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발전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

[소셜파워] 독점이윤의 사회화 없이 협동조합도 없다

1.
한국에서 비정규직, 저임금 불안정 노동, 양극화, 청년 실업, 반 값 등록금, 계속 망해가는 자영업자, 노인 문제를 해결할 해법은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해법을 제시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해법이 아니면 기존의 거의 모든 노력들을 낡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4년 이들은 정부 여당까지 설득하여 자신들의 해법을 법제화시켰다. 이 법안이 통과될 때는 여당, 야당 다 합쳐서 단 한 표의 반대표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해법에 따라 만들어진 조직들의 현재 상황은 한국의 자영업자들이 몰락해가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지금 말한 ‘그들의 해법’은 ‘협동조합’이고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은 2014년 12월 말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안이다. 사회적 경제를 주장하는 ‘진보적인 정치경제학자’들이 주도하는 ‘사회적 경제’의 큰 축인 협동조합론이 여당과 정부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법제화가 되었고 협동조합 지원에 대한 정부 예산까지 할당되었다. 더 나아가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한국경제의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라고 ‘진보적인 사회경제학자’와 한 몸임을 보여주는 발언을 하면서 ‘사회적 기업 육성법’를 발의했다. 그러나 실제 협동조합이 이룬 성과는 어떠한가?

  협동조합 설립현황 [출처: http://www.socialenterprise.or.kr/cooperative/coop_present.do 접속일자. 2015년 6월 19일]

2015년 6월 19일 통계를 보면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2년 6개월 동안 설립된 전체 협동조합은 7,300여개니 한 달에 240개 가량 만들어진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연말이면 8500개, 내년에는 1만개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2.
2015년 6월 8일자 세계일보 <겉도는 협동조합 절반은 폐업상태>를 통해 김성오 한국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은 “그동안 일부 지역의 실태를 조사하고 수많은 협동조합 창업 경영 교육과 컨설팅을 하면서 파악한 바로는 협동조합의 50% 정도는 전화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전화를 받는 협동조합 중에서도 사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아 약 10%의 협동조합만 재화나 용역의 구매 생산 판매 제공 등으로 흑자든 적자를 기록한다고 그는 전했다. 김 이사장은 “충남지역은 전체 협동조합 중 운영되는 협동조합의 비율인 ‘작동률’이 15∼20%인 데 반해서 서울 등 광역시는 7∼8%로 낮고 전국 평균은 10%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동안 해산한 곳은 일반협동조합 79곳, 사회적 협동조합 2곳 등 고작 81곳이다. 대부분 해산 절차도 밟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즉각 반응을 한 것은 ‘사회적 경제’를 주장하던 경제학자들이 아니었다. 기획재정부가 당일 바로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기획재정부는 “정상 운영 중인 협동조합이 10%에 불과하다는 보도내용은 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한 “2013년 제1차 협동조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후 약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시점 당시 사업을 운영 중인 곳이 54.4%로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현재 협동조합의 정확한 운영 현황을 파악하고 현장 애로요인을 점검하기 위한 제2차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기재부는 2013년 조사결과를 가지고 2015년 현재 협동조합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김성오 이사장의 주장을 개인주장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2013년 조사결과를 가지고 김성오 이사장의 2015년 현재 시점의 발언을 반박할 근거가 되기에는 몹시 부족하다.

3.
우리가 여기에서 보아야할 것은 왜 사회적 경제론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이나 ‘노동운동가들’ 보다 먼저 정부 부처에서 화들짝 놀라면서 ‘협동조합’이 그렇게 몰락한 것이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무리가 가는 반박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를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선을 그었던 ‘규율있는 자본주의론’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된 유승민이 당시 그 흐름을 주도했었다. ‘규율 있는 자본주의론’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는 노선이다.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재벌만 편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해왔다.

‘규율 있는 자본주의론’의 가장 주요한 이론가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세계화는 적극 찬성하지만 그 것이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의 한국번역서 제목이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이다. 그가 속해 있는 ‘네오(neo) 워싱턴컨센서스’ 담론을 주도한 경제학자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이다. 네오 워싱턴컨센서스를 정책으로 채택한 정권은 없다. 언제나 채택할 것처럼 코스프레를 하면서 신자유주의의 핵심 정책을 정리한 위싱턴컨센서스의 수명을 계속 연장 하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갈등을 이야기해봤자 그들은 한 몸이다. 공안검사와 법무장관 출신의 새 총리는 공안정국을 주도할 것이고 새누리당의 원내 대표는 ‘규율 있는 자본주의론’을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보완해나갈 것이다. ‘야단치는 엄마-몰래 용돈 주려는 아빠’의 모습으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나아갈 것이고 새정치민주연합는 ‘말리는 시누이’ 모양을 하면서 최대한 협조를 할 것이다.

