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협상하고 보자'가 몰고올 재앙

한미 FTA의 소위 ‘경제효과’ 비판[下] - 대미종속 항구화까지

(3) 공공서비스 민영화와 사회양극화 심화

  이해영 교수
중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라는 것은 이미 자명하다. 그러나 최근의 한미경제관계를 볼 때 미국은 이전의 상품무역 중심에서 투자와 서비스중심의 새로운 교역을 위주로 중심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전통적인 제조업 상품보다는 투자와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익구조를 창출해 왔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한국이 자동차, 전자부문에서 일정한 비교우위를 관철한다고 하더라도, 농업과 투자 및 서비스산업에서의 명백한 비교열위에 의해 한미FTA의 전체 국민경제에 미치는 결과는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이와 관련 KIEP보고서에서 조차도 미국의 서비스 산업 비교우위로 인해 한국의 대미 서비스 교역수지 적자폭을 약 18억달러로 추정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미 외국자본에 의한 은행산업 점유율이 30%에 달하고(미국은 19%), 98년 증권시장이 완전 개방된 이후 한국 금융시장은 이미 외국자본 그 중 미국계 자본에 의해 사실상 장악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한미은행의 주주가 된 칼라일이나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 캐피탈이 천문학적인 평가차익을 얻은 것은 그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한미FTA는 특히 투자, 금융서비스를 비롯한 서비스산업 전반을 포괄한다. 그 중 공공서비스산업에 대한 ‘민영화’는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한미FTA협상은 과거 한미 BIT협상의 틀을 크게 벗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IMF직후 한미BIT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공기업 관련 부분은 이미 오래전 시중 월간지(월간 <말>지 2001년 5월호 참조)를 통해 당시 한국정부와 협상대표간의 비밀전문이 공개되어 그 전모가 거의 알려져 있다. 아래 그 기사 중 일부를 인용해 본다.


“정부는 98년 협상 초기 전기업을 내국민대우 유보대상에 포함시켜 외국인 소유지분을 제한하였고, 정부투자기관인 한전 또한 유보대상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 유보대상을 삭제·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98년 8월 24일자로 산자부가 외통부에 보낸 '한미BIT 유보안' 공문을 보면, 산자부는 한전이 독점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전기사업(발전사업, 송배전사업, 변전사업,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 핵연료주기사업)을 유보대상에 유지시키겠다는 의지를 외통부에 전했다.

그런데 98년 12월 17일자로 주미한국대사관이 산자부에 보낸 문서를 보면, 미국은 “공기업의 민영화의 최초단계의 정부지분 10%에 대해서만 내국민에게 우선 배정하고, 잔여분은 내외국민 차별을 없애며, 그 이후 단계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완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미국은 “이러한 방식으로 민영화 대상이 되어야 할 기업명단을 5개미만으로 정해 미국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99년 1월 27일 주미한국대사관이 산자부에 보낸 문서에는 1월 25일에 진행된 한미 비공식협의 내용이 담겨있는데, 미국의 주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세이프가드, 스크린쿼터 등 주요쟁점에 대한 일괄합의 이루어야 함을 전제로 ‘민영화와 독점해제’ 항목의 유보안을 수정·축소”할 것을 제시하였다.

즉 유보대상을 한전, 포철, 담배인삼공사, 가스공사 등 4개 기업과 핵발전, 송전분야 등 2개 사업 분야로 한정할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로써 20여 개 정부투자기관과 배전 및 변전사업, 그리고 천연가스도매업이 정부보호의 울타리에서 제외되었다.


아마 미국은 한미FTA협상에서도 한국측에 유보대상 공기업을 대폭 축소할 것을 요구할 것이고, 산자부는 여기에 대해 과거 한미BIT의 연장에서 한전, 포철, KT&G, 가스공사 및 핵발전, 송전부문만을 유보대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2금융권을 포함 금융공공성의 포기와 공공부문 특히 의료보험을 비롯한 의료 및 교육부문의 ‘민영화’는 공공서비스의 질적 저하와 보험료인상, 사교육비 인상등 사회양극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의 효과와 관련 흔히 언급되는 것이 제도개선, 경제구조 고도화, 글로벌 스탠다드 한마디로 구조조정효과이다. 특히 열린우리당 내 노대통령 측근 의원모임인 '의정연구회'는 2004년 국정감사자료집을 통해 아예 노골적으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무역장벽제거로…… 효율적 기업은 생존하여 생산규모를 확대하고 경쟁력이 취약한 기업은 도태되고, 회원국간 비교우위에 따라 산업과 기업의 재편이 발생하며, 정치적 효과도 중요하여, 소국이 대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정치적 안전보장 효과를 누리기도 하고, 국내의 취약한 개혁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FTA라는 외부충격 혹은 압력을 이용할 수도 있음”

즉 소위 ‘개혁’을 위한 외부충격으로서의 FTA, 경쟁력 없는 부문의 “도태”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의 FTA를 “동태적인 정치적 효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외환위기 당시 IMF를 지렛대로 구조조정을 관철하였고, 이번에는 FTA를 지렛대로 구조조정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압을 통한 구조조정이야말로 한국사회 사회양극화의 주된 원인이었다.

