉제산업이 밀집한 양곤 홀라잉타야에 있는 약 300개의 공장 모두가 투쟁에 참여했다. 공장에 노조가 있으면 파업을 조직했고, 노조가 없는 공장에선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휴가를 내 시위에 참여했다. 군중이 엄청났다.

웨이 씨는 지난 2월 한 달간 고작 6일을 일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대사관에 편지를 쓰고, 소셜미디어 캠페인을 하며 파업을 준비하는 데 보냈다. 지금은 파업을 조직했던 노조 활동가 모두가 경찰의 수색을 피해 호스텔로 잠적했다. 2월 27일 미얀마 군부는 모든 노동단체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전례 없는 끔찍한 탄압을 가했다. 28일 밤 최소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히지 않는다”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3월 3일에는 또다시 38명이 사망했다. 사상자는 매일 나왔고, 희생자 수는 어느덧 200명을 넘어섰다.

미얀마의 의류 노동자는 약 70만 명으로 여성이 90%를 차지한다. 이들 대부분은 시골이나 작은 마을에서 일자리를 찾아 양곤으로 온 사람들이다. 여성들은 다른 의류업체 노동자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월급의 일부를 고향으로 보낸다. 의류 노동자 대다수는 여전히 조직돼 있지 않지만, 노동조합은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규모 파업이 잇따르며 2015년에는 최저임금제도 도입됐다. 2018년 유럽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미얀마 수출에서 의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31%에 이른다. 노스페이스, H&M 등 서구 패션 기업들이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의 업체와 2, 3차 도급계약을 맺고 미얀마 노동자들을 간접 고용한다.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봉제공장은 약 130곳이며, 이곳의 노동자들은 대개 시간당 최저임금 480짯(약 480원, 2018년 기준)을 받으며 일을 한다.

# 두 운(Du Wun) 씨 / 26세 / 성소수자 / 전직 교사5

미얀마의 한 시골 마을에서 자란 두 운(Du Wun) 씨는 여성용 전통의상이나 장신구를 싫어했다. 그러한 이유로 10대 때부터 괴롭힘을 당했고, 부모도 그와 절연했다. 어렵게 교사가 됐지만, 트렌스젠더 노동자의 삶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더 넓은 도시를 찾아 양곤으로 향했다. 그러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지난 2월 1일 다른 성소수자 사람들과 함께 거리로 나왔을 때에야 그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양곤에서는 ‘LGBTQ 4 민주주의’라는 플래카드 아래 성소수자 수백 명이 시위를 벌였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만달레이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일어났다. 미얀마에선 민간정부가 집권한 뒤 지난해 최초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후보가 지역 의원으로 출마할 만큼 상황이 나아졌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은 이제 군사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할 방법은 없다고 본다.

# 소에(Soe) 씨 / 28세 / 의사6

28세의 보건 노동자 소에 씨는 군사 쿠데타에 맞서 지난 2월 3일 파업한 약 100명의 보건 노동자 중 한 명이다. 파업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군부는 참가자들을 샅샅이 잡아들였다. 소에도 군부의 단속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 2월 15일 오후, 그가 집에 혼자 있었을 때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는 재빨리 화장실로 숨었다. 경찰 30명이 그의 방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심장 박동 소리가 요동쳤다. 약 10분 뒤에야 경찰은 그의 집을 떠났다.

소에가 일하는 만달레이 인근 타웅지에 위치한 상산혼튼 병원에선 병원장을 빼곤 모두가 파업에 동참했다. 미얀마 보건 노동자들은 지난 1년간 코로나19로 가장 힘든 싸움을 했고, 쿠데타 직전에야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보건 노동자들은 군부 쿠데타에 가장 빠르게 대응했다. 2월에는 병원의 80%가 문을 닫을 만큼 파업 참여율이 높았다. 군부는 보건 노동자들이 환자를 버리고 파업을 했다며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보건 노동자들은 이 같은 비난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했다. 민중에게 총구를 겨눈 군부가 노동자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미얀마 양곤에서 의사들이 군부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 행진을 벌이고 있다. [출처: Myanmar Now]

이제 미얀마의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은 병원 대신 거리에서 응급치료를 담당한다. 만달레이에만 최소 6개의 의료팀이 활동하고 있다. 약 30명으로 구성된 의료팀은 이동형, 정지형으로 구분된다. 의료진들은 지혈제와 소독제 같은 의료용품이 든 배낭을 메고 시위대 사이를 뛰어다닌다. 이들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무상 치료와 약을 제공한다. 그러나 수술 등 중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팀은 한 개뿐이다. 의료진들은 도시 전역에 연락처와 팸플릿을 배포해 환자들이 그들을 찾을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다. 군부가 시민을 학살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 의료진들은 적십자 마크 등을 달고 있지만, 군부의 총구는 이를 가리지 않는다. 최소 의과대생 1명이 살해됐고, 수많은 의료진이 구타와 진압에 희생되고 있다.

