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어떻게 회사에서 버려지는가

[새책] 블랙기업을 쏴라! ('신문 아카하타' 일요판 편집국, 홍상현 옮김, 나름북스, 2015)

<블랙기업을 쏴라!>는 일본의 청년들이 어떤 식으로 기업으로부터 이용되다가 버려지는가에 대한 르포르타주(Reportage)이다. 와타미와 유니클로, 롯데리아를 비롯한 유수의 기업들이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현실과 그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심신이 파괴되어가는 근로자들의 참상을, 다들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하는 사회의 화농을 「신문 아카하타」의 취재진은 낱낱히 파헤쳐 들어간다.


이 책의 중심이 되는 어휘는 바로 '소모품(消耗品)'일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의 소모품이 '쓰는 대로 닳거나 줄어들어 없어지거나 못 쓰게 되는 물품'이라고 정의된다면, <블랙기업을 쏴라!>는 존중받아야 할 인격이 아닌 물질로, 한낱 '소모품'으로 화(化)하게 만드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라 말하고, 조르주 아감벤이라면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 불렀을 자본주의적 물화(物化)의 추악함에 대한 가장 사실적인 기록일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제한 당하고 언제든 '폐기'당해도 상관없는 존재들. 이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노동자들이며,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자본주의적 현실 속에서 결국 이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임을 이 책은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와타미의 도시락 배달 사업과 개호서비스 사업의 사고 사례는 근로자의 복지 문제가 소비자의 안전과도 직결되어 있음을 생생히 전해주는 일례일 것이다.)

회사를 선거에 개입시킨 와타미를 비롯, 직원의 신체와 노동을 사유화하는 기업의 ‘봉건주의적’ 양태는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며, 감시카메라도 모자라 GPS까지 동원하며 직원을 감시하고 행동을 관리하는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를 방불케하는) 현실은 ‘생체 권력(미셸 푸코)’의 문제로까지 비화한다. 기업의 목적은 철저히 자본의 ‘효율적’ 증식에 있는 것. 생산성의 ‘효율’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건강과 안전, 인간성, 심지어 민주주의의 대의까지 얼마든지 무시하는 야만성이 자본의 본질이라는 점을 <블랙기업을 쏴라!>는 정확히 직시한다. 단언컨대, 자본은 (마이다스의 손처럼) 그에 닿는 모든 것을, 인간의 생명과 존재와 가치, 사회 시스템의 공공성 그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블랙기업을 쏴라!>는 제동장치 없는 자본이 이처럼 끝없이 야만을 자행할 수 있음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있는 것은 아니다. 휠덜린의 싯구에서처럼 “위험이 있는 곳에는 그러나 / 구원의 힘도 함께 자라니”(하이데거 <기술과 전향>에서 재인용)이리니. 블랙기업의 노동 현장에 처해 고통받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언론(「신문 아카하타」)’과 ‘정치세력(일본 공산당)’이 있고, 사회구성원의 합의와 연대(수도권 학생 유니온)가 가능하다면, 변화의 가능성은 남아있을 것이다 . 일본의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한국 사회에 있어 <블랙기업을 쏴라!>가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