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화된 제도, 희극화한 선거, 무기력한 의회

[낡은 책] 민주주의의 자살 (끌로드 줄리앙, 유기성 역, 1980, 244쪽)

지난해 4월 새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이 된 홍세화 씨는 인터넷언론 미디어스와 인터뷰에서 “디플로마티크의 화려한 역대 필진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이가 누구냐”는 질문에 피에르 부르디외, 이냐시오 라모레, 끌로드 줄리앙을 꼽았다. 홍 씨는 끌로드 줄리앙에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이 책 <민주주의의 자살>은 70년대에 나와 1980년에 한국어로 번역된 낡은 책이다. 홍 씨가 극찬했던 바로 끌로드 줄리앙이 썼다. 저자 끌로드 줄리앙은 1925년에 태어나 미국 노틀담 대학을 나와 <르몽드> 외신부장을 거쳐 이 책을 쓸 당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이었다. 미국의 세계 지배 실상을 파헤친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 국경없는 제국>도 썼다. 번역자 유기성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고려대 교양학부에서 근무했다.

1974년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날 때 르몽드 디플로마띠끄 편집장이었던 끌로드 줄리앙은 당시 1974년 10월에 쓴 논평에서 “닉슨을 제거했다고 해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가능케 한 모든 구조와 거짓된 가치기준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닉슨 대신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여전히 자리를 보존한 상태에서 닉슨식의 외교정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미국은 여전히 칠레의 피노체트 장군, 브라질의 게이셀 장군 같은 쓰레기들을 후원한다고 예측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같은 시기 1974년 8월 10일자 사설에서 조선일보 사설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대통령(닉슨)이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쯤으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닉슨의 도청문제를 사소하게 여겼다. 조선일보 같은 신문을 둔 한국은 4년 뒤 1978년 미국으로부터 청와대까지 도청당하는 수모를 당한다.

홍세화의 말처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위대한가? 산책 나갔다가 이집트에서 훔쳐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선 콩코르드 광장 한 켠의 까페에 앉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읽는 게 파리지앵들의 로망이라고 한다. 그 잡지의 편집장을 오래 맡았던 끌로드 줄리앙의 이 책 <민주주의의 자살>을 통해 직접 들여다보자.

우선 이 책은 곳곳에 드러나는 우익 ‘반공주의’ 시각 때문에 불편하다. 저자 끌로드 줄리앙의 생각인지 번역자 유기성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독자들은 제2부 ‘인간성을 상실한 도시문명’의 후반부터는 여기저기 신문에 난 기준도 제멋대로인 통계 수치를 늘어놓는 촘스키 류의 현란한 수사의 공허함에 시달려야 한다. 촘스키 역시 끌로드 줄리앙이 만들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자주 등장하는 - 홍세화가 화려하다고 평하는 - 필진 중의 한사람이다. 사설이 길었다. 책 본문으로 들어간다.


1부 배반당한 꿈과 평등

1장 번영에 대한 의혹

문명은 가치 있는 것인가

서양 사람들은 출생 순간부터 그 생존조건에 따라 수명이 보장되어 있다. 평균수명에서 미국은 70세, 프랑스 서독 영국은 71세, 캐나다 72세, 노르웨이 73세, 네덜란드 74세, 스웨덴은 77세다. 소련도 70세, 일본도 71세다. 반면 가봉의 남자는 25세, 오트볼타의 여자는 31세, 인도네시아 44세, 파키스탄은 51세다.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이 3680달러, 스웨덴이 2665달러, 캐나다가 2087달러, 노르웨이 1800달러, 서독 1753달러, 프랑스 1738달러, 벨기에 1700달러, 네덜란드 1610달러, 영국 1560달러인 반면 남아공은 521달러, 브라질은 350달러, 이집트는 166달러, 인도네시아는 95달러, 파키스탄은 89달러, 나이제리아는 63달러다.

