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정치경제학

[우크라이나에 떨어진 별] 신흥공업국의 도전과 세계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분열



러시아의 전쟁 명분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을 막아 안보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동서냉전 종식 이후에도 나토를 유지하고 확장해 왔다. 구소련 독립국들까지 나토에 가입시키는 ‘나토 동진 정책’으로 러시아 포위 전략을 구사했다. 이는 정치, 경제, 군사적인 세계 단일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미 제국주의 패권 전략의 산물이다. 하지만 러시아도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패권주의를 움켜쥐고 있다. 이미 조지아 전쟁, 크림반도 병합을 통해 제국주의 패권 야욕도 드러냈다. 결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동서 냉전 종식 이후, 새롭게 떠오르는 러시아 제국주의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번 전쟁의 정치적 성격이 미국과 러시아의 제국주의 야욕이라면, 경제적 측면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전쟁의 배경과 러시아 제재의 성격 및 움직임을 통해 경제적 목적을 살펴볼 수 있다.

전쟁의 직접 영향(1) : 공급 충격과 인플레이션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경제에 새로운 부정적인 공급 충격을 일으켰다. 이 두 나라는 니켈, 네온, 티타늄 등 주요 전략 물자와 석유 및 천연가스의 공급국이다. 이 때문에 갈등이 더욱 심화하면 원자재 가격 폭등과 반도체 수급 차질 등 공급망 교란 문제가 증폭된다. 천연가스와 석유 공급 부족은 에너지 가격도 폭등시켜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승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또한 이들은 세계 밀 수출의 약 30%와 옥수수 20%, 비료의 13%를 생산하고 있다. 전쟁의 영향은 곡물가 상승으로 저개발국 식량 수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기아와 굶주림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의 가장 큰 경제적 영향은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 발생 요인은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쌓이며 추가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는, 소위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이다. 전쟁은 새로운 공급 충격을 가중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킨다. 두 번째는 물가 인상의 이유가 되는 기업의 마진율 인상과 생태적 전환 비용 등이다. 이는 전체 경제 시스템에 대한 파급 효과와 함께, 몇 가지 주요 상품의 가격을 올리고 전체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증가시킨다.

특히 현재의 인플레이션 급등은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이는 1970년대 유가 상승에 따른 임금-물가 인플레이션 소용돌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기업은 내년 3~3.9%의 급여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임금 인상률은 현재 인플레이션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미국은 지난해 4월 이후 실질임금이 마이너스 상태라,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임금상승 때문이 아니다. 현재 인플레이션의 확실한 행동 주체는 수요 측면의 조건을 활용하는 기업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비용 가격이 아니라) ‘이윤 가격(profit-price) 인플레이션’이다. 가령, 3월 초 테슬라(Tesla)는 원자재 가격 급등을 이유로 미국과 중국에서 일부 모델의 가격을 각각 1,000달러와 1,500달러 이상 인상했다. 2020년 1,570만 원이던 현대차의 준중형 세단은 올해까지 296만 원이 올랐다. 한국GM과 르노코리아의 SUV도 같은 기간 최대 300만 원이 인상됐다. 벤츠와 BMW의 대표 모델들도 340만 원에서 최대 960만 원까지 차량 가격을 올렸다.

원자재 인상을 이유로 자동차 가격을 올리면서, 테슬라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코로나와 공급망 교란에도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6.7조 원으로 7년 만에 최대치를 보였다. 반도체 소재 공급 부족을 겪는 삼성전자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팬데믹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 에너지 기업들 역시 에너지 가격 폭등에도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경신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 상장기업의 약 3분의 2가 팬데믹 이전보다 지난해 더 높은 이익률을 보고했다.

