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민의 주택사회화 운동이 대장동에 던지는 질문

[이슈①] 주택몰수 주식회사: Deutsche Wohnen & Co. enteignen


거주를 위해 필요한 주택. 주택은 공공재인가?

주택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하루의 쉼과 내일의 충전을 위한 안락한 거주공간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필수재가 투기나 재산증식의 목적으로 전도되면, 무산자들은 실질임금(소득) 하락이라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대다수의 시민은 임대료와 대출금 상환에서 무거운 짐을 떠안는다. 최근 가파르게 상승한 한국의 주택가격과 대장동 사건 등은 주택이 지닌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택개발과정에서 공공기관인 LH공사가 벌였던 불법 및 편법행위와,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쟁투 과정, 그리고 공공주택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시장과의 타협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에서 부동산에 대한 사적 소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됐다. 그런데 정말 부동산의 사적 소유와 극도의 이윤 창출은 이토록 당연하기만 한 것일까?

베를린 시민들은 주택의 사적 소유와 이윤 창출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민간기업 소유의 주택을 몰수하는 운동을 벌였고, 성과를 보기 시작했다.

헐값으로 팔아넘긴 공공주택, 높은 임대료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다

베를린 시민의 80% 이상은 주택을 매매하지 않고 임대료를 지불하며 거주해왔다. 그런데 21세기 초 슈뢰더 총리 시절, 경제 위기를 내세워 사민당과 녹생당이 합작해 당시 공공주택이던 베를린의 건물들을 도이체 보낸(Deutsche Wohnen)과 포노비아(Vonovia)라는 민간 부동산 기업에 헐값으로 매각했다. 이후 사유화된 주택들의 임대료가 상승했다. 더불어 유럽 내 다수의 부동산 기업이 베를린 주택시장으로 몰려들며 유입인구가 증가했다. 그 결과, 주택난은 심화했고, 임대료는 약 40% 수준까지 가파르게 치솟았다.

도이체 보낸과 포노비아(1)는 독일에서 가장 큰 민간 부동산 그룹이다. 특히 도이체 보낸은 수도에서 가장 큰 민간주택 소유주로 15만5000채 이상의 주택 중 11만4500채가 베를린 시내에 있다. 이들은 베를린시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소유한 집주인으로서 슈뢰더 총리 이후 줄곧 임대료 최대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베를린 세입자연합회인 Kotti & Co는 2016년부터 “우리는 우리의 집을 되찾고 싶다”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부동산 콘체른이 소유한 주택의 몰수 요청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베를린의 비정상적인 주거비 폭등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시민의 관심과 연대가 구체화됐다.

주택몰수 주식회사: Deutsche Wohnen & Co.enteignen

  DWE에서 국민투표를 앞두고 베를린 시민을 상대로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제작된 캠페인 포스터 [출처: DWE홈페이지]

이 시민운동은 베를린시에서 가장 거대한 집주인인 도이체 보낸을 앞세운다. 그리고 뒤에는 몰수주식회사가 뒤따른다. 그래서 ‘Deutsche Wohnen & Co. enteignen’(DWE)는 사유화된 거주공간에 대한 사회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DWE 운동에 따르면, 부동산 회사들은 임대료 인상으로 베를린에서 너무 큰 이익을 얻었다. 이들 소유의 주택을 사회화하면 약 24만 채 이상 주택의 임대료를 깎을 수 있고, 이는 다른 주택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민간 부동산 회사의 소유구조에서는 불가능한 영구적인 낮은 임대료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투표(Volksentschid)를 추진했다. 국민투표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24만 채 이상의 주택을 공동 소유권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된다.

국민투표는 세 단계로 추진됐다. 첫 번째는 국민투표 발의 도입단계로, 2018년 10월에 DWE의 결의안을 베를린시 상원 내무부와 스포츠부에 제출했다. 두 번째는 국민투표 발의 단계로, 2019년 3월에 베를린 상원에서 공식 비용추정치를 발표했다. 국민투표 개시를 위해 6개월 동안 2만 명의 유효한 서명이 필요했는데, 2019년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동안 무려 7만7000명의 서명을 모았다. 하지만 베를린 상원이 이 발의안을 1년 넘게 차단하면서 거대한 대중적 저항이 일었고, 결국 지난해 9월 국민투표가 법적으로 허용됐다.

