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들의 연대

[칼럼] 어느 건설노동자들의 이야기

오늘 아름다운 사랑을 말하려고 합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대도 어려운 시절에 이주노동자와 아름다운 연대를 이룬 사연을. 아직 노동자로 제대로 불리지 못한 채 ‘노가다’로 천대받는 건설노동자들이 상처투성이 팔뚝으로 이룬 연대를. 이들을 만나는 내내 참 따사로운 초여름 햇살이 주위에 가득했습니다.

저는 월급을 받으면 ‘아, 좋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이걸 벌려고 이처럼 일해야 되는 구나’ 하는 한숨부터 나옵니다. 건설 현장은 한여름에는 땀을 서 말을 흘려야 합니다. 한겨울에 망치질을 하다 영하에 꽁꽁 언 손가락을 치기라도 하면 그 아픔은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 고통을 겪어야만 이 돈을 버는 구나, 월급을 손에 쥐면 기쁨보다
눈물이 앞섭니다. - 건설노동자 황현수 씨

형님들이 그래요. 목수는 못대가리가 안 보일 때까지 망치질 한다고. 어둑어둑할 때까지 망치질을 해야 겨우 하루벌이를 한다는 말이죠. 웬 줄 아세요? 노동자들은 하청의 하청, 그 하청의 하청을 받아 일해요. 단계를 거칠 때마다 뜯길 대로 뜯긴 하도급 단가를 받아 일당을 맞추려면 몸을 혹사해야죠. 남들보다 노동 강도를 높이고, 남들보다 길게 일하는 방법 밖에 없어요. 건설업종이 산업재해가 가장 많아요. 일 년에 칠백 명 가량이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죽어갑니다. 아무리 선 안전 후 시공을 말해도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아요. 강도 센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하도급 체제를 없애지 않고서는 건설 현장에서 죽음의 행렬은 이어지는 거죠. 그래서 다단계 하도급을 없애고 회사에서 직접고용을 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 건설노동자 진춘환 씨


이천구년 유월 첫째 날, 안산역 바로 옆 공영주차장 구석에서 건설노동자를 만났습니다. 검붉게 탄 얼굴을 본 순간, 이들의 밥이 되고 삶이 되는 노동의 고단함을 단박에 읽었습니다.

건설노동자들은 여름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겨울에는 난방이 되는 일터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남들처럼 빨간 날 다 쉬면서 월급을 받겠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남들보다 많은 임금을 달라고 하는 것도, 상여금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노동법에 나온, 다른 직장인이 당연히 누리는 권리를 지금 당장 다 누리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에게 일을 시키는 회사에서 나를 고용해 달라는 겁니다.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은 불법이니, 법대로 고용을 하라는 겁니다. 법에도 나온 이 당연한 건설노동자의 소망은 건설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2008년) 겨울에 경기도 광명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한 팀이 들어갔습니다. 물론 하도급이죠. 하도급 단가로 일을 해봤자 일당을 뽑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이 팀이 회사에 직접고용을 하라고 요구했죠. 해고되었고, 한 달 가량 출근투쟁을 해서 일월 이십사일에 직접 고용을 따냈어요. 다른 하도급 팀들이 직접 고용된 팀을 보니 부럽거든요. 정말 신나게 일하고 사람대접 받으며 일하거든요. 그 현장에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팀이 있었어요. 이 팀도 ‘하도급 못하겠다. 일을 하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몸만 망가진다. 직접고용을 해 달라!’ 요구를 한 거죠. 그게 사월 칠일이에요. 저도 이주노동자 편에 서서 함께 싸웠죠. 사월 십오일에 출근을 하니까 ‘당신들은 해고래요. 해고당한 날, 비가 억수로 왔어요.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해고당한 사람끼리 어떻게 할 건가 이야기를 해서 다음 날 집회를 했어요.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이주노동자나 한국 노동자나 소나기에 옷 젖는 것은 마찬가지더라고요. - 황현수 씨

이주노동자가 팀으로 조합에 들어와서 투쟁한 건 이게 처음이에요. 며칠 못 버티고 이주노동자들은 포기하고 갈 줄 알았어요. 돈만 벌면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입견이 있는 거죠. 실제로 같이 싸움을 해보니까 똑같은 목수고 똑같은 건설 노동자였어요. 사십일 넘게 투쟁을 하면서 진짜 그 친구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친구들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싸울 줄 몰랐다고 이야기를 해요. 어떻든 서로 조합을 믿고 동료를 믿고 싸웠죠. 국적은 달라도 똑같은 노동자라는 믿음의 힘이 이길 수 있게 한 거지요. - 진춘환 씨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자신의 노임이 깎였다고 생각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많습니다. 파업을 할 때 이주노동자들이 대체인력으로 투입되었던 2007년 대구건설노동자 파업을 떠올리며 이주노동자들을 적대시하기도 합니다.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노동자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연대를 잘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주노동자들이 건설 현장에서 부당하게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처음에 냉담했습니다. 좋지 않은 선입감 때문입니다. 한 달이 지난 5월 16일에야 처음으로 경기중서부지역 건설노동자들이 모여 연대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날도 첫 집회를 하던 날처럼 비가 왔습니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비에 젖으며 집회를 하고 나서야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버렸습니다.

