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진보 검사 해임의 의미

[INTERNATIONAL2] 대중의 불안 속 진보적 형사정책 개혁의 실패


6월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선출직 공직자를 해임하기 위한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됐다. 대상은 2020년 1월부터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으로 일해 온 체이서 부딘이었다. 소환 근거는 그가 범죄자에게 온정적인 정책을 실시해 지역 치안 불안이 커졌다는 것이었다. 주민 투표 결과는 해임 찬성 55.03%(122,423표), 반대 44.97%(100,034)였다. 이로써 부딘은 2023년까지 예정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검사장에서 물러나게 됐다.

미국 전역에서 상당한 관심이 집중된 이 투표 결과는 자유와 진보의 도시로 알려진 샌프란시스코에서 추진된 개혁적 형사정책이 결국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좌절된 사례였다. 범죄자를 기소해야 하는 검사가 제 임무를 소홀히 해 도시에 범죄자들이 판치게 됐다는 소환 논리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중이 지지할 만한 명쾌하고 강력한 주장이었고, 이번에도 결국 이 논리가 승리했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한 이상주의적 검사장의 실패로 보이는 이 사건에는 조금 더 복잡한 맥락이 있다. 그것은 공화당과 민주당 정권이 사이좋게 만들어 낸 미국의 대량 투옥 구조에 관한 것이며, 코로나19 이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대량 투옥의 시대, 산업화한 교도소

부딘은 미국의 사법 정의 개혁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진보 검사로 꼽힌다. 사법 정의 개혁은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앞세워 더 많은 사람을 교도소에 보내는 기존 형사정책의 재검토와 방향 전환을 요구한다. 엄벌 위주의 형사정책은 미국에서 적어도 수십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특히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은 대량 투옥 시대를 본격화 한 중대 사건으로 꼽힌다.

‘마약과의 전쟁’ 이후 계속된 단속과 처벌 정책은 미국의 형사사법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조 바이든 상원의원이 주도해 통과시킨 1994년의 범죄법도 경찰력을 대폭 강화해 더 많은 사람을 교도소로 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 사법통계국에 따르면 레이건 취임 전해인 1980년 50만 명이던 미국의 수감자 수는 계속 급증해 2007년에는 231만 명을 기록했다. 전체 수감자 수와 인구 당 수감자 비율이 세계 최고인 미국의 사례는 다른 비교 대상을 찾기조차 어렵다. 이후 미국의 수감자 수는 조금씩 줄었고 코로나19에 따른 재판 연기와 가석방 확대로 급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말 기준, 169만 명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 교도소 제도가 운영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월드프리즌브리프의 통계에 따르더라도 2020년 미국의 수감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655명으로, 한국의 109명보다 약 6배 높다.

대량 투옥 시대에서 크게 지적되는 문제는 두 가지다. 우선 교도소 자체가 거대 산업화하면서 민간 기업들이 교도소를 짓고 물품을 공급하며 재소자들을 노동시켜 이익을 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흔히 감옥산업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라고 불리는 이 구조에서는 교도소에 더 많은 사람이 들어갈수록 더 큰 이익을 보는 집단이 발생하게 된다. 애초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인구가 사회에서 격리된다는 것부터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데, 이에 따른 국가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민간 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더욱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 셈이다.

다른 문제는 늘어난 미국의 교도소 자리를 사회경제적 약자, 특히 유색인이 집중적으로 채웠다는 사실이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유색인은 집중 단속 대상이었다. 단순 마약 소지와 같은 가벼운 범죄로 교도소에 가는 유색인이 늘어났다.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 사법통계국은 2020년 기준, 흑인 남성이 백인 남성보다 교도소에 갈 가능성이 5.7배 높으며, 특히 18세와 19세에 한정하면 12.5배나 높다고 발표했다. ‘학교에서 교도소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school-to-prison pipeline)’이라는 유색인 청년의 전형적인 인생 행보를 보여주는 수치다.

