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커플, 후퇴하는 여성 인권을 말하다

[어서 와요, 소소부부네] 여가부 폐지 아닌 강화된 성평등 정책이 필요해!

올해 10월,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계획이 포함된 정부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성평등의 개념까지 ‘양성평등’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한다. 숨이 턱 막히도록 답답한 이 정부의 무지몽매에 분노를 간신히 다스리던 어느 날, 성평등의 가치를 훼손하는 현 정부에 우리 부부처럼 화가 난 레즈비언 커플, 지오와 슈미가 집에 놀러 왔다.

투닥투닥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알콩달콩 사랑스러운 이 커플이 처음 만난 건 광화문에서 ‘박근혜 퇴진 행동’이 한창이던 2016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송년회 자리였다. 둘의 공통관심사인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호감이 생겼고, 퇴진 행동에 같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사귀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된 이 커플은 6년 차 활동가 커플이다. 최근에 새로운 집으로 이사해 같이 사는 슈미와 지오는 서로의 특성과 개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잘 안 맞는 부분도 있어서 노력하는 중이다.

  지오와 슈미 커플 [출처: 소주부부]

오소리 “둘이 함께 살면서 잘 안 맞거나 의견이 부딪힌 경험은 없어?”

슈미 “있지! 창문이 열려있는데 (물론 밖에서 잘 안 보이지만) 나는 너무 불안한데 지오는 신경을 안 쓰고 그냥 막 샤워를 하는 거야! 그러고 그냥 ‘아~ 시원하다~’ 하면서 나와. 그럼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거지. 창문 닫으라고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이 어떤지 수다를 나누던 중, 슈미가 지오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 그리고 여성 혐오범죄가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 지오가 너무 경각심이 없는 것 같다는 게 슈미의 불만이었다.

지오 “슈미의 걱정과 불안이 뭔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숨어야 할 사람은 여성들이 아니라 죄짓는 사람들인데, 왜 여성들이 먼저 걱정하고 불안에 떨어야 하는지, 그게 내 평소 불만이야. 내 집에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는 것도 이렇게 불안해해야 하는 건지…. 그래서 나는 더 뻔뻔하게 행동하고 살고 싶더라고. 그래도 지금은 창문을 닫거나 블라인드 치고 샤워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웃음).”


실제 삶에서 대처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 두 사람 모두 여성이 당당하고 떳떳한,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동일하게 원하고 있었기에 지금은 합의 지점을 잘 찾아가고 있다.

소주 “(한숨) 구조적 성차별, 여성혐오 문제로 여성들의 안전이 위협받기 쉬운 사회인데…. 그런데 이번 정부가 여성가족부를 정말로 폐지하겠다고 해서 난리잖아. 어떤 생각이 들었어?”

슈미 “이게 조금 복잡한 심경인 게, 없애려고 하는 정부도 짜증 나지만 여성이면서 성소수자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여성가족부가 사실 성평등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었던 건데 하지 않은 부분도 있으니까 그것도 짜증이 나는 거야. 지금 장관의 발언 같은 것도 그렇고.”

지오 “나는 지금 이 정부가 짜증 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행보를 실제로 보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아, 우리 사회가 평등이 후퇴되는 걸 충분히 막지 못하는 게 현실이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리고 이걸 폐지 아니면 존치, 혹은 평등 아니면 불평등 이런 식으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 마치 세상에 여성과 남성만 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그런데 사실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잖아. 구조에 대한 토론이 안 되니까 그게 답답한 것 같아.”


슈미와 지오는 두 사람 다 여성으로서 위험이나 혐오를 경험하는 것뿐 아니라 성소수자로서도 법과 제도의 불평등, 차별을 많이 경험하기 때문에 불만이 정말 많은 것 같았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시도하는 이 정부가 정말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까지의 여성가족부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다고 했다.

슈미 “인류애가 상실되는 것 같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겪는 현실이 분명 실재하는데 성평등이나 여성혐오에 대해 무슨 말 한마디라도 하면 ‘야 내 인생이 더 힘들어’하면서 갑자기 말을 다 자르고…. 그런 게 지금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로 이어지는 것 같고.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혐오나 위험이 그저 개인의 우연한 경험이 아니라 구조적 성차별에 의한 ‘우리’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하는 일이) 앞으로 이런 흐름이라면 혐오에 맞설 힘이 축소될까 봐 걱정도 되고…. 여성혐오의 문제를 마치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축소해서 개인이 알아서 싸우거나 싸움을 포기하게 될까 봐….”


우리는 슈미와 지오에게 레즈비언으로서 여성가족부 장관이나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걸 가장 우선해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소주 “레즈비언으로서 대통령이 된다면!? 장관이 된다면!?”

오소리 “영부인은 내가 되고 싶었는데”

지오 “(웃음) 나는 일단 제도적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모든 가족이 법·제도적으로 등록이 가능하게 바꿀 것 같아. 세부적으로 모든 정책에서 다양한 가족 형태가 소외되지 않게!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혼 법제화는 기본이지.”

슈미 “나는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 것 같아. 돌봄 영역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것을 바꾸고 또 돌봄노동이 평가절하되는 걸 뜯어고치고…! 그리고 또 교육정책이 너무 중요하니까 성평등 교육을 강화할 것 같아.”


여성이자 성소수자로서 지오와 슈미는 펼치고 싶은 정책을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 술술 이야기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성평등 정책이 너무나도 열악했다. 지오와 슈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차별적인지, 얼마나 부족한 정책이 많은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소소부부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게 될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것이나 제안하고 싶은 게 혹시 있어?”

슈미 “살아가면서 성차별로 인해 위태로울 때나 여성혐오 범죄를 경험할 때 등 그 어떤 순간에도 그 위태로움과 죄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오 “이제 우리 커튼을 치울 준비를 하자!”


우리는 슈미 말대로 여성들이 차별과 혐오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을 수 있는 사회, 지오가 창문이 열려있는지 신경 쓰지 않고 샤워해도 되는 안전한 사회, 돌봄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성역할 고정관념이 사라진 ‘성평등’한 사회를 원한다. 그런 사회는 여성뿐 아니라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에게도, 장애인과 청소년, 그리고 이주민과 난민에게도 이로운 사회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누구보다도 남성에게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막기 위해, 더 나아가 성평등 정책이 강화되도록 계속 함께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