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오체투지 행진을 가로막은 경찰에게 묻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월 11일 일요일 밤 11시 36분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시작된 '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은 일요일 낮 2시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것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려는 지금 이 시간, 오체투지에 나선 노동자들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경찰에 막혀 일곱 시간이 넘게 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려 있습니다.

저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오체투지 행진을 따라다니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을 숱하게 보았고, 그럴 때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대체 왜 일어나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이 글이 세상에 나갈 월요일에는 정부종합청사 앞이 경찰의 손으로 깨끗이 '치워진' 다음이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제가 본 것들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왜 그런 일이 벌어져야 했는지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물음에 답해야 하는 상대는, 경찰입니다.


왜 토요일부터 길을 막기 시작했습니까?

수요일과 목요일, 금요일에도 경찰이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길목을 막아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부자 동네 강남에서도 그랬다는데, 왜 경찰은 토요일부터 길을 막기 시작했습니까?

서울 을지로1가 네거리였습니다. 오체투지를 하며 느리지만 또박또박 나아가던 노동자들은 건널목에서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초록불이 켜지자 맨 앞에 서 있던 노동자가 몸을 누이며 절을 시작했고, 열 발짝에 절 한 번씩이니 5분 정도면 횡단보도를 다들 건널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반쯤 건너자 갑자기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노동자들을 에워싸더니 여럿이 달려들어 한 명씩 골라잡고선 팔다리를 붙잡고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을 모두 인도 위에 짐짝처럼 부려 놓은 경찰들은 곧이어 건널목을 막아선 채로 울타리처럼 늘어섰고, 다시 초록불이 켜져도 누구 하나 길을 건너지 못하게 했습니다.

초록불이 켜질 때마다 노동자들은 경찰들을 뚫고 길을 건너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달려든 경찰들이 노동자들을 힘으로 눌러 인도로 끌고 갔습니다. 엎드려 있던 노동자들은 경찰들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 다시 횡단보도에서 오체투지를 시작했지만, 그 역시 득달같이 달려온 경찰들에게 끌려갔습니다.

오체투지로 5분이면 건너갈 수 있는 길을 왜 막았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5분이면 되는데. 5분이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건너갈 수 있었는데. 대체 왜 경찰은 길을 막았습니까?

경찰이 길을 막고 노동자들을 힘으로 제압해 인도로 끌고 가자 횡단보도는 아수라장이 됐고, 빵빵 경적을 울리는 차들이 마구 고개를 들이미는 바람에 몇 번이나 아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경찰들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사람을 왜 짐짝 취급하느냐며 울부짖었지만, 남대문 경찰서 경비과장이란 사람은 방송차 안에서 이런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행진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이 불법이었습니까?

오체투지는 나흘 동안 거쳐 갈 곳들이 이미 수요일 전에 알려져 있었고, 그 길들은 모두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다른 집회에서처럼 도로를 차지하고 가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오십여 명쯤 되는 노동자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인도를 통해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경찰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숨기지 않고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요일까지만 해도 길을 막지 않던 경찰은 토요일이 되자 난데없이 '불법'이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횡단보도를 오체투지로 건너는 것은 안전사고가 벌어질 위험이 있고 막대한 교통체증을 유발하니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노동자들의 오체투지를 방해하고, 위험한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든 건 누구였습니까? 5분이면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었던 노동자들을 굳이 힘으로 억눌러 짐짝처럼 인도에 부려 놓은 건 누구였습니까? 초록불이 켜졌는데도 아무도 길을 못 건너게 함으로써 스스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건 누구였습니까? 바로 경찰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저지른 '불법'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왜 함부로 채증합니까?

경찰들이 뛰어들어 아수라장을 만들자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대열은 을지로1가 건널목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었고, 도로와 인도 사이를 막아선 경찰들 앞에 노동자들은 또다시 엎드렸습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찬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사람들은 핫팩을 옷 속에 넣어 주거나 외투를 걸쳐 주었습니다.

초록불이 켜질 때마다 노동자들은 경찰들을 뚫고 횡단보도로 나아가려 했고, 어떻게든 막으려는 경찰들과 어떻게든 뚫으려는 노동자들은 거친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경찰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 뒤쪽에는 사진기가 달린 기다란 봉을 들고 있는 채증 경찰이 있어서 그 모든 광경들을 샅샅이 헤집으며 찍고 있었습니다.

