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스트레스에 유산까지

쌍용차 정리해고, 죽음과 삶의 갈림길 (2)

  유진이를 안은 김 씨가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한 엄00 씨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유진이는 낯설은 카메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출처: 미디어충청]

김00 씨가 19개월 난 유진이를 안은 남편과 함께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를 유산하게 되면 아이 낳은 것만큼 몸관리를 해야 한다고들 하던데. 25일 월요일에 유산 소식을 들은 김씨의 얼굴은 어둡고 피곤해 보였다.

"기자가 ‘여자’라 조금 더 말문을 쉽게 열 수 있을 같다"는 김씨가 한 첫마디는 생리할 날짜가 지났는데 생리를 하지 않아 22일 산부인과 찾았다는 것. 같은 날 전면파업에 참가하기 위해 파업 배낭을 짊어 맨 남편을 보내야 하는 터에 김씨는 더욱 ‘안 좋은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충격적인 일이 있으면 생리가 늦어질 수 있다. 월요일쯤 결과가 나오니 그때 보자”고 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김씨는 ‘임신이 아니었으면’ 했다. 부부는 하루 빨리 아이를 갖고 싶어 형편이 안 좋아 주말 부부로 지내던 생활도 정리했다. 남편과 나이 차이도 적잖게 난다. 결혼한 다음 해 그렇게 원하던 첫 아이를 가졌고, 올해 3, 4월에 임신해 내년 겨울에 둘째를 낳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짤릴지도 모른다. 매달 대출금도 50~60만원씩 나가는데…

병원에 갔다 22일 낮2시까지 전면파업을 위해 남편은 평택공장으로 가야 한다. 머리를 자르겠다는 남편과 함께 미용실을 찾았는데, 미용실에서 부부는 옥신각신했단다. 김씨는 스포츠 스타일로 짜르라고 했고, 남편 최씨는 삭발을 한다고 했다. 이때 남편 최씨가 닫았던 입을 열었다. 최씨도 ‘가짜 정리해고 명단’ 통보를 받은 것.

“내가 성질 부려서 삭발을 했다. 와이프가 울더라… 21일 직장에게 전화가 와서 정리해고 명단에 있다고 통보받았다. 선정기준도 대충 가르쳐주더라. 12개 항목이라면서 근태, 부양가족 등. 도저히 이 상태로는 안 되겠더라. 머리 깎으면 속이 좀 풀릴까 해서 전면파업을 앞두고 삭발을 했다. 그 전까지는 유진이가 아빠하고 안 떨어지려고 했는데, 머리 짧은 거 보니까 울면서 엄마에게 안기더라.”

  부부가 노조 사무실 문을 나서고 있다. 최 씨의 등에 적힌 '함께 살자'는 요구가 과연 무리한 요구일까? [출처: 미디어충청]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유산’, 가족들에겐 거짓말만

남편을 보내고 김씨는 마음도 안 좋고 몸도 안 좋았다. 별 탈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복통이 심했고, 일요일에는 밥 한 끼도 먹지 못했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궁금해서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임신이란다. 그런데 생리 날짜를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고 스스로 건강을 자부한 김씨에게 의사가 한 첫마디는 “혹시 요 근래 너무 힘들지 않았냐? 힘든 일 겪은 적 없냐”였다. 혹시나 혹시나…

“의사는 착상이 안 됐고 자연유산이 됐다고 했어요. 아이가 몇 주였냐고 물어봤는데 의사는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몸관리 해 다음 기회에 아이를 가져보자’며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이것저것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제가 정신이 없어서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그날이 남편 생일이었는데… 27일 회사에 와서 남편에게 말을 했어요. 남편이 그 얘기를 듣고 하염없이 울었어요.”

자연 유산 뒤 김씨는 몸관리도 제대로 못했다고 했다. 아니, 몸관리 할 시간이 없었다. 김씨 곁에 항상 있었던 남편이 없었고, 회사에서 26일부터 평택공장 식당을 폐쇄해 남편이 밥은 제대로 먹는지 걱정되어서 회사를 왔다 갔다 했다.

또한 아이의 유산 소식은 당연히 가족에게 알리지 못했다. 시골에 계시는 노부모님이 걱정하실 게다. 쌍용차가 어려워 야간조가 휴업중이라는 것으로 알고 계신 부모님은 최씨가 야간조일 때 전화해 농사를 도와달라고 하신다. 부부는 계속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해고의 불안감, 생활고의 불안감. 처음엔 남편을 원망하기도

김씨가 받은 스트레스에는 생활고도 한 몫 한다. 그나마 아이 옷은 주변에서 물려받고, 이유식도 돈이 많이 들어 집에서 만들어 먹이지만 기저귀 값이며 양육비가 만만치 않다. 아파트 대출비 갚는 것도 허겁지겁 이다. 그런데 임금이 안 나오고 있다. 2월부터는 많이 들어와야 100만원이고, 5월 달은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남편과 다툼이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회사보다 남편이 더 원망스러웠죠. 왜 이런 남편을 만나서 내가 고생할까… 그런데 남편은 내가 힘들어할까봐 명단 통보 된 것도 말 못하고 참다 참다 말했어요. 정부와 회사에 울분이 치솟는다구요.”

김씨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가짜 해고 명단’을 남편으로부터 듣기 전부터 계속되었다고 했다. 올 초 상하이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 회사 경영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남편이 노조에서 하는 촛불 집회도 참석하다 보니 ‘혹시 노조 행사 참석한다고 짤리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결국, ‘가짜 해고 명단’ ‘정리해고 협박’ ‘희망퇴직 종용’ ‘임금 체불로 인한 생활고’ 이후 예상되는 ‘해고 통보’로 그렇게 원하던 둘째 아이는 ‘아빠의 생일날' 조용히 숨을 거둔 것이다.

  가족대책위 천막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놨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출처: 미디어충청]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올곧이 개인의 몫으로

인터뷰 내내 눈물을 참지 못했던 부부에게 2009년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고, 서로를 원망하게 되었으며, ‘해고’의 불안감으로 아이까지 잃었다. 합법적으로 보장되고 인간의 기본 권리인 노조 활동조차 맘 편히 하지 못한다. 짤릴까봐…

기업과 사회가 만들어 낸 상처를 올곧이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이 사회의 무책임성은 ‘신자유주의 위기’의 탈을 쓰고 합법성을 가장한 괴물로 성큼성큼 움직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 씨가 눈물을 흘리며 아이에게 남긴 말을 적는다.

“1974년 5월25일이 내가 태어난 날이다. 2009년 5월25일 빛도 못보고 아기가 떠났다. 아빠를 대신해서 떠난 것 같다… 1년만 있으면 새로운 식구인데… 못난 아빠를 만난 것 같아 미안하다. 정부와 회사에 울분이 치민다. 정리해고 같은 이런 일만 없었으면… 맞추라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날짜를 똑같이 맞췄는지…”(정재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