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앞당긴 경제법칙 ‘사망선고’

[요즘 경제]


누가 경제를 제일 잘 아는가? 혹시 알파고?

저명한 노벨물리학자가 과기부 장관을 하겠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자연법칙을 연구하는 일과 국가행정이 다르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벨경제학자를 경제부총리에 앉히려고 하면 사람들은 뭔가 기대를 한다. 경제 전문가의 처방이 경제를 잘 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경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고, 경제에 무능한 정치인들이 탁상행정을 하고 있으니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십 여 년 전엔 전문경영인 CEO 출신이 대통령을 하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 것이라 생각도 했다. 그 결과는 정말 참담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저명한 경제학자의 처방이 효과를 보려면 지금 상태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법칙에 반하는 상황이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교과서에 따른 처방이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제, 경제, 경제”만을 외치면서 살아왔던 지난 십 수 년은 모두 경제법칙에 어긋한 세상이었다는 말이 된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았던 세상은 항상 경제법칙에서 어긋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제교과서에 쓰인 경제법칙이라는 게 정말 만고불변의 법칙이라면, 모든 경제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취합하는 AI 알파고에게 경제정책을 맡기는 게 가장 현명하고 빠른 길이 아닐까? 경제학의 모든 원리를 섭렵한 알파고가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을 인지하여 최적의 대안을 매일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4년 전 알파고에 비해 지금은 몇 십 배나 성능이 향상되었을 테니 AI가 내놓는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는 정말 무한할 것이다.


경제법칙이 아닌 경제이념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린 너무 뻔히 알고 있다. 왜 그럴까? 알파고의 능력이 아직 기대치에 못 미쳐서? 아니면 자리보전하려는 경제학자들의 로비 때문에? 알파고의 성능이 아직 떨어진다면 기다리면 될 문제이고, 로비 때문이라면 이세돌처럼 알파고와 대결해 이기는 경제학자들만 골라 자리를 주게끔 바꾸면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뭔가 이렇게 해선 해결이 잘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세계에선 그로 인한 갈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금리를 올릴 것인가 내릴 것인가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금리를 올리면 예금 생활자들은 기뻐하겠지만, 대출금이 많은 자영업자들에겐 치명적이다. 이처럼 경제정책으로 정해야 하는 사안들, 즉 재정, 세금, 보조금 등은 모두 이해관계가 걸려있다. 당사자들의 갈등을 조율하지 않고선 경제정책을 설계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세계가 모두 갈등관계의 연속인데, 아무리 알파고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이를 계산해 모두가 만족하는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선 힘으로 누르거나 약간의 당근책을 던지면서 타협을 강요한다. 노동정책에서 벌어지는 경제 갈등이 가장 두드러지는 대표적 예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임금체계 등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말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도 모두를 만족하는 해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에선 ‘합리적’ 인간이라는 이상적 경제주체를 가정해 계산한다. 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합리적’ 인간은 선택의 방향이 정해져 있고, 그렇게 간주될 때, 경제가 균형 상태에 도달해 최적의 값이 나온다고 계산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쉽게 계산되지 않는다. 이로 인한 갈등과 충돌은 계속 벌어진다. 그래서 또 경제교과서는 이런 경제법칙에 반하는 비합리적 요소들은 제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구조개혁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말이 그럴싸한 개혁이지, 사실은 어떤 계층과 집단의 희생을 강조하는 것이고, 전체를 위해 부분을 희생시켜야 하는 논리와 결합해 포장된다. 이쯤 되면 사실상 ‘법칙’이라는 말을 붙이기 힘든 영역에 오게 된다. 여기서 경제학자들은 뒤로 빠지고, 이제 힘 좀 쓰는 선수들이 등장해 상황을 정리한다. 어찌 보면 정치인들이 이런 하수인 역할을 하는 ‘양아치’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특정 이익을 수호하는 정치인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경제학자들을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뭐든 간에, 분명한 점은 경제법칙이라는 것은 사실상 경제이념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국가부채를 둘러싼 경제이념의 ‘사망선고’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법칙이든 이념이든 잘 살게 해주면 그만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누굴 잘 살게 해줄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며, 더구나 대다수는 못살고 소수만 잘살게 된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긴급처방책으로 구제책과 부양책들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소강상태에 접어드니 또 다시 ‘고장 난 라디오 소리’가 들려온다. 폭증하는 국가부채 때문에 국가경제의 환란이 올 수 있다고 말이다. 일간지 경제면에 등장하는 이들의 레퍼토리는 기사 첫줄만 봐도 무슨 말을 할지 뻔하다. ‘시장자율’, ‘민간투자 활성’, ‘국가개입 최소’, ‘균형재정’ 등의 키워드를 조합한 내용들이다. 여기에 이름 있는 경제학 교수의 멘트를 몇 개 따서 갖다 붙이고, 폭증하는 국가부채 그래픽을 크게 뽑아 달아준다.