이에 따라 가난, 실업, 차별 등의 산물인 범죄를 강한 사회적 격리라는 방법으로 해결해 온 미국의 형사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기존의 엄벌주의 정책이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재소자와 전과자 집단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면서 빈부격차와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것이 비판자들의 주장이었다. 문제 제기가 계속되면서 2010년대 후반부터는 형사정책 개혁을 강하게 주장하는 행정가들이 필라델피아나 보스턴, 시카고 같은 대도시 관할 검사장으로 당선돼 몇몇 개혁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는 2021년 미국 최초로 주 전역에서 현금 보석 제도를 폐지했다. 현금 보석 제도는 가난한 사람을 가두고 부자를 풀어준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 온 제도다.

형사정책 개혁을 실시한 부딘

2019년 11월 샌프란시스코의 검사장으로 당선된 부딘도 형사정책 비판 활동을 해 오다 선거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에게는 미국 교도소에 문제의식을 가질 만한 개인사도 있었다. 그의 부모는 1960년대 말부터 활동한 미국의 급진 좌파 조직 ‘웨더 언더그라운드’ 멤버로, 부딘이 14개월이던 1981년 브링크 현금수송차량 강도 사건으로 체포됐다.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 사건은 웨더 언더그라운드가 같은 급진 좌파 조직인 ‘흑인 해방군’과 함께 벌인 것이었다. 부딘의 부모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돼 어머니는 22년, 아버지는 40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가석방됐다. 정치범 구명 단체들은 오랫동안 사건 관련자의 석방을 요구해 왔다. 이 사건으로 새아버지가 수감된 래퍼 투팍도 운동에 동참한 인물 중 하나다. 부딘은 법조인이 되기 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부 대통령실에서 통역관으로 일한 특이 이력도 있다.


부딘은 선거 당시 현금 보석 폐지, 아동의 성인 취급 기소 중단, 감옥을 대체할 재활 프로그램 확대와 같은 개혁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샌프란시스코가 속한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미 2018년 주지사가 현금 보석 폐지에 서명했으나 강력한 반대 운동으로 실시되지는 않았다. 엄벌주의 대신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한 부딘의 공약은 버니 샌더스 같은 진보 정치인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강력한 범죄 단속을 선호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 대표적인 부딘 반대 조직인 샌프란시스코 경찰 노조는 “범죄자와 갱단원에게는 최고의 선택”이라며 부딘을 비판했다.

접전 끝에 당선된 부딘은 공약을 과감히 실행해 나갔다. 현금 보석 폐지, 잘못된 판결 재검토 부서 신설, 이민세관국의 급습과 체포 협조 거부 등이 대표적이었다. 경범죄나 비폭력 범죄로 기소된 미성년자에게는 형사절차를 유예하고 부모와 함께 교정 프로그램을 이수할 경우 죄를 묻지 않도록 했다. 또한 그는 경관의 임의 차량 검문 때 나온 불법 물품의 죄를 묻지 않고, 3회 재범이나 갱단 가입을 이유로 한 추가 형량 청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 두 관행은 모두 소수인종에게 불리하게 적용돼 오랫동안 지적받아 온 것들이었다. 2020년 6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부딘은 경찰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방향의 정책을 발표했다.

동시에 부딘의 개혁은 강한 반대 운동에 직면했다. 취임 첫해부터 부딘을 해임해야 한다는 소환 운동이 지역 공화당 정치인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필요한 서명을 모으지 못해 실패했다. 두 번째 소환 운동에는 공화당 지지자 외에 새 동맹자가 가담했다. 지역 민주당 정치인으로 중국계 미국인인 메리 정이 2차 소환 캠페인을 주도해, 결국 부딘 해임에 성공했다. 보수적인 기업가들도 힘을 보탰다. 소환 캠페인은 700만 달러가 넘는 자금 지원에 힘입어 진행됐는데, 페이팔 공동 설립자 데이비스 색스나 공화당 기부자로 유명한 거부 윌리엄 오번도르프 등이 주요 기부자였다. 부딘 소환 반대 진영에서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목사 제시 잭슨, 가수 존 레전드 등 진보 단체와 인사들이 목소리를 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런 보수주의자나 엄벌주의를 선호하는 유력인사의 조직적 반대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선택이다. 부딘을 선택한 주민들은 왜 2년 반 후 다시 그를 끌어내렸는가? 그 배경에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사회적 충격의 여파가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코로나 피해를 본 국가 중 하나다.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는 100만 명에 달한다. 이 밖에도 일상적 생활의 제약, 실직, 물가 급등 등 코로나 이후 전개된 상황들은 모든 사람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이것이 낳은 좌절과 분노는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공격 증가와 같은 위험한 징후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처럼 부딘 소환을 가능하게 한 것은 대중의 불안감이었다. 부딘의 임기 동안 강도와 차량 절도 등의 범죄가 늘어났다는 비판 여론이 등장했고, 기소되지 않거나 가석방된 이들이 비슷한 범죄로 다시 체포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런 모든 사건은 부딘 소환 운동의 주요 근거로 활용됐다. 특히 더 많은 위협을 느끼게 된 집단인 아시아인이 조직적으로 부딘 소환 운동에 나섰다.

