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법안, 이민자 학생운동의 활력소(上)

[기고] '이민자 나라'의 모순...이민억제정책

미국 내 미등록이민자(또는 서류미비자)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 될 수 있었던 드림법안이 지난 10월 24일 상원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이민 사회는 이 드림법안을 통해 미등록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나마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이 조차 막혀버렸다. 김용호 민족학교 이민자 권익옹호 코디네이터는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이 거꾸로 어떻게 인종억제 정책을 취하고 있는지, 그 모순을 지적하고, 희망의 단초를 이야기 한다. 김용호님의 글은 2회에 걸쳐 실릴 예정이다.

지난 몇 년간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세 가지 이슈를 말해 보라면 누구나 이라크 철수, 이민개혁, 그리고 의료보험 개혁을 꼽을 것이다. 한인 사회의 경우 70%가 이민자인 현실에 걸맞게 이민개혁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이민개혁 법안은 법안의 범위에 따라서 포괄적 패키지라고 불리는 대규모 이민법 제정과 사안별로 개정하는 단독법안으로 나뉘는데 이 중 드림법안은 서류미비자 학생에게 합법적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주어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단독법안이다.

드림법안은 지난 수년간 학생들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로 올해 상원 전체 투표라는 커다란 결실을 남기고 잠시 후퇴 했는데 이 법안을 둘러싼 활동을 되돌아보고 이민개혁의 향방을 전망 해 본다.

이민개혁이 왜 쟁점인가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이민집회에 참가한 이민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출처: ANSWER]
이민 사회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남서부에서는 스페인 식민지 문화를 겪은 메스티조 정착민들이, 서부 해안은 중국계 노동자들이, 동부는 백인 탐험가들이 인디언을 살육하면서, 중부는 동유럽계 이민자들이 수출선의 회항에 실려와 공장 노동에 종사하면서, 좋던 나쁘던 이민자 유입을 중심으로 사회를 구성했던 것이 미국의 역사이다. 그런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민자 입국 허가를 둘러싼 법 개정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다니, 조금 이상하다. 이민자가 많이 오면 좋은 게 아닐까?

미국 인구의 70%가 백인이다. 흑인과 라티노는 13%-15%대를 구성하고 있으며 아시안은 5%이다. 세계 인구는 유색인종이 가장 많은데 어째서 이민으로 만들어진 나라에서 백인이 70%나 차지하게 되었을까? 해답은 인종차별과 배타적인 이민법 제정, 그리고 민권 탄압을 통해 이어지는 인종 제어 정책에 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각종 법을 통해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의 입국을 제한해왔다. 이 제한 조치의 변천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데, 처음에는 프랑스와 영국을 축으로 하는 백인이 아니면 그 누구도 백인으로 인정받지 못해 이민을 제한 받거나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독일인, 아일랜드인, 이태리인, 폴란드인, 중국인 등 그 명단은 길다.

이러한 대부분의 제한들은 민권 운동의 결실인 1965년 이민법을 통해 철폐되어 누구든지 가족초청이나 취업을 통해 이민을 올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미국 이민은 "1965체제"라고 불릴 정도로 가족과 취업을 중심으로 개편되었으며, 이러한 요소를 생략한 이민이란 상상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65년 체제의 결과로 아시안 및 라티노 이민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급증하여 2050년이면 인구의 과반수가 유색인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백인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색인종이 다수가 되어 신규 유권자 층이 양성되면 미국 국내의 정치 역학 또한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65년 이민체제의 음지

한편, 1965년의 이민법은 가족 초청의 수에 연간제한(쿼터)을 두어 서류미비자 양성의 불씨가 되었고, 의회는 1986년과 1996년의 이민법 개정을 통해 대응했다. 1986년에는 서류미비자의 사면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1986년, 1996년의 이민법 개정을 통해 단속 조항이 대폭 강화되고 무엇보다 이민법을 어기는 일부 경우 범법자로 정의하는 일련의 조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서류미비자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이민법을 어겨 체류 신분을 잃게 된 이들을 지칭하는데, 크게 나누어 이미 미국에 있는 가족과 함께 살고자 이민 신청을 했으나 쿼터제한 때문에 몇 년 동안이나 걸리는 대기 기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들어온 가족형 서류미비자, 본국의 처참한 경제 사정과 미국 노동시장의 수요에 맞추어 미국에 취업을 하고자 했으나 해당 규제가 시장을 따라주지 못해 허가 없이 입국 및 취업한 생계형 서류미비자, 이민사기를 당하거나 또는 관련 서류를 제대로 내지 않아 강화된 단속 조항에 걸린 피해자형 서류미비자 등을 들 수 있다.

