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시위, 그 역사적 맥락과 의미

[원영수의 국제칼럼] 룰라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시작

전세계 축구팬의 시선이 컨페더레이션컵 경기에 쏠리는 순간 터져나온 새로운 시위의 물결은 한마디로 브라질 판 촛불이다. 6월 10일 상파울루 중심가의 비즈니스 거리인 파울리스타 가에서 기습적인 교통비 인상에 맞선 약 5천명 규모의 소규모 시위는 익숙한 공식대로 경찰폭력으로 불붙어, PT 정부나 FIFA 마피아의 소망과는 반대로 들불처럼 브라질의 400여개 도시의 1백만명 대오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신자유주의와 야합한 룰라-후세프 체제에 강력하게 도전했다.

작은 불씨에서 광야의 들불로

[출처: http://roarmag.org/]

이번 사태의 중심지인 상파울루는 최악의 교통지옥이고, 2시간 출근시간은 보통이다. 고비용 저효율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3-4시간을 거리에서 보내는 기층민중과 청년들의 고통과 분노는 충분히 누적돼 있었다. 룰라의 전임 엔리케 카르도수 정권이 추진했던 민영화의 수혜자인 버스 카르텔의 지배 아래서 교통비는 인상될지언정 서비스는 결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질마 후세프 PT 정부는 전국적으로 버스요금을 3헤알에서 3헤알 20센타보로 인상했고, 누적된 불만 속에서 저항은 당연했다. 이 거대한 역사적 투쟁은 아주 작은 항의시위로 출발했다. 6월 10일 상파울루에서 한 작은 단체가 기습적인 버스요금 인상에 저항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6월 10일 시위를 주도한 그룹은 MPL로 알려진 ‘무료승차운동’(Movimento Passe Livre)이란 단체였다. 2003년 바이하주 수도 살바도르의 투쟁(봉기)와 2004년 북동부 포르탈레자 투쟁(봉기)을 발판으로 2005년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5회 세계사회포럼에서 두 도시 활동가들이 모여서 MPL을 결성했다.

6월 10일의 작은 시위는 그 다음 날에도 이어졌고, 경찰의 과잉진압과 폭력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6월 14일 투쟁은 전국의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 소규모 투쟁 -> 경찰폭력 -> 투쟁의 확산의 메카니즘을 통해 전국화된 투쟁은 6월 18일 20만 명 이상의 동시동원과 브라질리아 국회포위투쟁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거대한 나라인 브라질에서 모든 주의 수도를 포함해 400여개 도시에서 투쟁의 불길은 확산됐다.

작은 승리, 그러나 커다란 시작

예상치 못한 투쟁의 폭발로 4일간의 투쟁 이후 6개 도시가 버스요금 인상을 철회했다. 그리고 6일후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마저 요금인상을 철회했다. 모든 브라질인의 예상을 뛰어넘는 투쟁의 역학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압박했고, 작지만 귀중한 승리를 거두었다.

작은 승리지만, 그 함의는 거대한 것이었다. 다음 날에도 시위대는 모였고, “이 투쟁은 겨우 20센타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이제 투쟁은 공공교육과 의료 확대, 안전 강화, 광범한 정치권 부패 척결 요구 등의 보다 확장된 요구를 내걸었다.

“깨어나라 브라질!”이란 구호 아래 투쟁대오가 축구경기장을 포위할 정도로 확산되자, 반정부 우파와 파시스트 그룹들에서 친정부계열의 정당까지 모든 정치세력이 시위의 대열에 동참/개입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대중운동의 편승해 각자의 요구를 내걸면서 이 거대한 대중투쟁을 이용하려고 했다. 파시스트 집단은 군부집권을 요구했고, 부패한 우파 야당들은 부패를 이슈로 시위를 반정부적 내용으로 채우려고 시도했고, 친PT 좌파는 시위가 반정부투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전정긍긍했다. 그러나 PT의 깃발은 경멸당했고, 반PT 좌파들은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새로운 대중운동과의 결합을 모색했다.

버스요금 인상철회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누그러들지 않자, MPL을 선두로 이른바 사회운동세력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으로 개입했고, 6월 21일 그 동안 시위의 물결을 외면하던 질마 후세프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어 이른바 5대 개혁안을 내걸고 투쟁의 무마에 나섰다. 그러나 투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브라질 촛불

“깨어나라 브라질!”로 집약되는 이 운동은 투쟁의 범위와 확산속도, 운동 자체의 무정형성, 다양한 주체, 비폭력 전술 등 2008년 한국의 촛불, 2011년 아랍의 봄, 미국의 월가점거운동, 에스파냐의 분노한 자들의 운동(Indignados), 2013년 터키의 여름 등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번 브라질 교통요금반란의 주요한 주체는 불안정 고용,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청년세대이며, 이들은 주거, 교통, 생활여건 등 해결되지 않은 도시문제로 고통받고, 미래를 잃어버린 세대이다. 이들은 어떤 정당이나 노조에 속하지 않으며, 체제의 제도적 보호 외부에 존재하는 배제된 노동자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은 정부나 정당, 노조 등 전통적 기관 모두를 거부하고 있으며, 탈집중적 수평적 운동을 지향하고 있다.