그런데 가장 풍요한 미국의 평균수명은 세계 제1위가 아니다. 인구 대비 의사 수는 독일에 미치지 못한다. 미국은 몇 년 전부터 외국 의사의 대폭 유입정책을 실시해 이를 만회하려고 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1위가 아니다. 덴마크 등 북유럽이 선두권이고 미국은 2류 국가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저자 끌로드 줄리앙이 말하는 평균수명 1위 국가가 꼭 문명적 가치를 지닌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 일본은 평균수명에서 최상위권이지만 가치있는 국가는 결코 아니다. ‘문명’이란 단어부터가 제국주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저자와 홍세화는 프랑스 제국주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평균수명은 형편없이 낮지만 부탄은 가치있고 의미있는 나라다. 저자는 인구 대비 의사 수도 문명의 척도로 삼았다. 저자가 이 책을 쓰던 70년대 후반에 이미 쿠바는 의사 수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반공주의 작가는 쿠바에 대한 데이터를 읽어보기라도 했을까.)

풍요속의 빈곤

브리안 아벨-스미스와 피터 타운센드의 조사결과 1960년 영국에는 총인구의 14%인 750만명의 빈민이 있다. 빈곤지역은 경제발전에 따라 축소는커녕 오히려 확대하고 있다. 1953년 보다 1965년 빈민의 비율이 늘었다. 두 사람의 조사결과 750만 빈민은 부친이 하루종일 일하는 가정이 300만명, 부친이 퇴직한 가정이 250만명, 부친없는 가정이 75만명, 편부모 가정이 75만명, 부친이 실업중인 자가 50만명이었다. 빈곤한 750만 영국인 중 200만 이상이 15세 미만 아동이다.

켄 코우츠와 리처드 실번은 1965년대 중반에 “빈곤의 제일 원인은 태만이나 다산, 질병, 실업이 아니라 ‘저임금’”이라고 설명했다. 서구의 미증유 번영을 가져온 경제발전도 저임금을 제거할 수 없었다. 영국은 노동당 정부 덕분에 사회보장제가 극히 발달했는데도 빈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영국의 노동조합 조사결과 시간제로 일하는 250만 남자, 500만의 여자의 주당 수입은 15파운드 이하다. 월급제 성인남자 150만명도 주당 15파운드 이하를 받는다.

프랑스는 최저임금(주당 40-44시간 기준) 월 682-792프랑을 받는 노동자가 약간 줄었으나 여전히 50-60만명에 달한다. 이 숫자에는 노령자, 소농, 이주 노동자는 빠져있다. 1972년 현재 약 1천만 가정의 월수입이 1500프랑 이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때엔 한국엔 최저임금제도조차 없었다. 1950년 제도를 도입한 프랑스가 이주 등 전체 노동자에게로 제도를 확대하는 데에 4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지만, 한국은 1986년 제도 도입 이후 20년도 안돼 전체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제도를 확대했다. 프랑스는 프랑스 군인으로 참전한 알제리나 이집트인에게 참전군인예우를 동등하게 적용하는 제도를 겨우 한 달 전에서야 실시할 만큼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다.)

희생당한 사람들

프랑스 내 이주 노동자는 1964년에서 1972년 사이 부쩍 늘었다. 알제리인은 52만에서 75만명으로, 포르투갈인은 10만에서 68만5천으로, 스페인인은 51만7천명에서 65만명으로, 모로코인은 6만에서 17만으로, 틔니지인은 4만에서 9만5천명으로 유고인은 1만7천명에서 6만5천명으로 늘었다. 이탈리아인만 68만8천명에서 59만명으로 약간 줄었다. 이렇게 프랑스에는 320만 외국인이 사는데 이 가운데 150만명이 노동자다.

파리 18구의 건물 내부는 창문도 테이블도 의자도 없는 20-30개 작은 방에 120명의 아프리카 노동자가 산다. 난로는 녹슬었고 여기저시 비와 물이 새고, 화장실은 통틀어 2개, 수도꼭지는 4개, 침구는 1년이 가도 바꾸지 않는다. 비참한 판자촌이다. 집주인은 68년 이후 1인당 월세 75프랑을 받으면서도 69년에 가스 전기 수도요금을 내지 않아 공급이 중단됐다. 프랑스 블루칼러 노동자에서 외국인 비율은 62년 6.88%에서 68년 7.61%로 늘었다.

프랑스 노동총연맹과 민주노동총연합은 1971년 12월21일 공동성명에서 “이주민 노동자가 처해있는 상황은 .... 참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의를 환기시켰을 뿐 그 이상의 어떤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이주 노동자의 이주를 통제하는 데만 전념하고 있을 뿐이다. 전 유럽의 노동자 10%는 이주 노동자다. 벨기에와 스웨덴에선 5%, 스위스는 25%가 이주 노동자다. 서독에는 이들 가운데 불과 20%만 노조에 가입해 있다. 프랑스의 이주 노동자 자녀는 70만명을 헤아린다.

