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법인화 어떤 문제있나

"정부가 말하는 자율은 총장과 이사회를 위한 자율일뿐"

양복에 넥타이를 멘 교수들이 전국에서 모여 거리에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은 정부가 강력히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는 국립대학 법인화 정책 때문이다. 교수들뿐만이 아니다. 전국 국공립 대학생들도 '국립대법인화저지와교육의공공성쟁취를위한전국국공립대학생투쟁본부'를 꾸려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강도 높은 투쟁을 벌여나갈 것을 밝힌 바 있다.


국립대 법인화가 무엇이기에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절대 안 돼"를 외치는 것일까.

22일 학벌없는사회에서는 "대학 사유화 동향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국립대법인화 문제를 짚어보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이름으로 추진 중인 대학 사유화 정책 속에서 국립대 법인화가 위치지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법인화를 실시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며 예상되는 법인화 이후의 문제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외국교육자본에 문 열어준 상태에서 국내 교육시장화 추진 중

  배태섭 진보교육연구소 사무차장

배태섭 진보교육연구소 사무차장은 노무현 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사회전반의 신자유주의 재편으로 해소하려 하면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대외적으로 WTO 질서에 충실히 따르면서 쌀개방촉진, 서비스협상 2차 양허안 제출, 다양한 자유무역협정 추진, 교육과 의료 시장화, 기간산업과 물 사유화, 비정규직 확대를 위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부분의 경우 이미 외국교육자본의 국내진출을 위한 문은 열어준 상태고, 이에 걸맞게 국내 교육시장화를 위한 기반 구축을 추진 중인 상황이다. 이 맥락 하에 대학구조조정도 놓여 있다. 배태섭 사무차장은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부터 줄곧 대학구조조정에 혈안이 돼있었고 급기야 올 초 김진표를 전격 기용하며 야심차게 출발했으나 구조조정 계획 시행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처참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학구조조정, 김진표 카드도 안 먹히네- 그렇다면 국립대 법인화!


교육부가 지난해 말 대학구조개혁안을 발표할 당시 2009년까지 국립대는 15개를 없애고, 입학정원은 총 9만 5천여 명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지난 6월말 마감한 대학구조개혁지원사업 신청현황을 보면 국립대통폐합을 신청한 곳은 4쌍, 정원감축을 신청한 곳은 국립대 17곳 등으로 저조한 상황이다. 대신에 각 대학들은 신입생 유치에 혈안이 되어 한쪽에서는 연관성이 없는 학과를 합쳐 비인기학과를 없애고 한쪽에서는 학부를 해체해 인기학과를 독립시키는 등 모집단위를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교육부 지원금을 받고 정원감축이나 전임교원을 확보하여 수입이 대폭 줄어드는 손해 보는 '계산'을 한 것이 아니라 원칙 없이 모집단위만을 바꾸면서 '생색내기'에 급급"한 셈이다.

효율적 운영 위해 국가서 대학 떼어낸다

대학구조조정이 뜻대로 안 되자 원활하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빼어든 카드가 바로 '국립대의 특수법인화'라는 것이 배태섭 사무차장의 지적이다. 국립대 법인화는 쉽게 말해 현재 국가의 부속기관의 성격을 가진 국립대학을 국가에서 떼어내 법인으로 전환, 정부의 규제로부터 벗어나 조직, 인사, 재정운영에 있어 대폭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조직의 부속기관' 내지 '국가가 설치한 영조물'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국립대학을 '단위대학 중심의 효율적이고 자율적인 재정운용'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국가로부터 분리·독립된 법인 형태로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정부, "일본처럼 대학에 기업식 경영방식 도입하자"

여기서 이미 대학이 '법인'격인 외국 사례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은 중세 유럽대학의 전통에 따라 대학의 자치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로부터 독립한 타인임을 인정하여 대학을 공법상의 '사단법인'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가와 교회로부터 독립된 교수, 학생의 자유로운 자치결사체라는 전통적인 이념이 '법인'의 형태로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지난해 4월부터 전국 89개 국립대를 법인으로 전환한 일본의 경우는 민간경영기법의 도입, 외부자의 경영참여, 문부성에 의한 중기목표의 평가 등을 통해 국립대의 기업식 경영방식 도입을 완성해가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대 법인화는 일본 사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배태섭 사무차장은 "한국의 위정자들은 한결같이 '민영화'와 다르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일련의 정책들이 실시되고 있다는 점, 국립대의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법인격을 부여, 경쟁과 효율성의 원리에 따른 재편을 꾀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국립대학 사유화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총장과 이사회에 모든 권력 집중, 대학자치 말살 될 것

그렇다면 예상되는 법인화 이후 문제점은 무엇일까. 법인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법인화가 되면 총장을 중심으로 한 이사회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고 교육부의 관리와 통제는 계속되면서 대학자치가 말살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학법인의 이사회는 대학운영에 관한 제반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로서 경제인단체 대표, 지자체장, 동창회 대표 등 학외인사도 참여하게 되며 교육부장관 추천자를 포함하여 장관의 승인으로 이사가 선임된다. 이사회는 총장선출, 예결산, 조직설폐, 정관 변경 등 대학운영에 대한 모든 사항을 결정하게 됨에 따라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는 것. 또 이사 선임 및 총장제청을 교육부가 담당하면서 대학법인데 대한 교육부의 간섭과 통제도 가능하게 된다. 반면 교수, 학생, 직원 등 대학주체의 참여는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는 것이다.

