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흑자국, 국민의 비애

[워커스] 99%의 경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청와대가 적자국채발행을 압박했다고 폭로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시끌벅적했다. 2017년 말에 세수가 15조 원이나 초과할 것으로 예상됐는데도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와 겹치는 2017년도 국가부채 비율을 덜(!) 낮추기 위해 추가로 적자국채 발행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행복한 고민이다. 정부가 남는 세금으로 돈을 쓸지, 국채를 발행해서 쓸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지난 호에서 정부의 흑자재정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재정 흑자는 문재인 정부 때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 재정수지는 2008년 세계대공황의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도를 제외하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적자인 적이 없었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산유국이자 에너지 산업이 모두 국영인 노르웨이를 제외하고는 유일하다. 지난 20여 년간 2003년과 2009년을 제외하고 매년 정부 예산이 남았다.(1)


외국과의 수출입을 대표하는 경상수지도 마찬가지다. 96~97년 외환위기 이후 1998년부터 현재까지 줄곧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수입보다 수출이 많아서 국내에 돈이 남았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2010년 이후 한국은 노르웨이와 함께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모두 흑자인 유이한 나라다. 2016년 이후 최근 3년간 쌍둥이 흑자를 이어오는 나라도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노르웨이, 한국뿐이다. 한국은 손꼽히는 쌍둥이 흑자국이다.



뿐만 아니라 신재민 논란에서처럼 국가부채를 의도적으로 올리기 위해 추가 국채를 발행해도 큰 영향이 없을 정도로 (이걸 정무적 판단 영역으로 둘 수 있을 만큼) 국가부채 수준도 낮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국가부채 비율을 보면, 2017년 말 기준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42.5%, 공공부문 부채 비율은 60.4%를 기록했다. 미국 135.7%나 일본 233.2%는 물론, 스웨덴 55.5%보다도 좋다.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9개국 가운데 8번째로 낮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성장 동력이 꺼지고 있는데, 중국만 바라보지 말고 쌍둥이 흑자국인 독일, 네덜란드, 한국 같은 재정 여력이 충분한 국가에 돈을 더 풀어 세계 경기를 살리라는 주문까지 나오고 있다.(2)

경제 상황, 지금이 최고

재정 흑자에 무역도 흑자인데 체감 경기는 좋지 않다. 특히 고용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좋지 않다. 통계청이 지난 1월 9일 발표한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8년 취업자는 2682만2000명으로 전년대비 9만7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9년 8만7000명 감소 이후 9년 만에 최저치였다. 쌍둥이 흑자국에 사는 국민들은 힘들기 그지없다.


정부가 그렇게 목소리 높여 소득주도 성장을 외쳤는데도 소득은 늘지 않았다. 지난해 3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368만3000원으로 전년동분기 367만4000원보다 9000원(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4만7000원(-1.3%) 감소했다. 처분가능소득의 축소에는 눈덩이보다 더 커진 가계부채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처분가능소득이 축소한 주된 이유가 세금이나 은행이자와 같이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소비지출도 크게 증가했기 때문인데, 이자비용만 30% 넘게 증가했다. 대부분의 가계와 자영업자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다.


한 가지 확인하고 가야할 사실은 한국 경제에서 지금과 같은 장기간의 쌍둥이 흑자는 계속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결국 고용과 체감 경기는 경제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이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더 둔화되고 1~2년 내에 겸기침체(recession)가 올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 속에 재벌주도 수출에 의존해 있는 한국경제의 침체는 더 크고 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고용은 지금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여러 업종에서 구조조정과 산업전환이 일어나면서 고용상황이 악화할 것은 자명하다. 자영업이 실업인구의 일부분을 흡수했지만 지금은 그 마저도 과잉상태에 들어가 자영업 구조조정을 거치고 있다. 가계소득도 경제 악화에 따라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거나 (비소비지출이 늘어 가처분소득이 줄고), 구조조정과 경기 침체로 실업이나 임금하락을 겪고, 주택 가격 폭락에 따른 가계 파산 등으로 삶의 고통과 함께 축소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 경기가 회복하더라도 고용은 잘해야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훨씬 밑돌게 될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력의 기계대체가 더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이를 통해 자본이 이윤율을 회복하면서 다시 경기순환을 재개한다는 점을 확인한다면, 현재의 경제구조 아래에서 고용 문제는 사실상 답이 없는 상태에 빠져들었다.

재벌만 살아남아

지금과 같은 과잉부채 상황에서 소득주도로 빚을 일부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장할 수는 없다. 혁신성장이라고 말하는 4차 산업혁명, AI, 전기차, 드론, 바이오, 빅데이터 등으로 일어날 광범위한 산업전환이 지금의 제조업 구조를 어떻게 바꾸든 일자리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는 현재의 중간층 일자리를 공략해 임금 구조를 양극화하고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를 더 확대시키고 있어 임금수준도 낮아질 전망이다.(3)

또한, 이대로라면 재벌 독점 구조가 더 강화되면 강화됐지 약화할 수는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8.39%로, 1년 전보다 0.51%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재벌 중심의 100대 상장사의 영업이익률은 2015년 8.18%, 2016년 8.43%, 2017년 8.91%, 2018년 9.27%(예상)로 계속 오르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4.13%로 1년 전보다 2.48%포인트 하락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역시 재벌 대기업이거나 재벌이 될 기업이다. 4차 산업혁명, 혁신성장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희망 섞인 외침이 퍼지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재벌기업들이다. 설사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처럼 한두 개 스타트업이 성공한다할지라도 재벌 대기업이 이들을 흡수한다. 그렇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남더라도 그 기업이 시장을 다시 독점한다. 독점은 또 다른 독점으로 재편될 뿐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수익성만 쫓는 재벌 사기업들은 더 이상 고용을 확대하지도 못하고 자사주 소각과 같은 대주주들의 돈 잔치를 벌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 기재부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재정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수출의 고용유발 효과는 2014년 기준 10억 원당 8.1명으로 소비(내수)의 고용유발 효과 15.2명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300인 이상 기업의 고용비중은 19%로 OECD 평균(4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터닝 포인트, 2019년

세계경제는 침체로 가고 있고 경기둔화가 명확해 보인다. 그나마 쌍둥이 흑자가 가능한 건 올 해 뿐이다. 남아도는 재정,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여유 자금을 일회성 경기부양이나 토건사업에 몰아넣기 보다는 경제의 체질과 구조를 바꾸는 데 사용해야 한다. 국가재정법과 국회에서 정치적 논의의 한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의지 등 재정 집행의 기조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이를 바꿔 낼 수 있다. 1년 안에 정책 기조를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전환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워커스 51호]

[각주]
(1)
https://data.oecd.org/gga/general-government-deficit.htm#indicator-chart
(2)
https://www.cfr.org/blog/time-china-germany-netherlands-and-korea-step
(3)
https://www.aeaweb.org/webcasts/2019/aea-ely-lecture-work-of-the-p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