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길로 맺어진 항공산업 외주화 반대 국제연대

[투쟁하는 세계노동자](12) 항공사 노동자의 세계행동의 날을 맞이하여

지난 9월 27일은 ‘항공사 노동자의 세계행동의 날’로 전 세계 공항과 공항 주변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다. 필리핀의 마닐라와 세부, 다바오, 인도의 뭄바이,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 미국 호놀룰루, 캐나다 밴쿠버와 위니펙, 몬트리올, 독일 프랑크푸르트, 터키 이스탄불 등 여러 도시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가 파업, 집회, 선전전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행동을 진행했다.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는 세계 항공 산업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외주화 정책의 철회와 외주화에 동반되는 임금과 복지혜택 삭감, 노동조건 악화와 노조 탄압 중단이었다.

‘항공사 노동자 세계행동의 날’은 필리핀항공노동조합(PALEA)이 1년 전 외주화 반대 투쟁에 돌입한 날인 9월 27일에 맞춰 처음 제안되었다. 지난 7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국제운수노련(ITF) 민간항공분과 회의에서 논의되었고, ITF의 공식 지지를 받게 되었다. 터키민간항공사노동조합(Hava-Is), 퀀타스항공사노조, 루프트한자승무원노조(UFO), 캐나다항공사노동자노동조합(CAW-TCA), 인도항공노동조합, 미국민간서비스노조(UNITE-HERE)와 호주 노동단체인 호주아시아링크(AAWL)가 공동주최를 하기로 했고 각 지역에서 행동을 조직했다.

  필리핀항공 노동자의 시내 행신

필리핀 항공사 노동자의 투쟁

'항공사 노동자 세계 행동의 날'의 주된 추진력은 필리핀항공 노동자의 외주와 반대 투쟁이었다. 작년 9월 필리핀 항공은 비용절감책의 일환으로 2,600개의 지상업무, 케이터링, 항공예약 관련 일자리의 외주화 계획을 발표했다. 사측은 외주화로 인해 해고될 노동자들이 아웃소싱업체에 재취업하면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노동자들은 재고용 되더라도 임금이 50% 삭감되고 노동시간은 늘어나며 복지혜택까지 축소될 것임을 알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주화되면서 단체협약의 효력과 노조의 보호를 잃게 될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2011년 9월 27일 조업을 중단하고 마닐라공항을 비롯한 다른 사업장에서 집회를 전개했다. 투쟁이 시작되자마자 경찰은 이를 강제 진압했고,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끌려나왔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은 마닐라공항과 세부공항 인근에서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경찰의 폭력과 폭우, 홍수에 시달리면서 농성장을 지켰던 이들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투쟁하고 있다.

지난 9월 27일 필리핀항공 노동자와 연대단위 1,000여 명은 마닐라 시내에서 대규모 집회를 전개한 후 마닐라국제공항 인근 농성장까지 차량행진을 했다. 또한 세부에 위치한 막탄국제공항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다바오 공항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행진을 했다. 9월 27일을 맞이하여 인도네시아, 호주, 브뤼셀 등 여러 지역에서 필리핀항공노조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서 연대행동이 벌어졌다.

세계 항공 노동자의 외주화와 노동탄압 반대 투쟁

외주화에 맞서 오랫동안 투쟁한 항공사 노동자는 필리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년 10월 호주의 퀀타스항공 노동자들도 직고용 규모 동결과 대규모 외주화에 맞서 4시간 파업을 벌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사측이 전체 종업원인 350,000명에 대해 직장폐쇄를 강행해 항공운항 전체를 중단시켰다. 호주 중앙노동위원회가 개입한 지 이틀 만에 직장 폐쇄 철회 명령이 내려졌고 지난 8월에는 노동쟁의에 대한 판결이 이루어 졌다. 법원은 퀀타스 노동자를 대표하는 호주운수노조(TWA)의 단체교섭 요구인 외주화 정책에 대한 노조 협의 조항의 정당성을 인정했지만, 핵심 요구 중 하나인 외주화 인원을 전체 종업원의 20%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이 와중에 지난 5월 퀀타스 사측은 422명의 경비원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외주화 시켰다. 퀀타스항공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캐나다항공의 경비노동자와 독일 루프트한자의 승무원, 인도항공사 노동자들도 작년부터 외주화에 반대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중 최근 루프트한자 노동자들이 부분적 승리를 거두었다. 루프트한자의 승무원들은 임금인상과 외주화 제한을 요구하며 지난 8월 31과 9월 7일 2 차례에 걸쳐 24시간 파업을 전개했다. 매번 파업 때마다 루프트한자항공은 반 이상의 운항을 취소해야 했다. 사측이 베를린공항에서 종사하는 파견노동자 일부를 정규직화하기로 하고 중재 참여에 동의한 후 노동자들은 파업을 마쳤다.