당시 베를린 하원은 국민투표 처리에 4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적-적-녹(사민당-좌파당-녹색당)’ 연합정부는 DWE가 요구한 사회화법을 통과시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DWE는 국민투표를 위한 두 번째 서명에 돌입해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35만 명 이상의 서명을 확보했다. 이는 4개월 동안 필요한 17만5000명 이상의 동의를 달성한 것이었다. 국민투표에 대한 베를린 시민의 관심은 지대했고, 두 단계에 걸친 서명은 성공적이었다. 그 결과 올해 9월 26일 국민투표의 마지막 세 번째 단계가 실시됐다. 국민투표는 유권자의 과반수가 투표해 25% 이상이 동의하면 승인되는 것이었다.

민간기업 소유의 주택몰수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는 2018년 4월에 시작해 2021년 9월 26일에 성사됐다. ‘몰수’라는 반시장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용어로 시민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를 위해 DWE운동은 베를린 전역에 구역별 팀을 조성해 서명을 수집했고, 도시 곳곳에서 투표 캠페인을 벌였다.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연락할 수 있도록 카페, 상점, 클럽 등에서 이 운동에 대한 질문과 지원이 가능하도록 조직했다. 풀뿌리 운동인 DWE는 매월 두 번째 화요일에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함께 결정을 내렸는데, 이 총회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였다. 그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 원리를 적용해 실현한 것이다.

찬성 56.4%로 주택의 사회화 근거 마련

국민투표는 지난 9월 26일 독일 연방하원 및 베를린 하원 선거와 동시에 실시됐다. 베를린 헌법에 따르면 유권자의 최소 4분의 1(약 61만3000명)이 국민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국민투표는 유의미하게 성사됐고, 찬성 56.4%, 반대 39%로 만 명이 넘는 베를린 시민이 찬성했다.

  민간주식회사 소유주택 몰수에 대한 국민투표 추진과정
1. 국민투표 발의안 도입단계 2. 국민투표 발의 3. 국민투표 [출처: DWE홈페이지]

이 투표는 ‘의사결정 국민투표’(Beschlussvolksentscheid) 의 성격을 가진다. 이로써 베를린 상원은 독일기본법 (Grundgesetz) 제15조에 따라, 사회화를 목적으로 부동산과 토지를 공동 소유로 이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해야만 한다. 기본법 15조는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이 사회화를 목적으로 보상의 종류와 범위를 규정한 법률에 근거해서 공유화 또는 기타 유형으로 공동경제화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베를린 헌법 28조 1항에서도 “모든 사람은 안락한 주거공간에 대한 권리가 있다. 주(정부)는 주거용 부동산의 형성과 같이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안락한 주거공간의 조성과 유지를 지원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 연방과 주 헌법에서 사회화를 목적으로 한 보상과 몰수의 법적 근거와 주거권의 책임이 명시돼 있다. 다만 이제까지 사회화를 위한 몰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상에 대한 사회적 쟁점이 첨예하다.

베를린 상원은 해당 주택을 사회화할 경우, 운영비용이 연간 1억~3억4000유로 이상 초과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와 함께 DWE의 요구대로 임대료를 인하할 경우, 지속적인 손실과 시 예산에 부담을 줄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반면 DWE는 이 보상이 ‘시장가치보다 훨씬 낮은’ 수준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은 24만 채의 몰수 비용으로 80억 유로를 추산했고, 좌파당은 다른 계산 모델을 사용해 145억~228억 유로의 보상금을 제시했다.

DWE 운동의 목표와 정의로운 임대료 모델

DWE 운동의 목표는 베를린에서 주택 3,000채 이상을 소유한 민간 기업 및 부동산 회사의 주택을 사회화하는 것에 있다. 3,000채 이상의 기업이 기준이 된 이유는, 이들이 주택이 부족한 세입자 중심의 도시에서 평균 이상의 수익을 달성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입자를 보호해왔던 임대료지수와 임대료 상한선을 무력화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고, 이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지배력을 더욱 강력하게 행사해왔다. 특히 도이체 보낸과 포노비아는 공격적인 임대료 인상 전략을 추구해왔다. 이것이 주주들에게 약속한 배당금을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은 도이체 보낸, 포노비아 이외에도 스웨덴회사인 Akelius, 프랑스 회사인 Covivio, 함부르크의 TAG부동산, 룩셈부르크에 기반을 둔 Grand City Properties와 Adler Group 등이다.


