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시대에 태어나 시대의 격랑을 넘은 ‘만신’

[명숙의 무비, 무브](13) 기록의 힘을 다시 생각하다

“그때는 신의 시대였지.”

영화 <만신>(2014, 박찬경)에서 주인공 김금화가 어린 시절 마을에 흔했던, 나뭇가지에 옷을 걸어두는 등의 신을 모시는 풍경들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그리스.로마신화의 영웅적 신도, 기독교의 유일신도 아니다. 집이나 마을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령이거나 죽은 영혼들이다. 무속신앙으로 대표되는 민간신앙들을 바탕으로 한다. 첨단과학이 사회를 이끌고 오직 이성만이 사람을 구원하리라는 주문이 쇄도하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의 시대가 있었다는 말은 정말 낯설다. 하지만 아직 채 100년도 안 된, 육십여 년 전 김금화가 회상하던 어린 시절은 그랬다. 생각해보면 내가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외할머니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새벽에 빈 그릇에 물을 떠놓고 빌던 모습을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다.

영화 <만신>은 황해도에서 태어난 만신 김금화의 일생을 한국근현대사와 함께 다룬, 극영화 요소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만신은 무당을 높여 이르는 말로 김금화는 1985년 한국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나라만신이다. 그녀의 생애를 미술을 전공한 무비아티스트인 감독답게 무속 민화를 이용해 환상적인 신의 세계를 연출하기도 하며, 배우나 기록물을 통해 김금화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신 내림이나 현대사의 아픈 굴곡을 환상적이면서도 생생한 사실로서 표현한다.

또한 영화는 만신이나 김금화를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의 내레이션에서 나오듯이, 우리 사회에서 무당은 신비화되거나 분석되고 구경거리가 되어갔다. 그러나 영화는 그저 담담하게 그녀의 삶을 그녀의 신내림을, 굿에 담김 신명남과 씻김을 전달하려는데 방점을 찍는다. 그냥 굿을 보여주고 그녀의 말을 옮긴다. 그래서인지 중간 중간 민속학자나 소설가 등의 해설조차 영화에 빠져드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도 김금화가 영화와 관련한 굿을 하는 장면이다. 사실 난 이 영화가 무당을 다룬 영화라는 것은 알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인지는 몰랐기에 첫 장면은 매우 신선했다. 영화는 한편의 굿이기도 하다는 의미이기도 한 이 장면 외에도 영화는 끝까지 영화와 굿의 경계, 삶과 신앙(종교)의 경계, 문화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도 가장 으뜸인 장면은 김금화가 굿을 하는 기록영상이다. 김금화의 때로는 신들린 듯한 표정으로 망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한판의 마당극을 연기하는 듯한 익살맞은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그 판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울거나 뛰노는 굿판 영상은 굿의 세계에 우리를 끌어들인다.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력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그저 신내림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영화를 보게 됐다. 그것은 엄마와 관련된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기 전인가, 다닐 때인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엄마는 몹시 아팠다. 당시 동네에는 외가와 친가 친척들이 가까이 살았다. 외가 쪽 친척들이 어디서 얘기를 들었는지 엄마가 나으려면 내림굿을 받아야한다고 했던 거 같다. 논의 끝에 친척들과 아빠는 내림굿은 선택하지 않고 그냥 굿만 했다. (굿은 어른들과 언니만이 볼 수 있었고 어린 나와 동생은 문밖에 있어야 했기에 보지 못했다. 그 후로도 난 굿을 공연이 아닌 굿을 직접 본 적은 없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김금화의 전 남편과 수양아들이 겪어야했던 무당가족에 대한 차별을 아빠도, 친척들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더구나 당시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가 아니던가. 굿을 한 후 심하게 아프던 엄마는 조금 나아졌지만 때때로 아프곤 했다. 신내림을 안 받은 것이 엄마에게 좋은 일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선택을 하지 않았기에 우리 가족이 그로 인한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내게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야기로 들렸다.

영화에서 무속신앙을 내쫓으려 했던 세력들은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지배층이었다. 당시 지배층이었던 일본제국주의와 70년대 개발독재정부의 새마을운동을 비교한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영화에서 김금화는 말한다. 일제 강점기에 아무리 무당을 미신이라고 내쫓으려 해도 그 사람들이 일본인들이기에 잘 먹히지 않았지만 70년대 무당을 쫓으려 한 사람들이 내부자들이기에 감시와 고발이 더 잘 되었다고. 근대 경제발전을 위한 ‘문명’과 ‘미신’ 이라는 대립적 담론이 선과 악으로 이분화되며 힘을 받고 추방의 동력을 작동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내부자들에게 강조한 ‘미신타파’ 규범이 내면화되고 감시의 기제로 작동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발전’의 희망,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무속신앙, 민간신앙을 종교․문화의 영역에서 배제하던 그 폭력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적으로 정권을 세운 전두환 정권이 ‘국풍’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던 무속을 끄집어낸다. 이제 무당은 미신이 아니라 전통이 되었다. 이는 ‘문명’과 ‘미신’ 이라는 이분구도를 누가,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녀의 삶이 읽어낸 역사가 시리다

