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반정부 시위와 갈라진 사회의 혁명

[INTERNATIONAL4]

[출처: Jacobin]

1. 제2의 물결

‘아랍의 봄’ 열기는 2011년부터 2년 넘게 이어졌다. 이후 6년간 반혁명에 자리를 내준 후 다시 제2의 혁명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8년 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 ‘아랍의 봄’이 이제 레바논, 이라크, 알제리, 수단 등지에서 재현되고 있다. 당시 다소간 변화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던 이 나라들이 아랍세계 저항운동의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다.

먼저 알제리와 수단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2019년 초 거의 동시에 각각 20년, 30년씩 장기집권한 두 대통령이 국민의 압력에 밀려 사임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도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그 배경에 있는 권력구조가 변하지 않았고 사회경제적인 문제 역시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시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철권통치의 양상을 보이는 이집트에서도 9월부터 엘시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나타나고 있다.

이후 레바논과 이집트에서 유례없이 강한 저항운동이 전개됐다. 이라크에서는 9월부터 시작된 다수의 작은 집회들이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고 초기 단계에서 과잉진압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총리가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압력에 밀려 사임했다. 레바논에서는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백만 명이 거리에 나올 정도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됐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개혁안이 제시됐지만 결국 10월 29일 사드 하리리 총리가 사임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2. 글로벌한 물결

이러한 양상이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최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있고 여러 면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 계기는 주로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었다. 기초 생필품 가격이나 공공서비스 요금 인상은 경제수준을 막론하고 등장하는 메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정치권력에 대한 누적된 불만일 것이다. 전개과정 역시 “퇴진하라”, “미래가 없다”와 같은 구호에서 광장이나 공항 점거와 같은 운동방식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점이 많다. 대중적인 시위가 발생하면 정권은 문제가 된 조치를 철회하고 민심을 되돌리려는 유화책을 발표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이 어려워 불씨는 다시 살아났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가 최근 1주년을 맞아 재개됐고, 알제리 역시 대통령 퇴진 이후에도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집회가 계속되는 등 시위가 이어지고 다. 문제해결이 요원한 것은 부패하고 폐쇄적인 권력구조 때문이고 따라서 시위가 지속되면서 결국 체제 변혁이라는 과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3. 혁명을 부르는 아랍의 문제들

대중적인 저항운동의 배경이 아랍 국가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아랍적 특성과 개별 국가 고유의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레바논과 이라크의 사례를 보자. 먼저 이라크에서는 외세에 대한 반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IS와의 전쟁에서 영웅으로 부상한 장성에 대한 경질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국민은 그를 종파를 초월한 민족 통합의 상징으로 인식했다. 또한 대중은 이 결정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2014년 여름부터 시작된 IS와의 전쟁으로 그간 방치돼 온 경제 문제가 2018년 IS가 퇴각하면서 전면에 부상한 측면도 있다. 오랜 전쟁으로 악화된 공공 서비스 상황에 대한 불만, 공무원의 길이 좁아지며 다른 안정적인 일자리는 찾기 어려운 청년들의 분노도 분출했다. 레바논 시위를 촉발시킨 요인은 메신저 ‘와츠앱’ 사용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정부의 발표였다. 게다가 정부는 이와 동시에 유류세, 담배세 인상 조치도 발표했다. 분노의 화살은 정치권을 향했다. 신자유주의 정책과 부패하고 무능한 지배엘리트들이 야기한 문제를 그 피해자인 서민들에게 부담시키려 한다고 느낀 것이다.

4. ‘아랍의 봄’의 유산

최근 대규모 시위가 지속되고 있는 나라들이 2011년 당시 상대적으로 조용히 넘어간 이유는 알제리의 경우 참혹한 내전의 기억이 생생했다는 점, 이라크와 레바논 역시 각각 2003년과 2005년부터 전쟁과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제2의 물결은 배경과 양상에서 2011년 ‘아랍의 봄’과 매우 유사하다. 경제여건 악화에 대한 불만과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당시나 지금이나 동일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빵, 자유, 사회정의, 존엄성과 같은 2011년 당시의 가치들이 2019년에도 저항의 동력이 되고 있다. ‘아랍의 봄’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은 측면도 있을 것이다. 내전으로 치달은 리비아와 시리아의 경험으로 외세의 개입을 초래할 빌미를 제공하기 않도록 유의했고, 이집트의 사례는 단순히 현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지배체계 전반을 겨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경찰차에 불을 지르고 가게를 약탈하는 양상은 노란 조끼 시위에서 볼 수 있었듯이 유럽에서는 흔한 저항운동의 방식이다. 이에 비하면 적어도 레바논이나 알제리 시위대의 행동은 매우 온건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기존 경험을 통해 탄압의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된 것이다.

[출처: Jacobin]

5. 새로운 사회운동

새로운 점도 있다. 조직적인 측면에서 최근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대중 시위는 노조, 정당 등 전통적인 조직들과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라크에서도 이번 시위에는 좌파를 포함해 어떤 정치세력도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 레바논에서는 오랫동안 민중의 지지를 받아온 헤즈볼라조차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시위 9일째였던 2019년 10월 25일 TV에 방영된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연설은 헤즈볼라가 시위를 대하는 태도가 기성 정치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헤즈볼라는 점차 반정부 시위가 특정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것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레바논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익숙한 지적도 덧붙였다.

