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에 올려진 좌파

[양규헌 칼럼]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 앞에 놓인 길

민주노총 8기 집행부의 과제와 임무 

2015년 새해를 맞아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가 출범했다. 숱한 우여곡절과 우려 속에 사상 최초로 조합원 직접선거를 통해 임원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직선제는 노동조합의 주인인 조합원의 관심을 촉발시켜 냄으로써 위기로 치닫는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에 새로운 물꼬를 연다는 취지에서 그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직접선거에 조합원의 참여가 저조했고 선거의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은 가운데 치러졌기 때문에 바람직한 선거투쟁으로 규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또 각 후보 진영이 직선제라는 선거를 활용해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분명히 하지 못한 한계도 안타까움으로 자리한다. 이는 선거투쟁을 통한 민주노총의 운동노선과 발전전망에 대한 전략이 취약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후보마다 위기로 규정하는 민주노총에 대한 평가가 주도면밀하지 않았으며 각 진영이 내 세우는 공약도 이념과 노선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사안별 정책정도였으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중장기적 운동의 전망제시에는 한계를 노출했다고 볼 수 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질적 발전 없이 양적 발전은 의미가 없다 

노동자계급의 희망으로 출발했던 민주노총이 20여 년을 경과하는 동안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집약적으로는 ‘비타협적 투쟁노선’의 폐기에 대한 문제제기와 민주노조정신인 자주성과 민주성, 연대성과 투쟁성 그리고 변혁지향성의 실종에 대한 원론적 비판이기도 했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정점이 민주노동당으로 모아지게 되자 민주노총의 사업방식이 조합원대중을 주체로 세워내는 투쟁과 실천은 점점 미약해져갔다. 연대투쟁을 통해 과제들을 해결하기보다는 법과 제도와 언론을 활용하고, ‘국민여론’ 명분이 고개를 들면서 성명서와 의회를 통한 문제해결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주체적 투쟁은 방기되고 대리주의가 만연하여 대중투쟁동력은 점점 취약해진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운명이 걸린 투쟁과제나 정치적 성격이 짙은 노동자대회 등을 완강한 투쟁기조로 조직하기보다는 형식에 머물렀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메아리 없는 구호가 남발하는 집회는 대중투쟁 동력과 노동자문화를 확대 재생산할 수가 없었으며 민주노조운동의 정신마저도 기억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점차 투쟁의 양상은 급진성과 전투성이 거세되고 합법적, 합리적 투쟁과 실리주의가 대신하게 되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대규모집회에서 긴장과 결의는 보이지 않고 단순한 ‘양적 집합’의 결과는 민주노총에 희망이 없다는 무관심과 패배주의를 낳게 되었다.

새로 선출된 민주노총 8기 한상균 집행부는 그간 투쟁의 실천과정에서 확인되었듯이 노동자 계급이 안고 있는 모순을 투쟁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와 신념을 강하게 피력하며 총파업성사를 약속하며 등장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구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을 둘러싼 객관적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자본주의 위기는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자본은 상품에 대한 수요가 부족하고 수익률도 낮기(상대적으로) 때문에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신규투자를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들의 돈은 곡간에 넘쳐나고 있다. 노동자는 가계부채에 임금마저 낮아져 금리가 떨어진다고 해도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다. 그러므로 소비와 투자를 합한 총수요의 부족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속에 경제성장은 둔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와 같은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자본은 이윤율 저하 현상을 만회하고자 노동유연화 깃발을 뽑아들고 노동 착취를 강화하며 더욱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아우성이다. 여기에 박근혜정권의 노동정책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실로 자본에게 무한한 특혜주기에 골몰하며 노동자의 목줄을 바싹 움켜쥐고 있다. 제도적으로 노동법개악, 특히 비정규법안 개악까지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며 ‘종북’을 빌미로 유신정치를 답습하며 공안몰이도 불사한다는 광기가 읽힌다.