상당수 기업은 병목 현상과 강력한 수요를 활용해 가격과 마진을 동시에 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확대하고 있다. 전쟁에 따른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대 역시 세계 소비자와 노동자 가계로 피해를 전가할 수 있어 대기업은 이를 이용해 더 많은 이익을 거둔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확대하더라도 현재로서는 미국과 글로벌 대기업들이 전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전쟁의 직접 영향(2) : 미국의 경제적 이득

전쟁으로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 곳은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다. 국토의 절반이 전쟁터로 변해 주요 도시의 생산시설이 파괴됐다. 우크라이나는 이 전쟁으로 국내총생산(GDP)이 40~60%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전쟁과 경제 제재의 영향으로 올해 최대 15%의 GDP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장기적으로 많은 경제적 이득을 보게 된다. 최소 드네프르강 동쪽 지역의 병합을 통한 영토 획득과, 우크라이나의 석유 및 천연자원 지배력을 독점 혹은 분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은 전쟁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전쟁 자체로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본다. 물론 공급망 교란 확산과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인상,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른 일부 경제적 피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간접적인 피해일 뿐, 그보다 훨씬 더 큰 직접적 이득이 주어진다. 현재 전쟁과 제재 속에 러시아와EU 간의 양자 교역은 엄청난 차질을 빚고 있다. EU 회원국이 러시아 제재에 합류하고, 일부 러시아 은행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에서 배제되면 양자 무역은 미국의 필요만큼 크게 줄어들게 된다. 대신 유럽은 천연가스 등에서 미국과의 교역을 크게 늘리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스의 40% 이상을 수입했던 유럽이 수입처를 바꾸면서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미국산 LNG 수출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초 약 37%에서 12월에 61%로 급등했다. 올해 1월에는 미국이 수출한 LNG의 약 3분의 2가 유럽으로 갔다.

또한 전쟁으로 조성된 위기는 (단기적으로) 미국 달러를 강화하고, 글로벌 자본 흐름을 미국으로 끌어들인다. 지난 20년간 미국이 일으킨 모든 지정학적 위기는 예외 없이 미국 달러화를 강화시켰다. 이번 전쟁의 여파로 유럽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상승해 미국을 금융 피난처로 만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산복합체에도 막대한 이익이 될 수 있다. 현재 분쟁이 이어지면서 미국과 독일 등 나토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 안보 불안이 커져 나토, 궁극적으로 미국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번 전쟁으로 재무장을 선언한 독일은 국방비를 두 배로 늘려 수십 년 만에 미국 전투기를 구입하고, 전략적 에너지 비축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연간 국방비 지출을 나토 회원국의 목표치인 GDP 대비 2% 이상, 100조 원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미국 군산복합체가 생산하는 각종 최첨단 무기를 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IMF(국제통화기금)는 전쟁과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4.4%)를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했지만,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미국의 강력한 성장을 여전히 기대한다”라며 전쟁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를 전망하지 않았다. 이는 전쟁과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누가 경제적 승자가 될 것인지 예시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미국이 얻는 이익은 단기적이다. 전쟁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쟁 결과에 따른 이익은 거의 없고, 위와 같은 이익도 전쟁 종료와 함께 끝난다. 따라서 전쟁을 개시한 것은 러시아지만, 종전은 사실상 미국의 판단에 달려 있다. 지난 3월 22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이 전쟁은 쉽고 빠르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 미국이 지시하는, 혹은 희망하는 전쟁의 방향일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전쟁이 서둘러 끝나기보다 시리아처럼 어떤 일방의 승리 없이 질질 끌다가 양쪽 다 피폐해지는 쪽이 유리할 수 있다. 따라서 워싱턴은 전쟁을 통한 지정학적 가치를 얻기 위해 이를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다.

만약 미국이 종전을 원한다면 왜 러시아와 직접 대화하지 않는가? 미국 승인이나 협력 없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단독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상을 결정할 수는 없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미국의 승인 없는 평화협정은 언제든 전쟁 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회용에 불과하다. 이처럼 미국은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오는 자동차를 멈춰 세우려 하지 않고 ‘도로 진입 금지’ 표지판만 닦고 있다.

물론 미국으로서도 원하는 대로 전쟁의 장기화를 결정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유럽 동맹국들의 피해를 고려하면 장기간 전쟁을 끌고 나가기 어렵고,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러시아 제재와 미국 패권주의에 맞선 새로운 대항 연합이 가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국은 이런 조건들을 고려해 종전 시기와 협상 내용을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전쟁과 러시아 제재의 영향(1) : 신냉전 체제?

