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의 노예일까?

워커스 22호 나를 찾아서

시골에 가보면 종종 군부대 앞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부대 정문 앞에 한자로 이런저런 글귀가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멸북통일 최선봉 XX부대’. 사자성어를 쓰는 곳들도 있습니다. 한동안 살던 곳 주변에도 군부대가 많았는데, 유독 그 동네 부대들은 이런 문구를 많이 썼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무슨 뜻인고 하니,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마다 참되다’라는 말로, 고대 중국의 선사였던 임제 스님이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군부대가 왜 이 말을 표어로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조국을 위해’ 끌려와서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는 병사들에게, 정신승리라도 해서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써 놓았던 것이었을까요?

갑자기 군대 얘기를 해서 좀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우리는 병사들보다 얼마나 나은 처지에 있을까요? 초등학교 시절 국민이 주인이라고 배운 것처럼, 먹고살기 위해 노동자가 된 우리는 정말 우리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걸까요? 살기 위해, 혹은 더 잘 살기 위해 알게 모르게 서서히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A 타입 : 골룸 형

절대반지의 짜릿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절대반지에 복종하고 절대반지를 찾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골룸의 모습입니다. 회사의 발전이 곧 자신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의 회사를 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합니다. 회사에 안주하며 잘리지 않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회사 생활을 나름 만끽하는 직장인 아닐까요?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있고, 그에 따라 만족감과 성취감도 느낍니다. 하지만 사장님의 ‘대리인’으로서 그렇게 사는 건 아닐까요? 나의 삶, 나의 성공이 사장님을 위한 삶, 사장님의 성공에 동화되어버린 건 아닌지. 정말 완벽하게 멋진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스스로 다른 무언가의 노예가 돼 버린 건 아닐까요?

B 타입 : 성공을 위해 과잉충성 노오력형

언제부턴가 서점에 가면 온갖 자기계발서가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깔려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더라, 아파야 청춘이 된다더라 등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 간단하고 똑같은 하나의 메시지를 지속해서 반복하는데, 그 메시지를 한 마디로 줄이면? 바로 ‘노오력’입니다. 노력해야 자기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고 진정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무엇을, 누구를 위한’ 노력인가의 문제입니다. 성공을 위해 회사에 충성하고 상사의 말에 복종하는 그런 노력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C 타입 : 종족보존형

자식이 학원 하나 더 보내달라고 하는데 잔업, 특근을 안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 참 많이 합니다. 사실 ‘귀족노동자’라고 비난하는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조차 기본 시급은 만원이 채 안 됩니다. 나머지를 잔업 특근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장시간노동은 기본이고, 노동자들은 점점 ‘더 많은 물량을 따내야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죠.

지금 하는 일이 딱히 나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어떤 권리를 찾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죠.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 이 회사에 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눈치껏 오늘만 보고 살아가는 가장 실리를 챙기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 타입 : 불만 속 체념형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은 당신, 어쩌면 진정한 흙수저 계급으로 태어나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맘 편히 휴가 한 번 제대로 쓰기 힘들고, 몸이 아파도 잘리지 않으려면 꾸역꾸역 출근하는 게 힘겹지만,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느낍니다. 노력해서 뭔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뭔가 바뀔 것 같지도 않은 체념 속에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괜히 회사에 밉보였다가 바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단 더러워도 살아남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노동조합도 정규직이나 대기업 같은 데서 해야지 이런 회사에서는 힘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찾고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헬조선을 탈출하자고 마음먹게 됩니다.

E 타입 : 눈치 안 보고 용감, 장발장 형

“너는 듣고 있는가, 성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싸워서 현실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있는 당신은 장발장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단히 관심이 많습니다. 또한 그 노동조건이 여유롭고 풍족한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에 따라 여가까지 즐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마도 지금 현재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권리를 얘기하면서 오늘도 피곤하지만 직장 내에서 이런저런 고초를 겪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때론 왕따가 되기도 하며 때론 여러 직장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는 당신입니다.

F 타입 : 뭣이 중헌디 형

다니는 회사가 본인과 맞지 않을 때, 아니면 인생의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과연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그냥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느낌. 노예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조차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에서 어떤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피로와 회의에 지친 것이 당신입니다. 모든 일에 회의하고 시큰둥하며 그냥 살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모습이 바로 당신 아닐까요?

G 타입 : 현실형

어쩌면 전형적인(?) 노동자의 모습입니다. 회사의 발전이 나의 발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임금체계나 회사의 운영방식이 그다지 합리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직장의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좋습니다. 힘이 되고 위안이 됩니다. 어쨌든 일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하므로 오늘도 잔업, 특근에 나섭니다.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이 힘들지만 그렇다고 쉽게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흔히 광고나 영상매체를 통해 직장에서 아무리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 다시 일터로 나가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합니다.

H 타입 : 자유분방형

회사에는 여러 규정이 있고 동료들과 일하는 데도 규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것들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충분히 누리면 그만입니다. 더 벌고 싶은 생각도, 회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당신은 큰 관심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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