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고사작전에 맞선 5년의 투쟁, 한국쓰리엠지회 노동자

[오늘,우리의투쟁]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1)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기업이미지로 가려온 차별과 착취의 현장

2009년 5월 14일, 한국쓰리엠 나주공장 70여 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바로 다음날 나주공장에서만 250여 명, 이후 화성공장까지 현장직 노동자의 90% 이상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조합원 수가 670여 명에 이르렀다. 이례적으로 높은 조직률은 노동자들이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2009.5.14.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결성총회 [출처: 금속노조광주전남지부]

쓰리엠은 전 세계 70여 개 국가에 진출한 113년 역사의 다국적기업이다. 1977년 두산그룹과의 공동투자로 한국에 진출한 후 1990년 나주공장, 1991년 화성 기술연구소, 1997년 평택유통센터, 2006년 화성공장 등을 차례로 설립하며 현지화에 성공했고 현재는 미국 본사가 100% 지분을 가진 외투기업이다. 1만 7천 종이 넘는 제품을 생산 판매하며 창의와 혁신의 기업이미지를 구축해 온 쓰리엠은 ‘타협하지 않는 정직성과 성실성’을 핵심적인 기업 윤리로 내세운다. 직원에 대한 투자를 통한 동반 성장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각종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인 기업으로 선전해 왔다. 그러나 노동조합 설립총회에서 터져 나온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는 노동조합 결성총회에서 생활임금 보장, 고용안정 보장, 구조조정 중단, 근무평가제도 폐지, 산재 공상처리 중단, 여성노동자 처우 개선 등을 요구로 제시했다. 더불어 지회는 ‘우리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긴 착취와 굴종의 삶은 이제 우리의 삶이 아니다. 이제 비굴함을 떨쳐 버리고 당당한 주인으로, ‘타협하지 않는 성실성과 정직성’으로 일어선 진짜 노동자임을 만천하에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대규모 공장이 거의 없는 문평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쓰리엠 나주공장은 지역에서 손꼽는 좋은 직장이었고, 초창기부터 지역 주민들이 대거 입사해 일해 왔다. ‘지역을 먹여 살리는 외국계 기업’이라는 프리미엄과 ‘사회공헌’ 전략을 통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미지를 홍보한 덕에, 광주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도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현장은 신음하고 있었다. 임금과 진급을 좌지우지하는 근무평가제도로 노동자들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뼈 빠지게 일해야 했고, 그러다가 다치면 산재처리는커녕 낮은 근무평점으로 엄청난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5점, 누군가에게는 1점을 반드시 부여하는 근무평가는 악질적인 통제시스템이었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더욱 개별화되었으며 일하는 기계로 전락했다. 근무평가를 빌미로 한 부당한 관행들이 비일비재했고, 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한 줄서기는 물론 서로 경쟁하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3교대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을 무시한 채 사무직 출퇴근 시간에 맞춰 통근버스를 운행하고, 연 1회 지급되는 안전화가 닳아빠져 교체를 요구해도 무소식이고, 계절이 바뀌어도 새로 지급되지 않는 작업복을 자기 돈으로 사 입으면서도 노동자들은 바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임금과 진급을 볼모로 한 근무평가로 옭아맨 정규직 노동자들과 형편없는 저임금으로 착취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노동 위에서, 한국쓰리엠은 연간 1천억 원의 순이익을 내며 승승장구했고 ‘바른 외국기업상’ 수상이니 ‘한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선정 등으로 언론에 회자되고 있었다.

노조에 대한 기형적 인식과 조직적 노조파괴 행각

적당한 임금과 적당한 복지, 회사의 근무평가에 길들여졌던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한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무심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이 서로를 마주보기 시작했고, 맞춰 입은 조끼와 함께 부르는 투쟁가로 일터에 활기가 생겨났다. 노동조합 결성 직후 전 조합원의 파업투쟁으로 임금협상이 타결됐다. 상여금도 없이 100만원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일했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됐고, 노조는 3명의 전임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현장의 해방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임금협상 이후 진행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은 사측의 시간끌기로 지지부진했고, 동시에 본격적인 노조탄압이 시작됐다. 2010년 3월부터 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하자 5월 10일, 대표이사는 면담을 통해 단협과 현안문제의 해결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6월부터 나주공장 앞에서 노동조합이 농성을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용역깡패를 투입해 천막을 강제철거하고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8월부터 농성을 시작한 화성공장 역시 용역깡패들이 상주하며 조합원들을 도발하고 충돌을 유도했다.

2010년 한국쓰리엠 사측은 교섭해태와 약속파기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기존의 경비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컨택터스를 불러들여 공장을 맡겼다. 커터칼을 소지하고 현장을 누비는 수십 명의 용역깡패들은 조합원들에게 서슴없이 사적 폭력을 휘둘렀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 끝까지 쫓아와 카메라를 부숴버렸다. 노동자들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사측 관계자들과 얘기 몇 마디를 나누고 돌아설 뿐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을 폭행하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아연실색했던 조합원들은, 폭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무더기 징계를 당하고 해고되고 용역들로부터 고소 고발을 당했다.