지난 1999년 대법원은 이런 판결을 내린 적 있습니다. '영장 없이 이뤄지는 채증의 경우 집회 및 시위 참가자의 불법 행위가 행하여지고 있거나 행하여진 직후, 증거 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즉 아무런 불법 행위도 저지르지 않은 노동자들을 채증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대체 노동자들이 그 자리에서 무슨 불법을 저질렀습니까? 왜 경찰은 그 어떤 불법 행위도 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함부로 채증하며 스스로 불법 행위를 저질렀습니까?


대한문 앞 횡단보도에서 노동자들 앞을 막아선 이유는 무엇입니까?

경찰들이 멋대로 들어다 옮긴 탓에 건너편 인도에 엎드려 있던 노동자들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다시 오체투지를 시작했습니다. 토요일 일정의 마지막 장소인 대한문 앞까지 어떻게든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경찰들에 막혀 아직도 길을 못 건너고 있는 노동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대한문까지는 쉽게 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경찰이 막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청 앞을 지나 대한문이 코앞에 보이는 건널목 앞에 다다르자 경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초록불이 켜지고 노동자들이 오체투지로 길을 건너기 시작하자 경찰들은 기다렸다는 듯 몰려와 노동자들을 횡단보도에서 몰아냈습니다. 몇 시간 전에 을지로1가 네거리에서 펼쳐진 장면이 고스란히 되풀이되었습니다.

대한문 바로 앞이었습니다. 10미터만 더 가면 오늘 오체투지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면 경찰들도 일찍 쉴 수 있었을 테고, 꽁꽁 얼어붙은 노동자들의 몸도 따스하게 덥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딱 10미터 앞에서 경찰들은 노동자들을 힘으로 내리눌러 인도로 끌고 갔습니다. 그 와중에 노동자 한 명이 경찰과 몸싸움하다 다쳐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거칠게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어느 경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동차들 때문에 도로는 위험하니까 여러분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드리는 거예요." 그러나 정작 노동자들을 위험하게 만든 것은 누구였습니까? 처음부터 길을 막지 않았다면 횡단보도 하나 건너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대한문 바로 앞에서 길을 막았습니다. 노동자들을 끌어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을지로1가 네거리에서 3명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까?

경찰이 휘젓는 바람에 또 다시 땅바닥에 널브러진 노동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가 있었습니다. 문화제가 열리기로 되어 있던 곳에 백기완 선생이 의자에 앉아 무척 괴롭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을지로1가 네거리에 여전히 노동자들이 갇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가운데 3명은 아직도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네거리로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상황은 아까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이 한 발짝이라도 인도 밖으로 나가면 경찰들이 달려와 팔다리를 들고 인도에 내려놓았습니다.

이미 다른 노동자들은 대한문 앞으로 가 있고, 네거리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은 20여 명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오체투지를 위해 엎드려 있는 노동자들은 그 가운데 3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경찰들은 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왜 환자를 세운 구급차를 막아 세웠습니까?

을지로1가 네거리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던 와중에 노동자 한 명이 경찰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머리가 깨지고 잇몸이 터졌습니다. 구급차가 와서 그 노동자를 태우고 얼른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경찰이 구급차 앞을 막아섰습니다. 나중에라도 연행해야 하니 경찰 하나가 구급차에 함께 타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길을 막지 않았다면 몸싸움도 없었을 테니 연행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경찰은 구급차를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상에 있습니까? 머리를 다쳐 한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환자에게 구급차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경찰들은 정말 모르고 있었습니까?

구급차에 타려는 경찰을 주변에 있던 노동자들이 겨우 끌어내자 구급차가 출발했고 곧바로 뒤에 경찰차 한 대가 따라붙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 본인의 뜻을 무시하고 억지로 구급차에 태우려 했습니까?

을지로1가 네거리에 엎드린 채 경찰들과 끊임없이 실랑이를 벌이던 한 여성 노동자는 여기서 더 가지 못한다면 차라리 길 위에서 얼어 죽겠다며 버텼고, 결국 온몸이 자꾸만 차가워지며 위험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경찰은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노동자는 구급차에도 절대로 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구급차가 오자 경찰들은 그 노동자를 들어 옮기려 했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노동자들이 강하게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 노동자 역시 대한문까지 가고 말겠다며 체온 측정마저 거부했습니다. 결국 구급차는 그냥 가 버렸고, 여전히 땅 위에 엎드려 있는 노동자의 몸 상태는 점점 나빠져 갔습니다.

