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 10년의 투쟁, 그리고 남아있는 성차별

[이슈_여성은 노조위원장 하면 안 돼요?]이종희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지회장 인터뷰

2010년 KEC 파업 당시 회사가 여성노동자에게 가한 폭력은 끔찍했다. 6월 30일 새벽, 직장폐쇄와 함께 여성 기숙사에 용역 600여 명이 들이닥쳤다. 모두 자고 있던 시각이라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이들은 욕설을 들으며 옷도 여미지 못한 채 끌려 나왔다. 진압 과정에서 남성 용역이 여성노동자의 가슴을 만지는 성폭력도 발생했다. 조합원들은 분노에 차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회사가 4개월째 직장폐쇄를 풀지 않자 여성 조합원들은 10월 21일 공장 점거 농성에 돌입해 파업 시위 강도를 높였다. 이번에는 경찰이 여성노동자들을 위협했다. 경찰 헬기가 공장 외부에 설치된 3개의 천막 위를 저공비행했다. 이 과정에서 천막 전체가 무너지고 조합원들이 부상을 입었다. 천막 중 하나는 임산부용 텐트였는데, 다친 여성 5명 중 4명이 임산부였다. 1명은 허리를 다쳐 응급 치료를 받아야 했다. 조합원들은 헬기에 대고 고함을 지르고 신고도 해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KEC 구미공장 여성 조합원들은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이 결렬되자 6월 9일 전면파업을 시작했다. 6월 30일,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이를 시작으로 두 번의 대량해고와 노조탄압에 나섰다. 이날 이후, 금속노조 KEC지회는 노조 탄압 맞선 10년의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출처: 김한주 기자]

여성 지회장

2017년, KEC 구미공장에 30년 노조 역사상 최초로 여성 지도부가 들어섰다. 이종희 씨는 사업장 최초 여성 지부장으로서 2년 째 노조를 이끌고 있다. 그가 여성 지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간의 투쟁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항상 선두에 섰기 때문이다. 남성 조합원들조차 여성 조합원이 없었다면 현재까지의 투쟁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여성 지회장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일부는 성차별을 해온 사측에 맞서 여성 대표가 싸운다는 것 자체를 막연히 걱정했다. “지회장은 남자가 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시 미투 운동의 영향과 노조 민주주의에 대한 공감대 속에서 이종희 씨는 출마를 결심했다. 앞서 8년 동안 KEC 투쟁을 이끌었던 전 지회장도 이종희 씨를 신뢰했다.

30년 일해도 관리직이 될 수 없는 KEC 여성노동자

KEC는 고용노동부의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 AA)’ 대상 기업이다. 2017년에 여성 관리자가 한 명도 없어 AA에 꼽혔다. 2019년 9월엔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시정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이 권고에 따르면 20년 이상 재직한 생산직 노동자 108명 중 여성 52명이 모두 사원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남성 56명은 모두 관리자급이다(2018년 기준). 2001년 가장 낮은 등급(J1)으로 입사한 이 지회장도 현재까지 한 단계밖에 승진하지 못했다. 현재 수석부지회장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수석부지회장은 30년 동안 재직 했으나 현재 J3등급이다. 바로 위가 관리자급임에도 사원급 맨 끝 호봉에 20년 동안 머물러있다.

회사의 성별 임금격차를 포함하는 성차별 기제는 사업장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육아휴직 쟁취 투쟁 등은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을 연상케 한다. 여느 사업장처럼 KEC에도 육아휴직 제도가 존재했으나 5년 전까지만 해도 무용지물이었다. 이에 여성 조합원들은 육아휴직 사용 운동을 전개했다. 2010년 전만에도 임신을 하면 바로 퇴사를 해야 했다. 출산 후 복귀하는 여성 조합원들에게는 종종 힘든 일을 배치했다.

여성 조합원에게 남성 탈의실 청소를 시키거나, 임산부 의자를 없애버리기도 했다. 심지어 두 차례의 정리해고 에도 성차별이 작동했다. 사측은 낮은 등급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대상으로 삼았다. 여성 대다수가 낮은 등급 이어서 사측의 정리해고 방침은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것과 같았다. 관리자들은 “남자는 돈 벌어야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2010년 전에는 교섭에 남성위원들만 배치됐다. 이는 여성이 교섭위원 역할을 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의 도중 쉬는 시간에 남성들끼리 담배를 피우며 여태 논의했던 안을 뒤집는 문화도 존재했다.

관리직의 성폭력 문제도 있다. 이종희 씨가 처음 발령이 나고 회식 자리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한 관리자가 동기를 옆에 앉히고 허벅지를 만졌다. 과거에는 이런 일들이 무척 잦았다. 현재는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다른 부서로 발령 조치시키고 있다.

여성이 이끄는 노조

2010년 당시 조합원 720여 명 중 절반 이상은 여성이었다. KEC지회는 사원직 노동자가 많이 가입했기 때문에 여성 조합원 비율이 높다. 긴 투쟁 동안 이들의 투쟁력이 증명됐기에 여성들이 노조를 이끄는 분위기도 있다.

이종희 씨는 여성 지회장으로서 하고 싶은 운동이 있다. 현장 여사원 중 한명이라도 관리직으로 승급해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장 내 성차별이 무엇인지 알리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여성단체와 연대해 성별 임금격차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사업장 내에서는 남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언론을 통해 KEC의 성차별 문제를 공론화시킬 계획이다. 현재 KEC지회는 남녀차별 관련 근로기준법, 고용평등법 위반으로 노동부에 고소한 상태이며 임금차별 문제도 추가로 대응할 예정이다.

자본의 노조파괴 수단, ‘손해배상 청구’를 꺾어버린 KEC지회

KEC지회는 올해 7월 손해배상 비용 30억 원을 모두 청산했다. 이종희 지회장은 지난 3년의 과정을 생각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사측은 2010년 파업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156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2016년 9월 재판부는 30억 원의 손배 조정 판결을 내렸다. 손배 대상 조합원 통장에선 매달 최저임금인 150만 원을 제외한 모든 돈이 압류됐다. 손배 대상이 아닌 조합원들도 한 달에 15~45만 원을 지원했다. 전액 청산이 가능했던 것은 2010년 노조의 승리와 조합원들의 끈끈한 동지애 때문이었다. KEC 투쟁은 자본의 ‘손배 소송을 통한 노조탄압’이라는 수법을 꺾어버린 사례다.

2012년 검찰은 노조파괴 기업이라는 의혹으로 KEC를 압수수색했다. 고용노동청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직장폐쇄 출구전략 로드맵’, 검찰이 발견한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에는 인력 구조조정, 친기업 노조 설립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노조파괴의 목적으로 작성된 이 문건은 현실화됐다. 복수노조법이 시행된 2011년 7월, 전국 최초로 친기업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복수노조 설립 후 진행된 정리해고의 대상자 75명은 모두 지회 소속 조합원이었다. 그리고 2017년, 재판부는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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