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과 ‘사회화’

[이슈②]


최악의 대선판

아마도 내년 대선까지 대장동 사태가 주야장천 논란이 될 것 같다. 배임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은 데다, 검‧경 수사에 대한 불신이 커져 정치적 공방만 격화될 것 같은 우려가 크다. 급변하는 세계적 흐름을 읽어내는 시대 인식과 비전 논쟁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시대 인식과 비전이 없어서 그런지, 대장동 이슈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가다 최악의 대선판이 될 것이라는 건 자명해 보인다.

지난 2012년과 2017년 두 번의 대선에서 제기됐던 화두들을 회상해보자. ‘경제민주화’, ‘자산소득 불평등’, ‘재벌해체’,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적폐 청산’ 등이다. 당시는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된 경제구조 속에서 대중의 삶을 짓누르던 불평등과 불안정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해소할지가 큰 화두였다. 하지만 당선된 두 대통령 모두 대중의 기대와는 달리 (변명에 가까운) 현실 논리를 운운하면서 기득권 정치 시스템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모두 지지율 40%라는 ‘콘크리트 팬덤 정치’에 갇혀 버렸다. 아마 지금 이대로라면 다음 대통령은 처음부터 40% 지지율 ‘정치’에 봉인돼 버릴 것 같다. 이럴 순 없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불행을 피하기 위해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대장동이 문제라면 여기서라도 사회적 아젠다를 잡아 시대 인식과 국가적 비전 논쟁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대장동이라는 공공재

공공기관을 동원해 사익을 추구하는 대장동 사태를 보며 대중이 느끼는 허탈감은 컸다. 이번엔 그 액수가 너무 크고, 수백억대 뇌물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대중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건, 민간수익을 좀 낮추고 뇌물만 빼면 아무 문제없다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든 투기든 대장동이라는 공공재를 사익추구의 원천으로 삼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흔히 부동산 개발 광고나 아파트 분양 광고에 등장하는 ‘역세권’이라는 표현도 교통망이라는 공공재를 사익추구의 도구로 활용하는 예이다. 주변의 공공편의 시설들을 아파트 건설사나 분양사가 만든 건 아니지 않는가? 그런 교통편의시설이 없는 경우 국가 재정으로 역세권을 함께 조성해주기도 한다. 이렇듯 부동산개발의 상당 부분은 공공재라는 땅과 교통망, 편의시설 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부동산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공장에서 만들어 창고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구매하는 그런 상품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집을 아무런 기반시설 없이 덩그러니 짓진 않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한정된 자산인 땅을 어떻게 활용해 사람의 주거권을 높이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할 것인가이다. 그래서 땅이라는 공공재를 관리해야 할 국가의 역할이 매우 크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주거 불안정 문제가 사회문제로 부상하는 것은, 이런 공공재를 관리해야 할 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사유화된 토지를 국가가 몰수하는 건 쉽지 않다. 체제가 급변하는 수준의 격변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국가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 특정한 법정조건을 만족하는 경우 국가가 토지를 적정하게 보상해 몰수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대장동처럼 신도시 개발과 재개발 사업은 벌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대장동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아마도 오래도록 대장동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일 것이다. 자신들의 삶을 터전을 가지고 특정인들이 수천억 원대 이익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보면, 마치 강탈당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면 이들에게 토지보상액수를 더 늘리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원주민에 대한 보상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 땅이라는 공공재로부터 발생하는 공공의 이익은 보상 액수로 환원될 수 없는 대상이다. 각종 기반시설 구축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와 인접 지역과의 상호작용은 누구의 이익으로 귀결될 수도 없고 구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도시개발은 국가기관의 인허가부터 관리‧감독, 사후 준공 승인까지 철저히 공적 영역에서 이뤄진다.