그때 송경동 시인이 대한문 쪽 소식을 알려 왔습니다. 쌍용자동차 김득중 지부장이 이곳에 있는 이들마저 대한문에 다다를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다며 아직도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오체투지가 아닌 걸어서 대한문까지 가기로 결정하고 모두 일어선 뒤에야 그 노동자는 근처에서 기다리던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습니다.

밤 열 시가 다 된 시각이었습니다. 경찰은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을 다섯 시간이나 막아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길을 막지 않았다면 그 노동자도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본인의 뜻은 전혀 물어보지 않고 구급차를 불러 억지로 태우려 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입니까?

경찰은 왜 대한문 앞 전기를 끊겠다고 했습니까?

을지로1가 네거리에 노동자들이 갇혀 있는 사이 대한문 앞에서는 자유롭게 발언들이 이어졌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밥차'가 먹을거리들을 부지런히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대문서 경찰은 대한문 앞 전기를 끊고 방송용 앰프를 빼앗겠다는 경고를 해 왔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길을 막지 않았더라면 문화제까지 벌써 끝나고도 남았을 텐데 모든 책임을 오로지 노동자들에게만 뒤집어씌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이번에는 막지 않았습니까?

을지로1가 네거리에 갇혀 있던 이들은 시청 앞까지 걸어서 행진하다가 대한문이 보이는 건널목 앞에서부터 다시 오체투지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경찰들이 근처에 모여들었고, 건너편 대한문 쪽에도 경찰들 한 무리가 서 있었습니다.

초록불이 켜지자 노동자들은 오체투지로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노동자들 앞을 막아서거나 팔다리를 들고 옮기지 않았습니다. 안전사고니 교통체증이니 뭐니 하던 남대문서 경비과장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아까는 왜 노동자들의 앞을 막아서서 아수라장을 만들었습니까?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 광장에 다다르자 그제야 쌍용차 김득중 지부장은 몸을 일으켰습니다. 밤 열 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을지로1가 네거리에서 대한문까지 빨리 걸으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노동자들이 모두 건너오는 데 다섯 시간이나 걸린 셈입니다.

대한문 앞 마무리 집회가 끝나자 토요일 일정도 모두 끝났습니다.

횡단보도를 오체투지로 건너는 것이 왜 불법입니까?

1월 11일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오전부터 대한문 앞으로 모여든 노동자들은 10시 45분에 다시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남대문서 경비과장은 행진이 시작되자마자 '집시법 제20조 1항 3호'를 들먹이며 벌써부터 해산하라는 경고 방송을 했고, 이러한 말도 안 되는 경고는 노동자들이 시청을 지나 동아일보사를 거쳐 종로서 경비과장이 도사리고 있는 세종로 네거리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집시법 제20조 1항 3호는 '교통 소통 등 질서 유지에 직접적인 위험을 명백하게 초래한 집회 또는 시위'를 관할 경찰서장이 해산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체투지가 왜 거기에 해당이 됩니까? 다른 집회 때는 두세 시간씩 길을 막아 놓기도 하는데 왜 굳이 오체투지만 안 된다는 겁니까?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 낸 길인데 왜 꼭 걸어서 건너야만 합니까? 금요일까지는 왜 막지 않았습니까? 처음부터 경찰이 막지만 않았어도 5분도 안 돼서 건넜을 것이고 차는 잠깐 막히다 말았을 것입니다.

왜 종로서 경비과장은 경찰들에게 '불법 행위'를 지시했습니까?

세종로 네거리는 토요일 을지로1가 네거리가 그랬듯 경찰들이 함부로 뛰어들면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초록불이 켜졌을 때 횡단보도를 오체투지로 건너려 했던 노동자들은 경찰들의 손에 순식간에 인도로 옮겨졌습니다. 당연히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에 따라 종로서 경비과장의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채증해! 채증해!" "빨리 인도로 이동 조치해!"

