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새로운 상징, 중동

[INTERNATIONAL3] “가난이 모든 가정에 들어왔다”

[출처: 위키피디아, 2019–2020 Lebanese protests]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의 대명사로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떠올린다. 이들 사회에서는 빈곤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소수가 부를 독점하며, 인종이나 민족과 같은 요인이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만든다. 이와 달리 중동은 대부분 한 민족이 다수를 이루고, 사회주의적인 전통을 가진 곳들도 있어 위의 국가들과는 다른 이미지를 갖는다. 그리고 실제로 어느 시기까지는 사회구성원 간의 경제적 격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중동에 대해서도 종교나 전쟁만큼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얘기할 때가 됐다. 이슬람의 땅, 일사불란해 보이는 동질성의 땅에 경제적인 균열이 폭발한 것이다.

레바논 사태

“가난이 모든 가정에 들어왔다.”1) 이 표현은 자국 통화 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며 물가가 폭등해 소수의 중산층마저 생필품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보여준다. 레바논 파운드의 가치가 급락하고 뱅크런과 외화 유출 위험에 직면하면서, 달러화 등 외환 인출을 일정 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지난해에는 은행과 투자자들이 거둔 막대한 이익과 레바논 사회의 경제적 침체 간의 괴리, 세수 확보를 위한 과세조치에 대한 불만으로 국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현재는 높은 부채 비율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등 금융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경제적,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불평등한 중동

2018년 세계은행의 <빈곤과 공유 번영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은 2011~2015년 사이에 세계에서 절대빈곤(extreme poverty)의 비율이 늘어난 유일한 지역이었다. 하루 1.9달러(약 2,350원) 이하로 사는 사람의 비율이 2.7%에서 5%로 늘어나 1860만 명에 이르게 됐다.2)

물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등 전통적으로 빈곤 문제가 심각한 지역의 빈곤율은 이 지역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절대빈곤율은 2011년 45%에서 2015년 42%로 조금 낮아졌을 뿐이다.

그런데 중동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심지어 세계은행이나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등 국제사회가 발표하는 통계수치와는 달리, 중동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러한 견해는 이미 ‘중동 불평등의 수수께끼’라는 표현으로 언급된 바 있다. 공식통계에는 아랍국가 중 상당수가 북유럽 국가에 버금가는 평등한 사회로 나타나지만,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불평등과 부정의를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거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동의 빈곤층 비율과 계층 간 격차는 공식통계보다 훨씬 크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들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빈곤율 추산이 다른 지역보다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소득이나 지출에 관한 조사가 매우 드물고 그나마도 부정기적으로 수집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적인 기준에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또한 빈곤한 난민 등 전쟁이나 정치적인 사유로 주거지를 옮긴 많은 사람들이 조사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당수의 일자리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 부문이라는 점도 통계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현실에 가깝게 불평등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세금 관련 자료, 가구 대상 서베이(survey), 잡지에 공개된 부유층 관련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산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부나 국제사회가 제시하는 통계와 달리 중동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으로 나타났다.3)

이러한 중동의 현실은 한두 세대 전에 시작된 현대적인 양상이었다. 독립 이후 아랍국가들은 제국주의 시절 이등 시민으로서 겪었던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심지어 전기도 무상으로 제공하며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폈다. 그 결과 개인 간, 지역 간 불평등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석유 붐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교육, 의료 등 공적서비스가 민영화되면서 불평등이 심화했다. 그 연장선에서 아랍의 봄과 뒤이은 내전 상황은 치안, 인프라, 의료, 교육 등의 공공서비스를 극도로 약화시켰다. 그리고 이것이 일자리 문제와 함께 불평등을 심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비공식 부문

중동 또는 아랍 세계의 빈곤과 불평등 현상은 비공식 부문의 존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왜냐하면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은 고용조건이 열악한 데다, 상당수의 사회보장정책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매년 3백만 개 정도의 새로운 일자리가 아랍세계에서 창출되지만 이 중 2/3 정도는 비공식 부문 일자리다. 이는 당분간 불평등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공식 부문 종사자의 대부분이 자영업자가 아닌 피고용자라는 점에서도 비공식 부문과 빈곤 혹은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

비공식 부문이라는 용어는 1972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는 인정받지도, 보호받지도, 정책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경제 부문을 의미한다. 당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형태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고, 경제성장과 함께 사라질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현재 중동지역에서도 이 부문에 속하는 인구 비중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경제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게 됐다.

  최근 다시 일어난 레바논 시위 장면 [출처: 알자리자 유튜브 방송 화면캡처]

청년, 여성, 이주민

중동 지역 빈곤과 불평등 현상의 중심에는 청년, 여성, 이주민이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은 청년실업 문제와 고학력자들의 실업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한국보다 실업 문제가 일찍 찾아온 이 지역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교육을 받았지만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불우한 청년들이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저항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이전까지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간주됐던 이슬람이 길을 잃은 청년 세대를 끌어안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1년, 동일한 양상이 구호만 달라진 채 반복됐다. 그 후 10년이 또 지났지만 일자리나 불평등 문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레바논과 알제리, 이라크에서 다시 청년들이 거리에 나선 것이다.