주택 몰수 이후 세입자들은 공법에 따라 인하된 임대료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DWE 운동은 ‘정의로운 임대료 모델’(Faire-Mieten-Modell)을 제시한다. 보상액의 기준은 사회화된 주택에서 창출될 임대 소득에 따라 계산된다. 이 모델은 저렴한 생활공간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를 기반으로 빈곤선에 있는 사람들도 감당할 수 있는 임대료 수준을 제안한다. 구체적으로 평방미터당 4.04유로(100㎡는 대략 30평으로 404유로, 한화로 약 55만 원 수준)로, 이에 따르면 보상액의 규모는 100~110억 유로 수준으로 추산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적정 임대료 수준을 소득의 30%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미래 임대료 인상의 기대치와 성과를 보상액에 적용하지 않는 것을 정의로 보고 있다.

이 모델이 기준이 되면 몰수를 위한 비용의 예산 중립이 가능하다.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근거로 공적 기구는 대출이나 채권 등을 통해 보상액을 조달할 수 있다. 이는 베를린시 예산에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기 때문에 다른 비용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몰수 주택이 많아질수록 소득이 높아지고, 보상 금액이 높아지더라도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부채가 모두 상환된 후에는 임대 수입으로 더 많은 건물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국민투표 이후, 그리고 계속될 시민들의 운동

역설적이게도 국민투표 성사 후 독일의 최대 주택회사인 포노비아의 주식은 4% 이상 상승했고, 프랑크푸르트 증권 거래소의 주요 지수인 DAX에서도 가장 큰 승자가 됐다. 왜냐하면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사민당의 기페이(F. Giffey)가 국민투표 발의안의 반대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거를 앞두고 “주택회사의 몰수로 문제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어려운 시그널을 가져오는 것이며, 몰수가 진행되는 신호를 보내는 도시에서 살고 싶지 않다”(2)라고 까지 밝혔다.


그리고 지난 10월 16일, DWE는 베를린시 연립정당에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하라고 요청했다. 10월 19일에는 새롭게 구성될 베를린 연립정부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했다.

・사회화 여부에 대한 법적 검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어떻게’에 대한 구체적 단계로 나아가야 함.
・목표는 사회화에 관한 법률 마련에 있음.
・이 목표는 차기 (베를린시) 연립정부합의서에 명시되어야 함.
・시간일정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제공되어야 함.
・DWE 운동은 법률 초안 작성에 참여해야 함.
・내용은 합의된 결정에 기초함.
・논의의 근거는 사회화법률이 되어야 함.
(3)

베를린 시민의 주택몰수 국민투표가 성공하면서, 차기 베를린 시 정부는 사회화의 구체적인 실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를 구성하는 주요 인사들의 시선이 시장을 향해있어 민의가 그대로 실현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낡고 오래돼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았던 ‘몰수’, ‘사회화’, ‘소유의 공유’와 같은 요구들이 임대료에 지친 시민의 일상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각자도생만이 강요되는 시대에서도 주택의 사회화가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던져준 베를린 시민에게 뜨거운 감사와 연대를 보낸다.

(1)
포노비아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에서 약 41만4000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이중 독일에만 34만5000채를 보유하고 있다.
(https://www.tagesschau.de/wirtschaft/unternehmen/vonovia-deutsche-wohnen-uebernahme-101.html)
(2)
https://www.tagesschau.de/wirtschaft/unternehmen/deutsche-wohnen-enteignen-vonovia-deutsche-wohnen-giffey-101.html
(3)
https://www.dwenteignen.de/2021/10/dwe-kritisiert-verschleppung-des-volksentscheids-im-sondierungspapier-von-r-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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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셋째, 노자는 사물이 끝까지 발전하면 원래 있는 상황을 바꿔 그것의 반대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인식한다. 이것이 소위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돌아간다(물극필반物極必反)’는 것이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것이 도의 법칙이다. 도가 사물에 작용할 때 사물도 이 변화의 법칙에 따라 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