앞서 말했듯 경찰이 채증을 하려면 현장에서 '불법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 세종로 네거리에서 대체 누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습니까? 신호등 초록불이 켜졌을 때 길을 건너려 했던 노동자들입니까?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까지 낸 길을 가려고 했던 노동자들입니까? 오히려 노동자들의 몸을 멋대로 들어 옮기는 바람에 평화롭게 진행되던 오체투지를 방해한 것은 경찰들 아닙니까?

집시법 제3조 1항에는 '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종로서 경비과장은 왜 경찰들에게 강압적인 '이동 조치'와 무분별한 '채증', 즉 명백한 '불법 행위'를 지시했습니까? 아무도 당신들을 처벌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신고한 집회 시간을 넘긴 것이 왜 노동자들 때문입니까?

원래는 2시에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것으로 일요일 일정은 마무리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종로 네거리에서 경찰에 시달리며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세월호 농성장에 다다르자 어느 덧 1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오체투지 행진에 나선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절을 16번 올렸습니다.

쉬는 시간이 지난 뒤 2시가 되자 노동자들은 다시 오체투지를 시작했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지나 세종문화회관 앞 건널목까지 다다르자 주변에 또 다시 경찰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종로서 경비과장은 신고한 집회 시간인 오후 2시가 넘었으니 불법 행동을 중단하라는 경고 방송을 했고, 노동자들이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하자마자 경찰들은 아까와 똑같이 오체투지 노동자들을 땅바닥에서 뜯어냈습니다.

토요일도 그랬고 일요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찰이 끼어들어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공연히 길에서 갇혀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체투지 일정은 예정대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횡단보도는 오체투지로 건너선 안 된다는 이유로, 교통체증을 빚는다는 이유로, 도로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경찰은 길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순간순간 가장 위험했던 존재는 쌩쌩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힘으로 노동자들을 짐짝 다루듯 한 경찰들이었습니다. 왜 경찰은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노동자들에게 뒤집어 씌웠습니까?

왜 노동자들은 '일반 시민'이 아닙니까?

세종문화회관까지 오는 데만 해도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은 다시 오체투지를 시작해 정부종합청사 앞까지 이르렀습니다. 방패를 앞세운 경찰들이 길목을 막고 서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하나 둘 경찰의 방패 앞에 머리를 들이밀고 엎드렸습니다. 멀찍이 서 있는 방송차 안에서 종로서 경비과장이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불법 행위로 일반 시민들이 막대한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대체 경찰이 말하는 일반 시민이란 누구입니까? 노동자들은 거기에 포함되지도 않는 것입니까? 노동자들은 일반적이지도 않고 시민도 아니라는 뜻입니까? 종로서 경비과장은 또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타인의 권익과 공공질서의 안녕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통행권을 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를 내고 인도에 한 줄로 늘어서서 오체투지로 행진하는 것이 대체 누구의 권리를 어떤 질서를 침해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법 조항은 불법 행위를 보장하고 있는 법입니까? 불법이라고 몰아세울 것이었으면 애초에 집회 신고는 왜 받아 줬습니까?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까지 막아서면서 통행권을 보장해 줘야 하는 그 일반 시민은 대체 누구입니까? 왜 노동자들은 일반 시민이 아닙니까?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철폐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보다 더 '타인의 권익과 공공질서의 안녕'을 위한 것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왜 경찰은 깔개와 이불을 못 가져오게 했습니까?

네 시쯤부터 노동자들의 오체투지는 중단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해가 점점 기울어 가자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졌고, 사람들은 엎드려 있는 노동자들에게 다가가 몸을 주물러 주거나 핫팩을 옷 속에 넣어 주었습니다.