(적절하게 잘 표현했지만 여기저기서 모은 통계치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프랑스가 폭동이 일어날 만큼 이주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문화를 가진 사실은 한국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2장 풍요한 사회의 희생자들

기능을 상실한 민주주의

토크빌이 관찰한 바로는 프랑스와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같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따르고 있으나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보다 자유의 측면을 강조하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평등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의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봉착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풍요하지만 평등주의에 한층 더 집착하고 있다.

미국 가정의 최하위 20%는 전체 국민소득의 3.2%를 사용하고, 최상위 20%는 45.8%를 독점하고 있다. 그래도 미국의 중산계급은 유럽보다 미국이 더 부유하고 빈민은 유럽보다 미국이 덜 가난하다. 미국에서 연 수입 1600달러 이하의 도시생활자는 공식 빈민이다. 연 소득으로 본 빈곤선은 이탈리아는 1116달러, 영국은 1560달러, 네덜란드는 1610달러다. 그러나 숫자놀음은 사람들의 판단을 그르친다. 빈곤선이 높은 프랑스는 1738달러, 독일은 1753달러다.

40여년 전 프랭크린 루즈벨트는 총인구의 1/3이 의식주 조건이 불량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유례없는 번영을 구가할 때 ‘빈곤의 드라마’를 만들어갔다. 1945년부터 70년대까지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2배 이상 증가했고 1인당 GNP도 5712달러로 서구의 1708달러의 3배를 넘었다. 1962년 미카렝 해링튼은 <미국의 빈곤>이란 책에서 미국민 5천만명이 빈민이라고 했다. 백인 가운데 3천만명 이상이 빈민이다. 1959년에서 1969년까지 미국은 빈민의 수를 3950만에서 2430만명으로, 총인구의 22%에서 12%로 줄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미국서도 저임금이 빈곤의 주원인이다. 미국 가정의 1/3은 여성 노동자다. 빈곤선에 크게 못미치는 가정에서 직업을 가진 주부는 14%에 불과한데 여유있는 계층의 주부 53% 이상이 일을 한다.

(프랑스는 자유, 미국은 평등? 둘 다 제국주의 국가일 뿐이다. 덜 나쁜 제국주의는 없다. 미국이 평등주의에 집착한다는 저자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무수한 흑인과 인디언과 라틴계 인구를 뺀 앵글로색슨만의 평등주의라면 모를까.)

번영에서 제외당한 자들

70만 인디언의 상태는 지극히 비극적이다. 그들 중 약 50만명은 보호구역에서 산다. 인디언 가정의 절반은 연소득 2천달러 이하다. 여러 번 투옥당했던 세자르 샤베즈의 지도하에 멕시코계 미국인은 1970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농업노동조합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전국적인 규모로 캘리포니아 과일불매운동을 전개했다. 이 불매운동은 미국노동총동맹산별회의와 카톨릭 사제들의 지지와 협력 하에 이루어졌다.

미국 정부는 선거자격이 없는 청소년 지원 예산을 외면하고 노령자에게 집중 투입했다. 빈곤 아동은 1100만에서 1800만명으로 증가했다. 66년 박사학위자의 소득은 학사학위자 수입의 42%를 넘었다. 무명대 졸업생이 7881달러는 버는데 반해 유명대 졸업생은 11,678달러를 벌었다. 미국의 대부분 가정은 두 자녀가 대학입학연령에 달하면 가처분 소득의 절반을 학비로 지출한다. 미국의 학제는 주로 지방자체세로 운영하기 때문에 가난한 구역에는 가난한 학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농민들에게 여러 보조금을 준다. 빈곤선 이하 약 100만 농민은 연 400달러를 받는다. 반면 부유한 농민 8500명은 1인당 약 25,000달러 이상을 받는다. 최고액은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의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제임즈 보스웰로 연간 400만달러 이상을 받았다.

(이렇게 양극화의 수치만 늘어놓는 건 서구 좌파연하는 먹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들에게 대안을 물으면 혁명했을 때나 가능한 비현실적인 얘기만 늘어놓는다. 정작 지들은 혁명 포기한 지 수십년이나 됐으면서. 심지어 제3세계 진보단체 - 노동조합 포함 - 에 혁명 포기를 종용하기까지 하는 위인들이.)