문제는 공공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특정 사익에 편중되거나, 이 과정에서 불법 로비와 뇌물이 만연했던 과거의 부동산 난개발 모습이 여전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장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 엘시티, 3기 신도시 등 대한민국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런 공공재의 개발 결과가 이익의 사유화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초과이익환수 등의 조치가 필요한 것이고, 더 나아가 국가자산으로 관리돼야 하는 것이다. 가령 국민임대주택의 비율을 높여 대장동 개발의 결과물을 상당수 국가자산으로 만들었다면 주거 안정 정책에 긴요하게 활용됐을 것이다. 반드시 주택을 소유해야만 정상적인 주거 형태로 인식하는 낡은 관점에서 벗어나, 국민임대의 비중을 지속해서 높이는 정책을 지금까지 취해왔다면 갭투자 방식의 가수요도 차단하고 서민주거안정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활성화’,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의 분리’ 등의 관념이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필연적으로 공적 요소와 결합할 수밖에 없는 토지주택개발의 결과물이 사익으로 귀결돼 왔다.


공공개발과 ‘사회화’

이제 장기적 방향을 바꿀 시점에 이르렀다. 한쪽에선 지역소멸을 걱정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인구 밀집과 집값 폭등을 걱정한다. 이런 국토발전의 불균형을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앞으로 예정된 3기 신도시 개발로 공급이 늘어나면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순 있으나, 그러면 다시 수도권으로 인구는 더욱 집중되고 10년 뒤 다시 4기 신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인구수가 정점을 찍고 내려온다고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수도권 인구는 지속해서 늘어날 것이고, 그것에 비례해 인구가 소멸하는 지역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것을 두고 시장적 거래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놔둘 것인가?

애초부터 시장적 거래를 통해 모든 균형을 달성할 수 있다는 가정은 잘못됐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가격안정이 지역 균형을 가져오지 않는다. 이것은 더 크고 장기적 관점의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계획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 15년 전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 균형 발전계획 속에 공공기관 이전이 추진됐었다. 그러나 대부분 서울의 강남을 모방한 아파트 신도시 개발만 남은 채, 특색 있는 지역 균형 발전은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을 가르듯, 지역 내에서 신도시와 구도시의 불균형한 모습을 낳았다. 지역의 균형 발전은 사람이 그곳에 살면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갈 때 서서히 이뤄지는 것이다. 공공기관만 옮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닌 것이다. 세종시 아파트 특별공급 사태처럼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린 공무원만 양산하고, 투기 세력의 놀이터만 제공한다면, 공공재를 사유화한 대장동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가 된다.

‘사회화’라는 말을 그 말대로 풀어서 이해하면 이렇다. “집합적 관계를 통해 나를 비롯한 타인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사회와 관계 맺는 것.” 땅이라는 공공재를 개발하고 유지 관리하는 모든 과정은 사회화의 과정과 매우 닮았다. 대장동부터 세종시까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3기 신도시에서 벌어질 공공재의 사유화 현상은 ‘부동산 사회화’ 정책을 통해 막아야 한다.

기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사회화’의 중단 없는 과정이었다. 금융위기 시 생산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국가재정이 동원됐다. 또한 심각한 부실이 생긴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여해 국유기업으로 만드는 사례도 흔히 벌어졌다. 그리고 많은 국가에서 핵심 기간산업들은 국가의 통제와 관리 속에 운영된다. 그리고 신산업정책의 부활 속에서 중요 핵심기간산업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개입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제 부동산 문제에서도 이런 적극적인 사회화 정책을 고려할 시점에 있다.

과거 20년 전 대선에서 ‘토지공개념’이 큰 화두였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20년 전보다도 못한 정치 공방만 벌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대장동이라는 오답 노트 속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우리는 그동안 왜 자꾸 틀린 답을 반복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오답 노트는 다음 기회에 오답을 정정하기 위한 기록이다. 일부러 오답을 반복하는 정치 세력에 대해선 그 숨은 의도를 의심하고 정치적 철퇴를 내려야 한다. 이번 대선이 그런 논쟁으로 가득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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