베테랑 활동가들도 이번 투쟁의 범위와 확산속도, 강도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룰라와 후세프 정권 아래서 딜레마에 빠졌던 브라질의 민중-사회운동, 특히 대표적으로 무토지 점거운동(MST) 역시 새로운 청년반란의 꽁무니를 따르기에 급급했고, 쿠치(CUT) 노총의 깃발은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고, 한 때 브라질 노동자의 희망이자 상징이었던 PT의 깃발은 시위대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룰리스모 종말의 시작, 그리고 새로운 투쟁주기의 시작

“신자유주의 15년, 그에 이어 계급타협 정부의 지난 10년은 정치를 자본의 인질로 전화시켰다.”(Joao Pedro Stédile, MST 지도자)

한마디로 이번 브라질의 버스요금 봉기의 근본 원인은 이른바 민주화 시대의 민간정권과 그를 이은 PT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였고, 과거 군부독재 아래서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지만 제도화 과정을 거쳐 무력화된 제도좌파 외부에서 새로운 세력, 혹자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르는 광범한 비공식부문 미조직 노동자들과 반실업 청년세대가 주도했다.

거의 폭동에 가까운 시위의 원인이 버스비 인상이란 점도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핵심적 요소인 차베스주의(chavismo)의 출발점이었던 1989년 카라카스 봉기(caracazo)의 촉발 원인 역시 2월 12일 그날 아침 전격적으로 시행된 교통요금 인상이었다. 당시 페레스 정부는 카라카스와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일어난 저항을 물리적 폭력으로, 국가폭력으로 진압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차비스모의 승리 이면에 가려져 있는 베네수엘라 과두제 계급의 정치적 몰락이었다.

차베스에 맞서 온건한 좌파를 주장했던 룰라는 브라질을 8년간 통치했고, 질마 후세프에게 권력이양에 성공함으로써 PT 중심의 타협적 약한 개혁노선(weak reformism) 체제를 구축했다. 이번 대중시위는 기본적으로 질마 후세프가 아니라 룰라에 대한 저항, 더 정확히 말하자면 룰라없는 룰라주의(lulismo)에 대한 전민중적 저항이자 투쟁이다.

역사적으로 1989년 룰라의 대선 패배로 19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선 10년의 민주화투쟁의 대중동원이 종결됐고, 그 이후 형성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MST 등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그리고 1992년 콜로르 탄핵투쟁 이후 사실상 체제변혁적 대중투쟁은 부재했다. 룰라를 노동자대통령으로 만든 뿌리였던 전투적 노동운동(CUT)의 무력화 과정은 그 반증이다. 그러나 이번에 제도화된 관료적 노조운동이나 PT정부에 긴박된 사회운동 외부에서 새로운 대중투쟁이 폭발했다.

이번 브라질 시위로 브라질은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 룰라의 통치나 후세프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는 어떤 역사적 결절점이 되지 못한다. 지난 200여년 브라질의 최현세사는 새로운 운동과 정치의 실험, 그로 인한 탄압과 학살의 연속으로 점철돼 있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으로부터 자립한 좌파 정치인들의 배신을 넘어 사회의 부와 권력을 민중 스스로가 전취하고 모든 반혁명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그날까지 이어질 거대한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룰라주의의 타협성을 비판하면서도 그 궤도에 긴박된 브라질의 제도좌파와 사회운동은 새로운 대중투쟁의 동학 앞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새로운 운동의 분출 가능성을 전혀 예상치 못한 이들의 혼란은 촛불항쟁이나 월가점거운동의 폭발적 분출에 당황한 기존 좌파의 당혹감과 혼란의 재판이다. 이번 투쟁으로 룰라주의가 실존적 위기에 내몰렸음은 물론, 룰라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제도좌파나 사회운동 역시 이미 뿌리깊은 조직적, 운동적 위기에 전면적으로 노출될 것이다.

컨페더레이션 우승컵은 무적함대 에스파냐를 격파한 브라질에게 돌아갔지만, 민중배제적 메가프로젝트의 외피에 기생하는 타협적 신자유주의 체제의 위기는 지속된다. 신자유주의 월드컵 체제에 맞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투쟁 역시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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