강은 혼자 울지 않는다. 바위를 지나고 나뭇가지를 건드리며, 바람을 만나며 울듯이. 역사는 민중의 삶에서 흐른다. 김금화가 근현대사의 거센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고, 유유자적 파도에 몸을 싣기도 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감독이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무당의 시선에서 바라본 역사에 가장 초점을 맞췄다”, “가장 무력하고 고통 받았던 사람의 시점에서 역사를 보고자 했다”고 언급했듯이 영화는 현대사의 격랑을 그녀의 삶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일제시대 가난한 집에서 태언난 그녀는 여자라고 태어나자마자 숨도 못 쉬게 엎어 놓일 정도로 이름도 없이 넘세(다음에는 아들을 넘본다는 뜻)로 불린다. 그녀는 위안부로 팔려가지 않기 위해 14세에 시집갔지만 시집살이가 심해 도망쳐 나와 17세에 무당이 된다. 무당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진 한국전쟁에서 그녀는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타파해야 할 미신을 행하는 자이거나 첩자로 여겨지며 탄압받는다. 남쪽으로 도망쳐 왔으나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그녀는 술래잡기 하듯이 몰래 굿을 한다. 그리고 80년대 정부정책과 매스컴의 힘으로 전문 직업인인 무당으로서 부각돼 세상에 알려진다. 그녀는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지하철 화재로 죽어간 넋을 위로한 씻김굿을 할 정도다.

그런데 근현대사의 상처를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연평해전까지 보여주며, 굿의 치유능력을 넌지시 비친다. “세상 일들... 마음 병 고치는 큰 무당이 되것수다”라고 만신 김금화가 신내림 받을 때 했던 말처럼 말이다. 가장 업신여김 받던 민중이었기 그녀였기에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에서 죽어간 넋을 위로해주는 굿이 더 영험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경기도 파주의 초라한 적군 묘지(한국전쟁 직후 전국에 산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1000여 구를 모아 만든 공동묘지)에서 벌인 진오귀 장면이 그렇다. 김금화도 전쟁을 겪었기에 그 아픔을 잘 알지 않는가. 그녀는 소리를 왼다. “조그만 상자에다 머리만 묻은 놈, 팔 다리만 묻은 놈….” 그리고 과장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폭력임을 기억하자는 듯 이어지는 시체가 발굴되던 기록사진. 이렇듯 수많은 기록영상과 기록사진을 적절하게 배치한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그 후 제자 만신 한명이 넋대를 잡고 죽은 넋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장면에서 그 울음이 너무나 서러워 그만 나도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이내 떠오른 얼마 전 밀양촛불문화제에서 본 씻김굿.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을 하다 자결하신 고(故) 유한숙 어르신, 고(故) 이치우 어르신을 위로하던 씻김굿. 아, 이리 아픈 우리네 삶을 위로해주던 민중 자신의 치유행위, 신앙행위마저 빼앗긴다면, 어찌할꼬!


김금화의 삶으로 읽어낸, 주변으로 밀려난 무속신앙, 무속신앙에 대한 탄압의 역사, 근대현사는 기록의 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최근 참여하고 있는 작업인 밀양 할매 구술사 프로젝트인 <밀양, 꽃보다 할매>가 생각났다.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인터뷰한 사라 할매의 나이는 83세로 김금화와 같다. 사라 할매가 겪었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에 대한 구체적 경험은 다르지만 비슷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여성들의 삶, 가부장사회에서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까지도 말이다. 더구나 고통 받는 자들, 한 서린 망자들을 위로하는 만신 김금화의 놀라운 공감능력은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라 할매를 떠올리기 충분했다. 밀양 화악산에 뒤늦게 정착한 사라 할매도 오랜 시간 그곳에 있으면서 망자들과 구름과 나무와 이야기하던 때를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경계 없는 폭넓은 사유와 교감능력은 ‘문명화된 시대’에 태어난 나는 감히 접할 수 없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를 보며 <밀양, 꽃보다 할매> 구술사 프로젝트의 소중함을 다시 되새겼다.

걸립과 공동체

“걸립 왔어요. 쇠걸립 왔시다. 외기러 왔소. 불리러 왔소.”

어린 시절의 넘세(김새론 역)가 이렇게 외치면서 마을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걸립은 내림굿을 받을 신애기가 마을을 돌며 못 쓰는 쇠를 모아오면 그것으로 무당이 쓸 방울 같은 장구들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말한다. 걸립은 무당이 마을에서 사제로 인정받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그러니 이제 우리도 우리 사회가 배제하고 추방하고자 한 것들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녀들이 공동체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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