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전 논쟁과 신기술혁명의 명암, 국가책임일자리

[요즘 경제] ‘답정너’에 빠진 국가비전 논쟁

참으로 눈살 찌푸리는 무기력한 대선이었다. 후보 부인 이야기로 얼룩진 대선판에서 정책논쟁은 온데 간데 사리진 채 ‘어퍼컷’과 ‘송판 격파’라는 대선 예능이 대중에게 각인됐다. 아마 석 달 후 펼쳐질 지방선거에서 각 후보들은 서로 뒤질세라 각종 세리모니를 창작해 낼 듯하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착잡하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이렇게 분열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이번 정권은 자신의 취약한 지지기반을 어떻게 지탱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것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답정너’에 빠진 국가비전 논쟁

국가비전과 관련해 대선 토론에 꼭 나왔던 화두가 4차 산업혁명, 에너지전환, 디지털시대 등등이다. 신기술혁명에 기인한 이런 화두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화려함을 배경으로, 이 산업적 부를 거머쥐기 위해 불꽃 튀는 적자생존 식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것과, 여기서 파생되는 산업구조 재편의 명암을 이야기 한다. 대선 토론 논쟁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사실 지난 20년간 대선 때 마다 등장했던 국가비전전략의 화두는 큰 차이 없다. 녹색성장, 창조경제, 포용 성장 등등 표현은 달랐지만 그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신기술혁명과 산업전환에 기초하고 있다. 약간의 차이가 나는 부분은 이 과정에서 정부가 어디까지 역할을 할지 그 폭을 결정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런 기술혁명과 산업전환은 관료와 정당이 직접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성과가 나올 수 없는 장기적인 과제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비슷한 전문가 그룹의 추천을 받아 공약을 만든다. 그래서 박하게 말하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할 수 있는 판박이 공약이 쏟아지는 것이다. 다들 산업재편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언급하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을 다르게 포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답정너’라 할 수 있다. 국가적 지원에 포함된 소위 ‘민간중심’이니 ‘민관합동’이니 ‘반관반민’이니 하는 말속에는 산업부흥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되 언제나 주인공은 산업역군의 주체인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신기술혁명의 명암과 국가의 역할

문제는 그것이 집권 후 정책으로 구체화됐을 때다. 선거 때는 유권자들을 위해 ‘민’을 people(대중)이라고 포장하지만, 선거가 지나면 ‘민’의 주체는 기업만이 남는다. 가령 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처럼 부상했던 ‘3D 프린터’를 보자. 지난 박근혜 정부부터 창조경제의 대표산업으로 10년 가까이 얼마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가. 현재 53%의 학교에 약 2만7천여 개의 3D프린터가 보급돼 교육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3D 프린터’ 교육을 담당했던 일선 현장의 교사와 학생이 육종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3D 프린터 사용과정에서 파생되는 발암물질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마치 가습기 소독제 사태와 흡사하다.

이처럼 기술혁명의 명암을 동시에 인식하면서, 현실에서 누구도 들여다보거나 관심 두지 않았던 어두운 부분을 확인하고 사전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왜냐하면 이런 건 시장의 영역에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적 이익과 사람의 건강 문제가 충돌할 때, 이윤극대화 방식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을 국가는 이미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규제 완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이 논란이 되고 있는 비트코인을 봐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산업발전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이 투기적 거래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 역시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때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2030의 자산증식 통로’라는 주장에 정치인들이 한 숟가락씩 얻어서 표를 얻고자 했다. 지금 금리 인상 시기가 도래하면서 금융자산의 급등락이 반복되고 있는데, 가상화폐 시장은 말 그대로 투전판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가상화폐 활성화로 국가적 부가 증가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현재 가상화폐는 실생활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고, 차익거래에 따른 수익실현의 도구로만 기능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집이라면 임대로라도 누군가는 그 실물 가치를 누릴 수 있다. 빈 집을 그대로 두진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숫자로만 존재하는 가상화폐가 실물거래에 사용되지 못하면 말 그대로 컴퓨터 장부에만 기록된 가상의 숫자일 뿐이다. 그래도 이것이 가져온 기술 혁신은 대중의 기대를 만들어내고, 시장 영역에서 자산증식 기회를 가져다준다고 믿게 해준다. 그래서 전 세계 정부가 이 투기상품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하는 게 옳은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처럼 기술혁신의 명암이 사회적으로 확인되기 위해선 긴 과정과 고통이 동반된다. 그러므로 이에 대처하는 국가는 여기서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 긴 호흡으로 방향성을 짚어야 한다. 우리가 왜 선거를 통해 선출 권력을 만들겠는가. 인기에 영합해 표심에 숟가락 얻지 말고, 이런 것을 제대로 대비하라고 만드는 것이다. 가습기 사태처럼 피해자들의 고통이 크게 쌓일 때까지 오랜 기간 방치해놓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산업재편과 국가책임 일자리

한편 최근 국가비전 논쟁에서 일자리 문제에 대한 비판인식이 높아졌다. 그 이유는 과거처럼 산업부흥이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한다고 진단한다. 한국은 지난 20년 간 공장 자동화 비율은 매우 높아졌는데, 수출기업의 폭발적인 매출 증가와 달리 제조업의 고용은 전혀 늘지 않았다. 반면 꾸준하게 늘어난 일자리는 보건의료 및 사회서비스 영역이 유일하다. 이런 현상은 역대 정권을 가리지 않고 일관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 사회서비스 영역이 시장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저임금 구조의 불안정노동이 일상화된 3D 업종처럼 취급되고 있다. 일하는 사람도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모두 불만인 상태로 국가의 보조금 정책에 의존하는 산업이 돼버린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몰아닥친 코로나19 위기는 대면 필수 서비스노동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고 있다. 그동안 비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노동 현장의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고 있다. 국가비전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영역이다. 이미 대자본들은 IT 기술을 접목한 비대면 서비스 영역으로 이를 탈바꿈시키고 있다. 통신사 광고에는 독거노인의 말벗인 되어주는 로봇이 등장해 이들의 노후를 책임져준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프로그램 된 기계 소리가 아니라 사회복지 및 요양보호사의 따뜻한 손길이 먼저라는 것을. 분명 코로나19라는 같은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동안 국가가 제공한 일자리 정책에 대해 일시적(임시적) 고용의 한계, 저임금 고용의 한계, 민간 지원 중심 정책의 한계 등의 비판적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위기 탈출을 위한 임시적 고용정책 접근’ 개념에서 벗어나, 시장화 정책 폐기, 공공부문의 확대, 공공 중심의 고용구조 개편 등과 같은 ‘공공성 확장 전략’을 결합하는 것이다. 국가책임일자리의 영역은 기후 일자리, 공공의료 일자리, 민영화 부문의 재공영화, 돌봄 노동 국가책임 확대, 공적자금 투입 기간산업의 국유화, 안전 일자리 확대 등이 있을 수 있다. ‘국가책임일자리’가 그동안 산업부흥의 하위파트너로 격하되고 방치돼 온 노동의 영역을 중요한 사회화의 대상으로 끌어 올려 국가 비전의 논쟁의 장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재정통화정책의 근본적 변화, 사회노동 정책의 정의로운 전진, 사회화 및 재공영화 정책 확장 등의 의제들도 함께 확대되길 기대한다. 대선 이후에도 계속. 5년 후 또 다시 벼락치기 공부를 반복할 수 없기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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