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좌파정권과 운동의 총체적 위기

사상 최대의 부패사건과 PT 정부의 위기, 룰라의 선택?

최근 브라질 상황이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19일 마르셀루 오데르브레히트가 국영석유공사 페트로브라스 공금유용 혐의로 구속되면서 폭로된 브라질 사상 최대의 부패사건으로 집권 노동자당(PT)과 지우마 후세프 정부가 마비상태에 빠졌다. 세계 25대 기업중 하나인 브라질 최대 건설회사 회장인 오데르브레히트는 재계에서 PT의 가장 중요한 지원자였다. 룰라 자신도 과거의 선거운동과 여행경비 등을 지원받는 긴밀한 관계임을 인정했고, 룰라까지 검찰수사 선상에 오르게 됐다.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룰라의 구속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한편 6월 13일 노동자당의 5차 전당대회에서 참석한 룰라 전대통령은 PT를 거세게 비판했다. 요지는 30년 전 창당 초기의 전투성이 완전히 실종됐고, 당이 공직과 선거에 골몰한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 불만을 느끼는 젊은 청년층과 이른바 신중산층을 끌어 안으려면 “내부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PT의 비호 아래 초고속 성장

오데브레히트사는 남미 최대기업 중의 하나로 룰라와 긴밀한 연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PT 정권 아래서 남아메리카 통합프로젝트(IIRSA)의 수많 건설공사를 담당하고, 히루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6년 올림픽 시설 대부분의 1차 시공사다.

2007년 룰라가 강력한 군산복합체 창설을 목표로 추진한 국방전략 사업에 오데브레히트는 적극 참여했고, 항공기 제조업체 엠브라에르와 함께 국방산업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2011년 미사일과 항공우주 시장용 하이테크 제품의 선도적 제조업체인 멕트론까지 인수했다.

뿐만 아니라 2010년 5월에는 에어버스 소속의 유럽회사 유럽우주항공방위사(EADS)와 잠수함 제조협약에 서명했다. 세계 2위인 EADS와 공동으로 설립한 이타과이 조선은 조선소와 잠수함 기지를 건설했고, 현재 브라질 최초의 핵잠수함과 3기의 재래식 잠수함을 건조중이다. EADS와의 협약에는 광범위한 기술이전이 포함돼 있어, 그 결과 오데브레히트는 브라질 방위산업의 핵심기업이 됐다. 잠수함개발프로그램(Prosub)은 2000년대 발견된 세계최대의 유전이 위치한 브라질 해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오데브레히트가 PT의 주요 프로젝트에서 최대 민간기업이지만, 유일한 기업은 아니다. 카마르구 코레아, 안드라데 구티에레스, 오아스 등 주요 건설사들도 룰라 정권의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이들 4개사는 전세계적으로 52만30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오데브레히트만의 매출도 우루과이 GDP의 2배 수준에 이른다.

룰라와 PT 정권이 추진한 개발전략은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와 오데브레히트 등 건설사, 광재벌 발레, 철강 및 정육 대기업들과의 유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번 수사로 유착을 통해 불법과 횡령의 규모가 얼마나 밝혀질지 미지수이지만, 주요 언론들은 그 규모를 20억 내지 30억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후세프 정부의 총체적 위기

재선에 성공해 올해 1월 1일 출범한 지우마 후세프 대통령의 인기는 10%로 추락했다. 페트로브라스 스캔들과 집권당 PT의 위기에 경기둔화와 그에 따른 긴축조치로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석유와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의 하락에 민감한 브라질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후세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후세프 정부의 위기는 보다 근본적으로 이른바 룰라주의의 물적 토대와 정치적 동맹이 붕괴되기 직전일 정도로 위협적이다. 4기 연임에 성공한 노동자당의 성공신화 이면에는 대기업 및 우파세력과의 정치적 연합이 작동했고, 경제적으로는 원자재 등 1차생산품 수출붐을 통한 지속적 경제성장이 그런 정치적 동맹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국내 정치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연합 정당들의 광범한 합의에 기초한 통치체제(이른바 연합 대통령제 coalition presidentialism)에는 중도우파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을 포함해 10여개 이상의 정당이 PT의 파트너로서 참여했다. 그러나 현재 이 정치적 동맹은 갈갈이 해체되고 있고, 후세프 정부의 어떤 프로젝트도 우파가 지배하는 의회의 저항에 부딪히게 됐다. 현재 브라질 의회는 수십년 만에 가장 우파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오데브레히트 체포 3일 후 여론조사기관 다타폴라가 실시한 가상 투표에서 지난 대선에서 후세프에게 패배한 우파후보 아에시오 네베스 상원의원이 룰라에게 35대 25로, 10퍼센트 포인트 이상 앞섰다. 과거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상황에 대해 비관적인 PT 지도부의 추정치보다 심각한 격차였다.

역사적 PT 프로젝트의 해체?

이런 총체적 위기에 대해 PT는 우파와 언론이 경제위기를 이용해 좌파정부를 끌어내리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특히 2013년 6월투쟁에 비판적인 당지도부는 어떤 사회적 동원도 우익의 손에 놀아나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 대해 비판적 지식인과 당 밖의 활동가들은 PT가 2013년 6월투쟁의 요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2013년 투쟁에서 드러난 핵심적 요구는 단순한 빈곤탈피를 넘어선 교육과 주거, 교통 등 인간다운 삶이었는데, 이런 요구는 지배계급의 특권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룰라나 PT는 이런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해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 인터넷 언론은 현상황이 미국과 남미의 극우세력, 언론과 브라질 극우세력의 합작품이며, 사실상의 쿠데타라고 주장하면서, PT의 주요한 오류는 커뮤니케이션 헤게모니를 우파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질타했다. PT를 대변하는 대표적 지식인 에미르 사데르 역시 언론, 사법부 일부와 야당들의 합작공세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칭했다.

그러나 현재 후세프 정부의 문제는 단순히 우파와 주류언론의 공격 때문만은 아니다. 우파 음모론 시나리오는 별로 새로운 것이 없지만, 새로운 현상은 이런 공격이 당의 기층을 포함해 민중들에게서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로 인해 PT의 사회적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당의 기층은 지난 30년간 수많은 패배와 탄압에도 당에 충성했다. 그들은 룰라의 대선 3회 실패와 신자유주의 탄압을 버텨냈지만, 지우마 후세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노골적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현재 노동자당은 지도부의 정치적 위기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기층의 이탈과 해체의 조직적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30년 넘게 진행된 역사적인 PT 프로젝트가 그 정점(?)에서 해체의 운명에 처했다.

룰라의 마술?

후세프 정권과 PT의 총체적 위기에 편승해 좌파 일각에서는 룰라 3기 대안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대중의 신뢰를 상실한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스페인 포데모스 유형의 정당을 결성해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중심에 룰라가 서야 한다는 것이다. 즉 룰라의 마술이다. 이들은 룰라가 PT와 연계를 끊고 이 새로운 경로에 결합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2013년 6월 브라질의 355개 도시에서 거리로 나선 수백만 브라질인들의 경험이 관건이다. 그들은 가두투쟁에서 경찰의 잔인한 탄압을 통해 국가폭력을 경험했고, 노동자당의 정치를 거부했다. 이들 중 일부는 우파의 장난에 흔들리기도 하고 반동적 복음파 교회에 놀아나지만, 다수는 아직 거리에 머물면서 다음 투쟁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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