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복지병 극복사례 독일, 노인엔 연금, 아이엔 용돈, 학생엔 무상교육

대표연설에서 언급한 아젠다 2010, 독일식 신자유주의 고용정책 결정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30일 교섭단체 연설로 공무원 연금 개혁 등을 위한 고통분담 대타협 정치공세를 다시 폈다. 긴 연설이었지만 골자는 경제 위기로 인해 노동자들의 고통분담이 불가피하고 이 때문에 공무원 연금 개혁 등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번에도 정부가 고통 분담을 강요할 때마다 부르는 복지병 타령에 장단을 맞췄다. 그러나 이번 장단은 훨씬 음침하다. 그의 “경제위기 고통분담” 논리는 세계적으로 확산돼온 경제위기의 비용을 민중에게 전가하고 더욱 가혹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몰아 붙여온 세계 우파 정부들과 똑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김무성 대표가 본받아야 할 사례로 제시한 독일과 네덜란드의 “고통분담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우리가 따라야 할까? 현지 사회단체들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부르며 잘못된 처방전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젠다 2010, 완전히 실패한 정책”...사회원조 대상 3배 늘어

김무성 대표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끈 독일 적녹연정의 ‘아젠다 2010’가 “연금보험과 의료보험 개혁으로 재정부담 완화, 기업부담 축소를 통한 시장경제기능 강화 등에 기여한 한편, 독일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고통을 분담해 오늘날 유럽 경제를 이끄는 절대 강자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 김무성 대표 같은 평가는 집권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 일부의 평가일 뿐이다. 2003년 도입된 아젠다 2010은 독일 사회의 격차와 사회적 분열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젠다 2010의 실패를 말하는 사람들은 빈곤을 확대시키고 일자리 불안정성을 증대시켰다고 제기한다. 단적으로, 아젠다 2010이 시행된 지 10년이 된 지난해에는 독일 전국 빈곤사회단체는 전국빈곤회의를 열고 “아젠다 2010는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었다”면서 이로 인해 빈곤은 사회 가장자리의 문제가 아니라 중심이 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독일 빈곤수준은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2012년에는 독일 통일 이후 가장 높은 15.1%에 이르렀다. 2002년 280만 명이 사회원조를 받아야 했지만 2010년에는 760만명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시간당 일자리는 2003년 550만 명에서 2011년 740만 명으로 늘어났고 4명 중 1명이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며 신규 일자리 2개 중 1개는 계약직이다.

결국 실업 대신 워킹 푸어를 양산하는 아젠다 2010은 독일식 신자유주의적 고용정책의 결정판이 됐다.

아젠다 2010, 사민당 내에서도 비판

독일 아젠다 2010에 대한 비판은 재계와 사민당 내에서도 나왔다.

재계와 가까운 독일 <파이낸셜타임스> 토마스 프릭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젠다 2010이 시행된 지 약 5년 후 “이 조치는 내수 성장에는 상대적으로 약소한 영향을 미쳤고 사회복지비 축소로 인한 소비 위축 등의 부수적인 피해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독일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으로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 총리 때 총리실 계획관을 지냈던 사회민주당의 알브레히트 뮐러는 ‘거짓말개혁’이라는 책을 내 비판하기도 했다.

슈뢰더 총리 집권 시 사민당 의장과 재정장관을 맡았었지만 1999년 모두 사퇴하고 이후 좌파당 창당에 기여한 오스카어 라퐁텐은 지난해 독일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수시장을 강화하고 제품의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등의 대안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적녹연정은 대신 임금을 낮추고 사회복지를 해체하는 신자유주의적 도그마를 따랐다. 이는 거짓으로 증명됐다”고 비난한 바 있다.

오히려 독일의 경제 성장은 1995년부터 지속됐던 저임금으로 인한 수출 증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는 또 다른 유럽국가의 경쟁력을 떨어트려 현재와 같은 유럽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지적이다.

아젠다 2010 시행 2년 후 독일 총리 불신임 투표로 관저에서 쫓겨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는 아젠다 2010 시행 2년 후 독일 총리관저에서 쫓겨났다. 경제가 악화하면서 사민당은 2005년 자신의 아성이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까지 참패했고 총리는 불신임 투표로 자리를 내어놓아야 했으며 이후 조기총선에서 사민당의 득표율은 4.3% 떨어졌다. 당시 구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사회주의당(PDS)은 8.7%가 나왔지만 기민/기사당의 독주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문제는 독일식 사회복지 모델은 현재 국내 수준 보다 훨씬 앞선다는 점이다. 주요 사회복지 수준이 OECD 최하위인 한국이 고통을 분담하자고 제시하기엔 독일이나 네덜란드는 적당한 모델이 아니다. 혹자는 이미 국가가 전액을 부담하는 독일 공무원연금식으로만 개혁된다면 독일식 모델을 따르자고 한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노인에겐 연금을, 아이에겐 킨더겔트(아이용돈), 학생에게는 무상교육과 바푁(학업지원금) 등 여전히 다양한 사회보장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한국이 고통을 분담하자고 제시할 선진국 사례는 없다. 최근 독일 진보언론 <타츠>는 주 70시간을 일하는 한국 청년들의 모습을 보도하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연간 7천 유로(약 930만원)를 내며 대학에 다니고 다양한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한국의 청년들은 연인도 아이도 흔치 않다고 이상해했다.

비교적 풍부한 복지와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독일 사회에서 한국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복지는 사실 독일 정부가 거저 준 것은 아니다. 2003년 독일 적녹연정이 무너뜨린 독일 무상교육 제도를 독일 학생들은 약 8년에 걸친 교육투쟁을 통해 원상 복귀시켰다. 김무성 대표의 말처럼 ‘공짜복지’는 없다는 것을 투쟁으로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고통 분담 논리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너희의 위기는 너희가 책임지라”라고 외쳤던 남유럽 민중의 구호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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