민주노총의 이념과 노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조건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매우 열악한 상태다. 차가운 날씨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고공으로 올라가고 길바닥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것은 목숨을 건 투쟁이며 삶을 향한 몸부림이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비장한 투쟁이 선도투쟁으로 진행됨에도 투쟁의 맥을 이어 연대로 떨쳐 일어나는 투쟁동력이 조직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답답함과 암울함’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암울함을 극복하고 해방세상을 향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야 할 과제와 임무를 안고 있다. 특히 총파업전선으로 당면한 암울함을 돌파하겠다는 약속과 결의로 출범한 한상균 집행부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회성 총파업을 성사시킨다고 해서 승리로 귀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투쟁을 빌미로 대대적인 반격을 기획하고 투쟁대오를 침탈할 것이다. 때문에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높여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전략을 수립하여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복원하고 미래를 향한 노동운동 노선을 구축해야한다. 노선 없는 민주노조정신은 미래가 없으며, 노선 없는 정치세력화는 무원칙한 합종연횡에 지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의 정책생산 기지인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의 노동운동이념)책에서는 전평과 전노협 그리고 민주노총의 노선을 ‘변혁노선’으로 분류한다. 이들조차 민주노총의 노선을 ‘변혁노선’으로 규정하는데도 당사자인 민주노총은 자신의 노선을 명백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계급이 꿈꾸어야 할 노동해방 세상에 대한 전망을, 변혁노선을 다시금 되새겨 이념과 노선을 분명히 해야만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복원하고 미래를 향한 진군을 계속할 수 있다.

8기 집행부의 당면 과제는 조합원을 조직하여 투쟁하는 것   

‘한상균 선대본’은 투쟁하는 집행부를 자임하며 당선되었고 핵심공약은 ‘박근혜와 맞서는 총파업 투쟁’이다. 노동운동의 원칙과 투쟁을 자임한 후보로서 당연한 공약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한다. 그럼에도 총파업조직과 성사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전에 반복되었던 민주노총의 ‘뻥파업’ 때문만은 아니다. 주체적 조건, 즉 조합원 대중이 분노는 있으나 결의를 모아 투쟁으로 떨쳐 일어날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 현재의 고민이며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조직에서 무수한 노동자가 해고되고 죽어나가도 그에 상응하는 투쟁이 없었다는 것은 구체적 전략의 부재에도 그 원인이 있겠으나 오히려 투쟁방식이 합법성으로 편중되면서 전술의 활용이 제한적이고 협소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투쟁의 주체형성을 방기함으로서 소위 상층위주의 사업방식이 만연하여 노동조합의 주인인 조합원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화 되었다는 데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적극적이고 공세적 투쟁보다는 소극적이고 안정을 지향하는 사업을 한 결과, 조합원대중은 무기력과 패배주의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에 맞서는 총파업’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 대중을 조직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민중연대의 정신을 복원하고 투쟁의 장으로 

