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끝

[연정의 바보같은사랑](86) 굴뚝농성 3백일 즈음, 스타케미칼 해복투 차광호 씨

[필자주] 20년 동안 일했던 공장의 일방적인 폐업 이후 공장 분할매각 중단과 노사 합의에 따른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2014년 5월 27일 구미 스타케미칼 구미 공장 굴뚝에 올랐던 차광호 씨(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의 굴뚝 농성이 일주일 뒤면 일 년이 됩니다.

그사이 서울 중앙우체국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LG·SK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공장 굴뚝에 올라갔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내려왔습니다. 그런가하면 거제 대우조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강병재 씨가 크레인 고공농성을 시작했고, 부산에서는 막걸리 ‘생탁’ 노동자와 택시 노동자가 고공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회사는 문제 해결을 위한 성실한 교섭 대신 공장 철거 시도를 하고, 차광호 씨를 포함한 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11명에게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하여 지난 3월 30일부터 1일 1인당 50만원을 내라는 법원 결정이 나온바 있습니다.  

차광호 씨를 포함한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굴뚝 농성과 함께 구미 공장을 지키고 있고, 충북 음성 스타플렉스 공장 집회와 서울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 앞 노숙농성 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굴뚝농성 1년을 앞두고 힘겹게 겨울을 나고 여름 태풍 걱정을 하며 굴뚝농성을 지속하는 결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차광호 씨의 굴뚝농성 300일 즈음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차광호 씨는 지금도 하루하루 가족들을 설득하며 고용승계가 관철될 때까지 내려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는 5월 25일(월) 저녁 6시에는 ‘음식 연대의 날’이 5월 26일(화) 오후 2시에는 ‘스타케미칼 투쟁 굴뚝농성 1년 결의대회 및 문화제’가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앞에서 있습니다. 또, 6월 12일(금)에는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 주점을 서울 남영역 ‘슘’에서 합니다. 많은 관심과 연대 부탁드립니다.

* 스타케미칼 해복투 후원 계좌: 농협 302-0853-7374-11 (예금주: 오승미)


  스타케미칼 투쟁 굴뚝농성 1년 결의대회·문화제 웹자보 [출처: 스타케미칼 해복투]

기분이 날아가게 좋아요 

“기분이 아주 좋아요. 날아가게 좋아요.”

3월 17일, 차광호 씨는 지난 겨울 이후 두 번째 목욕을 했다고 했다. 겨울 내내 물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목욕을 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초봄인데도 이날 굴뚝 온도는 27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마침 바람도 없고 해서  ‘기회는 이때다’ 싶어 비닐로 탕을 만들고 물을 부어 목욕을 했단다. 때도 밀었다 한다. 굴뚝에서 내려가면 가장 먼저 사우나에 가서 때를 밀고 싶다던 소박한 그의 소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그가 올라간 지 295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사이 광화문 광고탑 고공농성을 하던 씨앤앰 케이블방송 노동자인 임정균·강성덕 씨가 50일 만에 땅을 밟았고, 평택 쌍용차 공장 굴뚝에 올라갔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2명 중  한 명이 내려왔다. 그리고 LG·SK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서울 중앙우체국 광고탑 고공농성에 들어간 지 40일이 지났다.

차광호 씨는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과 자주 연락한다. 중앙우체국에서 고공농성 중인 강세웅 씨(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 비정규직 지부)는 노동조합 운영과 투쟁에 대해 차 씨에게 많이 묻기도 한다. 그는 얼마 전 쌍용차 굴뚝에서 농성을 하던 김정욱 씨가 내려온 것에 대해 안도와 함께 이창근 씨가 혼자 있게 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굴뚝농성 300일 즈음, 차광호 씨 [출처: 스타케미칼 해복투 차광호 대표]

여름 태풍이 걱정이에요 

“봄이 되니 희망이 느껴지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간 건 좋습니다. 겨울 날씨 원래 춥다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많이 추웠으니까요. 문제는 바람 입니다. 여름 태풍이 걱정이에요.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죠. 제가 잘 하는 게 없어요.”

그는 벌써 여름 태풍 걱정을 한다. 얼마 전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중환자실에 계시던 어머니 곁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애써 누르고 아내와 통화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필자와 통화하기 전 날 물을 드실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고 했다.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는데,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장모님의 암투병과 시부모님의 교통사고를 혼자 감당하고 있는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차광호 씨는 몸을 마음대로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좋아하는 운동을 마음껏 못하는 것부터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많이 힘들다. 또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해복투(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성원들의 생계도 걱정이다.