여성은 아랍세계에서 불평등의 피해를 크게 입고 있는 또 다른 집단이다. 노동시장 진출에서의 불이익과 재산소유에서의 불이익을 동시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여성들은 농업 부문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도시에서도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도시로의 대량 이주가 상황을 변화시켰다. 열악한 비공식부문 일자리조차 이미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에 온 수많은 여성들은 기회를 가지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과거보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줄어들게 됐다. 서구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국가와 결혼한 여성’이라는 표현처럼, 아랍세계 역시 국가 등 공공부문 확대는 여성의 사회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역설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분리를 심화시킨 재이슬람화 현상이 의료와 교육 부문에서 여성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불황과 신자유주의화로 공공부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여성이 최대 피해자가 됐다. 이를 고려하면 보다 직접적으로 여성의 사회참여를 어렵게 한 것은 종교 세력이 아닌,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설교한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외부의 투자자들이었다.

이주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지역은 빈곤과 불평등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열악한 고용조건과 함께 이주노동자의 상당수가 해당 국가에서 제공하는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역시 토박이들과 유사하게 주로 비공식 부문의 일자리를 가진다. 이주민의 비중이 큰 레바논의 경우 경제활동인구의 37%가 이주민이고, 이들의 대다수가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바레인은 그 비율이 73%에 이르는데, 이들 중 60%가 사회보장 혜택을 받기 위한 최소 거주기간인 1년을 충족시키지 못해 배제돼 있는 실정이다.

국가 간 불평등

중동의 불평등은 국가 내부의 격차뿐 아니라, 중동 또는 아랍을 구성하는 국가 간 격차도 매우 크다. 이는 인근 유럽지역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유럽국가들 중 예멘이나 이라크와 걸프만 산유국 간의 격차에 비견할 만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중동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의 연구 결과를 보면, 상위 1%가 지역 전체 소득의 25%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20%), 서유럽(11%),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17%)보다도 높은 수치다.4)

아랍 국가 간에 발생한 격차가 심각한 이유 중 하나는 아랍인들이 국가는 달라도 동일한 민족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아랍 국가 간의 심각한 격차는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 국가 간 경제 격차가 정치적인 갈등이나 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걸프전을 초래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이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당시 양국 간의 소득 격차는 이를 무력으로라도 해결하려 한 배경이 됐다.

불평등과 저항운동

아랍세계에서는 유독 ‘사회정의’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이 표현은 1970년대부터 이슬람주의가 즐겨 사용했고, 비종교적이었던 ‘아랍의 봄’ 시위대 역시 빵, 자유와 함께 ‘사회정의’를 대표적인 구호에 포함시켰다. 국가의 소극적인 태도와 달리 불평등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매우 크다. 지난해 알제리, 레바논, 이라크, 수단에서 전개된 저항운동의 주된 배경 중 하나가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였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종교 세력의 집권으로 마무리된 1979년 이란혁명도 종속적 발전전략이 가져온 불평등 심화에 대항한 사회혁명이었다.

아랍의 봄을 야기한 원인 중 하나인 불평등은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심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조세제도나 복지제도 등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제도적 변화가 더딘 이유는, 정치계급, 주류 종교 세력 등 혁명적 변화에 저항해 집권한 세력이 과거 정치적 독점 체제에서 성장한 부르주아 계급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저항운동에 이들이 강하게 대적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40여 년간 지속해 온 종속적인 축적체제가 낳은 이들 세력은, 극단적인 불평등의 수혜자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약한 고리인 레바논에서 분출하고 있는 민중의 요구는 정확히 전쟁의 땅에서 불평등의 땅이 된 중동의 변화에 조응하는 결과다.

1)https://www.la-croix.com/Monde/Moyen-Orient/Au-Liban-pauvrete-entre-tousfoyers-2020-01-17-1201072339, 2020년 5월 22일 검색.
2)https://blogs.worldbank.org/fr/arabvoices/measuring-regional-poverty-mena-updateand-remaining-challenges, 2020년 5월 22일 검색.
3)https://orientxxi.info/magazine/le-proche-orient-region-la-plus-inegalitaire-aumonde,2775, 2020년 5월 22일 검색.
4)https://ideas4development.org/inegalites-monde-arabe-rente-impot/Inégalités dans le monde arabe : passer de la rente à l’impôt, 2020년 5월 22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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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진영

    중동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네요. 중동지역의 빈부격차나 불평등에 관련된 일들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모두가 평등한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