퇴조정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방안은 위력적인 계급투쟁이며 총파업이다. 당위적으로는 누구나 총파업을 외칠 수 있지만 계급적인 총파업은 조직이 그에 걸 맞는 준비가 되어야 가능하다. 총파업을 조직하려면 총파업의 필요성에 대해 노동자 대중과 공유해야 하고 함께 결의를 모아나가는 선전, 선동이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있고 각각의 연맹이 있고 지역조직이 있다고 해도 현재의 주체적 조건을 감안했을 때, 민주노총만으로 총파업을 조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총파업을 기필코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총파업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단체, 정치조직, 시민단체, 학생, 농민, 여성, 언론 등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투쟁의 결의를 모아야 한다. 민중연대를 통해 노동자투쟁을 지원하고 엄호할 연대단위를 확보하고 선전, 선동은 물론 교육과 조직에 있어서도 단체와 정파를 망라하고 역할을 분담하여 총력을 집중해 나가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경선과정에서 혹시 남아 있을 수 있는 불협화음을 없애고 모든 정파와 단체와 조직이 함께 하는 투쟁이 기획되어야 한다. 제 단체와의 간담회, 토론회 등의 성과로 투쟁이 조직되고 노동자계급의 분노가 총파업 불길로 타올랐을 때, 민주노조운동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를 것이고 정세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한상균 집행부가 민주노총 8기 출범을 알리는 동시에 좌파는 심판대에 올려졌다. 그동안 민주노총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좌파였기에 이번에는 ‘심판대에 올려진 좌파’가 되고 말았다. 운동진영의 파벌을 구분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동안 민주노총 총파업 불발과 사업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던 좌파로서 총파업성사의 과제는 너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무거운 과제를 함께 안고 민주노조운동의 미래와 변혁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장으로 장엄한 발길을 옮겨야 한다. 세밀하고 과학적인 전략과 전술을 시급히 준비하여 위기의 노동운동을 희망의 노동운동으로 전환시켜야 할 임무와 역할이 민주노총 8기 집행부에게 부여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향한 길이라면 어렵고 힘겨워도 엄중히 주어진 역사적 임무를 수행한다는 결의를 다지고 승리를 향한 열망으로, 노동자계급의 열정으로 모두 함께 투쟁의 길로 가야한다. 이 길만이 자본과 박근혜정권의 반 노동자적 발상에 철퇴를 가하고 노동자계급의 앞날에 새로운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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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뮤니스트

    1. 맞춤법부터 바르게 : 곡간->곳간

    2. 죽임의 군사용어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전투성', '총파업전선', '미래를 향한 진군' 이런 표현이야말로 가장 인간답게, 함께 살자는 노동운동이, 소위 '좌파'가 버려야 할 언어의 습속이라고 봐요.

    3. 맑스가 보았다면 기겁할 하이데거적 개념, 미래(죽음)를 향해 달려가는 장엄/엄숙/숭고미라뇨. 이게 얼마나 몸서리치고 무서운 표현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살육의 전쟁시기 제국주의와 국가주의가 끓어넘치는 표현같아요. 가령, 일본 제국주의나, 독일의 제3제국에서 자국 병사들을 총알받이로 내몰면서 이런 표현을 즐겨 썼죠. 맑스와 전혀 상관없는 개념이고 표현이죠. 또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힌 채 달려가기만 하면 장밋빛 미래가 도래하나요. 그렇게 해서 필연의 왕국이 가고, 자유의 왕국이 온답디까. 대중도 다 아는데...고개 숙이고 가운데 손가락 치켜들겝니다. 누굴 기만하냐고. 견결한 좌파라면 제대로 알고 선동을 하던가, 설득을 하던가 해야겠죠... '계급의 분노가 총파업 불길로', '장엄한 발길', '미래를 향한 길이라면 어렵고 힘겨워도 엄중히 주어진 역사적 임무', '승리를 향한 열망'

    4. 현실에 조응하는 내용을 생산하셔야죠. 동어반복적이고 근대계몽주의의 흔적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이성중심의 사고는 이제 넘어서야 할 때도 되었건만... '과학적인 전략과 전술'(도대체 그게 뭔지 궁금하네요.)

  • 꼬뮤니스트님에게

    꼬뮤니스트님의 댓글 잘 보았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동어반복을 계속 하실 건가요.꼬뮤니스트님이 단 댓글내용은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아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고 양규헌씨의 표현, 글이 여러 가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언제까지 이런 류의 댓글을 다실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맑스가 보았다면, 이제 이런 류의 식상한 비판은 그만하고 대안적 비판과 실천을 위한 노력에 더 힘을 기울이라고 했을 것같습니다. 꼬뮤니스트는 가장 급진적인 정치를 사고, 제안하고 실천하는 이들 아닙니까. 혹시라도 기분상하셨다면, 진정성을 담아 용기를 내 하는 말이니 너그러운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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