2부 인간성을 상실한 도시문명

1장 파멸하는 메갈로폴리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거대도시화

도시집중은 1) 생활의 질적 저하를 부른다. 2) 경제발전에 장애가 된다. 도지가격, 단위면적당 건축비, 인건비,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대폭인상시켰다. 3) 정치생활을 마비시킨다. 방대한 행정기구의 비능률, 갖가지 집단의 압력, ‘격렬한 시위’ 등이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루이스 멈포드는 1938년에 이미 <도시의 문화>에서 도시를 완전히 재건설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도시의 위기는 더 악화됐다. 뉴욕은 수많은 시 직원을 해고했지만 연간 약 50억 달러의 예산에서 3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 뉴욕 경찰은 인구 천명당 3.3명으로 전국평균 2.2명보다 많다. 뉴욕의 인구가 전국의 1/6이지만 범죄 발생은 절반을 차지한다. 학생의 독해력은 평균에 비해 1970년에 약 14개월 뒤졌다. 학생 1인당 지출하는 공공교육비는 1028달러로 클리블랜드의 552, 디트로이트의 620달러에 비해 높다. 병원 침대는 인구 120명마다 1개 인데 뉴욕은 200명마다 1개가 있다. 땅값과 집세는 엄청 높다. 과밀한 도시집중은 사회예산에 큰 부담이다. 생활비가 승상하는 반면 생활의 괘적함은 줄어든다.

(‘격렬한 시위’에 대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의 시선이 이 정도 밖에 안되나?)

사라진 교외에 대한 환상

조용하고 괘적하던 교외는 벌써 도시만의 특성인 불편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교통불편이 우선이다. 루이스 멈포드는 1955년에 이미 ‘보조금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무분별한 결정’을 고발했다. 뉴욕 중심부의 밀집상태를 주변지대로 연장하는 것 뿐이었다. 열차는 지표의 점유면에서 1/4, 승객 수송에서 5배의 능률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거액의 고속도로 건설에 국고를 탕진한다. 미국 교외열차 승객은 35년 97억8천만명에서 68년 64억9천만명으로 줄었다.

미국의 인구밀도는 평방킬로당 겨우 23명으로 프랑스의 1/4, 독일의 1/10, 네덜란드의 1/18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 인구의 70%가 국토의 불과 2% 면적 안에 밀집돼 있다. 2% 안에 사는 1억4천2백만 미국인은 평방킬로당 756명으로 벨기에의 2.5배나 되는 과밀지역에 산다.

파리의 버스는 1952년 시속 14킬로에서 1970년에는 8킬로로 줄어 합승마차와 같은 속도가 됐다. 파리 인구는 프랑스 전체의 1/6이지만 도로공사자금의 40%를 사용한다. 정부는 파리의 지하철과 버스가 내는 적자의 70%를 부담하고 있다. 도시지역에 새로운 자금을 투입해 보다 살기 좋고 효율 높은 지역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자의 근원지인 도시지역의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反경제적이다. 도시는 이미 질식하고 있다.

도시문명의 위기

미국에선 도시 재정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주된 걱정거리다. 대도시 당국의 대부분은 파산상태다. 미국에서 상수도 없는 412만8천개, 난방 없는 주택이 100만개, 욕실이나 샤워실 없는 집이 690만개다 되는데 대부분 도시에 있다. 파리지역엔 약 900만명이 사는데 주택의 64%가 욕실도 샤워도 없다. 43%는 옥내 화장실조차 없다.

파리지역 대다수 선거민은 우파와 중도파다. 이탈리아 남부 농민들은 북부 노동자와 정치성향이 같다. 프랑스 서남부 농업지대는 오랫동안 좌익에 표를 던졌다. 도시는 진보, 농촌은 보수라는 말은 거짓이다. 셍 나제르와 르 망 같은 지방도시가 파리도 못하는 파업을 전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도시는 부의 불균등한 분배와 타인의 노동이 제공하는 편익에 바탕을 둔 결코 민주적인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도 與村野都의 투표 성향이 뒤집어졌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과 강원도지사 투표 결과로도 증명된다. 그런데 둘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70년대 서유럽의 좌파정당과 우파정당은 어땠을까. 별 차이 없었을 것 같다.)

