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냥 여서 산다닝께. 어딜 나가라는겨"

‘평화의 논갈이’ 시작된 17일, 팽성 주민들을 만나다



악다구니만 남아 있을 것 같던 팽성 주민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번졌다. '평화의 논갈이가' 시작된 17일 팽성에서 만난 주민들은 “모름지기 농사꾼은 농사를 지어야 한다”며 오랜 싸움 끝에 시작된 논갈이에 여념이 없었다.

"둘이 먹다 서이 죽어도 몰러"

'평화의 논갈이'가 시작된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은 모처럼 그간 돌보지 못했던 땅을 찾았다. 서울촌놈이 제 땅을 일구는 농민의 심정을 알 수 있게냐마는 팽성 주민들은 오래 떨어져 있던 자식을 만난 양 땅을 반겼다.

올해 79세인 장귀옥 할머니에게 논갈이가 시작된 소감을 묻자 대뜸 땅 자랑부터 늘어놓는다.

“서울에서 왔어? 서울에서도 평택쌀 하면 알아주잖여. 이곳 쌀이 얼마나 좋은디, 이곳에서 나는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둘이 먹다 서이 죽어도 몰러”

  트랙터들이 논을 갈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장귀옥 할머니

“땅이 제심을 발휘하려면, 쌀나무를 솎아내야 뎌”

장귀옥 할머니는 한참 땅자랑을 한 후에야 논갈이가 시작된 소감을 얘기해준다. 장귀옥 할머니는 “좋지. 농사가 시작되는데, 아니 좋겠어? 이제라도 시작됐으니, 다행이제. 지금은 땅이 이렇게 좋지만, 예전엔 안 그랬어. 원래 전부 갯벌이었어. 그걸 우리 선대들이 고생고생 일궈서 지금과 같은 옥토를 만든겨”라며 평생을 일궈온 이곳 팽성 땅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했다.

장귀옥 할머니뿐만 아니라 농사가 시작된 이날 이곳 주민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땅이 제 심을 발휘하려면, 쌀나무가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겨”라며 열심히 짚을 솎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던 방효태 할아버지 역시 이날 시작된 논갈이가 마냥 반갑다. 그는 “그간 경찰 막느라, 깡패들 막느라 일할 새가 없었어”라며 연신 논에 흩어져 있는 쌀나무를 걸러내고 있었다.

갯벌이었던 땅을 옥토로 만든 이들. 그 사람들은 이곳 팽성에 살고 있고, 살고자했다. 그러나 정부는 나가라고 한다. 이들이 언제까지 이곳에서 땅을 일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주민들은 농사가 시작된 것이 반가우면서도 내심 걱정이 앞섰다. 장귀옥 할머니는 “이렇게 논갈이까정 했는디, 정부가 수로를 막아버리면 이것도 못 해먹는겨”라며 “잘 모르겠어. 정부가 그렇게까지 악독한 짓을 할지...”라며 정부가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지 불안해했다.

“백년대계를 위해 하는 일이라면 또 몰러, 근디 이건 아니잖여”

그간 팽성 주민들은 땅에서 쫒겨날 지 모른다는 긴장과 불안감 속에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들을 쫒아내려는 정부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행태를 볼 때 미군기지 확장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평생을 팽성 땅을 밟고 살아온 이들의 의지가 그만 못 하랴.

장귀옥 할머니는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에서 이곳에서 나가면 당진 땅을 준다고 주민들을 꼬드겨. 그럼, 우리가 거기 가는 대신 미국 놈들을 것다 다 쳐넣으라구 해. 우리는 그냥 여서 산다닝께. 왜 지랄들이여 지랄은. 못 나가. 어딜 나가라는겨”

고조할아버지가 용인에서 이주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방효태 할아버지. “정부에서 이게 국책사업이라고 떠들어대는데, 이게 어째 국책사업이여. 나라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해 하는 일이라면 또 몰러, 근디 이건 아니잖여. 이 땅을 미국 놈들에게 전쟁기지로 내주고, 뭐 하겠다는거여? 그게 나라를 위하는 일이여? 여기서 몇 대를 살아온 나 같은 노인네들 의사 한마디 묻지 않고, 살던 땅에서 내모는 게 백성을 위하는 일이여? 정당성이 없어, 정당성이. 근디 나가라구? 어림없지. 천만의 말씀이여”

  "쌀나무도 그냥 썩게 두면 거름이 되지만, 그냥 둬서 여기 모가 막히면 못 써"라며 쌀나무를 솎아내는 작업 중인 방효태 할아버지.

