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길 열어주겠다던 철도청 약속 믿었는데"

새마을호 여승무원 20명, 집단 계약해지에 맞선 투쟁 시작
철도청 서울지방본부 앞에서 첫 집회

“해지 통고서라는 걸 받고, 기다려라 될 것이다. 기다렸습니다. 정규직 해주었습니다, 철도대 사비생들을... 우리가 왜 투쟁에 동참을 못했을까요. 계약직은 리본이라도 달면 당장 짜른다고 으름장을 놓는 팀장. 고분고분 있음 어떻게든 해준다고 달래 놓고선... 아니란 거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맘에 기다렸습니다”

지난 3월 3일 철도청은 올 12월 31일부로 새마을호 계약직 여승무원 31명에 대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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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협으로 정규직화 합의, 살 길 열어 주겠다 누차 약속

철도청은 지난 2002년 열차승무원의 극심한 인력 부족 상황에서 철도전문대생 및 일반인 계약직을 도입했다. 이후 철도청은 2003년 4월 20일 철도단체협약 당시 새마을호 여승무원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약속한바 있다. 그러나 합의 사항은 지켜지지 않았고, 올 3월 집단 계약해지 통고까지 된 상태다. 그리고 바로 인력대행업체를 통해 이들의 빈자리를 채울 신규대기 인력이 채용되었다. 철도청은 정규직이던 여승무원을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이제 그 마저 전원 인력대행업체를 통한 외주화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철도청은 계약해지 철회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철도청에 채용되어 2년, 여승무원들은 한 달 300시간을 열차 안내 방송, 정차역 개폐 확인, 특실 서빙 등 열차 내 온갖 잡무를 담당했다.

24살 사회 초년생으로 입사했다는 한 승무원은 “계약 해지라는 건 생각도 못 해봤다. 2년 일하고 짤릴 걸 알았다면 누가 일을 시작 하겠나”고 반문했다.

해고 통고 후 8개월, 계약직이라는 제약 때문에 싸움에 나서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이제야 계약 해지의 부당함에 맞선 투쟁을 시작한 이유는 “철도청의 약속을 그래도 믿었기 때문”이라고 여승무원들은 말한다.

“반은 구제해 주겠다. 역사 업무로 전환해 주겠다. 자회사로 보내 주겠다. 고분고분 말 듣고 있으면 설마 너희들을 길거리로 내몰겠냐”


철도대 사비생 100여 명 정규직화 후에 날아든 해고 통지서

같은 계약직이었던 철도대 사비생(철도대는 국비지원이 원칙이다)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갔다. 올 초 철도 사비생 100여 명이 정규직화 되었다. 이 중에는 3개월 근무한 계약직도 있었다. 그리고 일반인 여승무원들에게 집단 해고 통고가 날라 왔다.

이들은 “누구라도 정규직이 되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도대체 정규직화의 기준이 무엇이었나”며 울분을 터트린다. “결국 공사화를 앞두고 정규직화 되지 못한 후배 철도대생들만을 끌어올린 거 아닌가”라는 것이다.

여승무원들은 “철도청에서도 공사화 되면 인원이 충원 되어야 한다면서 여지껏 일해 온 우리를 짜르는 건 2년 상시 고용되었던 우리를 정규직화 시킬 부담을 덜겠다는 이유로 밖에 안 보인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최소한의 전직이나 재고용의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철도청은 KTX 개통을 앞두고 전직 희망자를 모집했다. 당시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은 철도청 소속이었고 고속철은 홍익회 소속이었다. 당시에는 계약 해지의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없는 상황인데다, 전직시 승무만이 아닌 판매까지 해야 하고 철도청 소속에서 홍익회 소속으로 바뀌는 등 여러 근무조건 변경이 있었기 때문에 여승무원들은 거의 시험에 응하지 않았다. 그나마 여승무원의 경우 가산점을 인정한다더니 1년 미만인 사람은 그마저 인정되지 않았고, 응시자 중 2명만이 합격했다.

이후 “새마을호도 형식적으로 새로 뽑는 과정을 거친다고만 했다”는 것이다.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면접도 아닌 서류심사에서 떨어지고 시험 결과 발표 바로 다음날 해고 통고가 되었다.

