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다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
‘세계줄기세포허브’를 건설하기까지 하며 국가적 지원을 아낌없이 퍼부어주던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윤리논란에 휩싸여 앞날이 불투명하게 되었다. 황우석 교수가 기자회견을 통해 모두 다 시인했듯이 그는 연구원들이 난자를 제공한 사실도 알고 있었으며,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원장이 대량의 난자를 제공하자 의심을 했음에도 무시하고 지나쳤다. 이렇게 황우석 교수는 그동안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남겼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귀를 닫고 싶을 만큼의 분노를 느꼈다. 정부와 언론은 연일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여성들에게 국가를 위해 난자를 제공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노성일 원장은 ‘싱싱한 난자’라는 표현을 써가며 연구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기 바빴고, 황우석 교수는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에게 ‘성녀’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치켜세우기에 급급했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연일 과학기술의 발전과 난치병 환자를 위해 연구는 멈춰서는 안되며 여성들은 이 위대한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역설하기에 바쁘다.
국가라는 절대 선 앞에 또 한번의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성들
또 한 번 “국가를 위해서”라는 절대 선(!) 앞에 여성들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는 또 다시 여성들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노동력 부족 국가가 된다. 아이들이 줄어가고 있다. 이는 국가경쟁력의 문제이다”며 온갖 통계와 저출산 정책으로 여성들을 회유, 협박하며 출산을 강요하고 있듯이 이 무시무시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는 이제 “여성들이여 나라를 위해 난자를 내놓자”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난자를 여성의 몸에서 적출하려면 15일 동안 매일 과배란을 위한 주사를 맞아야 하고, 난소에 수없이 바늘을 꽂기 위해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적출 이후에 부작용이 나타날 무수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국가는 그저 여성들에게 난자만 주면 연구가 잘되고 난치병 환자들이 모두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MBC PD수첩에서 보도했듯이 난자 적출 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부작용에 대해 설명도 듣지 못한 채로 수술대 위에 올라야만 했다. 난자 적출 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부작용에 대해 들었다면 수술을 했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결같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국가에서 나서서 난자를 획득하겠다?
이 번 논란에 대해 정부는 난자 획득 공공기관을 신설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스스로 단체까지 만들어가며 난자를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 어디에도 난자 적출 과정에서의 여성들의 몸에 가해지고 있는 물질적인 폭력(부작용 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마치 윤리규정을 법적으로 만들고 공공기관에서 난자를 적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듯 한 주장만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위대한 국가에 살고 있는 여성들은 그저 좋은 일이니까, 난치병 환자를 구할 수 있으니까, 세계적인 연구니까라는 국가의 주문에 자신의 몸에 끼칠 영향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자를 제공하겠다고 스스로 나서고 있다.
출산정책이 그러했듯이, 난자 제공 과정이 그러하듯이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결정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여성들이 왜 대한민국이라는 위대한 국가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지, 왜 여성들이 아이와 함께 자살을 해야 하는지, 왜 여성들이 난자까지 팔아가면서 삶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무수한 질문에 남성의 얼굴을 한 국가는 그저 낳아라! 바쳐라!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또 한 번 드리워진 이중적 잣대
또 하나, 세계적이고 위대한 연구에 난자를 제공한 연구원들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자신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왜 그 여성들은 그렇게 위대한 연구에 스스로를 희생하며 온몸을 바쳐가며 복무했음에도 부끄러워해야 하고 숨어야 했는가. 기자는 이 속에서 여성에게 끊임없이 부여되는 이중적 잣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성녀’라는 칭송을 받고 있음에도 순결이라는 이름하에 황우석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표현했듯이 ‘결혼도 안한 처녀’가 난자를 제공한 것은 또 한 번 여성에게 수치심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위대한 국가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열심히 일하고 이제 난자까지 제공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싱싱한 난자’, ‘양질의 난자’ 등의 표현을 붙여가며 칭송하는 ‘성녀’가 되긴 힘들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