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사회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아요”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 인터뷰(3)

28년 된 낡은 자동차를 끌며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대통령, 노숙자에게 대통령궁을 내주는 대통령으로 알려진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인 지난 2월 저명한 언론인 카를로스 가베타(Carlos Gabetta)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2월 11일 오전 호세 무히카의 몬테비데오 교외 농장에서 진행됐다. 청바지에 소매를 걷어붙인 셔츠에, 신발끈도 제대로 묶지 않고 야구모자를 쓴 수수한 차림으로 기자단을 맞이한 무히카는 사람들에게 직접 마테차를 제공했다. 농장 나무 아래서 진행된 인터뷰 동안 그는 솔직하게 질문에 답했고, 중간중간 담배를 말아서 피웠다. 이 인터뷰는 멕시코의 대표적 좌파 일간지 <라 호르나다>(La Jornada)에 실렸다. 3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카를로스 가베타(이하 CG): BF 정부의 다른 문제점은?
호세 무히카(이하 JM): 국가가 필요로 하는 변혁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시도하지 못했어요. 우루과이 국가는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하고 이건 아주 중요해요. 작은 저개발 국가인 우루과이에서는 창조적이고 기본이 된 부르주아 계급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채널을 열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국적기업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니까요. 그런 다국적 기업들의 존재를 대체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가진 유일한 힘은 국가인데, 현재의 국가는 그렇게 못하죠.

CG: 농업개혁은 어떤가요?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가능한가요?
JM: 1940년대 우루과이에서 역사적 논쟁을 통해 농업개혁 이상의 것을 포괄하는 법률이 제정됐어요. 국가적 계획이었어요. 국립식민청이란 기구를 창설했죠.

CG: 식민청이요?
JM: 네. 이 기구는 우르과이 최고의 토지 보유자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지주는 국가이고, 거의 50만 헥타르를 보유하죠. 상당하죠. 하지만 오랫동안 경제적 자원을 지원받지 못했어요. 한 원로 정치인은 “우리는 이 법률에 찬성하는 표를 던졌지만, 재원을 주지는 못했다”고 말했어요. 만약 60년대와 70년대 이 법의 내용을 제대로 실현했다면, 지금 우르과이는 아마 뉴질랜드와 비슷하게 됐을 겁니다.

우리는 이 식민청을 되살렸어요. 우리가 정부를 접수했을 때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수입은 겨우 행정비용을 감당할 정도였어요. 우리는 재원을 줬고, 격려해서 제대로 서게 만들었어요. 오늘날까지 여전히 소규모 가족농에 적합한 부문들도 있어요. 하지만 똑같은 기준을 곡물생산에 적용할 수 없지요. 세상과 기술이 변했으니까요. 경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생산부문들에 유리하도록 국가의 식민정책으로 계속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토지문제에 대해 빈곤을 생산하는 체제로 가서는 안 되죠. 대기업에 대해서는 압력을 가해서 현대적 법률을 준수하고 적정한 급여를 제공하고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제대로 실시하고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기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외국인 지주들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요. 땅을 가져갈 수 없으니까요. 사실을 말하자면 외국인보다 더 나쁜 백인들이 좀 있지요...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 백인 지주들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지불하고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는가죠. 부가된 가치는 이 나라에서 남도록 해야 하구요. 심술부리려다 자기 코를 베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죠. 좌파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죠.

우리에겐 도구가 있어요. 우루과이에서 필요하고 가능한 농업개혁은 그 이름이 있죠. 바로 국립식민청이죠. 50만 헥타르가 아니라 결국 150만, 200만 헥타르를 보유해야죠. 우리가 충분한 역량을 갖추게 되면 아마 다른 방법에 대해 논의를 하겠지만, 농업정책이 더 많은 빈곤을 낳게 된다는 생각을 저는 거부합니다.

CG: 현실 사회주의가 그 점에 대해 우리를 기만했죠.
JM: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죠. 사회주의 모델의 실패에서 몇 가지를 배웠죠. 왜냐면 쿠바혁명이 요즘에도 아이들에게 우유를 공급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죠. 쿠바는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죠. 왜 실패했을까요? 핵심 원인이 뭘까요. 거대한 집단농장을 만들었지만, 결국 관료주의의 지옥으로 끝났어요. 베네수엘라에서 4만, 5만 헥타르의 토지를 국유화했지만, 오늘날 황량하죠. 황무지가 된 거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요. 아시죠?

CG: 당신 정부 아래서 마리화나가 합법화됐죠.
JM: 그건 우리가 통제해야 되는 거죠. 히피 자유주의가 아닙니다. “무료 마리화나”란 개념과 전혀 관계없어요. 우리는 마리화나가 건강에 좋은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을 옹호하진 않아요. 이 조치는 마약 거래를 막기 위한 거죠. 마리화나나 다른 약물보다 더 나쁜 것은 마약이기 때문이죠. 이 조치는 시장에서 마약 거래자들을 몰아내려는 의도로 한 거죠. 합법적 사업으로 만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탄압해야 합니다.

