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 GDP 그리고 가치법칙

[워커스] 99%의 경제

[출처: 김용욱]

가사노동의 가치? 누가 지불하나

가사노동의 가치가 360조 원이라고 한다. 통계청은 ‘가계생산 위성계정’을 개발해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가 (2014년 기준) 연간 360조7천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가사노동은 일종의 자가노동(自家勞動)으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직접 소비되기 때문에 시장 가치, 가격을 갖지 않는다. 때문에 가사노동의 형태를 분할해 시장에 존재하는 유사한 노동의 평균 가격으로 환산했다. 가사노동의 가치 평가에 대해 한편에서는 여성을 무급 가사노동에 귀착시킨다는 비판과 가사노동의 가치가 실제보다 과소평가됐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그리고 가사노동의 가치를 GDP에 포함시키자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가사노동의 가치가 얼마로 표현되든 자본주의 현실에서 가사노동의 가치는 없다. 지구를 떠돌기만 하는 달이 지구가 아니듯, 가사노동은 가치를 측정하는 ‘국민소득계정’이 아니라 ‘위성계정’의 가치 평가액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통계청 발표로도 가사노동이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통계청은 가사노동의 가치 평가를 발표하면서 그 효과로 이제까지 일용직으로 계산되던 전업주부의 보험 배상금 책정 기준이나, 국민연금 등의 사회보장 보험금을 지급받을 때 적절한 대우를 받는 근거 등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새로 발표된 가사노동의 가치평가 없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들이며, 실제 그렇게 쓰임새도 없다는 점을 오히려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가사노동의 가치를 시장 가치로 환산(!)하는 문제보다 가치로 인정되는 것이 핵심이다. 얼마에 해당한다는 귀에 좋은 소리가 아니라, 이건 얼마라고 하는 게 중요하다.

가치로 인정된다는 것은 화폐로 교환(지불)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심지어 생산적이기까지 한 생산물도 시장에서 화폐로 교환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철길에 빠진 사람을 목숨 걸고 구해줘도 의인이 될 수 있을지언정 (이 일 자체로는) 경제적 가치는 없다. 집 청소를 하고 빨래하고 밥 짓고 아이 기르는 것을 내가 하면 가치 없는 가사노동이지만, 가사도우미가 대가를 받고 일하면 그것은 가치 있는 노동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는 똑같은 일이라 하더라도 시장에서 교환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이 때 교환은 화폐를 매개한 교환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사노동이 진정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가사노동에 대해 화폐로 지불돼야 한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① 임금(소득)이 가사노동 지출 규모만큼 더 늘거나
② 정부가 가사노동의 가치를 지불하거나,
③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지불하거나,
④ 가사노동의 정도가 유사한 가정끼리 서로 바꿔서
노동해주고 서로 지급하는 경우다.

먼저, 임금을 더 올리는 경우를 보자(논의의 편의를 위해 자영업 등 사업소득은 제외한다). 이를 위해 360조 원을 노동자 임금(피용자 보수)으로 기업이 더 지급해야 한다. GDP에서 피용자 보수 총액은 767조6천억 원(2017년 말 기준)이다. 360조 원을 추가로 받으려면 전체 노동자 임금의 50%를 더 올려야 한다.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다음으로 정부가 지불하는 방식이다. 먼저 세금을 보자. 2017년도 국세징수총액은 265조 원이다. 정부가 추가로 가사노동 비용 360조 원을 지불하려면 모든 세금을 평균 135% 인상해야 된다. 35%만 올려도 나라가 뒤집어질 판인데, 135%의 인상은 전쟁이 나지 않는 한 불가능해 보인다. 만약 성공하더라도 현재의 조세구조로는 간접세 비중이 높아 평균적인 세금인상은 정부가 노동자와 서민의 지갑에서 더 많이 빼앗아 돌려주는 식이라 조삼모사에 가깝다. 그렇다고 누진제를 강화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현재 소득세 최고세율이 40%인데 이를 135% 인상하면 소득 전체를 세금으로 걷는 게 된다. 여기서 누진제를 하면 세금징수가 아니라 자산몰수에 해당된다. 그러면 세금인상 대신 정부 예산을 조정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2018년도 정부예산은 428조 원이다. 교육 및 보조금 등 가계로 이전되는 이전지출 예산 177조 원을 빼면 정부예산 전체를 가사노동 비용으로 쓰고도 모자란다.