“나가도 죽고, 여 있어도 죽어. 근디 안 싸울 수 없잖여”

돈이 문제가 아니고, 보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못 나간다고 한다. 평생을 일구어 온 이 땅을, 그것도 미군기지로 내 줄 수는 없다고 했다. 팽성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끝까지 정부가 기지확장을 강행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김없이 “죽어도 못 나가”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특히 나이가 많은 주민들은 여지없이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보통 하고자하는 것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는 의미로 죽는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팽성에서 만난 주민들은 단지 의지의 표현만은 아니었다.

“우린 죽어도 여서 죽어야뎌. 억울해서라도 못 나가. 정부가 여서 나가면 취직시켜준다고? 웃기는 소리 말라 그려. 칠 십 나이에 어디가서 취직을 혀? 그것도 미국놈들 전쟁기지로 여길 내줘? 어림없는 소리제. 말이 안되는겨. 어차피 나가도 죽고, 여 있어도 죽어. 근데 뭐하러 나가? 여서 그냥 싸우다 죽지. 정부가 그동안 마을 사람들을 독종으로 만들어놨어. 나가 죽으라하고, 마을 사람들 다 갈라놓고. 그런디 안 싸울 수가 없잖여.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여”

방효태 할아버지는 작업을 하다말고, 억울함에 분노를 토해냈다. 문득 팽성 주민들이 보이는 이같은 모습이 걱정이 된다. 정부가 이대로 미군기지확장을 강행하려 든다면 어떠한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나라 백성들을 몰아내고, 미국의 군사기지를 이 땅에 짓겠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는 여전히 강고해 보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같이 농사짓고 살 수 있기를”

언제 끝날지 모를 지리멸렬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지만, 팽성 주민들은 이날 하루만은 경작의 기쁨을 맘껏 누렸다. 이날 논갈이는 다른 지역 농민, 학생, 사회단체회원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외부의 도움이 없더라도 팽성에 현재 있는 트랙터만 가지고도 논갈이는 충분히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효태 할아버지 얘기대로 그간 이곳 농민들은 하루하루 마을을 지키느라 농사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은 하루하루 전쟁과도 같은 일상을 보내왔다.

  트랙터로 논갈이 작업을 하고 있는 박민수 농민

평화논갈이에 참여하기 위해 정읍에서 올라와 트랙터로 논을 갈고 있던 박민수(가명) 농민은 “오늘 직접 이곳 논을 갈아보니, 우리 지역보다 토질이 훨씬 좋다”며 “토질이 워낙 좋아서, 같이 올라온 지역 농민들이 차라리 미군들 정읍에 오라하고, 우리 여기서 농사짓자는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땅을 미군기지로 내주고, 주민들을 내몬다는 것이 정말 이해 안 되고,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박민수 씨는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실명을 밝히길 꺼려했다. 박 씨는 “이곳에서 농사를 돕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기라도 하면 벌금이 나온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모를 일이었다. 미군기지가 무엇이기에, 한 마을을 두 동강 내고, 그것도 모자라 농민들의 ‘두레’까지 벌금으로 다스린다니.

가볍지만은 않은 걸음으로 취재를 마치고 대추초등학교로 돌아오던 길에 만난 한 주민은 “너무 좋다”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이 계속 농사짓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이날 시작된 논갈이의 소감을 대신했다.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알 수 없는 싸움에 팽성 주민들은 지쳐있었지만, 이날 하루만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