만약 15만 명이 마리화나를 피우기로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들은 좋은 제품에 접근할 수 있게 해야죠. 어떤 사람이 과잉사용 징후를 보이면, “이봐, 이제 치료가 필요해”라고 말해야죠. 이 문제를 음지에 묻어두면, 결국 문제가 드러날 때 너무 늦거나 너무 비용이 많이 드는 상태가 되죠.

CG: 당신의 정책 중에 마약 거래에 대한 세금 부과도 있던데, 마약 거래자들은 세금을 안 내죠. 그러니까 국가는 아무것도 못 받으면서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셈인데...
JM: 그래요. 마리화나의 경우 지금까지 악마화시켰죠. 경이로운 식물인데. 섬유의 원천으로 용도는 무한하죠. 직물도 만들고 다른 많은 것도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불법이었기 때문에 의료용을 포함해 가능한 사용법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할 수 없었어요.

CG: 타바라 바스케스 신임 대통령이 이 정책을 밀고 나갈까요? 그는 다소 주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낙태문제도 그렇고.
JM: 이 정책들에 관한 한, 그는 최소한 참아낼 것 같은데요. (웃음)

CG: 인터뷰가 끝나가는데, 당신의 과거, 인생, 역사에 대해 말해보죠.
JM: 나는 역사가 별로 없는데, 오히려 코미디 같지. (웃음) 나의 과거? 그거에 대해서 책이 20권쯤 있죠. 기자들이 나를 괴롭히면서 파고들어서. (웃음) 제발 전부 다 읽지 마셔. 참을 수 없으니까.

CG: 당신의 삶이 코미디에 가깝다고 하지만, 아주 열정적인 코미디죠. 무장투사, 15년 감옥생활, 탈출 시도 등. 어떻게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우루과이 대통령까지 된 거죠? 당신의 전략은 뭐였죠? 그런 상황이면 대부분은 죽거나, 미치거나 폐인이 되는데...
JM: 그게 유전과 관계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결국에 나가서 투쟁을 계속할 것임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어요. 내가 죽거나 정치투쟁을 포기할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나를 항상 지탱한 건 이상이었죠, 아마 그게 도움이 됐을 거예요. 6년 동안 책 없이 지냈는데, 그래서 물건들을 발명했어요.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한 비법이죠.

CG: 어떤 거죠?
JM: 어떤 도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이런 저런 용도의 농기구를 머릿속에서 발명해요. 계산을 한 다음 제작을 하는 거죠.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요. 하루에 몇 마일씩 걸었어도. 확실히 요즘 걷는 것보다 더 많이 걸었던 거죠.

CG: 감방에서?
JM: 네. 이쪽으로 세 걸음, 저쪽으로 세 걸음. 다시 이쪽으로 세 걸음, 저쪽으로 세 걸음. 다리가 아플 때까지 걷는 거죠.

CG: 살아서 나갈 것임을 결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요?
JM: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죽음이 여러 번 나를 희롱했죠. 몇 번 불렀지만, 진짜로 나를 원한 건 아니더라고요. 아마 그게 내 사고방식에서 가장 몸에 밴 것인데, 나는 삶을 사랑해요. 결코 자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에게 삶은 아름다운 것이고, 외국에 나가 살지도 않아요. 낯설고 또 자연을 사랑하니까요.

어제 펜치로 전선을 꼬다가 바로 여기(코 끝에 난 상처를 가리킴)를 다쳤어요. (웃음) 나는 공화국의 대통령이지만, 트랙터로 땅을 파헤치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파김치가 돼서 집에 오죠. 목욕하고 코를 풀면 거뜬해져요.

이런 것들이 대부분 사람들에겐 사소한 것이겠지만, 나에게 중요하죠. 나는 다른 식으로 살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방식이 있죠. 좋아요. 그게 인간 자유의 아름다움 아닌가요?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가져야죠. 그게 진정한 자유죠. 자유는 아주 프랑스스러운 웅장한 단어지만, 땅으로 내려와야죠.

CG: 연설 중에 자주 행복에 대해 말씀하시던데.
JM: 어떤 사람들이 내가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나는 단지 검소한 생활을 할 뿐이죠. 나는 물건을 별로 안 가지고 다녀요. 일부러 가방을 가볍게 하죠. 하나의 선택입니다. 왜냐? 자유시간을 갖고 진짜 내가 원하는 데 시간을 쓰려고 그러는 거죠. 돈을 벌려고 노력하면 항상 돈을 좇아서 근심하면서 항상 돌아다녀야 할 걸요. 어떤 사람이 내 것을 훔치지 않을까 나를 속이지 않을까 등등 걱정하면서. 나는 항상 내 인생에서 시간을 빼놓죠.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어떤 사람들에겐 돈이 동기겠죠. 그건 그들의 자유예요. 하지만 자유로울 선택을 할 여지가 있어야 해요. 국가나 사회가 모든 것을 규제할 것을 주장하지 않아야 해요. 원한다면 코트와 넥타이를 입어도 되죠. 정말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원하는 대로 하세요. 아마도 내가 약간 무정부주의자 같아요.