경제교과서에 등장하는 ‘공공부채가 경제성장의 장애물’이라는 (법칙이 아닌) 이념은 GDP 90%라는 국가부채 상한선 기준을 만들어냈었다. 그러나 한 대학원생의 검산결과 이것이 허술한 데이터를 임의로 조합한 계산 오류임이 폭로되면서 국제적 망신을 샀다. 고정불변하고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국가부채 한계선은 있을 수 없음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밝혀졌음에도, 이 이념은 끈질기게 우리를 들들 볶는다.

지금은 국채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는 세상이다. 일본 국가부채가 GDP 200%를 넘어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만, 일본중앙은행이 국채를 절반 넘게 가지고 있다. 중앙은행이 행정부에 빚을 갚으라고 독촉할리 만무하다. 사실상 부채비율은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경제 강국 일본이니까 예외라고? 그러면 이탈리아는 어떨까? 이탈리아는 올해 경제가 마이너스(-)10.6%, 국가부채 비율은 연말 16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 4월엔 신용평가사로부터 국채등급이 'BBB-'로 강등했다. 이 등급은 투기등급보다 한 단계 위에 불과하다. (참고로 우리는 AA로서 영국이나 일본보다 높다.) 이탈리아의 이런 수치를 보면 곧 망할 것만 같다. 그런데 지난 10월 이탈리아는 3년 만기 국채를 제로금리에 발행했다. 그 이유는 코로나 부양책으로 EU가 이탈리아에 대한 지원책에 합의했고, 유럽중앙은행이 채권시장에 전격적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팬데믹 한복판에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경제정책이 절실한 이때, 중앙은행의 개입을 과연 누가 비난할 것인가? 심지어 얼마 전 IMF는 중앙은행의 무한발권력으로 국가재정을 보조하는 것을 중요한 경제처방으로 제시했다. 돈이 필요하면 찍으면 된다. 설령 돈 찍는 게 어떤 문제가 될지라도, 지금은 돈 찍어서 망하는 것 보다, 코로나 사태를 방치해서 망하는 것이 더 빠른 상황이다. 올 가을부터 시작된 2차 대유행은 세계경제를 다시 침체에 빠트릴 것이다. 중요한 건 현재 다수를 살리기 위해 어떤 경제정책을 취할 것인가이다. 신용평가사들의 등급평가 숫자놀음에 인류의 미래를 맡겨선 안 된다. 더구나 우리는 국가부채가 GDP 40%대를 유지하고 있으니, 국가부채 비율을 따지는 보수언론의 경제위기 타령은 더욱 관계없는 이야기다. 그저 나라 곳간을 자기 곳간으로 생각하는 특정 이익 세력의 대변일 뿐이다. 신용평가사들의 말 한마디에 사시나무 떨 듯 호들갑 떨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20년도 넘은 97년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통하지 않는 경제법칙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로 의문시되던 경제법칙의 ‘사망선고’가 앞당겨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국가부채 이외에도 기업과 가계의 돈의 흐름에서 교과서와 반대되는 현상이 일상화됐다. 교과서엔 ‘기업이 가계의 저축한 돈을 빌린다’고 돼 있지만, 이젠 기업이 가계보다 더 많은 돈을 굴리고 있다. 90년대부터 시작된 이 흐름은 최근 더욱 가팔라졌고, 차곡차곡 기업에 쌓여만 가는 금융자산은 대부분의 글로벌 대기업들을 엄청난 금융업자로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가계는 돈을 빌리는 최대 주체가 됐고, 대부분의 은행들은 개인대출상품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원래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저금리정책을 추진한 건데, 정작 기업들은 값싸게 빌린 돈으로 투자보다는 자사주를 매입해 자신의 주가를 부양하는 데 활용한다.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이 오른다’는 경제법칙도 폐기해야 할 유산이다. 공식적인 실업률 통계는 낮은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자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임금이 뒤따라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지 모르니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정작 임금은 오를 기미조차 없다. 임금노동자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임시적인 노동형태가 많아지고, 법정최저임금이 곧 적정임금이 돼버린 계층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워킹푸어 같은 말이 우리사회에 회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젠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위기에 몰린 계층들은 이마저도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됐다. 폐기돼야 할 경제법칙을 들먹이며 인플레이션 타령을 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경제법칙들을 오래 전부터 경험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폐기돼야 했지만 이념으로 변질돼 버린 이 법칙들은 유령처럼 우리를 배회하고 우리의 생각을 지배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쓸데없는 경제법칙과 경제이념 사로잡혀 모든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굵직한 국가정책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다. 대안적인 경제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요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하나의 흐름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는 이런 요구들을 더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경제문제엔 항상 계층 간 갈등 요소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AI 알파고에게, 또는 전문가에게 맡길 수만은 없다. 이들의 결과물에 우리의 삶이 또 다시 지배당할 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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