러시아의 침공과 경제 재제가 세계 경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도 초미의 관심사다. ‘지역적’ 전쟁이 세계 문제로 되살아난 만큼, 에너지와 무역 이동 및 공급망이 교란 또는 재구성되고 있다. 국제결제 네트워크가 파편화하고, 일부 국가에서 달러화 보유를 재고하면서 세계 경제 및 지정학적 질서도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이 중국과 멕시코, 유럽에 대한 보호무역 관세를 부과한 후,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돼 무역과 기술 분야에서 경제적 분열의 위험이 높아진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전쟁이 시스템 수준의 균열로까지 확대될지 의문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G20 국가에 (무역 분쟁이 아닌) 경제 제재를 가한 것은 러시아가 최초다. 러시아는 주요 물자의 교역량과 무역량이 적지 않은 주요 국가이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와 자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이란이나 북한, 베네수엘라와는 달리 상품 교역 부문에서 그 영향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산업생산 경쟁력이 있는) 국가에 대한 경제제재는 일종의 보호무역 관세 같은 역할을 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경제 제재로 수출 또는 수입을 막는 것은, 당사국 입장에선 거꾸로 자신들이 무역 장벽을 세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당사국의 보복 조치도 똑같은 효과를 본다. 일례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에 무역 제재를 가했을 때, 러시아는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에 치즈와 유제품 금수조치를 내렸다. 그 결과 러시아는 자체 치즈 생산을 확대했고 이제는 치즈를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이번 제재도 주로 국방물자만 엄격히 제한할 뿐, 상품 시장과 에너지 시장 전반의 제재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주로 국제결제망인 SWIFT 사용 제한이나 러시아 중앙은행 등이 미국과 해외에 보유한 외화자산,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지배층과 올리가르히(재벌)의 해외 자산 등을 압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경제 재제는 러시아 해외자산 압류와 함께 대부분 ‘금융제재’의 성격을 갖는다.

경제 제제에 따른 러시아의 단기적 영향은 다소 파괴적이고 직접적으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중기적으로 보면, 농업에서 유제품, 기술에 이르기까지 자립할 수 있는 영역이 많고, 동시에 자립이 어렵거나 수출이 축소되는 영역은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하며 제재를 풀어나갈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 경제 제재는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러시아와 유라시아, 중국을 연결하는 유라시아-중국의 통합 촉진이다. 미국의 제재는 러시아와 중국을 하나로 묶고 있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 제재는 미국에 자충수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중국의 추격을 물리쳐야 할 미국이, 주요 경쟁 상대국인 중국에 협력을 구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시도 때도 없이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라”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러시아를 도우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까지 했다. 하지만 중국은 “유엔과 국제법에 따라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아니라) 법이 허용하는 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중국까지 제재를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 동서양의 무역은 사실상 중단되고, 이는 특히 서방에 치명적이다. 현재 유라시아와 중국은 인구, 영토, 천연자원, 식량, 에너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다만, 중국은 유럽, 미국과의 교역 단절로 초기에는 상당한 손실을 볼 것이다. 이를 유라시아와의 통합으로 단기간에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며, 단교 초기에 일정 기간 GDP 축소를 감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산업화 이래로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이 세계화돼 있어 유라시아와 중국 시장이 축소되면 이윤율이 떨어져 심각한 경제위기 상태에 내몰릴 수 있다.

러시아는 반도체 센서와 메모리, 항공기 나사에 필수소재인 팔라듐 생산의 거의 절반을 담당한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네온 가스는 세계 70%를 생산한다. 크립톤과 제논 등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희토류 생산의 상당수를 담당한다. 미국과 유럽으로의 원자재 수출이 중단되면, 서방은 반도체 핵심 기술 공정을 완전히 바꾸거나, 만성적인 공급부족 상태를 계속 버텨야 한다. 이처럼 미국조차 유라시아와 중국(경우에 따라 인도까지)의 결합과, 이 지역의 시장 축소를 바라지 않는다. 전쟁이 어떻게 정리되든 간에 이런 상황은 용인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전쟁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신냉전 상태까지 치달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전쟁 종료 후, 러시아와 중국의 결합 양상을 보며 제재 수위와 지속 여부가 다시 고려될 수밖에 없다.

