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미르재단 보도 침묵 뒤 ‘달라붙은 것’

[워커스 25호]이념 위 조선? 자본 밑 악다구니

TV조선의 미르재단 최초 보도 뒤 최순실 비리는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올라왔다. 그 후 미디어오늘이 “TV조선·한겨레·JTBC의 콜라보, 최고권력을 무너뜨렸다”고 보도할 만큼 보수-진보 언론은 한 팀처럼 이번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TV조선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한겨레는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순실과의 연결고리, JTBC는 최순실 PC 입수 내용을 터트리며 청와대를 근본에서 흔들었다.

순차적으로 터져 나온 각 언론사의 보도 때문에 근 한 달 전 김의겸 한겨레신문 선임기자의 칼럼도 다시 화제가 됐다. 그는 9월 28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라는 칼럼을 통해 조선일보가 미르재단에 대해 최초 보도를 하고 ‘잃어버린 고리’에 대한 물증까지 확보해 놓은듯하지만 침묵하고 있다며 보도를 권했다.

[출처: 정운 기자]

한겨레의 이 칼럼은 조선일보에 대해 눈에 띌 만큼 후한 평을 줬다. 김 선임기자는 “20년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과 함께 취재 일선에 나선 건 <티브이(TV)조선>이 안겨준 부끄러움 때문”이고 “취재를 하면 할수록 조선의 보도가 훌륭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또 “(조선일보의) 취재 그물은 호수를 다 덮도록 넓게 쳤는데도 그물코는 피라미 한 마리 빠져나갈 틈 없이 촘촘했다”고도 적었다. 더구나 “재단의 어느 관계자는 저희 기자를 보자마자 버럭 화를 내며 도망치기도 했다”며 “조선 기자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달라붙었으면 그랬겠습니까”라고 칭찬했다.

조선일보는 애초 7월 18일 자 1면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처가와 넥슨 간 부동산 부당거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TV조선이 같은 달 27일 미르재단 의혹을 터뜨리면서 이번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8월 29일 친박 김진태 의원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호화 향응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물러난 뒤, 조선일보는 이 사건에 약 2달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면 조선 기자들이 그 뒤 달라붙은 기사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보도는 얼마나 훌륭했을까?

기승전 ‘나쁜 귀족노조’

청와대에 꼬리 내린 조선일보가 달라붙은 대상은 공공운수노조의 파업이었다. 조선은 공공운수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지난 9월 27일 이래, 조선일보, TV조선, 조선경제i와 조선닷컴 4개 매체를 통해 한 달간 59건의 보도를 쏟아냈다. 이러한 조선일보사의 보도는 마치 기승전 ‘나쁜 귀족노조’라는 시나리오처럼 진행됐다. 합법 파업에 불법 낙인찍기, 노조 간부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제재 강조하기, 지하철 사고에 파업 연결 짓기, 불편 시민 동원하기 등 낡은 수사도 반복됐다.

조선일보사는 우선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정부나 관료를 인용해 합법 파업을 불법으로 둔갑시켰다. 파업 전날인 9월 26일, 조선닷컴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경주 지진과 한진해운 사태로 국민 불안한데 불법 파업 안타까워…어떠한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이어 27일 조선경제i는 “철도노조 불법파업 철회해야…위법행위 엄정대응”한다는 정부 방침을 게재했다.

조선일보사는 그 후에는 철도노조 간부와 파업 노동자에 대한 탄압 사실에 집중했다. 27일 조선경제i는 “정부 ‘철도노조 불법파업 철회해야…위법행위 엄정대응’”을, 28일 조선닷컴은 “코레일, 파업 참가 철도노조 간부 등 100명 ‘직위 해제’”를, 조선일보는 “부산 지하철, 파업 847명 직위해제”를 보도했다. 이어서는 파업이 미치는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꺼내 들었다. 29일 조선일보는 “철도파업 화물 차질, 시멘트업체 비상 ‘열흘내 재고 바닥’”이란 기사를 냈고 이날 조선경제i도 같은 내용을 실었다.

잇따른 지하철 사고 보도 뒤에는 급기야 이 원인을 노조의 파업과 연결했다. 10월 20일 조선일보는 “올해 3번째 사람잡은 스크린도어… 지하철노조, 파업 중단”이라는 기사로 제목을 뽑았는데, 전날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 스크린도어에 끼어 숨진 30대 남성 승객의 사망사고를 다뤘다. 그러나 기사 내용에 노동조합이나 파업 관련 내용은 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목에 아무 상관도 없는 ‘지하철노조, 파업 중단’을 넣어 마치 스크린 도어 사고가 지하철 노조 파업과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조선일보는 또 사측의 무리한 대체 인력 투입으로 빈발한 사고 책임에 대해서도 사측 보다는 노조의 파업과 연관지었다. 9월 30일 조선경제i는 “코레일, 왕십리역에서 열차고장…철도파업으로 군 대체 인력이 운전”이라는 기사를 냈고 10월 25일에는 “코레일 파업 한 달, 시민이 참아줄 테니 安全(안전) 우선을”이라는 사설로 코레일 파업과 열차 사고를 묶어 보도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사고가 잦은 것은 코레일이 노조 파업에 대응해 380여 명의 대체 기관사를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충분한 교육 없이 투입하면 사고·고장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고 코레일에 면죄부를 줬다. 게다가 “이건(대체인력 투입에 따른 불편은) 시민들이 참아줘야 할 부분”이라고 사측 편에서 대시민 홍보까지 거들었다. 또, 10월 31일 자에는 “비정규직 탄압하는 배부른 노조”라는 데스크 칼럼을 통해 철도 대체인력은 모두 비정규직인데, 기득권 노조인 철도노조가 이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념 위 조선? 자본 밑 악다구니

조선일보사는 수백 명의 기자를 거느리는 시스템을 동원해 민주노조를 물어뜯어 왔다. 왜곡 보도도 상수였다. 같은 기간 공공운수 파업만 물고 늘어진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사는 이 기간 진행된 현대차 노조 파업에 대해선 무려 76건의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화물파업에 대해서는 31건이 보도됐다. 물론 사설로도 후려쳤다. 금융노조 파업에 대한 9월 24일 자 “‘연봉 8800만 원’들의 철없는 파업”, 현대차 노조 파업에 대해서는 9월 27일, “귀족 노조는 돈 더 달라 파업, 현대차 공장은 해외로”, 10월 14일 자 “노동운동가 野(야) 위원장도 납득 못 하는 0.1% 부자 노조 파업”을 실었다. 공공운수 파업에 대해서는 싸잡아 10월 4일 붉은 머리띠 “‘연봉 1억’들 더 이상 勞組(노조)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코레일 대시민 홍보 사설까지 합하면, 한 달 만에 5번의 사설을 실었다.

한겨레 김의겸 선임기자는 최초 보도 뒤 침묵하던 조선일보사에 추가보도를 설득하기 위해 “불행히도 우리 언론이 이념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념 위에 언론이 있다”는 방상훈 사장의 일전 건배사까지 거론했다. 그러나 파업에 관한 이들의 보도를 보면 이념 위는 고사하고 자본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악다구니만 같다. 최순실 논란이 정점에 달한 10월 마지막 주에도 조선일보는 “연간 17만 원 차이로 또 파업한 기아차 노조”란 기사를 내놨다. 여기엔 사측이 기아차의 분기별 실적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그룹사인 현대차와의 임금 차별을 강제하는 문제나 비정규직 간 임금 차별의 문제 그리고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한 특별교섭 등 노조가 파업 이유로 밝힌 내용은 없었다. (워커스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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