한미 FTA를 통해 이제 그 효과는 제조업일반을 넘어 공기업을 비롯한 서비스산업 전반에까지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당장 고용 불안과 비정규직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4) 농업공황

2001년 미 국제무역위 보고서는 특히 한국의 농업부문 그 중 쌀시장 개방으로 미국농산물 수출이 최소 20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정부측은 쌀에 대한 예외가 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흘리고 있지만, 최대 수혜업종인 쌀을 제외하고 과연 미국이 협상에 응할 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한미FTA가 농업부문에 미칠 영향은 가히 ‘청천벽야’수준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KIEP는 쌀을 제외한 농업분야 생산감소를 약 2조로 추산하고, 반면 쌀을 포함한 다른 보고서는 최대 8조8000억 가량의 생산감소를 예상한다. 우리의 농업생산을 약 20조로 볼 때 최소 10%, 최대 44% 다시 말해 한 산업부문의 생산량이 최대 44% 감소되는 것은 세계경제공황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어쩌면 세계경제사의 대참극으로 기록될 지도 모를 일이다. 정규직, 비정규직등 일자리의 질은 차치하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기대처럼 한미FTA의 결과 약 10만개의 새 일자리가 창출된다 하더라도, 350만 농가인구의 절반이 실직 내지 이직의 위기에 노출된다면 과연 득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NAFTA이후 멕시코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들은 대부분 새로운 도시빈민으로 유입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 사파티스타 농민반란이 보여 주듯 이로 인해 극단적인 사회갈등이 유발될 지도 모를 일이다.

(5) 영화산업을 비롯한 문화산업의 위기

한국정부는 50%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 없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이 점유율의 신화야 말로 허다한 착시현상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1997년과 비교해 한국영화 시장의 규모는 약 3배 가까이 증가한다.

동기간 한국영화의 매출은 약 5배 증가하였고, 마찬가지 동기간 외국영화의 매출 역시 2배가량 증가한다. 쉽게 말해 파이자체가 커짐으로써 한국영화, 외국영화의 매출이 동시성장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지은 ‘죄’가 있다면 단지 커진 파이의 많은 부분을 미국영화가 아니라 한국영화가 ‘먹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점유율의 신화는 80년대 이래 미국영화의 한국내 수익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 한국영화의 실제 수익률이 형편없고 겨우 세편중 한 편만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점유율의 대부분을 한 해 몇 편에 불과한 이른바 대박영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못보게 한다.

나아가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신화가 미국영화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약 85%인데 비해, 한국영화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고작 1.5%를 좀 넘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한국 영화가 매년 70편 가량 생산되는 데 미국영화는 매일 한 편씩 상영해도 2년이 걸리는 양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사례는 스크린쿼터 축소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아주 잘 보여준다.


<표11>이 보여주는 것처럼 멕시코의 영화제작 편수는 1990년 98편에서 91년 32편으로 격감하다 어느 정도의 회복세를 보인다. 북미FTA가 발효된 94년 이후 멕시코 정부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로 매년 10% 축소하다가 완전 폐지되는 98년 이후 거의 빈사상태에 빠져듦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스크린쿼터 축소가 위기 징후를 보이는 멕시코 영화산업의 몰락을 결정적으로 가속화시켜 결국 사망 직전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현 정부에 의한 20%(73일)로의 스크린쿼터 축소는 북미FTA 당시 미국이 멕시코에 인정한 30%(106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더군다나 위기징후를 보이던 당시 멕시코 영화산업과는 달리 유치산업단계에서 이제 막 비상하고자 하는 한국영화에 대한 20%로의 축소는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사실상 역사상 유례가 없는 폭력적인 자국산업 탄압조치와 다를 바 없다.