전쟁과 러시아 제재의 영향(2) :
달러 패권의 약화와 다극 체제 가능성


현재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는 모순이 있다. 예컨대 세계 무역 거래는 주로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러한 제제가 작동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힘 때문이다. 하지만 제재 대상 국가는 제재를 우회하는 대안을 모색함으로써 제국주의의 힘을 약화시킨다. 제국주의의 힘을 표현하는 ‘경제 제재’는 바로 그 힘을 약화하는 경향을 내포한다. 각국은 기존 질서가 아닌 별도의 대안적 협정과 질서를 구성하며 제재의 영향을 회피하려 한다. 제재 대상 국가가 늘어나면 이러한 대안적 협정은 더 힘을 얻는다.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 체제가 확대되면 제재의 실효성은 더욱 훼손된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빈번하게 금융제재 조치를 반복할수록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신뢰는 훼손된다(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달러화 강세가 유지된다). 게다가 국가기관인 중앙은행의 해외 자산을 임의로 압류하는 것은 전시 외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에 이어 러시아 중앙은행의 자산까지 압류하면서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고 다른 국가의 자산을 압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결과 미국과 갈등을 빚을 수 있는 국가일수록 달러 표시 채권 대신 안전자산인 ‘금’을 보유하려는 성향을 가진다. 그런데 이 금괴가 대부분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준)과 런던 영란 은행의 지하창고에 보관돼 있다. 결국 뉴욕과 런던에 보관 중인 금의 해외 이탈을 부추기게 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달러의 무제한적 양적 완화에 불안을 느낀 주요국 중앙은행이 달러 대신 금을 보유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어, 러시아 제재의 영향과 함께 금의 이탈과 달러화의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이미 미국에 이어 금 보유량 세계 2위인 독일은 뉴욕 연준에 보관돼 있는 자국 소유의 금을 계속해서 독일로 옮기고 있다.

또한,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에 대한 석유 판매를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지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것이 성사되면 사우디아라비아가 달러 이외의 통화로 석유를 판매하는 최초의 사례가 된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의 25%를 사들이는 최대수입국으로, 그만큼의 결제 대금을 위안화로 즉시 채울 수 있다. 사우디가 실제로 위안화를 석유 대금으로 인정하면 석유의 ‘달러 패권’을 행사해온 미국에 적잖은 타격이 된다. 사우디는 1974년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제공받는 대신 석유의 달러 거래를 약속했다. 사우디는 석유 수출의 100%를 달러로 거래해 왔고 이로써 세계 석유 거래의 80%가 달러로 이뤄졌다.

석유 등 주요 상품이 달러로 거래되면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쟁과 러시아 제재는 기축통화와 국제 결제 시스템에 대한 대안적 행보를 확대할 수 있다. 러시아 제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방 세계 금융 네트워크에서 러시아 은행 및 기타 금융 기관을 차단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중 은행 간 국제결제 시스템인 SWIFT 네트워크에서 러시아 은행을 배제하는 것이 분명한 특징이다. 이는 러시아가 수출이나 재정적 유입을 통해 얻은 달러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미국 달러가 없으면 분명 필요한 수입품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달러 지불이 아닌 어떤 약정을 통해 얻어야 한다. 이와 같은 양자 무역과 직접 지불 협정의 시작은 달러 패권을 넘어 다극 체제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두 가지 사건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벨로루시, 아르메니아로 구성된 유라시아 경제 연합과 중국은 새로운 국제 및 통화 시스템으로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에선 인도가 러시아의 무기와 비료,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러시아와 루피-루블 교환을 추진하고 있다.


전쟁과 러시아 제재의 영향(3) : 인도는 어디로?