한국은행에서 매년 360조 원의 돈을 찍어서 각 가정에 지급하는 방법은 어떨까? 사실상 양적완화인데, 현재 본원통화량은 151조 원이다. 이 방법으로는 매년 본원통화량의 두 배 이상의 돈을 찍어내야 한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물론이고 외환위기가 몰아닥칠 위험은 필수적으로 감내해야 할 판이다.

한 가지 정책으로 360조 원을 조달하는 것은 부담이 크니 이 정책들을 섞어 부담을 줄여 보자. 임금으로 120조, 세금 120조, 한국은행 통화발행 120조씩 섞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도 불가능하다. (시장) 가치가 추가되지 않은 임금과 신규통화 발행은 어떤 형태로든 물가에 똑같은 (혹은 누적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나마 세금은 소득 이전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지만 부담을 1/3로 줄인다 하더라도 현재 국세총액의 50% 가까이를 인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사노동의 정도가 비슷한 가정끼리 가사노동을 교환하고 상호지불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소득과 지출이 동시에 늘어나 GDP 규모를 키울 수 있지만, 소득수준이나 가사노동의 현실(무급노동)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장부상으로만 수입과 지출이 커진 셈인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이처럼 자본주의 생산시스템 내에서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실제로 보장 받을 길이 없다. 혹자는 가사노동의 대가로 기본소득을 얘기하는데 위와 똑같은 문제에 빠진다. 노동자 임금에서 재생산 비용(가사노동 비용)을 모두 보전하면 자본 축적이 중단되거나 자본주의 생산을 지속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든 신흥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가리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과 여성의 위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자본주의는 이처럼 가사노동을 체계적으로 착취하면서 유지되는 사회다.

“임금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라는 정의는 일부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임금이 노동력 재생산의 모든 비용을 포함한다면 누구도 무급 가사노동을 하지 않고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누군가, 특히 가부장제에서는 대부분 여성이 무급의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노동력이 재생산된다. 이는 1인 가구라도 마찬가지다. 임금으로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된 임금재의 일부만 구매 가능할 뿐 나머지는 모두 무급의 자가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또는 그런 무급 노동을 조건으로만 임금 수준이 결정된다.

GDP 계산논쟁과 가치법칙

가사노동의 가치 문제는 사회에서 생산된 가치란 무엇이며 어떻게 평가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 점에서 가사노동의 가치는 GDP 계산논쟁의 한 축이다. 국내총생산을 의미하는 GDP는 성장의 지표로 쓰인다. 1년간 국내에서 생산된 최종 생산물의 시장 가격 총액으로 표현되는 GDP는 이론적으로 그 해에 새로 생산된 모든 가치(부가가치)를 대상으로 한다.

GDP의 한계는 수십 년간 논쟁거리였다. 가령, 환경이 오염되거나 범죄가 더 많이 발생수록 이에 대한 생산과 소비활동이 더 촉진되기 때문에 GDP가 오른다. 이 때문에 GDP가 성장과 후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기술 혁신과 관련해서도 혁신적인 기술 도입으로 소비자의 편익이 증가했는데, 기술 혁신으로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GDP가 줄어드는 역설이 발생한다고 주장해 왔다. 가사노동의 가치가 GDP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유사한 비판이 존재했다.

