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서비스 민영화의 폐해.. 독일을 보세요"

데틀레프 독일 요양노동자협회 의장 "민영화가 서비스 질 저하"

독일의 한해 사회보장예산 약 963조 원(2003년 기준), 사회보험 도입 역사 100년, 세계최초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독일은 한국 정부가 올 7월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지난 1995년 세계 최초로 도입한 나라다. 또 그만큼 독일을 떠올리면, 한국에 비해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진 복지선진국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악순환의 고리', 독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그러나 지난 22일 보건의료단체연합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등 보건의료.노동단체들이 마련한 '장기요양제도 공공성확보를 위한 국제워크샵'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데틀레프 바이어-페터스 '독일 베르디노조 서북지역요양기관 노동자평의회' 의장은 독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현황을 설명하며, 이렇게 반문했다.

"노인장기요양제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는데, 더 적은 수의 노동자들이,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보다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데틀레프 의장은 이 같은 역설을 "악순환의 고리"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없던 20년 전만 해도 환자들이 위장튜브를 달지 않았고, 진정제도 많이 먹지 않았다"며 "그런데 오히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고 나서 오히려 그 사용 비율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서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 형태의 장기요양제도가 도입됐지만, 정작 장기요양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 질은 향상되지 않았다는 게 데틀레프 의장의 진단이었다.

데틀레프 의장은 '요양서비스 질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민간시장 중심의 제도 시행을 꼽았다. 데틀레프 의장은 "독일 정부는 요양보험의 비용 증가를 제한하기 위해 국립 요양시설 민영화를 통해 경쟁을 촉진시켜, 가격을 낮추는 방식을 채택했다"며 "결국 요양서비스의 질 보다는 그 가격만이 우선 시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데틀레프 의장은 독일 정부가 취한 요양보험 비용 증가 제한 방안을 △요양보험을 부분보험으로 전환 △정부보다 민간 우선 △가격경쟁을 통한 경쟁력 확보 △요양급여 상승 제한 △요양노동자 감축 △아웃소싱, 용역, 시간제 등의 불안정노동관계 확대 △미숙련 노동자의 비중 확대 등으로 요약했다.

데틀레프 "수요는 늘고, 요양인력 줄고, 비정규직 늘고"

이처럼 요양시설이 민간시장 중심으로 운영되며 경쟁이 격화되자 독일은 상시적인 요양노동인력의 부족현상이 발생했다. 데틀레프 의장은 고령화의 진전에 따라 보다 많은 요양노동 인력이 필요하지만, 기관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데틀레프 의장은 "2003년을 기준으로 추가로 2만여 명의 요양노동자들이 필요하지만, 오히려 요양노동자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며 "전체적으로 정규직은 줄어들고, 비정규직의 수는 늘어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요양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는 물론, 시설 수용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 질 하락이 발생했다. 데틀레프 의장은 "1992년 평균 시설 수용기간이 5년 이었던 것에 비해 2008년에는 약 6개월로 평균수용 기간이 감소했다"며 "요양기관에서의 평균 생존 기간 역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데틀레프 의장이 언급한 '악순환의 고리'에 따라 나타난 '요양서비스의 질 저하' 라는 피해는 고스란히 독일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한국, 요양서비스 100% 민간위탁 예정

이날 데틀레프 의장이 전한 독일의 사례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현재 독일의 요양서비스 제공 기관 중 민간영리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재가 요양서비스 기관의 경우 50% 수준이고, 시설기관의 경우 30% 수준이다. 나머지는 지역기관과 비영리 민간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현재 요양서비스가 100% 민간위탁으로 운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요양서비스의 민영화 문제와는 별도로 한국의 경우 서비스를 제공할 기관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요양시설 충족률은 전국 평균 60% 수준을 간신히 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또 급격한 고령화의 진전에 따라 독일의 경우 요양보험의 재정 압박이 있다고 하지만, 한국과 재원 규모 자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의 요양보험요율은 소득 대비 0.2%로, 독일의 1.7%에 비해 턱없이 낮다. 그 만큼 쓸 수 있는 돈 자체가 없다는 얘기다. 이미 한국에서 시행하는 노인장기요양제도의 서비스 대상이 전체 국민의 1%, 전체 노인인구의 3% 수준도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상윤 "한국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이날 워크샵에 토론자로 참석한 이상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독일의 경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민간영리기관의 시장 진출을 촉진하는 제도가 되었고, 그 결과 서비스 질 저하와 노동조건 악화가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며 "한국 보다 요양시설도 훨씬 많고, 보험 재정이 몇 십 배 많은데도 민간영리기관이 난립하는 독일의 서비스 질이 이러한데, 처음부터 100% 민간위탁으로 시작하는 한국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이 저렇다면 다른 나라도 다 그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데, 독일의 경우 OECD 국가 중에서 민간영리기관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나라에 속한다"며 "극단적으로 북구 유럽의 경우에는 민간영리기관이 거의 존재하는 않고 있고, 이처럼 나라마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제도 도입기의 사회정치적 맥락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데틀레프 "정말 100% 민간위탁하냐?.. 독일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라"

한편, 데틀레프 의장은 '한국의 경우 100% 민간위탁으로 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는 토론자들의 설명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민간영리기관에 다 맡겨 놓을 수는 없다"며 "한국의 노조가 나서 제도를 입법화 하는 과정에서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할 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요양서비스를 민영화했을 때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에 대해서 알려내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독일의 사례를 봐라. 민영화가 많은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예를 들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진지한 충고를 건네기도 했다.

또 이날 워크샵에 참석한 베르터 캄페터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주한협력사무소장은 "한국의 새 정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기업들에게 이윤추구를 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잡는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비용요인이 중요하지만, 이윤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전체의 공익"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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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노인장기요양 , 데틀레프 , 베르디노조 , 요양 , 요양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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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
    입법화 과정에서 한국 노조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후후

    논점이 좀 엇나간 것 같다. 요양노동자와 요양기관은 포화상태(수도권을 제외한)이며 기존 복지관(공공인프라)들의 서비스 질에 대해 수급자들의 불만이 굉장히 높고 복지관들의 안이한 서비스가 문제. 운영비를 100%보조받는 상황이어서 서비스질 향상에 전혀 신경쓰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