필자가 참여한 스크린쿼터 경제효과 분석팀의 분석에 의하면 146일이 유지될 경우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약 48%대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50일 축소할 경우 약 20%의 점유율 감소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146일을 기준으로 할 때 그것은 금액으로 따져 1조 7천억에 상당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실제상영일수가 146일 이하로 줄어들기 시작할 때 적용가능하다.

당장 1~2년 안에 스크린쿼터의 축소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대미 ‘퍼주기’외교의 결과, 만에 하나 FTA협상이 타결될 경우, 미국은 스크린쿼터 73일을 일단은 예외로 인정하겠지만 멕시코의 사례처럼 이후 완전폐지에 이를 때까지 단계적인 추가 축소 프로그램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만에 하나 한국영화가 “쿼터 축소 - 투자 감소-제작 편수 감소 - 상영일수 미달 - 쿼터 추가 축소 …”식의 악순환의 고리에 맞물려 들어갈 때 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물론 정부측에서 행, 재정적 지원책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 또한 미국식 FTA에 내장된 각종의 독소조항 특히 내국민대우조항에 근거 오히려 미국측의 제소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6) 군사안보적 대미 종속의 항구화

마지막으로 한미FTA와 관련 양념처럼 제기되는 것이 한미동맹강화론이다.1980년대 미국과 FTA를 체결한 이스라엘의 사례가 제시되기도 한다. 당연히 드는 의문은 그래서 과연 이스라엘에 평화와 번영이 찾아 왔는가.

대미 군사안보적 영구종속이 현재와 같은 중미(中美)쟁패기의 동아시아 정세에서 과연 참여정부의 구호처럼 ‘평화번영’의 시대와 통일을 앞당기는 길인지, 아니면 중미간 헤게모니 싸움을 활용 실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한국의 총외교노선으로 적합한 것인지 국제정치적 색맹이 아니라면 답하기 어렵지 않을 게다.

맺는 말

엄밀히 말해 한미FTA가 한국사회에 미칠 충격은 사실 계량화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제출된 그 효과분석만을 놓고 보더라도, 한미FTA는 ‘경향적으로’ 무역수지적자, 금융투기화와 종속,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질적 저하, 농업공황, 영화를 비롯한 문화산업위기, 대미 군사안보 종속의 항구화 등의 전망을 가능케 한다. 아울러 일정한 경제적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 편익이 배타적으로 4대 재벌에 집중될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양극화는 명실공히 한국사회 모든 부문으로 확산될 것이다.

사실상 협상의 포기에 다름 아닌 스크린쿼터문제의 처리와 관련 현재 한국정부가 보인 졸속성, 국민다수의 합의는 고사하고 이해당사자의 최소 동의조차도 부재하다는 점, 나아가 현재 발의중인 '통상절차법', '무역조정지원법'등 최소한의 안전판조차도 불비하다는 점, 미국내법상의 시간표와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둔 정권말기라는 한국측 정치일정 여러 정책환경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현재의 한미FTA는 원점에서부터 재고되어야 하며, 아울러 포괄적인 그리고 새로운 통상전략의 바탕에서 재배치되는 것이 옳다. 또한 통상 관련 제도정비와 통상절차법, 무역조정지원법 등 통상관련 양대 신입법과 같은 안전판 정비는 이것의 필수조건이다.

2003년 5월 현재 GATT/WTO에 통고된 FTA는 총 126건이며 이중 미국과 체결한 FTA는 10%정도에 불과하다. 이미 양적으로 한국정부가 말하는 FTA의 글로벌 스탠다드는 사실 미국식 스탠다드 이상은 아니다. 질적으로 보더라도 FTA는 체결 국가의 구체적인 조건과 사정에 따라 그 내용과 형태는 지극히 다양하다. 미국이 체결한 최대의 FTA인 NAFTA만 놓고 보더라도, 미국은 캐나다에 대해 문화산업과 농산물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반면 최근에 체결한 FTA에서 미국은 모든 예외의 극소화를 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마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면 미국은 한국에 대해 지금까지 자국이 체결한 FTA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즉 가장 ‘포괄적이며’ ‘높은 수준의’ FTA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고, 우리의 입장에서 이는 최악의 결과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다른’ FTA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통합이 아니라 해체의 벼랑으로 내 몰아갈 그런 미국식 스탠다드에 입각한 한미FTA는 분명 우리의 길이 아니다. ‘시간이 없다,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의 FTA와 통상정책은 우리 모두에게 재앙이 될 뿐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경제협정을 최대 졸속으로 - 1년(!)만에 - 처리하고자 하기에 더욱 그렇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현장에서 미래를' 117호(2006년 3월)에 실린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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