건설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진 게 이주노동자 때문이라고 그러는데 사실은 그렇지는 않거든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저단가로 일을 한다고 욕하잖아요. 이걸 만든 건 이주노동자들이 아니라 내국인들이에요. 하도급 팀들끼리 경쟁을 하며 단가를 낮춰서 물량을 따는 거죠. 단가가 낮아지니 인건비를 줄이려고 이주노동자를 팀에 넣어 일을 하고요. 이주노동자들이 하도급 팀에서 열서너 시간 씩 일하며 목수 일을 배운 거죠. 일을 좀 배우다 보니까 이주노동자도 하도급 팀을 만들어요. 하도급 구조가 이주노동자들을 건설 현장에 저임금으로 불러들인 거지, 이주노동자가 저임금을 받겠다고 건설 현장에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주노동자 때문에 단가가 낮아진 게 아니라 경쟁을 부추기는 하도급 구조가 단가를 낮춘 거죠. 결국 건설회사만 이윤을 눈덩이처럼 불리는 거죠. - 진춘환 씨

이번에 함께 한 이주노동자 가운데 저보다 나이 어린친구가 네 명 있거든요. 네 명이서 따로 모여서 술을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한테 형이라는 소리 잘 안 해요. 돌아서면 욕하고 하는데......,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서로 욕하는 사이죠. ‘힘들고 그럴 때 우리가 떨어져 나갈 줄도 모르는데 내가 지치면 형이 옆에서 잡아주세요.’ 그런데 나한테 형이라며 말하는 거예요. 가슴이 찡했어요. ‘벌어 논 거는 없고, 싸우긴 싸워야 되는데.......’ 한숨을 내쉬며 내게 묻더라고요. ‘오월 삼십일 안에는 끝나겠죠?’ ‘어떻게든 그때 안에는 끝나게 하마.’ 내가 말했죠. 그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월 이십오일에 직접고용 합의서를 만들었으니까, 약속을 참 힘들게 지킨 거죠. 사실 마지막에 좀 흔들린 친구도 있었어요. 그래도 자기들 자리 잃지 않고 꾸준히 함께 싸웠어요. 함께 연대해서 싸우다보니 서로 가슴에 쌓였던 불신이 싹 사라졌어요. 이주노동자들한테 제가 배운 거죠. 노동자는 말이 다르고 피부 색깔이 달라도 하나라는 걸. - 황현수 씨


광명의 삼환까뮤 아파트 건설 현장의 이야기입니다. 사십여 일의 이주노동자와 함께 한 아름다운 연대 끝에 이들은 직접고용 합의서를 작성하였습니다. 투쟁기간 눈물겨웠던 숱한 이야기들은 굳이 옮기지 않았습니다. 유월 사일, 이들은 직접고용 노동자로 첫 출근을 합니다. 이들이 앞으로 하루에 서 말씩 흘릴 땀방울이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로 세상에 알려질 테니까요.

이제 소박하지만 너무도 소중한 건설 노동자의 소망을 들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돈보다는 생명이잖아요. 만 원 더 벌려고 하다가 생명을 잃는 곳이 건설 현장이에요. 작년에 철근하시는 노동자가 바닥에 기름칠 된 거를 모르고 작업장을 넘다가 추락했어요. 떨어진 바닥에 철근이 꽂혀 세워져 있었는데 그대로 복부를 관통해서 돌아가셨어요. 철근을 세우면 끝에다 캡을 씌워야 되요. 캡이 씌워져 있으면 추락해도 최소한 복부를 관통해 죽지는 않았을 거예요. 앰뷸런스가 왔는데 차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 거예요. 타워크레인으로 그 분을 올렸어요. 사람이 짐짝이 되어 자재를 올리는 크레인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오는데......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울대가 심하게 떨며 한참 말을 잇지 못합니다.) 이게 다 직접고용 되어 노동을 하는 구조가 되지 못하고 하도급을 받아 돈에 목숨을 걸며 일해야 하는 실정 때문입니다. - 황현수 씨

이번에 함께한 이주노동자 가운데 자기 나라로 들어갈 친구들도 있어요. 안타깝죠. 3년 지나면 가야 되잖아요. 그 친구들이 오래오래 조합에 남아서 함께 일하면 좋을 텐데요. 이들이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건설현장에 데려와서 내국인과 이주노동자가 차별 없이 함께 목수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오래도록이요. - 진춘환 씨 (2009. 06)
덧붙이는 말

오도엽 작가는 구술기록작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의 구술기록작업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기록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될 일이 있는 분은 참세상이나 메일(odol@jinbo.net)로 연락을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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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 연대 , 건설노동자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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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명현장

    11번째 문단인가요..날짜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사월 이십오일에 직접고용 합의서를 만들었으니까, 약속을 참 힘들게 지킨 거죠...........

    4월25일이 아니라 5월25일입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이었습니다. 단결과 연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손발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지만,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다치지 마시고,씩씩한 노동자,님들도 살아있습니다.지지합니다.

  • 이봉

    마음으로만 격려를 보냄니다

  • 6468313067

    내용을 입력하세요ㅁㅈ

  • 망치

    현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