2장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

유착하는 정부와 기업

존슨 대통령은 “미국의 미관이 파멸직전”이라고 말했다. 65년 미국 의회는 도로변 풍경을 가리는 광고간판 규제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83만9천개의 간판 철거에 3억달러를 지출해야 했다. 간판 소유자에 보상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운수성은 현재 속도로 간판을 철거하면 아마 1세기가 걸린다고 전망했다. 상업상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것도 아닌 자연풍경을 망가뜨리는 산업을 왕처럼 대우하는 거다.

젊은 변호사 랠프 네이더(앨 고어가 대선 나왔을때 함께 대선에 출마했던 바로 그 사람)는 불량자동차와 가정용 기구, 유해식품 등을 사람들에게 기업에 맞서 전개한 캠페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정부는 67년 내무성에 오염대책특별반을 설치하면서 찰스 벨트만 손에 맡겼는데 그는 화학공업의 로비활동을 진두지휘한 자다.

존 린세이 뉴욕시장은 “시민은 각자의 개성을 잃어버렸다. 뉴욕 주민들은 시 행정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했다. 드골류의 사고방식이 대서양을 건너 존 린세이에게 이르렀다. 존 린세이는 “미국 도시의 뿌리깊은 불안을 해소하려고 참여의 기회를 확충하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보다 정중한 대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가능성을 원한다. 그러나 메갈로폴리스는 그게 불가능하다.

(MB나 이건희 회장의 발언과 너무 많이 닮았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들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그 어투.)

부동산 투기에 의한 급속한 부의 형성은 전 서양에 공통된 것이다. 그 원리는 에밀 졸라가 작품 <분배>에서 묘사한 것과 흡사하다. 부동산 투기의 출발점은 산업혁명이다. 미국 통계는 대기오염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15%나 저하시킨다고 한다. 프랑스의 소음은 육체 노동자의 생산성을 30%, 지적 노동자의 생산성을 60% 저하시킨다. 농지를 100헥타 단위로 헐값에 사서 필요한 인가를 모두 얻은 다음 대도시확장이나 스키장 혹은 연안개발의 건설부지로 지정받는다. 대형 건설회사가 한몫 거들고 있다. 진보의 핵심이던 도시가 메갈로폴리스 속에서 용해되고 말았다. 도시는 퇴행하고 나아가 진보에 역행하고 있다.


3부 우롱당하는 시민

1장 민주정치는 병들고 있다

민주국가가 안고 있는 불안의 원천

1958년 이후 프랑스 정체체제는 개혁파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좌익세력으로부터 비난 받았으면서도 미래상이 분명치 않은 1969년 당시 수상 샤방 델마스가 주장했던 <새로운 사회> 공약만 되풀이 한다. 연방제를 택해 지난 40년 동안 중앙의 권력을 강화한 미국에 비해 똑같이 연방제를 실시한 캐나다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서구 민주국가의 위기는 1) 헌법 기구의 위기다. 2) 그밖의 기구 역시 나을 것이 없다. 수많은 기구가 기능적 효율성만 더 중시한다. 풍요속의 빈곤은 막강한 정보기구를 거느린 국가기관이 밝히지 못하고 재투옥된 세자르 샤베르 같은 사람들이 폭로하고 있다.

변화하면 잃을 것을 가진 자, 혹은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법과 질서>라는 기치 아래 모두 모여 담합한다. 우익은 결코 일관된 것이 아니어서 정치 무대 뒤에서 서로 배역을 바꾸기도 한다.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좌익 정부가 알제리 전쟁을 일으켰고 좌파 각료인 프랑소와 미테랑은 “유일한 교섭은 전쟁”이라고 호언했고 프랑스 공산당은 전권위임에 찬성했다.