사측은 약속 이행 대신 조합원에 대한 폭력을 선택했고, 노조는 투쟁으로 맞섰다. 2010년 8월에는 나주시청 항의농성으로 시장의 문제해결 노력을 약속받고, 9월에는 일주일간의 서울 본사 사무실 점거농성으로 임원진 간담회를 통한 구두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약속은 또다시 파기되었다. 노조파괴에 혈안이 된 사측의 탄압은 계속되었고, 노조는 수시로 현장파업을 벌이며 서울 본사 상경투쟁과 지역 및 전국의 연대투쟁을 이어왔다.

  한국쓰리엠지회 여의도 서울본사 상경투쟁 [출처: 금속노조한국쓰리엠지회]

그렇게 싸우는 동안 19명이 부당해고를 당했고 250여 건의 부당징계가 난무했다. 노조간부들에게는 1억 5천만 원의 손배가압류가 떨어졌고 조합원들에게는 교섭을 핑계로 임금과 진급에 막대한 차별이 가해졌다. 사측은 명절이면 조합원의 집을 방문해 노모를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면담을 빙자한 노조 탈퇴 회유는 일상이 되었다. 부서전환배치는 셀 수도 없을 만큼 강행되었고 급기야 TPM 부서를 신설하기까지 했다.

전반적인 보수유지 업무를 담당하는 양 ‘Total Position Maintenance’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상 TPM 부서는 소위 강성 조합원들을 격리하고 업무에서 배제해 노조 탈퇴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일 잘하기로 소문났던 경력 십 년 이상의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풀을 베고 페인트칠을 하고 청소를 하며 모멸감을 견뎌야 했다.

오로지 노조 파괴를 위한 일념으로 폭력과 부당노동행위는 물론, 관리자들을 동원한 조합원 탈퇴 경쟁까지 벌여 온 한국쓰리엠의 노무관리 실태는 놀랍다. 사측은 비조합원 전환배치를 통한 ‘청정조’ 만들기를 ‘수혈’, 노조 탈퇴를 ‘졸업’이라 부르며 노조에 대한 병적인 거부감을 시스템화하고 노조 활동 자체를 범죄시하는 기형적인 사고를 조직적으로 확산해왔다. 하지만 폭력과 탄압으로 점철된 시간들을 견디고 버티며, 여전히 100여 명의 조합원들이 한국쓰리엠지회를 지키고 있다.

자본과 결탁한 노동행정, ‘치외법권’을 누려온 노동탄압 외투자본

사측이 대놓고 저지르는 폭력과 부당노동행위에 노조의 동력은 급전직하했다. 결성 1년 반 만에 4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떨어져 나갔다. 사측은 노조가 파업 중인데도 버젓이 대체인력투입과 신규채용을 하고, 교섭 자리에서는 성의 없는 초안을 던져놓고 시간을 끌면서 취업규칙 적용도 배제해 조합원들에게만 임금을 차별하고 체불했다. 하지만 수차례의 지방노동위원회 구제신청에도 번번이 면죄부가 떨어졌다. 노조 결성 이후 파괴공작에만 골몰하며 단체협약조차 체결하지 않은 사측이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든든하게 뒤를 봐주는 지역 노동행정과의 유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3년 2월 13일에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현안보고에서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한국쓰리엠 인사팀장과 김세곤 전 전남지방노동위원장이 주고받은 뇌물 거래 정황이 담긴 문자를 공개했다. 뇌물 의혹의 주인공인 김세곤은 2009년부터 3년간 전남지노위원장으로 재직하며 노조가 구제신청한 98건의 개별사건 중 86건, 병합처리로는 28건 중 26건을 기각한 장본인이다.

구제신청마다 지방노동위원회가 날려주는 면죄부에 사측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어이없는 결과에 노조가 2009년과 2011년 세 차례에 걸쳐 사건 담당 기피신청을 했음에도 김세곤 전 위원장은 이를 거부하고 심판위원으로 참석해 사측의 손을 들어주는 편파판정을 반복했다. 그는 아무런 문제없이 2011년 노동부를 퇴직한 후 강릉 폴리텍대학 학장으로 부임했다.