이런 한계 때문에 GDP는 조금씩 바뀌어왔고 또 바뀌고 있고 점점 더 복잡해져 알 수 없는 수식으로 계산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GDP의 근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GDP를 대체하는 수많은 지표가 개발되기도 했지만 성장과 생산된 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GDP를 능가하는 다른 방법을 찾지도 못했다. GDP가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하는 지와는 별개로 GDP의 개념 때문에 GDP는 자본주의 생산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해 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생산의 모순과 혼란도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 GDP 추계를 내는 데는 시장 영역뿐 아니라 비시장 영역 일부도 포함한다. 실제 거래를 하지 않았어도 ‘했다 치고’ 계산하는 대상도 있다. 일반적인 자가 생산-자가 소비는 GDP에 들어가지 않지만, 팔려고 생산한 것 중 일부를 자기가 소비한 부분은 ‘자기가 돈 내고 소비했다 치고’ GDP에 넣는다. 대표적으로 귀속임대료, 즉 집주인이 자기 집에 살면서 자기에게 임대료를 지불했다고 보고 이를 추정해서 계산해 넣는다. 또 농부가 팔기 위해 배추를 심었는데 대부분 팔고 나머지는 자기가 소비한 경우도 GDP에 계산한다. 모두 일단 생산했기 때문이며 GDP의 애초 목적이 한 해 동안 생산된 생산물의 가치를 측정한다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시장 영역의 일부를 포함하는 이 같은 국민계정 추계 방식은 주로 재화 생산의 자가 소비에만 한정돼 있고 서비스의 경우 주거(귀속임대료)만 포함한다. 이를 서비스 일반으로 확대하면 다양한 GDP 산출도 가능하다. 가령 앞선 예와 같이, 각자 지금처럼 자신의 가사노동을 하지만, 가사노동의 조건이 유사한 가정끼리 서로 대가를 지불하고 가사노동을 해준 것으로 칠 수 있다.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면 모든 가정의 가사노동을 (자가 노동으로 했지만) 서로 ‘교환(지불)했다 치고’ GDP에 넣을 수 있다. 가사노동을 쌍방이 교환하고 서로 돈을 주고받은 셈인데, 명목 소득과 지출은 동시에 늘어나서 소득 수준도 전혀 변하지 않고 현실도 변하는 게 없다. 이렇게 ‘했다 치는’ 방식으로 계산하면 현재의 GDP는 거의 무한대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처럼 GDP는 시장가치를 빼놓고는 사실 의미가 없다. 귀속임대료나 농부의 자가소비 같은 부분도 GDP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 그리고 위의 방식대로 해도 시장가치가 없는 부분(자가 노동)의 증가는 실제 성장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장부상의 크기만 키울 뿐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생산의 중요한 진실이 놓여 있다. 시장가치를 갖고 거래돼야 성장(확대재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같은 노동이라 하더라도 시장 가치를 갖는 노동생산물은 반드시 이윤(잉여가치)을 포함해야 교환된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생산조건에서) 남는 것(이윤)이 없을 때는 거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가치법칙’이라고 불렀다. 이윤(잉여가치)을 포함한 시장 가격을 갖고 교환되는 상품만이 자본 축적과 성장에 기여한다.

기부, 자원봉사, 자가노동 등은 자본 축적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래서 가치법칙 밖에 있는 노동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가치’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자가 노동이라 하더라도 자본이 가치법칙 내부로 편입시키는 방식(기술혁신!)에 따라 가치 있는 노동이 된다. 가령, SNS에 글을 쓰고,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것은 자가 노동의 형태이지만 SNS 기업들은 이를 광고와 교환하거나 사용자의 생산물을 직접 팔아 돈을 번다. 또는 이를 확장해 시장을 형성한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은 애초에 일기장에 글을 쓰고 기록해 두는 것과 같이 자가 노동으로 시작했지만 시장 교환을 가능하게 만들어 크리에이터가 생겨나고 전문 프로덕션까지 성업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 변화와 수용자의 환경 변화에 따라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만을 갖는 자가 노동이 자본에 의해(!) 시장 가치를 형성하고 자본 축적과 성장에 기여한다.

가사 노동이든, 자원봉사든, 다른 자가 노동이든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만 갖는 사회적 필요노동은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윤(잉여가치)을 갖거나 이윤을 갖게 될 노동 생산물만이 가치를 갖고 성장에 연결되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이자 한계다. 똑같은 노동이 어떤 것은 단순한 자가노동이 되고, 어떤 것은 교환가치를 갖는 노동 생산물이 된다면 둘 사이의 갈등은 점점 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노동 가치가 점점 더 추락하는 상황에서 가사 노동처럼 가치로 인정되지 않는 사회적 필요노동은 생산관계와의 모순으로 인해 더 무겁게 체제와 충돌하고 있다. <워커스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