미국의 좌익 전통세력은 한국전쟁에 개입한 트루만을 지지했다. 베트남전쟁을 십자군이라고 비판한 베리 골드워터에 반대하면서도, 베트남전쟁을 확대시킨 존슨을 지원해 전쟁축소를 단행한 닉슨을 패배시켰다. 이처럼 우익이 인정많고 무능한 좌익이 꿈꾸던 일을 성취시킨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950년 미국에서 질서를 파괴할 우려 있는 시민을 ‘집단수용소’에 예방구금할 것을 제안한 국내안전법(맥컬런법) 제2조를 채택하도록 한 건 민주당 좌파였다. 이 법은 매카시즘의 가장 유용한 무기였다가 1971년 닉슨 정권에서 없어졌다. 프랑스 좌익은 식민지전쟁과 수에즈 출병을 적극 지지했다. 이러고도 여전히 좌익이나 우익이란 말을 쓸 수 있는가. 우익은 극히 구체적인 자신의 이해가 침해당한다고 느끼는 순간 곧바로 일치단결하는데 반해 좌익은 자칫 막연한 대안이나 공리공론에 빠져 분열되기 쉽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미FTA는 ‘좌빨’이라 불리우던 노무현 정부가 목숨걸고 추진했다. 어떤 명분도 없는 이라크 전쟁 파병도 노무현 정부가 진두지휘했다. 이라크 전쟁 파병때 국가안보회의 주요 책임자였던 이종석 - 이후에 장관까지 - 씨는 지금도 진보연 하는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다. 노무현 정권 때 KBS 토요일 밤 심야토론에 나와 한미FTA 추진을 주창하던 386 좌장이 새 인천시장으로 당선됐다. 일반 국민의 출입이 금지된 대통령 별장 청남대에 군용헬기를 타고 청와대 식구들끼리 가족동반 여행을 갔다가 조선일보 카메라에 찍혔던 인사가 지금도 민주노조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

허구화된 민주제도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국회는 실제로 행정부에 대해 여하한 통제력도 갖지 못한다. 국회의 통제란 완전한 허구”라고 말했다. 미군은 상원의 동의없이 한국전과 베트남전에 참여했다. 쿠바상륙작전과 도미니카 공화국 파병도 마찬가지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약 2만의 군사고문단을 베트남에 파견할 때 미국의 많은 시민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미증유의 국가적 위기에 다가서는 제1보였다. 여론조사는 실제적인 문제를 검토하기 보다는 사소한 문제를 들춰낸다. 후보자의 가족이나 용모는 후보가 제시하는 강령보다 중요시되고, 심지어 자기 처의 요리솜씨까지 자랑삼는 것이다. 1968년 미국의 대선은 민의를 타진해보기 위한 연극이었다.

(저자는 의회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환상에 사로잡혀 반복해서 미국과 프랑스에게 진실된 민주제도 - 의회민주주의 - 로 돌아오라고 주문한다. 지금은 소위 서구식 민주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의회와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가져야 할 시기다.)

희극화한 선거

정부는 곧잘 ‘전문가’의 두뇌를 빌어 대부분의 국민과 때로는 일부 국회의원조차 알 수 없는 용어를 사용해 문제를 되도록 복잡한 것처럼 꾸며 놓는다. 전문가는 최선의 판단자라는 것이다. 케네디는 대선 중 라틴아메리카정책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정권을 잡자 전례대로 쿠바에 군사행동을 감행하고 더욱이 실패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선거는 실질적인 선택이 아닌 환상에 불과하다. 정권은 지지표를 획득케 한 공약에 의해 전혀 구속받지 않았다. 1968년 미국의 선거때 인종차별주의자인 월레스가 약 1천만표를 받아 10% 이상 득표했다. 타임지는 “미국 대선을 돌아볼 때 3/4은 사람을 현혹시키기 위해 미리 만들어놓은 흥분제이며 기분전환 수단”이라고 썼다. 술책에 능란한 후보자들은 50주를 모조리 순회한다는 1960년 닉슨 식의 졸렬한 약속이나 하고 다닌다. 이것은 ‘운동경기’일 뿐 지성적 행위가 아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세제 내용도 모르는 채 일방적으로 과세당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닉슨은 엄숙한 태도로 균형예산을 약속했지만 71-72년 250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2장 민주주의는 소생할 것인가

왜 의회는 무력한가

56년 수에즈 출병은 파리와 런던 모두 의회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 프랑스 국회는 알제리 전쟁 종결을 다룬 교섭에서 배제당했다.

미국 국회의원의 연봉은 4만2천5백달러이고 주민 50만명을 가진 선거구라면 16명의 보좌관을 쓸 수 있다. 보좌관 최고급여는 3만5천달러다. 일부 상원의원은 60명까지 보좌관을 쓴다. 의회 운영에는 건물유지비, 인쇄비, 국회도서관 등을 포함해 매년 3억9천6백만달러가 든다. 이것은 B1 폭격기 가격의 3.6%에 불과하다. 그런데 유럽은 몇몇 의원이 때로 단 한 명의 비서를 공유하고 있다.

