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취향의 탄생

[레트로스케이프]뉴 노멀 시대를 지나 새롭게 등장한 문화적 규범

이제 ‘뉴 노멀(new-normal)’이라는 말은 이전과 같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 원래 이 용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변화된 저성장·저금리·저물가 등의 경제적 상황과 그 사회문화적 변동을 가리키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이 용어가 가리키던 현상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됐다. 물론 한국 사회에 여전히 ‘경제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은 이전과 같은 성장의 시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변화된 사고방식이 새로운 규범(new norm)이 된다. 사회적 제도나 지식 체계는 아직 이러한 변화를 적절히 따라잡지 못한 것 같지만 일상에서는 꽤 익숙한 현상이다.

레트로 시대는 이전의 소비 방식으로 회귀하는가

그렇다면 소비 규범은 어떻게 변했는가? ‘취존(취향존중)’이나 ‘취저(취향저격)’ 같은 담론들이 부상했고, 이어서 자신의 소비 취향을 드러내는 행위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 돼버렸다. 경제적이면서도 취향을 따르는 소비를 해야 하니 소비 방식 자체가 굉장히 까다로워졌고, 기업은 상품 판매를 위해 생산 방식을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다보니 다품종 소량생산, 애자일 경영, UX/UI 디자인 등과 같은 말들이 어느새 경제·경영·마케팅에서 당연한 규범이 됐다. 이 개념들이 실제 재화나 서비스에 적용되고 구현되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이제는 생산에서 소비까지 사용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거나 이들을 무시하게 되면 공개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기업은 복고적 디자인은 유지한 채 동시대 기술 수준이나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내용물을 재조정한 상품을 생산한다. 복고적 디자인은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게는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켜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제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자동차 시장도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현대차는 포니 모델에 전동화 시스템을 적용해 전기차를 출시했고, BMW나 폭스바겐도 이런 방식으로 미니쿠퍼와 뉴비틀을 재출시했다. 또한 주류 시장의 경우, 진로나 오비 등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도수의 술을 옛 디자인에 담아내며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레트로 문화는 ‘레트로(retrospective)’라는 말처럼 과거의 생산과 소비 방식으로 회귀했다기보다는 그때의 그 형식만 차용한 셈이다.


고고학적이고 인류학적 취향의 실천?

흥미로운 점은 복고적으로 보이는 뉴트로 상품을 소비하는 게 아닌, 진짜 레트로 상품을 찾아 구매하는 행위다. 전자가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자들의 소비 방식이라면, 후자는 매니악한 취향에 더해 구매력까지 가진 자들의 소비 방식이다. 소위 과거의 디자인을 그럴싸하게 차용한 제품이 아닌, 실제 구제 혹은 빈티지 제품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패션에서부터 미디어 이용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복고풍의 스파 브랜드 옷을 구매하는 게 아닌 황학동 시장에 가서 구제 옷을 구매하는 식이다. 혹은 옛 디자인을 복원한 턴테이블과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는 게 아니라 중고 인터넷 시장을 뒤져 실제 사용했던 축음기나 전축을 사는 행위 등이다.

기존에도 이러한 소비 행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오래되고 이색적인 물건을 모으는 행위는 고고학적이고 인류학적 진정성을 가진 수집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복고풍의 회고적인 상품을 소비하는 뉴트로 문화가 부상하면서 이러한 실천의 의미가 재맥락화됐다. 즉 이러한 고고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보다 나은 취향을 갖기 위해서라면 추구해야 할 필수적인 문화적 규범이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더 오래된 그리고 더 이색적인 것들을 탐색하고 발견하는 행위는 뉴트로 시대에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는 방식이 되어버렸다. 이는 어쩌면 역사적 사실이나 이색적인 세계 그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이를 통해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해보라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