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빨래하는 캄보디아

[저개발의 추억](1) 캄보디아를 통해 본 한국

[편집자 주] 캄보디아를 방문한 기자는 강가에서 빨래하고 펌프질해대며 우물에서 물을 긷던 모습에서 1970년대 한국을 발견한다. 도시가 메가시티로 변하는 동안 농촌이 공동화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캄보디아가 주는 교훈을 총 4차례 연재한다.

1953년 전쟁 직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였던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된 1962년을 기준으로 45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약 250배로 증가했다. 그 해 2007년 GDP 규모로 세계 11위를 기록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리고 2014년 한국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부터 시작해 노인 자살률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일등을 차지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적 불평등 지수도 세계 최고다. 이건 뭔가? GDP 규모가 세계 11위라지만 그 11위에 해당하는 규모의 GDP가, 노동을 착취당하면서 그 GDP를 일구어낸 노동자 민중에게 돌아가지 않고 죄다 재벌들에게 돌아갔다는 뜻이다. 이것은 1인당 국민소득이 약 250배로 증가했다지만 그 증가분이 재벌과 부자들 창고에만 차곡차곡 쌓여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세계 제국주의의 홍수가 밀어닥친 인도차이나 반도가 그렇다. 특히 지도를 찾으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나라 캄보디아가 그렇다. 1993년 캄보디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229달러였다. 1970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254달러인 한국과 비교하면 23년의 격차가 있다. 이를 보면 오늘날 캄보디아는 23년 전 한국을 닮았다. 캄보디아가 타이 수준이 되고 2010년 1인당 국민소득이 1,700달러에 이른 베트남 수준이 되고 더 나아가 그 이상 수준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베트남의 기적도 캄보디아의 기적도 아닐 터이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 반도의 1인당 국민소득이 올라갈수록 자본주의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경제적 불평등의 늪으로 빠트리고 말 것이다. 한국 사회는 바로 그 모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출처: http://en.wikipedia.org/]

강가에서 빨래하고 펌프질해대며 우물에서 물을 긷던 70년대 한국을 캄보디아가 반복하고 있다. 캄보디아가 삶의 질에 파열음을 내고 있는 한국의 압축적 자본주의 역사를 닮아간다면 캄보디아의 미래는 한국 사회의 현재 몰골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 것이다. 수도 프놈펜을 빼놓고 가는 곳마다 농촌인 캄보디아가 서울이고 어디고 가는 곳마다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찬 한국을 반복하는 것은, 죽음보다 괴로운 반복일 터이다.

  캄보디아 원주민의 앞마당 [출처: 뉴스민]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수 없는 법인가? 캄보디아 저개발의 추억은 유지될 수 없는 것인가? 캄보디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 전역, 혹은 인도네시아, 네팔 등을 새로운 시장으로 키워 먹어 치우려고 눈독 들이는 자본이 있는 한 인간 개인사와 달리 추억은 유지될 수 없는 모양이다. 물론 개인도 추억의 상실에 몸서리칠 수 있겠고 한국 사회가 오늘날 겪고 있는 고통 또한 추억의 상실에 대한 몸부림일 수 있겠으나 마냥 ‘저개발의 추억’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그 추억에 대한 향수병에 젖어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캄보디아도 그렇다. 저개발이 개발이라는 단어로 바뀌는 순간 캄보디아의 외양은 화려해지지만, 그 속살은 오늘날 한국 사회마냥 욕창으로 뭉개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캄보디아가 저개발의 추억을 붙들고 계속 살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3년 전 한국 사회가 그렇게 추억을 잃어버리고 흑백사진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캄보디아도 지나간 추억은 노래 속에 담아 버리라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1984년에 나온 영화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 오늘날 군벌이 지배하는 캄보디아는 저개발의 추억을 씻어버리려는 듯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고 있다. 영화 제목처럼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 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 폴 포트(본명 살로트 사르)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Khmer Rouge: 붉은 크메르)라는 무장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한다. 원리주의적 공산주의 단체인 크메르 루주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강제노역을 하게 하거나 학살하였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학살당한 이들의 유골 [출처: 뉴스민]


  크메르 루주 단 [출처: 뉴스민]

그러나 그 당시 국민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을 무작정 비판의 시선으로만 바라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공장을 없애고 캄보디아를 이상적인 농촌국가로 개조하려고 했던 폴 포트의 성과를 국민들과 지식인들의 무자비한 학살과 떼어 놓고 생각해볼 문제다. 1970년대 캄보디아가 한국처럼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산업 개발 쪽으로 움직였다면, 오늘날 캄보디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1970년대 캄보디아가 오늘날 2000년대 한국이 됐을 것이다. 그 결과는 자본주의적인 착취의 역사처럼 명약관화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으로 넘쳐나고 매년 노동자 2,000명이 산업재해로 죽는 한국 사회를 닮고 저개발의 추억은 액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을 터이다.

생각해 보자. 저개발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캄보디아를 통해 한국 사회와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를 반성해 보자. 추억은 좋은 것일까, 아니면 지워야 할 만큼 나쁜 것인가? 서울 경기 지역으로 인구가 집중하고 도시가 초초메가시티로 변하는 동안 그 나머지 시골이 거의 공동화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캄보디아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설경구가 영화 <박하사탕>에서 “나, 돌아갈래!”라고 외쳤던 절규를 생각해보는 것은 정말로 공염불일 뿐일까?
덧붙이는 말

이득재 기자는 뉴스민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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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 저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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