68년 닉슨대통령선거 때 2천9백만달러를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국에서 1억달러 정도는 썼을 거라고 한다. 미국신문은 72년 2월 국제전신전화회사 ITT가 법무성이 반 트러스트법 위반으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한다는 조건으로 공화당에 40만달러의 헌금을 약소한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법무장관은 68년 닉슨대선을 총지휘한 존 미첼이고 72년에는 장관직을 버리고 또 선거참고가 된 자다.

돈이 권력으로 가는 길을 터주면 권력은 돈벌이 할 기회를 주는 게 지금의 서구 민주주의다. 타임지는 “정치가들은 이제까지 선거비용은 서민들이 한푼 두푼 모아준 것이라지만 실상은 부유한 소수에게서 받은 것이다. 정치자금의 90%는 국민의 1%가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 <뉴요커>는 “우리보다 빈약한 경제력을 가진 많은 나라가 후생 교육면에서 미국보다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시인했다. 하버드의 다니엘 벨 교수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미국 사회는 폐쇄적인 조짐을 보이고 행정기구는 지리멸렬하다”고 지적했다.

(미국도 틀렸고, 유럽도 틀렸다. 저자는 막대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미국식 의회제도가 옳다고 한다. 결국 저자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굳이 잡지 ‘뉴요커’나 하버드대학의 다니엘 벨 같은 이의 명망에 기대지 않아도 정치자금을 1% 부자들이 대고 있다는 건 가난한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4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소비경제기구

1장 비뚤어진 소비사회

경제성장의 함정

69년 1월 닉슨이 정권을 받았을 때 워싱턴 주변 5번가는 68년 4월 킹 목사 암살사건 이후 흑인폭동이 휩쓸고 간 잔해가 백주에 여기저기 방치돼 있었다. 닉슨 대통령이 이를 치우도록 명령했지만 측근은 “아무리 소규모의 도시계획이라도 12년은 걸린다”고 답했다.

과학기술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가난한 국민의 주요한 수입원인 노동력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고용하고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강요해 가능한 한 낮은 상품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각국의 국민총생산량과 성장률을 비교하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서양은 자신에게 던져진 가장 중요한 문제를 회피해왔다.

국민 1인당 소득이 유럽의 3배인 미국에서 발전은 비참한 가난을 제거하지 못했고 생활의 질 보다는 소비수준만 높여 놓았다. 갈브레이드가 말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들어낸 자동차에 대한 수요”의 예는 현실이다. 닉슨 대통령은 자동차세의 7%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1대 당 약 200달러의 가격인하와 같은 효과다. 서양의 가치는 전도되고 있다. 부족한 공공투자에 충당할 조세수입을 줄여 설비과잉 상태에 놓인 기업을 돕겠다는 거다. 국민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투자를 결정한 민간산업이 충분히 조업하도록 감세특권을 줘 더욱 더 소비를 조장해야 한단 말인가.

비생산부문의 투자가 반드시 ‘비생산적’인가. 건강, 교육, 녹지, 음악, 회화, 문학, 여행에 투자를 늘리면 고용을 증대키시고 결국 자동차를 더 살 것인데도.

2장 부유한 자의 특권

세제상의 불평등

프랑스에서 제일 큰 불평등은 <소비세>에서 유래한다. 소비세는 국가 세입의 61%를 차지하는데 반해 누진적인 <소득세>는 불과 17.7%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세 중과세는 급여가 낮은 노동자에게도 고액소득자와 거의 같은 정도로 부과된다는 점에서 한층 부당하다.

<소득세>는 원칙적으로 누진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의회 재정위원회는 탈세 가능성에서 급여생활자는 8%, 상인과 장인, 자유직업인은 147%, 기업은 160%로 추산했다. 1050만 납세자 가운데 0.3%만이 10만프랑 이상 소득자라고 신고한 사실만 봐도 프랑스의 탈세 규모를 알 수 있다.

프랑스, 스웨덴 서독 등 유럽은 국민총생산의 33-41%를 세수입으로 거둔다. 미국과 캐나다 등은 겨우 26-30%를 거둔다. 67-70년 미국의 세수에서 법인세 비율은 23.5%에서 17.9%로 줄었지만 개인소득세는 64.9%에서 72.1%로 늘었다. 뉴저지의 스탠더드 석유회사 평범한 사무원은 연봉 6천달러로 16%의 세금을 내지만 그 회사는 70년에 10.8%만 세금을 냈다. 미국의 석유회사는 70년에 8.7%만 세금을 냈다. 반면 같은 기간 과세소득 2천달러 이하의 가장 가난한 노동자도 14-18%의 세금을 내 석유회사의 두배나 되는 세금을 지불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죽은 곳은 석유업계의 권한이 강력한 곳이다.