CG: 당신의 꿈은 뭔가요? 아직 성취해야 할 프로젝트는?
JM: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꿈은 결코 멈추지 않아요. 나는 사회주의적 확신을 갖고 있고 지적 유산에 기여하길 희망하죠. 지도자들이 죽거나 임기를 마칠 때 민중과 사회를 더 낫게 만든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은 거죠. 일은 항상 질질 끌면서 진행되고 미래의 무한한 과제, 더 정의로운 사회를 창출하려는 과제에 비해 인간의 삶은 짧아요. 그런 정의로운 사회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아요. 조직된 인간의 의지를 필요로 하지요. 나에겐 그게 핵심이에요. 그게 유일한 건 아니지만, 조직된 인간의 의지가 없다면 일은 되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된다면 그건 결정론이죠.

CG: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란 그람시의 말을 인용하시는 것 같네요.
JM: 맞아요. 변화를 용이하게 하는 공적 문화의 창출은 엄청난 과제죠. 그것이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혁명적 변화를 지속시키는 유일한 것이죠.

CG: 당신은 증오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감옥에서 나왔을 때 증오하지 않았나요?
JM: 네, 증오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한 사회의 계급투쟁을 이해하면, 누군가 더러운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죠. 만약 그걸 거부하면 다른 사람이 하거든요. 상황의 부산물일 뿐이니까요. 물론, 각 개인의 가학적 행위에 정도 차이는 있어요. 하지만 감옥에 있는 동안 흥미로운 인물들을 알게 됐죠. 자기 목숨을 걸고서 우리에게 자기 급식이나 사과를 준 군인들도 있었죠. 장교들이 자기가 받은 명령에 저항하는 것도 봤어요. 흑과 백은 없어요. 항상 그 사이의 회색 색조가 있을 뿐이죠. 하지만 명백히 내가 정치적 또는 사회적 활동가라면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투쟁해야 하고, 구조적 변화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좌파는 권력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거나 그것을 사회적 의제, 즉 동성결혼, 낙태, 소수자 권리, 원주민, 여성주의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아요. 모두가 아주 훌륭한 것이고 나도 지지해요. 하지만 진짜 저주받은 유색인종은 가난한 사람들이죠. 여성 중에서 차별의 최대 피해자는 가난한 여성들이죠. 매일매일 너무 많은 아이들 때문에 짓눌려 살죠. 원주민들도 마찬가지요. 나한테 계급차별을 위장하거나 숨기려고 하지 마세요.

CG: 네, 하지만 개인적 문제들도 있죠. 감성적으로 말해서 진짜로 차별받는 곳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죠?
JM: 내가 갇혀 있던 감옥의 간수를 만나러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조사관들과 같이 사진을 찍었죠. (웃음) 과거는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이죠. 그래요. 괴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삶은, 삶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죠. 항상 지나온 과거를 생각하면서, 상처를 핥으면서 절룩거리면서 돌아다닐 필요는 없어요. 만약 자기의 과거에 대해 푸념만 한다면, 과거에 갇히는 거죠. 그리고 삶은 아직 다가올 미래죠. 과거로부터 배워야 하지만, 과거가 우리를 매장하게 해서는 안 되죠.

CG: 작년에 노벨평화상 후보에 지명됐는데.
JM: 그 사람들에게 미쳤다고 말했죠. 세계 도처에서 전쟁이 터지고 있는데, 그게 진짜 재앙이죠. 그런 당신네가 나를 평화상 후보로 지명하다니! 그 사람들 제정신이 아닌 거죠? (웃음) 어떤 평화에 대해 말하는 거죠? 사후이지만 간디에게 평화상을 주라고 제안했어요. 그게 더 말이 되는 거지.

CG: 이제 뭘 할 건가요? 3월 1일 퇴임한 이후에 뭘 하실 계획인가요?
JM: 내 생각에는 이제 무덤에 한 발을 담근 것 같은데. (웃음)

CG: 당신이 그토록 삶을 사랑하신다니 다행이지만.
JM: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할 거예요. (웃음). 나는 죽음을 삶의 아주 기본적인 부분으로 봐요. 난리법석을 피우지 않고 야생 늑대처럼 죽는 법을 배워야 해요.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수단일 뿐이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요. 하지만 그동안 아주 오래되긴 했지만, 내 뼈다귀를 움직일 수 있는 한, 투쟁을 계속할 겁니다. 은퇴는 상상할 수도 없어요. 그런 다음에 죽겠지만, 구석에 처박혀 슬픔에 빠져 죽지는 않을 겁니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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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원영수(국제포럼)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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