외투만으로는 덮어 줄 것이 모자라 세월호 농성장에서 깔개와 이불을 가져오려고 했는데 경찰이 막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다른 이들과 함께 농성장으로 가서 깔개 가방 속에 몇 개 몰래 넣고서는 다시 정부청사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깔개 두세 개를 배 밑에 깐다고 해도 올라오는 찬 기운을 견디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얼마 뒤 금속노조 트럭이 더 커다란 깔개와 담요를 싣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트럭에서 짐을 내리려 하자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와 빼앗으려고 했고 곧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왜 뺐느냐고 물으니 경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농성물품 반입은 안 됩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화를 내며 항의했습니다. 사람이 길바닥에서 얼음덩이가 되어 가도 경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의가 거세지자 경찰들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습니다. 농성물품을 반입해선 안 된다는 것은 어느 법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저 경찰의 변덕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경찰이 사람 목숨을 그토록 낮잡아 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왜 경찰은 스스로의 불법은 감추고 노동자들만 범법자로 대했습니까?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자 정부청사 앞은 그대로 노숙농성장이 되었습니다. 기온은 뚝 떨어졌고 바람마저 세차게 불어 외투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조차 몸을 옹송그려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길 위에 누워 있는 노동자들을 담요와 겉옷으로 꽁꽁 싸매 주었고, 바닥과 몸 사이에 깔개를 두껍게 넣어 주었습니다.

평택 쌍용차지부 노동자들이 서울로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방패 뒤에 서 있는 경찰들은 아무 표정도 없이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었습니다. 종로서 경비과장은 밤이 늦었다며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더니 해산하지 않으면 검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서 추위를 견디고 있을 뿐인 노동자들을 현행범 취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불법 행위는 온종일 경찰이 저질렀습니다. 끈질긴 채증과 폭력적인 이동 조치도 모자라 평화롭게 진행되던 오체투지에 뛰어들어 집회 시간을 한없이 지연시켰고, 정부청사 앞 길목을 막음으로써 아예 일정 자체를 저지했습니다. 오히려 미란다 원칙은 노동자들이 경찰에게 들려줘야 했습니다. 현행범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경찰들이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끝까지 법과 질서의 수호자인 것처럼 굴었고, 대신 노동자들을 범법자로 만들었습니다. 대체 왜? 왜 경찰은 스스로가 저지른 불법엔 눈감으면서 아무 잘못 없는 노동자들만 죄인으로 만들었습니까?

당신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월요일 아침 9시 3분입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정부청사 앞에서 꼬박 밤을 새웠고 경찰은 끝까지 길을 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달려들어 노동자들을 연행하려 하거나 방송용 앰프를 빼앗아 가기도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오늘 11시에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연다고 합니다.

글을 쓰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당신들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당신들에게 큰 기대를 하진 않습니다. 아직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을 국가 권력의 맨 끄트머리에 붙들어 놓은 채 앞잡이 노릇하는 데 동원하는 모습이 보기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마지막으로 당신들에게 이렇게 물어야겠습니다. 땅에 엎드린 노동자들을 끄집어 내 다른 곳에 부려 놓은 경찰에게, 채증이든 이동 조치든 숱한 불법 행위를 지시한 경찰에게, 경찰을 움직인 경찰서장에게, 경찰서장을 움직인 그 위 누군가에게, 꼭 물어봐야겠습니다. 대체 당신들은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까지 하는 것입니까?

오체투지에 나선 노동자들이 바랐던 것은 그저 청운동 동사무소 앞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도로를 점거한 것도 아니고 경찰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습니다. 도로를 점거하고 먼저 폭력을 휘두른 것은 오히려 경찰들이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경찰이 저지른 모든 행위들은 결국 하나로 모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두렵지 않았다면 당신들은 막지 않아도 될 길을 막지도 않았을 것이고 휘두를 필요가 없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두려워하는 만큼 더 우악스러웠고 집요했으며 철저하게 표정을 감추었고 모든 것을 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한 마디로, 겁에 질린 어린 아이 같았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이 두렵습니까? 노동자들이 가진 것은 맨주먹과 눈물뿐입니다. 당신들이 지닌 방패만으로도 쉽게 깨부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온몸을 담요로 감싸고 누워있는 노동자들 앞에 경찰들 수백 명을 데려다 놓고 힘을 과시하는 당신들의 모습은 노동자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단결한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을 다름 아닌 당신들이 가르쳐 주었었습니다. 이제 봄이 찾아오면 또 다시 힘든 싸움들이 시작되겠지만 당신들의 두려움을 알고 있는 노동자들은 더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제 물음이 당신들에게 가 닿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꼭 당신들의 대답을 당신들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로 듣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당신들을 적으로 대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 그지없습니다. 또 다른 어느 날 거리에서 마주할 때도 당신들은 아마 스스로의 두려움을 갖가지 형태로 늘어놓을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거리에서 만납시다.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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