미얀마 시민불복종 운동(CDM) 웹사이트7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파업에 참여한 공공부문 노동자 2만2597명 중 절반 이상이 보건 분야 출신이다. 미얀마에선 파업으로 생계 문제를 겪고 있는 간호사, 세관, 국회 직원, 경찰관 등 공무원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그룹도 조직됐다. ‘우리는 영웅들을 지지한다(We Support Heroes)’와 ‘단단한 손길(2/21 Sturdy Hands)’ 등의 단체가 이들에게 음식이나 쉼터를 제공한다.

민주주의 위해 해외 자본 압박하는 미얀마 Z세대

미얀마 Z세대 노동자들은 민주화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간 성장해온 미얀마 산업사회에 막 진출한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감행하고 있는 주요 전술 중 하나는 해외 자본을 압박하는 것이다.

미얀마는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이 차례로 산업자본주의로 재편된 뒤 80년대 베트남, 캄보디아에 이어 초국적 기업의 글로벌 가치 사슬에 얽히기 시작했다.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선발국가의 자본은 더 저렴한 원자재와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시아 중 임금이 가장 낮은 미얀마를 찾았다. 중국은 특히 미얀마의 최대교역국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미얀마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 중국 정부가 현재 미얀마 사태를 방관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계 공장 수십 군데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동안 미얀마 군부는 주요 산업을 장악하는 한편, 극도로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유지하며 이득을 챙겼다. 아웅산 수치 정권이 집권하면서 노조를 합법화했지만, 여전히 군부와 해외자본의 이해가 우선했다.

코로나19는 특히 해외자본에 예속된 미얀마 산업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냈다. 투자와 주문 물량은 급감했고, 직장 폐쇄와 해고, 임금 삭감, 노조 탄압이 더욱 빈번해졌다. 그러면서 노동계층의 빈곤이 급속히 심화했고 이는 청년계층에 더욱 가혹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하루에 1.90달러(2,147원) 이하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의 수는 2020년 1월 16%에서 9월에 63%로 약 3배가 급증했다.8 청년 실업률은 2018년 3.81%에서 2020년 4.34%으로 증가했다.

한편 미얀마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노동쟁의가 가장 치열했던 곳 중 하나였다. 지난 수십 년간의 산업 발전 속에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기틀을 닦아온 노동운동 때문이다. 미얀마에선 2011년에야 노조가 합법화됐지만, ILO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43%가 사업장에 노조 등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단체가 있다고 대답했다. 9

이 노동자운동이 최근 군사쿠데타에 맞선 봉기의 물꼬를 텄고, 이제 수백만 민중 봉기의 가장 강력한 조직운동이 됐다. 미얀마 노동자들은 2월 2일 보건 부문을 시작으로 군부에 맞선 ‘불복종 운동’이라는 이름의 파업 시위를 진행했고, 2월 8일, 22일, 28일에 이어 3월 8일까지 수백만 규모의 총파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미얀마 노동계급은 민주주의를 위해 해외자본을 압박하는 행동을 주요 전술로 채택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미얀마 군부와 초국적 자본을 압박하기 위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이들은 미얀마 출신 청년 이주노동자들이다. 한국을 포함해 태국, 일본, 대만 등에서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3, 4백 명 규모로 쿠데타 반대 시위를 조직했다.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은 약 400만 명으로, 미얀마 노동력의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 이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나라는 태국으로, 이곳에서 약 300만 명10의 미얀마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태국에서 지난해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며 일어난 시위의 상징도 ‘세 손가락 경례’였다.

<각주>
1.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10년대 초중반까지 출생한 세대
2. https://www.myanmar-now.org/en/news/authorities-blame-death-of-protester-shot-in-mandalay-on-covid-19
3. https://redflag.org.au/article/myanmars-spring-revolution
4. https://www.jacobinmag.com/2021/03/myanmar-burma-general-strike-coup
https://www.nytimes.com/2021/03/12/business/myanmar-garment-workers-protests.html?searchResultPosition=5
5. https://www.reuters.com/article/myanmar-politics-lgbt-rights-idUSL8N2KT0AV
6. https://www.myanmar-now.org/en/news/frontline-workers-in-myanmars-health-crisis-vow-to-keep-up-pressure-on-the-regime
7. cdm2021.com
8. http://ebrary.ifpri.org/utils/getfile/collection/p15738coll2/id/134144/filename/134353.pdf
9. ILO가 양곤과 몬 주에 소재한 식품, 목재, 봉제 등 198개 기업을 대상으로 수행해 2017년 3월 발표. https://www.ilo.org/wcmsp5/groups/public/---asia/---ro-bangkok/---ilo-yangon/documents/publication/wcms_546641.pdf
10. https://www.myanmar-now.org/en/news/i-guess-were-just-supposed-to-starve-laid-off-myanmar-migrants-denied-wages-and-trapped-by


<참고>
https://www.labornotes.org/2021/02/myanmar-workers-and-unions-front-lines-fight-against-coup
https://www.leftvoice.org/from-india-to-myanmar-class-struggle-flares-up-in-south-and-southeast-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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