과연 문제는 범죄 온정주의일까?

그런데 이런 소환 운동의 근거들에는 따져 볼 만한 지점이 있다. 한 검사장이 주도한 형사정책 변화가 범죄 증가의 원인일까? 샌프란시스코에 자동차 절도, 펜타닐 마약 유행, 대규모의 노숙인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부딘의 지지자들은 이런 사회 문제의 책임을 지역 검사장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며, 진보적 형사정책 반대자들이 사회 구조적 문제의 책임을 부딘에게 뒤집어씌운다고 주장한다. 지역 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최근 4년 동안의 1분기 경찰 사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중의 불안감 증가와는 달리 실제 범죄 경향에 대한 진실은 복잡하며 공공 안전이 악화했다고 명확히 말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몇몇 증가한 범죄 수치 또한 자세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따르면 2020년 지역에서 강도 범죄가 전년에 비해 46% 증가했다. 이에 대해 부딘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증가와 범죄 표적이 관광객에서 지역 주민이나 사무실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부딘이 범죄자들에게 온정적이었는가? 마찬가지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조사에 따르면 부딘 취임 후 2년 동안 전체 기소율은 48%였다. 전임자의 후반 2년 동안의 54%보다 낮고, 전반 2년 동안의 기소율과 동등했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으로 검사가 경찰에서 받는 사건 유형이 크게 바뀔 수 있으므로 전체 기소율로 정책의 성격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크로니클의 결론이다. 사건 유형별로는 살인, 강간, 마약 기소율이 증가한 반면 강도, 경미한 절도, 무기 사건은 감소했다. 경범죄를 덜 기소하고 강간죄는 패소하더라도 더 많이 기소하겠다는 공약을 낸 바 있는 부딘의 정책 방향에 부합하는 결과로, 부딘이 범죄에 온정적이라는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 샌프란시스코 카운티의 수감자 수는 부딘의 취임 이후 40%나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는 부딘의 온정적 법 집행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재판을 최소화하고 수감자 수를 줄인 정책의 결과다.

결국 진보적 형사정책 실시와 도시의 범죄 증가 사이에 인과관계를 찾기는 어렵다. 특정 범죄의 증가 책임을 검사장 개인에게 묻는 것도 분명 부당한 측면이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 범죄 증가, 물가 상승과 같은 불안감을 가중하는 상황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부딘은 대중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재신임을 받는 데 실패했고, 미국의 형사사법제도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일리노이주 쿡 카운티의 검사장 킴 폭스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의 범죄 불안감이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형사사법제도 개혁을 공공 안전과 연결해 대중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카고라는 대도시를 관할하는 재선 검사장인 폭스는 부딘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형사사법제도 개혁론자로 꼽힌다. 폭스는 마약 사건 기소에 쓸 자원을 총격 사건 대응에 쓸 수 있고, 잘못된 유죄 판결을 번복하거나 경찰에 과잉 대응책임을 묻는 일은 공권력의 공정성을 확립해 증인들이 더 잘 협조하도록 할 수 있다며 진보적 형사정책이 공공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엄벌주의가 승리했다. 형사정책 개혁의 반대자들은 이 성공한 작전을 다른 지역의 진보 검사들에게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진보적 검사를 제거하고 더 많은 사람을 체포하는 것으로 범죄율을 낮추고 대중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가? 그렇게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대도시의 빈부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어떻게 중단시킬 것인지, 극심한 가뭄을 불러온 기후 변화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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