각 분야 모두 지난 20년간 각자의 이유로 증가 추세에 있었고, 현재 서류미비자는 전체 인구의 5%인 1,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인의 경우, 5명 중 1명이 서류미비자이다. 이민개혁이 다루는 것은 서류미비자 합법화뿐만이 아니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가족을 초청 할 경우 4년에서 많게는 20년까지 대기 기간을 거쳐야하는 문제나 1986년 이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이민자의 기본적인 민권 (시민 누구나 기본적으로 보장받는 권리들) 또한 개혁의 대상이며, 노동3권을 비롯한 노동자 권리 침해 또한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무르익는 이민개혁

1994년 1월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가 효력을 발하면서 이민 시스템은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된다. 곡물 시장 개방과 무한 경쟁을 감당 할 수 없게 된 멕시코 빈농이 대거 미국으로 이민을 시도 했으나 기존의 가족 및 취업 고정쿼터제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생계형 서류미비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허가 없이 국경을 넘는 서류미비자가 일년에 50만 명을 넘고 있으며 이민국이 이중 일부를 발견해 추방해도 다음날 다시 돌아오는 절박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이민자 입국을 늘리려는 정치세력과 줄이려는 세력들이 재편성을 겪게 된다.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인 라틴아메리카 이민자의 급증에 힘입어 미국 카톨릭 교회는 엄청난 회복을 보이고 이민자권익을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에 애초부터 취업 이민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자본과 클린턴 행정부-부시 행정부가 결합하고, 2000년 들어서는 노조총연맹이 이민개혁 지지를 선언하면서 교계-자본-노동이라는 강력한 고리가 형성되어 이민개혁은 빠른 속도로 진전을 보게 된다.

멕시코와 미국 정상간에 구체적인 합의를 보는 등 전면적인 합법화 및 포괄적 개혁의 절차를 밟던 이민개혁은 그러나 2001년, 9.11 이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난다.

반이민 진영의 두각

백인우월주의 세력과 연계한 반이민 진영은 주기적으로 특정 민족의 유입과 경제적 불황에 반응하여 활동하다 시들해지는 패턴을 보여왔으며, 근래 들어 처음 나타난 반이민 운동은 1994년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187 통과를 주도하며 나타난 일련의 국수주의 단체 및 경향들이었다. 발의안187은 서류미비자에게 초등교육, 의료검진, 정부 혜택 등 일체의 사회인프라 서비스를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민자 사회를 각성시켜 대규모의 반대 집회 및 활동을 불렀다.

그러나, 반이민 진영의 치밀한 언론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하던 이민자 사회는 자가결집은 이루었으나 일반 대중을 설득하는데 실패해 59%의 지지로 발의안은 통과되었다. 비록 연방법원의 위헌 판결을 받아 시행되지는 않았으나 이 때를 전후하여 반이민 여론이 성장을 시작했다.

9.11 사건이 터지자 반이민 진영은 바로 비난의 화살을 이민자에게 돌려 "서류미비자"를 "테러리스트" 또는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로 만드는 것에 성공하고 이민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곧 이어진 아랍계 및 라티노를 향한 인종표적수사 (racial profiling)등의 차별적인 반이민/반유색인종 공세는 이민자사회를 수세로 몰아넣었고 96년 이민법 개정을 통한 단속 강화 이후 약화된 이민자의 민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후 2005년에 포괄적 이민개혁 논의가 시작되자 반이민 진영은 그간 조직된FAIR, Minuteman Project, Save Our State, NumbersUSA 등의 단체들을 통해의원에게 전화걸기, 팩스 보내기 등 엄청난 공세를 펼쳐 이를 반대하였다. 백만 시위를 조직하는 역량을 보여준 이민자 사회는 언어제한 등으로 전화걸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어려운 점은 반이민 진영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저소득 노동자들에게서 적극적으로 회원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반이민 여론이 백인우월주의의 발현이라고만 치부하기에 힘든 것이, 이민개혁 논쟁은 계급 모순과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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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광우병미국소

    광우병쇠고기 먹고 사는 인간들이 뭐든 제대로 하겠나... 이미 미국은 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