“아내가 한 번 내려오라고 했어요. 내가 화를 냈어요. 통화로 언쟁을 했습니다. 이 사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고, 아내가 일정 정도 동의를 했어요. 매일 8시에 전화 통화를 하는데 가끔 목소리에서 그리움과 원망이 느껴집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죠. 기분 좋은 날도 우울한 날도 다 느껴져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것도 내 욕심이겠지만... 내려가면 잘 해주겠다는 말 밖에...”

이기는 투쟁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내려오실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 안내려 가려고요. 김세권 자본이 용서가 안 됩니다. 내려가서 투쟁하려고도 했습니다. 열흘 전에 밑에 동지들에게 힘들다는 말도 했습니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몸이 성한 이상 견디고 싶어요. 이겨내고 싶어요. 자본을 압박하는 시간을 더 가져야 합니다. 원리적으로 생각하려고요.”

굴뚝농성 300일을 맞는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그가 착잡한 만큼 사측 역시 뜻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해 힘들 거라고 했다. 295일과 309일 고공농성을 했던 천의봉(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울산비정규직지회)·김진숙(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씨가 언론 매체를 통해 내려와서 싸우자고 제안한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그 뜻은 알겠지만 견디고 싶다고 했다. 최근 한 활동가도 전화 통화로 내려오라는 제안을 했다. 기륭투쟁을 다 잘 했는데, 94일 단식농성만큼은 안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다. 그 이후 단식농성 30일 40일로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된 현실을 이야기 했단다.

“저도 고민 많이 했습니다. 오늘 그 고민 속에 답을 내렸습니다. 여기 올라오기 전에 밑에서 해결될 상황이고 문제를 알려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안 올라왔을 겁니다. 그게 안 되서 올라온 겁니다. 나도 힘들지만, 김세권 자본도 힘듭니다.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309일 기록을 깼다 안 깼다에 의미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고공농성이 길어지는 건 우리 사회가 악화되어 가고 있다는 걸 반영하는 거에요. 좋은 건 아니죠. 제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이걸 돌파해내고 이기는 투쟁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힘든 고비를 넘긴 차 씨는 지금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요즘은 책을 보고 목욕을 하고 문화제 발언 준비를 하는 등 세워둔 계획을 실행하는 자신을 보며 자신감을 얻는다. 무엇을 더 결의할 게 남았는지 차광호 씨는 굴뚝농성 300일을 앞두고 머리 삭발을 했다.

연대는 그에게 여전히 가장 큰 희망이다. 한의사 노태맹 씨 등 건강을 책임져주는 이들과 빨간 털모자와 목도리를 떠갖고 온 예천 시민, 농성장에서 거의 먹고 자다시피 하면서 그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는 조창수(민주노총 경북지역일반노조) 씨와 이재욱(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조직국장) 씨 등 모진 겨울을 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이들이 많다. 쌍용차 굴뚝 농성자들이 공장 안 동료들로부터 옷 선물 받은 게 부러웠을 때, 겨울 점퍼를 선물해준 ‘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떠오른다.

  굴뚝농성 300일 문화제가 있던 날, 굴뚝에서 손을 흔드는 차광호 씨

가족들과 밥 한 끼 먹고 싶어요 

130일 전이던 연말에는 내려가면 가장 먼저 사우나 가서 때를 밀고 싶다고 했던 차광호 씨에게 내려가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가족들과 밥 한 끼 먹고 싶어요. 장인 장모님과 부모님 모시고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없는데, 여행도 가고 싶고요. 밥 한 끼 먹고 싶어요. 그러네요. 사우나요? 사우나도 가고 싶죠.”

며칠 뒤, 스타케미칼 공장 앞에서 차광호 씨의 굴뚝농성 300일 문화제를 했다. 그는 여전히 노동자가 투쟁해서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이길 때까지 견디어 보겠다며 승리하면 내려가는 게 자신의 입장이라고 했다. 문화제 때, 차광호 씨와 전화 통화를 하던 진행자가 물었다.

“지금 행복하세요?”
“네. 좋습니다.”


몸살처럼 아팠던 이 겨울 끝에서 나지막히 불러보는 네 이름 낯설어
이제 나는 정말로 괜찮은 건지 가끔씩 소리 내 웃기도 한다
언 땅위를 헤매던 외로운 걸음은 녹지 못해 한참을 시름거리다
이 겨울이 가기만을 기다렸다오 애타게도 기다렸다오
다시 새봄이 오면 따뜻한 봄볕 잔디에 이 맘 편히 뉘이고 싶지만
아직도 바람이 차다 내일을 믿으려하오 그러려 하오
가을 가고 겨울 지나 그다음엔 봄 다시 여름 태양아래 그리워질까
이렇게도 시린 바람이 이렇게도 모진 겨울 끝

- <겨울끝>, 정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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