65-70년 미국의 개인소득세가 세수에서 점하는 비율은 41.8%에서 46.7%로 증가한 반면 법인세는 21.8%에서 16.9%로 줄었다. 육체노동에 대한 세금은 더욱 무더워지는 한편 이윤이 늘고 있는 법인세의 징세액은 감소하고 있다.

(이렇게 몇 페이지 간격을 두고 서로 앞뒤가 안 맞는 엉터리 통계를 늘어놓는 점은 촘스키를 닮았다. 그저 현란하게 이런저런 통계숫자만 잔뜩 끌어다 쏟아놓는 식의 글쓰기는 저자가 비판하는 우익 정부의 관료들이 즐겨쓰는 수법이다. 저자 자신도 바로 이 책에서 이런 비판을 하면서도 통계의 함정에 빠져 있다. 도대체 1970년 미국의 법인세 세율는 17.9%인가. 16.9%인가. 역시 1970년 미국의 개인소득세 세율은 72.1%인가. 46.7%인가.)


5부 침식당하는 시민권

1장 폭력을 기르는 민주사회

폭력의 범람과 고립된 인간

달라스 국제은행에 1800달러 이상을 2년반 이상 예금한 고객에겐 탄약과 함께 권총 한 자루를 선물로 받는다. 린드 존슨은 광란의 무기 유통을 제한하기 위해 1968년 6월 무기신고의 의무화를 제안했다. 미국인의 71%가 무기통제에 찬성했다. 그러나 채택하지 못했다. 전국총기협회의 압력 때문이었다.

71년 프랑스의 자동차 사망자는 1만6200명으로 인구밀도가 4배나 낮은 미국의 4배에 달했다. 프랑소와 미테랑에 대한 위장 습격사건이 천문대 정원에서 있었다. 미테랑은 당시 사회당 서기장으로 인기가 떨어졌을 때 자신에 대한 습격사건을 조작해 인기의 만회를 꾀했다.

2장 침몰하는 자유

정보 과잉의 상업주의와 인종차별

1900년 뉴욕에는 15개의 일간지 있었는데 지금은 3개 밖에 없다. 리용의 한 노조가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포스터를 붙였더니 그 위에 누군가 “아랍놈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말라”라고 낙서해 놓았다.

<새로운 질서>그룹은 백인 우월주의를 구가하고 있다. 이들이 뿌린 삐라는 “중국과 일본은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 주된 이유는 그들의 영토에는 유태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썼다.

(다시 지난해 4월 홍세화의 인터뷰로 돌아가자. 미디어스는 홍 씨에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한국 지성계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홍 씨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하나의 매체이지만 운동의 측면에서 지식인, 대학생,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다양한 부문의 활동가들도 같이 동참했으면 한다. 르 디플로가 많이 읽힐수록 한국사회 의식지형의 변화도 추동될 것”이라고 답했다. 과연 그럴까. 인터뷰 기사 맨 마지막에 미디어스는 홍 씨에게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는 비판도 있었는데”라고 물었다.

홍 씨는 “프랑스에 20여년 있었을지라도 나는 30년 가까이 사회화 과정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어로 사고하고 추론하고 소통한다. 프랑스 사회에 대한 비판은 프랑스인의 것이라고 본다. 내가 보기에도 프랑스가 완벽하지는 않다. 다만 민주주의, 주체적 자아 등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프랑스는 우리가 참조할 만한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내가 비판적인 부분은 덜 다뤘지만 20년간 프랑스의 이주노동자로 살았던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그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프랑스 사회에 대한 비판은 프랑스인의 것이라고 본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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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제부가 프랑스인인데 한국에서 젤로 편한게 택배와 24식당과 음식배달은 지상최고라더군요. 프랑스에선 꿈도 못꾼다고... 지상천국 한군이라는군요. 퀵서비스 노동자들과 불안정노동자로 점철된 한국의 값싼 노동력에 대한 고려없이 뱉어내는 품위있는 파리지앵의 주둥이를 한대 갈기고 싶었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