4.
그렇다면 ‘사회적 경제론’을 주창해온 ‘진보적인 정치경제학자’들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자. 작금의 협동조합 몰락에 대한 중요한 반박(?)은 정부에서 급하게 해줬고 앞으로도 해 줄테니 하시던 연구활동과 강연과 저술 작업을 편하게 계속 하면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공안/규율 있는 자본주의 정국에서도 진보적인 사회경제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강연을 시작할 때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은 이기적인가 물어보면서 시작하실 것이다. “인간은 호모 레시프로쿠스(homo reciprocus)로 상호적 인간의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집단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화할 수 있다.” “인간은 원래 협동하는 존재”로서 무한 경쟁에서 빠져나와 협동과 신뢰로서 새로운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을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무한경쟁에서는 빠져나온다고 했다가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가 정신도 이야기하실 것이다. “노동조합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하지만 동시에 이들 노동자들은 기업가 정신에도 익숙하다. 사실 노동자라고 시장에 적응할만한 창조성을 가지면 안 될까?”라고 협동조합을 통해서 창업을 해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격려를 하실 것이다.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이 협동조합의 천국이라고 찬양하면서 그 곳의 성공사례를 계속 늘어놓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곳은 문화가 남다르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보적인 사회경제학자들이 (빼먹고)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협동조합들은 ‘기업가 정신’만이 아니라 ‘사회화의 기반 위’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볼로냐가 속해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 주정부는 1974년에 지역산업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지역개발기구로서 에르벳(ERVET)을 설립했다. 에르벳는 민관 파트너쉽으로 운영되며, 사법(Privat law)에 의해 통제되지만 에르벳의 소유구조를 보면, 사회화 기관이다. 에르벳 지분의 80.04%를 보유한 최대 주주는 에밀리아 로마냐 주정부이며 나머지는 지역 금융기관과 지역상공회의소, 지역의 하위 지자체, 각 산업협회가 보유하고 있다. 에르벳의 역할은 지방정부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지역기술이전센터 등 각종 리얼서비스센터들을 통괄하는 조정자로서 주정부 전체의 통합적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하며 또한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지역 기업들에게 정보제공 및 기술지원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마찌꼬바(작은 공장)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의 실제적인 네트워크가 이곳을 통해서 구축되어 왔다는 것이다.

에밀리아 로마냐가 무상교육, 무상의료인 것은 협동조합이 발전했고 그 곳 문화가 남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평균 9명의 마찌꼬바 수준의 협동조합이 아무리 네트워크로 모인다고 하더라도 교육과 의료를 무상으로 할 수는 없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교육과 의료의 사회화는 에밀리아 로마냐 주정부가 에르벳(ERVET)이라는 사회화 기관을 통해서 협동조합을 네트워크로 엮어줄 수 있는 사회화 역량에서 나온 것이다.

협동조합도 제대로 하려면 사회화가 필요하지만 진보적인 사회경제론 학자도 정부 여당도 협동조합을 위한 사회화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에밀리아 로마냐를 거론하는 것은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제공하면서 ‘마찌꼬바’에서 필요한 정보와 경로를 엮어주는 높은 사회화 수준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호모 레시프로쿠스인 불안정 노동자들이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무한경쟁에서 빠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협동조합에 대한 논란은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과 관련한 보수, 재벌 진영의 반격 때문이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조직을 독자적인 제도적인 영역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을 규정하는 법이다. 올해 3월 여야가 국회처리를 합의했지만 일정상 주춤하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보수 싱크탱크와 재벌 경제지는 연일 사회적경제기본법이 헌법 정신과 맞지 않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떠들고, 협동조합 등이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세금만 낭비하는 좀비 기업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앞서 밝힌 대로 정부가 먼저 나서서 이런 비판을 해명하고 있는 모양새지만 문제의 근원은 어찌되었건 협동조합의 부실에 있다.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과 관련된 논의에서도 헌법 가치 등 이념 문제를 제외하면 공공조달 참여와 기금 설치 운영 등 정부의 지원방안이 핵심이다. 애초에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조직들도 국가의 지원과 관계설정 없이 독립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조건이며, 그 때문에 이것이 마치 현재 자본주의 위기의 대안인양 이야기되는 것도 근거없는 이야기였다. 독점이윤을 지키고 키워나가려는 재벌이 이마저도 이념논쟁으로 비화시켜 무마시키려 하는 것은 불황속에서 국가의 자원을 더 독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결국, 협동조합 논의조차도 ‘연대’와 ‘협동’ 등의 가치논쟁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독점이윤의 사회화를 중심으로 경제구조의 전체적 재편 속에서 이야기될 때, 현실적인 활로가 열릴 것이다. [참세상연구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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