이후 3년 임기의 학장직에서 1년 9개월 만에 면직된 그는, 학교측 요구로 60세가 되는 시점에 미리 작성한 사직서는 무효라며 2013년 7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고 한다. ‘차별을 시정해야 할 노동부가 관행이란 이유로 차별을 당연시하는 고질병을 바로잡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질타가 언론을 탔다.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는 유효할 수 있겠지만, 사측과 결탁해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수년 간 쥐어짜고도 아무런 처벌 없이 전관예우를 받은 본인이 바로 그 차별 관행을 공고하게 만든 당사자라는 걸 그는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

한편 노조는 2013년 2월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부당노동행위와 조합원 임금차별 및 체불 혐의로 정병국 대표이사를 고발하고, 7월에는 정병국 대표이사와 김세곤 전 위원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사측은 노조탄압 증거 은폐를 위한 채비를 마치고 광주고용노동청의 시정명령은 무시했다. 도를 넘은 불법행위는 결국 검찰과 노동청의 압수수색을 불렀다.

2013년 10월 15일, 한국쓰리엠 서울본사와 나주공장, 화성공장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진행되었고 침묵하던 언론들이 소식을 전했다. 그간의 조직적 노조파괴 행위와 더불어, 외투기업으로서 특혜를 누리면서도 복수의 유한회사 설립으로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 그리고 적자기업 인수로 재무제표상 수익을 축소해 법인세 감면과 임금상승 억제 수단으로 삼을 우려가 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되었다.

10월 25일에는 정병국 대표이사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나왔다. 노동청의 시정명령을 석 달 간 무시하고 조합원들에게만 체불했던 2년 치 임금은 국정감사 전날 지급을 한 터였다. 의원의 질타와 추궁이 이어지자 그는 “앞으로 잘 하도록 하겠다. 노조를 인정한다”고 답했고, 노사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재차 묻는 박근서 지회장의 말에 “앞으로 노조측과 잘 풀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2013.7.23. 한국쓰리엠 대표이사 구속촉구 기자회견 [출처: 금속노조한국쓰리엠지회]

단체협약 체결과 해고자 복직, 노동조합의 첫 발을 떼기 위해 싸워온 5년

검찰과 노동청의 조사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진행될지, 대표이사를 불러들여 호통을 친 국회가 끝까지 노동권을 엄호할지 알 수 없다. 미친 듯이 노조를 탄압해 온 사측이 얼마나 전향적으로 노력할지 역시 미지수다. 하지만 4년 반 동안 모질게 이어진 노조탄압에도 갖은 불이익과 징계‧해고를 감내하며 싸워온 조합원들은 2013년 10월,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말을 잠시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조합원들은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는 노조탄압에 터무니없이 관대한 현실을 몸소 경험해 왔고 잘 알고 있다. 극심한 용역폭력을 온몸으로 견디고 상상을 초월하는 사측의 괴롭힘을 버텨내고 수없이 반복된 편파판정에 울분을 토하며 깨달은 것은,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5년 노사갈등 풀겠다’는 대표이사의 공개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다. 사측은 여전히 교섭을 해태하고 있고 뜨거웠던 미디어의 관심은 서서히 사그라졌다.

그러나 탄압은 정점이고 출구는 보이지 않을 때에도 조합원들은 의지로 낙관하며 싸워왔다. 십 몇 년을 일하면서 저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회사 생활, 로봇처럼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일만 하면서 살았던 현실을 바꿔준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망설임 없이 노동조합은 ‘새 삶’이고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회사에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이 바로 ‘승리’라고 말한다(투쟁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릴레이 영상편지, '승리를 부르는 사람들(승부사)' 6회에서 인용, 2013. 4. 23. YOUTUBE 검색).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 이십 년 가까이 침묵하던 현장을 일깨운 노동조합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였다. 아직도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고 부당해고를 당한 조합원 중 열 명은 여전히 해고자다. 탄탄대로를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온전한 첫 걸음을 떼기도 전에 필사적으로 맞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던 탓이다. 그러나 이제는 2009년 5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초창기처럼 힘 있는 점거농성이나 공세적인 투쟁을 벌이기에 지금은 힘이 좀 빠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이 관심할 만한 극적인 상황이 없어도, 멀리의 연대를 청할 투쟁의 장을 당장 마련할 수 없어도, 아침이면 선전전을 하고 점심이면 중식집회를 하며 하루하루의 투쟁을 이어간다. 그리고 별로 다를 바 없는 매일의 투쟁 소식이나마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열심히 알려낸다.

그런 하루들이 쌓이고 쌓여 ‘사회에 공헌하는 글로벌 다국적기업’이라는 분칠 뒤에 가려져 있던 민낯이 드러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쓰리엠의 실상이 알려지고 있다. 시간은 결국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조합원들의 편이 될 것이다.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조합원들이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 노조가 생기자마자 함께 일하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했고, 복수노조 사업장이 아님에도 파업을 통해 노조창립 4주년을 기념해야 했던 노동자들이다. 오늘 당장 노조 안 하면 ‘편하게’ 살 수 있는 노동자들이 삶을 걸고 지켜온 5년의 싸움, 이제는 우리가 응원을 보내고 힘을 보태야 할 때다.

[출처: 금속노조한국쓰리엠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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