등록금 올리고 총장은 수익사업 잘하는 CEO 되어야
or 교원구조조정, 조직 대폭 축소 - 긴축경영 불가피



법인화에 대해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국가의 재정 지원 포기' 지점이다. 현재도 정부의 국립대학 지원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OECD평균 GDP에 1%정도가 국립대에 지원되는데 비해 한국의 경우 0.3%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도 서울대가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의 지원이 이러하니 각 대학들은 학생들이 부담하는 기성회비를 부당하게 인상, 실제로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화를 통해 국가가 대학지원에서 손을 뗀다면 대학은 기성회비를 통해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거나 본격적으로 수익사업에 나서는 등 수입재원을 늘리기 위해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대학의 남은 선택지는 조직을 대폭 축소, 외주화하는 등 긴축경영을 하는 것인데 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 법인화 반대 입장측의 목소리다.

"교원노동의 불안정화는 계급적 결속력 약화시키는 효과 낳을 것"

배태섭 사무차장은 "대학법인이 자체 수익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어 대학의 총장은 CEO로서의 역할이 강조될 것이고 산학협력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대학은 기업과 손잡고 돈벌이에 발벗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애초 법인화 논의의 출발이 국가행정조직의 구조조정이란 목적이었기에 조직의 대폭 감축과 유연한 노동력 관리는 불가피"하며 "연봉제, 임기제와 같은 교원노동의 불안정화는 계급적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낳을 것이며 교수회나 직원노조 등의 단결력도 급격히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철호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은 "최근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줄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국립대로서 존재할 때도 교육부 입맛에 맞춰 제멋대로 형평성 없이 지원했는데 법인화가 되면 더욱 믿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하고 "칼자루는 언제나 정부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이 돈벌이에 나서면 기초학문의 붕괴는 당연지사다. 대학들이 한정된 예산을 따내기 위한 경쟁적인 조건 속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윤창출과 밀접한 연구에만 집중투자를 하게 될 것은 뻔하다. 기초연구 예산이 삭감되고, 학과의 폐지 등이 급속도로 이루어진다면 국립대의 공공성은 완전히 실종되고 말 것이라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학법인화한 일본, 학장 무소불위 권력에 문부성에 계획 허가·평가 받는 처지


토론회 참석자들은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 사례가 시사하는 점들을 눈여겨 봐야한다고 주문했다. 교원인사를 비롯해 학부 예산 운용, 교육연구 등을 결정했던 일본 국립대의 학부 교수회의 역할을 박탈당했고 인사, 예산, 조직, 급여 등 대학경영의 최고결정권자는 학장(한국의 총장)이 되었다.

또 문부성이 국립대학법인이 달성해야할 6년 단위의 운영지침인 '중기목표'를 정하고 각 대학법인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해 중기계획을 작성, 문부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계획은 곧 평가와 연동되어 국립대학법인 평가위원회가 중기계획의 달성정도를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부성은 재정을 차등지급한다. 배태섭 사무차장은 "일본의 대학법인은 국가의 '그랜드 디자인'에 따른 목표를 정하고 국책 수행을 위한 할당량에 대해 문부성의 허가와 함께 정기적으로 감사와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이는 곧 학문의 자유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법인화를 공공성 벗어던지는 호기로 삼을 것"


토론회 참석자들은 국립대 법인화가 곧 대학 사유화를 뜻하며 정부가 표방하는 대학의 자율은 '총장과 이사회를 위한 자율'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립대 법인화에 찬성을 입장을 보이는 곳은 서울대를 포함한 세 개 대학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서울대의 찬성이 정부의 추진 계획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철호 사무처장은 "서울대는 내심 쌍수들어 환영하고 있을 것"이라며 "입시안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서울대가 법인화를 사회 공공의 책무를 벗어버릴 호기로 삼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대 법인화는 곧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서울대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라는 얘기다.

교육부, "철밥통, 교수 특권.. 여론은 우리편일 것"


그러나 교육부는 이러한 반대 목소리에도 자신만만하다. 결국 여론이 자기들편일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철호 사무처장에 따르면 이번 국립대법인화를 추진하는 한 교육부 관계자가 "24일 집회로 교수들 엄청나게 매도당할 것"이라며 우려(?)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이철호 대표는 "정부는 교수들이 철밥통 지키려한다, 특권 내놓지 않기 위해 반대한다는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며 "국립대가 비효율적이고 경쟁력이 없다는 의식도 만연하기 때문에 법인화 반대 투쟁에서 이런 지점들을 잘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교수들의 거센 반대에 한 발 물러선 듯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21일 교육부는 김송희 국립대교수회연합회 대표, 주자문 전 학술진흥재단 이사장, 이병욱 전경련 산업조사실 상무 등 교육게, 언론계, 재계 인사 등으로 '대학운영체제 개선 협의회'를 구성하고 이 틀에서 법인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교수들의 반발을 고려해서“파격적인 재정 지원과 함께 법인화 선택 역시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토록 유도하겠다”, 또 교직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연금혜택도 유지시키겠다는 등 조심스레 당근을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배태섭 사무차장은 "교수들이 집회를 여는 등 강력하게 저항하자 전형적인 힘빼기, 전선흐리기 작전을 하는 것뿐"이라고 일축했다.

국공립대 교수들은 24일 집회를 한 데 이어 교육부가 추진 중인 국립대 운영체제 개선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헌법소원을 내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전달한 상태다. 투쟁본부를 꾸린 국공립대 대학생들도 10만인 서명운동, 릴레이사이버시위, '전국 국공립대학생 공동행동의 날' 등 법인화 저지에 총력을 다한다는 방침이어서 국립대 법인화를 두고 정부와의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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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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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라 사무처장입니다.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 조신애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