달러 패권을 넘어 다극 체제를 형성하는 움직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도(India)’라는 변수가 하나 더 등장한다. 인도는 대중국 봉쇄를 위한 쿼드(QUAD) 참여국이자 미국의 동맹국이다. 하지만 서방이 잇달아 대러 제재를 감행하고 있음에도 인도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인도는 전통의 우방이며, 인도는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무기와 석유 등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유엔 표결에도 중국과 나란히 기권했다. 게다가 3월 1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인도는 서방의 제재로 국제결제망 SWIFT에서 축출된 러시아와 루피-루블 결제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루블-루피 교환 시스템은 소련 시절인 1970년부터 1992년까지 운영한 바 있어, 시스템 도입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도는 서방의 제재를 받은 이란과도 직접 지불 결제 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더 놀라운 것은, 인도가 쿼드마저 외면한 채 중국과 교류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3월 25일, 왕이 중국 외교 부장은 인도를 방문해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부 장관을 만났다. 인도 외교부 장관도 조만간 중국을 답방한다는 계획이다. 20년 전 러시아와 중국처럼, 중국은 인도에 손을 내밀어 국경 문제를 해결하고 인도의 비동맹 지위를 받아들이는 관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오랜 시간 국경 분쟁을 겪어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놓고 비슷한 입장을 취하면서 관계가 다시 변하고 있다. 양국은 서방의 압박 속에서도 러시아 제재에 가세하지 않고 오히려 교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인도는 지난 2년 동안 미국과 일본에 편승해 쿼드에 합류하는 등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과의 연계를 확대했다. 그 결과 중국과의 국경 갈등 등 경제, 정치적 갈등만 확산됐을 뿐 인도에 실제 큰 혜택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인도는 쿼드를 떠나지는 않겠지만 “갈등이나 새로운 냉전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바이든의 말을 되풀이하며 쿼드에도 남고 중국과의 교류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의 경제적 성격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정치적, 군사적 전쟁이면서 동시에 경제 전쟁이기도 하다. 단순히 전쟁의 결과로 누가 얼마나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를 야기할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인 마이클 허드슨(Michael Hudson)은 이 전쟁을 금융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 패권 세력과 (신흥) 산업 자본과의 대결로 규정한다. 미국과 유럽의 대러시아 제재는 금융제재에 다름 아니며, 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금융자본과 금융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주도 신자유주의 패권 세력이다. 반면, 러시아, 중국 등은 신흥공업국으로서 산업자본 주도의 국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자립하려는 산업자본과 이를 막고 금융화를 이식하려는 금융 자본주도 신자유주의 지배 세력간의 대립이다. 특히 산업자본이 사회주의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 신자유주의 주류의 전쟁이라고 본다.1)

(마이클 허드슨의 규정 이면에는 이미 미국이 산업화 대신 금융화를 통해 축적을 확대하는 금융주도 자본주의라는 것이 전제돼 있는데, 이 부분은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이 전쟁은 미국 산업자본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 부합한다. 그러나 원하든 원치 않든, 이 전쟁이 금융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에 대한 도전과 반격이 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도전하는 세력이 사회주의로 발전하려는 산업자본(주의)이 아니라 또 다른 자본주의적 전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구 지배 질서의 균열은 언제나 다양한 전망을 찾고 변화의 가능성을 열기 마련이다.

이제까지 미국이 벌인 전쟁들은 금융화를 이식하고 금융 세계화를 확대하려는 목적보다는, 이를 위한 부수적인 땅 고르기 혹은 방해물을 제거하고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금융 세계화를 확대하기 위해 전쟁 같은 물리적인 수단보다, IMF 외환위기와 같이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에 통합되는 방식을 추구했다. ‘쇼킹요법’이라고 불리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이 같은 방식으로 주요국 대다수가 비슷한 위기에서 신자유주의 개방, 금융화, 노동유연화를 확대하며 금융 세계화 질서에 통합됐다. 이란과 북한, 베네수엘라 등은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미미하기 때문에, 미국은 적극적 으로 금융 세계화에 통합시키려 하기보다는 경제제재의 방식으로 고립시켜 왔다. 이들 역시 미국의 제재에 맞서는 대안적인 시도를 해왔으나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고 실효성도 없었다. 그러나 G20 국가인 러시아에 대한 베네수엘라식 제재가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의 균열이 될지는 앞으로의 전개와 양상에 달렸다. 한국의 노동자 민중이 전쟁과 침공에 반대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에 어떻게 싸워야 할지, 흐린 안개가 걷히며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각주]

1) https://michael-hudson.com/2022/03/sanctions-energy-and-in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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