우리를 기만한 철도청, 뜻대로 물러설 수 없다

“아파도 병가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혹시 쉴라치면 집에 까지 전화해서 엄마를 닦달하기 까지 하는 서러움, 집으로 날라든 해고 통보서에 놀라고 '살길을 열어 주겠다'는 말에 희망을 걸로 일하러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쓰러워 하시던 부모님 생각하면 원망과 배신감만이 남는다“고 한다. 차별 속에서도 공무원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며 적어도 고용의 안정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던 시간들. 타인이 던진 해고 통지서를 보며 이제사 자신이 비정규직이었음을 실감한다는 여승무원들.

“친구들은 내가 비정규직인 거 모른다. 알아도 내가 해고 통고 당한 건 모른다. 창피하고 굴욕스럽다. 철도청이 여태 정규직 노조에게조차 얼마나 독단적인지 보아왔는데, 우리가 이런다고 이길 수 있나 싶다.”

“몰랐으면 모를까 내가 그저 쓰다 버리는 소모품 취급받는 비정규직일 뿐인 거 알았는데, 설사 이긴대도 다시 비정규직으로 돌아가 그 설움을 받아야 한다면 과연 얼마나 돌아갈까. 그리고 정규직이 된대도 이 싸움으로 찍힌 이후 어떻게 일할 수 있을까.”

난생 처음 해보는 집회에, 투쟁 구호에, 녹녹치 않을 게 뻔한 앞날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싸운다는 것 자체가 구차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내 이들의 입에서도 첫 싸움을 시작하는 비정규직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이 하는 말들이 겹쳐진다. “아무리 우리가 힘이 없어도 찍소리 못할 거라 생각하는 철도청에 이기든 지든 꿈틀하는 모습 보이고 싶다”는 오기 말이다. “한 식구라고 말하며 우리를 기만한 철도청에 쥐도 막바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몬다는 거 보여 주고 말겠다”는 다짐 말이다.


첫 집회를 마치고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사진이라도 찍힐까 고개를 들지 못하던 여승무원들은 집회를 마치고 인터뷰를 하며 “버티다 보면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정규직 분들을 보며 뿌듯했다. 정규직이 돼서 더 좋은 현장을 위해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25일 오전 10시 30분 철도청 서울지방본부 앞에서 진행된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첫 집회는 그렇게 투쟁을 시작한 하루 만큼 진보했다. 계약해지된 20명의 서울지방본부 여승무원은 전원 정규직화 쟁취에 나섰다. 이들 곁에는 뒤늦게나마 이들과 적극 연대하겠다는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를 위시한 ‘새마을호 여승무원 정규직화 쟁취 및 철도 비정규직 철폐 공동대책위“가 든든히 버티고 있다.

계약해지 만료 기간 한 달 여, 거대 철도청을 상대로 한 비정규직 노동자 인간선언의 시작,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 투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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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청 , 새마을호 여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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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던이가

    승무원계약직 동지여러분 힘내세요,,정규직화꼭쟁취하세요.

    정규직 쟁취하는그날까지,,

  • 반드시

    2003년 4월 20일 체결한 철도노조와 철도청의 단체교섭에서 합의한 대로 정규직화되어야 합니다. 꼭 승리할 겁니다!

  • 이철의

    미약하지만 이 동지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많은 연대 부탁드립니다.

  • 오류

    철도노조 본부를 말할때 쓰고요
    철도청은 '서울지역본부'가 정식 명칭이어요
    혹시라도 서지본 앞에서 집회한거 아닌가 하고 오해할까봐

  • 미니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고
    주무시기 전에는 꼭 따끈한 물을 드시고 주무세요
    건강하셔야 합니다.
    승리할때까지!!!

  • 챠량인

    저는 차량인으로 승무원을 가끔 봅니다.힘내시고요.가슴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시는 당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힘내시고요.열심히 살아봅시다.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버리지 않을것입니다..힘내세요.

  • 여러분들에게

    작은일 부터 ~~조금씩 이뤄내시길~~응원합니다~정의는 꼭~~~~~~~이깁니다

  • diana

    용기에 존경을 표합니다. 투쟁

  • 마음

    날씨도 추워지는데 가슴속은 더 시립니다..
    당장 나가면 어디서 일해야 할까 하는 막막함에
    도대체 살아갈 의욕조차 없어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아 꿈을 이루어야 할때입니다.
    화이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