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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은 풋풋한 비비추

[강우근의 들꽃이야기](57) - 비비추

아파트 둘레 화단 목련이나 수수꽃다리, 청단풍, 꽃사과 따위 나무 밑을 비비추가 다 차지해 버렸다. 며칠째 계속 쏟아져 내리는 장맛비에 나뭇잎들은 흠뻑 젖어 늘어져도 비비추는 빗물 무게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꽃대는 여전히 곧추서있고, 주저리주저리 매달린 보라색 꽃봉오리들은 무심한 듯 빗속에서도 꽃 피고 지고 있다. 큼직큼직한 잎사귀는 빗물을 듬뿍 받고 더 억세고 더욱 짙푸르러졌다.


이즈음엔 어딜 가나 비비추가 눈에 띈다. 큰 길가 화단에서도, 공원 나무 아래에서도, 숲 언저리나 공터에서도 비비추를 볼 수 있다. 숲 가장자리에 저절로 자라난 비비추는 봄에 새순을 나물로 뜯겼는데도 참나무 그늘 아래서 여전히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여름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비탈진 빈터에서도 비비추가 넓게 퍼져 자라고 있다.

비비추는 산지 냇가에서 자라는 풀이라지만 ‘까탈스럽’지 않아 아무 땅이나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요즘은 공원이나 화단을 만들고 나무 아래에, 바위틈에 땅거죽을 덮기 위해 맥문동과 함께 비비추를 많이 심는다. 비비추가 아무 땅에서나 잘 자라고 번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화초란 사람 손을 많이 타야 제대로 자라는데 비비추는 사람들이 돌보거나 말거나 잡초처럼 쑥쑥 잘도 자란다. 화단의 경계를 넘어 길 가장자리까지 치고 나와 자란다. 새싹이 돋는 이른 봄부터 한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장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거침없이 내달린다.

비비추 잎은 모두 뿌리에서 자라나온다. 큼직하고 두툼한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해서 우직해 보인다. 비비추가 어디서나 잘 자라는 비결은 이런 단순함과 우직함 때문이 아닐까? 비비추 잎이 억세어지기 전 연한 새잎을 나물로도 먹는데 아리거나 쓴 맛이 없어서 나물로 먹기 좋다. 잎 가운데서 자라 올라온 꽃대에 꽃봉오리가 줄줄 달려서 아래에서부터 한 송이씩 꽃이 피고 진다.

비비추에 얽힌 옛이야기에는 오래도록 쉼 없이 꽃이 피고 지는 비비추의 성질이 잘 담겨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변방으로 부역을 간 '가놈'이라는 청년을 6년째 기다리는 '설녀'란 처녀는 때를 놓치기 전에 다른 곳으로 시집가라는 아버지의 재촉에, 마당에 핀 비비추 꽃이 다 질 때까지만 청년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비비추 꽃은 끊임없이 새 꽃봉오리를 만들어 내고 꽃을 피워 낸다. 마지막 비비추 꽃이 질 무렵 청년은 돌아왔다.

비비추와 생김새가 닮은 옥잠화는 중국 원산으로 오래 전 원예용으로 들여와 심어온 은 것이다. 비비추보다 잎이 더 넓고 꽃도 더 큼직한 옥잠화는 자세히 보면 닮은 만큼 또 많이 다르다. 윤기 흐르는 커다란 잎과 탐스런 흰 꽃은 소박한 비비추와 달리 사뭇 귀족적인 느낌이 난다.

우리 눈은 어느 때부터인가 텔레비전 광고나 드라마 따위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중독되어 버렸다. 꾸미지 않은 풋풋한 아름다움보다는 이리저리 조작해서 만들어낸 것에 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다. 빗물에 씻긴 싱싱한 비비추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아쉽다. 꾸밈없이 우직하게 자라는 비비추는 장맛비를 듬뿍 맞고 우리 사는 둘레를 푸르게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