이렇게 투쟁 중인 많은 노동자들은 9월 27일 ‘항공사 노동자 세계행동에 날’을 맞이하여 각 지역에서 피켓시위와 집회를 전개했다.

노동탄압에 반대하는 노동자들도 세계행동에 날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터키항공사노동자들이다. 지난 5월 터키정부는 항공파업 금지법안 발표했다. 부당한 파업권 박탈에 터키항공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하루 병가를 내는 투쟁을 벌였지만, 같은 날 305명의 터키항공 노동자들이 문자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 9월 27일에 터키공항에서 집회를 전개하면서 노동자들은 복직을 요구하는 동시에 필리핀항공을 비롯한 세계 항공사노동자의 외주화 반대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표했다. 지난 8월 30일에 국제운수노련의 주도하에 암스테르담, 브뤼셀, 함부르크, 런던, 뉴욕, 스톡홀름과 토교 등지에서 터키항공 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는 행동이 전개되었다.

  인도네시아 항공사노동자의 연대행동

30년 간 진행된 세계 항공 산업의 구조조정

항공산업은 국제적으로 조직되어 있고 세계자본주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국 항공산업 노동자들은 전 세계적인 소통과 가시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 항공사 노동자 세계행동의 날은 이제 노동자들이 항공 산업이 가진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힘을 키우고 서로 연대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국제적인 연대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개별 사업장의 외주화 반대투쟁만으로는 급속히 변해가는 항공 시장에서의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전략으로 충분치 않다. 외주화는 지난 30년 동안 항공 산업의 포괄적인 구조조정 과정의 일환으로 이루어져 왔다. 1978년 미국 공항산업탈규제화법이 시행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공항산업에 대한 규제철폐와 동시에 국적항공의 민영화가 부분적으로든 전면적으로든 일어나게 되었다. 이는 저가 항공사의 등장과 치열한 비용절감 경쟁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항공사들이 글로벌 얼라이언스(global alliance)를 결성하여 보다 넓은 노선을 제공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동맹의 과정에서 열악한 서비스를 지닌 항공사들은 연합파트너의 우수한 서비스에 대비되게 되어 비용절감 경쟁과 함께 서비스 경쟁도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항공사들이 추진하는 비용절감 정책과 서비스 제고정책 모두 노동자에 대한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항공사들은 노동자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반면, 비핵심 업무의 외주화, 노동시간 상승, 임금삭감, 단협 범위 축소와 노동3권 박탈 정책을 통해 비용절감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얼라이언스 파트너들간의 협조와 조율을 거쳐 시행될 때도 많다.

항공 산업의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계 항공사노조들 간의 지속적인 소통과 협조가 필요하다. 벌써 수많은 노동자들이 외주화 정책 때문에 임금삭감과 복지혜택 축소를 겪었고, 노조를 잃었다. 지상업무와 케이터링을 이미 외주화시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잘 알려진 사례이다. 이미 진행 중인 외주화를 막는 투쟁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외주화된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 전략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다. 동일한 다국적 아웃소싱업체들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외주화된 항공사노동자를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 소통과 협조를 통해 조직화 노력을 강화할 수 있다.

탈규제화와 국적항공사의 사유화와 이전에 항공 산업에서의 단체교섭은 일반적으로 일국적 단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단체교섭이 분산되어 현재 사업(장)단위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항공사들이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통해서 협조를 강화하고 있는 반면, 분산된 단체교섭 때문에 노조의 교섭력은 약화되고 있다. 같은 얼라이언스에 속한 노조들이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 공동 교섭전략을 논의할 뿐 아니라 교섭 시기에 공동행공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항공사 노조들 간의 세계적 공조가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많은 한계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9월 27일 세계행동의 날을 주최한 노조들은 공동행동을 조직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임시적인 네크워크에 머물고 있을 뿐이며, 구체적인 공동요구나 외주화에 대응할 장기적인 전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제운수노련은 4개의 얼라이언스에 속한 노조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각 네트워크별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이러한 네트워크들을 통해서 항공사의 노동조건 비교분석 사업을 진행하고 항공사의 사회적 책임 행동강령(CSR Code of Conduct)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협력이나 공동행동의 수준은 미흡한 상태이다. 앞으로 항공사 노동자의 국제연대 흐름이 결합되어 활성화되어야 외주화를 포함한 항공 산업 구조조정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항공사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구조조정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 항공사 노조들도 이 흐름에 관심을 기울여 함께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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