이러한 광경은 헤즈볼라가 이제는 레바논 연정의 핵심 세력이라는 점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위계적인 조직에 대한 거부감은 저항운동이 분산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띠게 만들었다. 시위대에 지도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양상이 지니는 장점과 단점은 이미 잘 알려진 그대로다. 독재자의 퇴위와 같이 2011년을 장식한 정치적 이슈 못지않게 경제적 이슈, 일상생활 관련 이슈가 부각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한 것도 2019년 시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6. 쪼개지고 종속된 사회

아랍 세계 하면 봉합하기 어려운 부서진 뼛조각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레바논과 이라크가 이러한 비유에 가장 부합하는 사례일 것이다. 레바논은 오래됐고 이라크는 미국의 개입이 사회를 갈라지게 만들었다. 종족, 종교, 지역에 따라 잘게 나누어진 분열상은 아랍의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한 현실은 아랍인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 아니다. 그 기원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재 중동문제의 기원 중 하나는 1차 대전과 그 결과인 국경 분할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발칸화가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수니파-시아파, 국가 간의 갈등 등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최근 반정부 투쟁이 강도 있게 전개된 레바논, 이라크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이 분할 체제다. 레바논은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 지역의특성에서 유래한 ‘발칸화’에 비견되는 ‘레바논화’ 개념으로 알려진 나라다. 작은 나라가 다수의 공동체로 철저히 분할돼 있는 것이다. 단지 지리적으로 구분돼 살아가는 것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과 제도가 세 개의 주요 집단 간의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943년 프랑스 보호령에서 벗어나면서부터 권력이 세 개의 주요 종교집단에 의해 분점됐다.

레바논은 발칸반도의 국가들처럼 다양한 집단 간의 갈등을 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강대국들 간의 직접적인 충돌을 막는 역할을 하는 ‘완충국가(buffer state)’의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이 개념은 중동 국가, 특히 레바논에 잘 부합하는 개념이다. 레바논은 중동지역 세력구도의 축소판이자 이로 인한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다. 가장 큰 문제는 주변의 외세가 내부에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만들고 이들을 자국의 이해에 맞게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라크 역시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시아파-수니파의 대결, 시아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권의 양상을 띠어왔다. 미국이 처음은 아니다. 이라크 사회를 갈라지게 만든 원조는 영국이었다. 지배를 위해 소수였던 수니파와 다수였던 시아파를 대립시켰고 전자를 이용해 이라크 사회를 지배했다. IS 역시 편파적인 이라크 정권에 대한 수니파의 반발을 배경으로 성장했으며 역으로 이라크 사회의 분열에 기여했다.

7. 절실한 통합의 열망

정치제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정착돼 있는 과두제는 민중을 국가가 아닌 자신들의 수중에 두는 지배계급의 효과적인 장치였다.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 역시 공동체별로 나뉘어있어 큰 힘을 가지기 어려웠다. 레바논 노동총연맹과 같은 전국적인 단체가 동원 능력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이번 민중운동에서 노조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것도 이러한 구조적인 결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시위는 종교, 종족, 지역 등으로 나누어진 사회를 통합시키는 시도가 지배세력이 아닌 피지배세력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매우 다원적인 사회라서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레바논 고유의 문제가 이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분할지배는 강대국의 전략만은 아니다. 레바논의 경우처럼 지배세력의 통치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레바논의 저항운동은 이 전략에 도전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라크의 경우에도 저항운동이 특정 정파와 연계되지 않고 투쟁의 목표도 특정 종파나 종족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경우는 처음이다. 경제적인 문제, 부패 등 정치권에 관한 사안 못지않게 이라크 사회의 통합성, 자주성에 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새로운 애국주의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8. 더딘 혁명의 길

아랍 세계 하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시 재연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랍의 봄’이 발생한지 8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혁명의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일 것이다. 튀니지가 어느 정도 예외일 뿐 이집트는 권위주의의 부활이라는 반혁명이 주도하고 있으며, 시리아, 리비아, 예멘은 전쟁과 혼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레바논, 이라크에서 더 희망적인 근거를 찾을 수도 없다. 그 반대가 더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IS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배경에는 ‘아랍의 봄’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데 따른 실망감이 존재한다. 이는 ‘아랍의 봄’의 시발점이었던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출신 자원병이 많았던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시기적으로도 2011년에 시작된 아랍의 봄이 2013년경부터 반혁명에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바로 그 직후 IS가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IS가 반혁명의 부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진행 중인 아랍 혁명의 제2의 물결의 결과에 따라 전쟁이나 극단주의 세력의 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경제적, 정치적 위기의 정도가 심각하고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변화는 큰 희생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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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이야기를 잠깐 해보죠. 좌파단체는 홍콩의 투쟁을 보고 상당히 들뜬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기대심리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콩의 투쟁과정을 이해하려면 미국과 중국의 경쟁구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번 홍콩선거의 압승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도적이고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못할 때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다 알다시피 중국은 구소련의 지원을 받아 미국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홍콩의 선거도 바로 이러한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좌파가 보는 홍콩의 투쟁과정은 정치적 거품이 상당히 올라가 있습니다. 좌파가 참으로 우매하지 않다면 인민주의의 참패를 반기는 것은 미래의 패배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번 홍콩의 선거는 투쟁의 승리가 아니라 유럽의 승리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작금의 세계적인 투쟁도 그렇습니다. 미국의 다양한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은 분석은 그 대부분이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출구 없는 투쟁]이 되고 마는 것으로 볼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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